커즌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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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커즌 라인(폴란드어).svg

Curzon Line

1. 개요
2. 탄생
3. 조정


1. 개요[편집]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 최고위원회에 의하여 정해졌던 폴란드 제2공화국의 동쪽 국경선.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에는 러시아 혁명소비에트-폴란드 전쟁으로 인해 무시당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이오시프 스탈린이 폴란드 동부 영토를 냠냠한 결과 소련-폴란드 사이의 국경선과 대체로 일치하게 되었다.

위 지도에서 연한 파랑색 선('커즌 라인 B')이 원래의 커즌 선이며, 짙은 파랑색 선이 폴란드 침공 당시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한 폴란드 분할선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이 연합국에게 제안한 국경선, 빨간색 선이 1947년 이후 현재까지의 국경선이다. 소련이 폴란드 침공 때 차지한 르부프, 타르노폴, 스타니스와부프 등이 원래 커즌 선 서쪽에 있었으나 소련에 속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탄생[편집]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내건 14개 조항 중 13번째 항목은 "독립된 폴란드 국가는 폴란드인이 살고 있는 명확한 영토를 포함해야 하며, 바다로 자유롭고 안전하게 나갈 수 있어야 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폴란드는 18세기 말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 의하여 분할된 이후 120년 가까이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였기에, 연합국 측은 신생 폴란드의 국경선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연합국 최고 위원회는 고심 끝에 3차 폴란드 분할 이후 프로이센 왕국과 러시아 제국의 국경선을 폴란드의 동쪽 국경선으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이 국경선은 1919년 당시의 민족분포도도 고려했기 때문에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폴란드는 볼셰비키로부터 완충지대를 최대한 마련하고자 했다. 거기에다 볼셰비키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파기하고 동유럽의 모든 신생국가들을 침공하고 폴란드 중심부와 가까운 벨라루스까지 점령했으므로, 폴란드는 선공을 걸어서라도 볼셰비키의 서진을 저지하려고 했다. 그래서 폴란드는 이 제안을 단칼에 거부한 채로 볼셰비키와의 전쟁에 돌입하여 벨라루스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1920년 4월에는 우크라이나와 동맹까지 체결하여 패기롭게 키예프까지 진군했지만 붉은 군대에게 참패하고 전황도 급속도로 악화되자 1920년 7월 협상국에게 SOS를 쳤다.

이 때 폴란드와 볼셰비키의 휴전을 중재하고자 나선 영국의 외교관이었던 케들스턴 후작, 조지 너새니얼 커즌(George Nathaniel Curzon, 1st Marquess Curzon of Kedleston, 1859–1925)이 1919년의 국경선을 약간 수정해서 양 측에 제안하고, 그 결과 커즌(Curzon) 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합국 최고 위원회의 제안에서는 폴란드의 영토에 포함됐던 르부프 및 갈리치아 지방이 볼셰비키에게 넘겨졌다. 이번에는 볼셰비키가 이 중재를 무시하고 바르샤바 근교까지 진격하지만 바르샤바 전투에서 폴란드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후퇴해야만 했다. 결국 전쟁을 지속할 경제력이 고갈된 볼셰비키와 폴란드는 커즌 라인보다도 250km 동쪽으로 밀려난 곳에 국경선을 긋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 문서 최상단 이미지의 회색영역에 해당하며 폴란드어로는 크레시(Kresy, '국경 지대') 또는 크레시 프스호드니에(Kresy Wschodnie, '동부 국경 지대')라고 일컬어진다. 이 국경선은 1923년 국제연맹에서 승인되었다.


3. 조정[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에 체결된 독소 불가침조약에 의하여 폴란드 침공 이후 소련과 독일 사이의 국경은 커즌 선보다 훨씬 서쪽으로 옮겨졌다. 이후 독소전쟁을 거치면서 폴란드를 점령한 소련은 폴란드 망명 정부와의 합의 없이 커즌 선을 소련과 폴란드 사이의 국경으로 삼아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했다. 이후 테헤란 회담얄타 회담을 거치면서 동유럽 내 소련의 패권을 무시할 수 없었던 서방 측은 쿠르스크 전투 이후 커즌 선을 국경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는 이러한 연합국의 결정에 엄청나게 반발했다. 러시아한테 한번도 지배당한 적이 없었던 영토를 빼앗기는 것에 반발한 폴란드 망명정부는 물론, 윈스턴 처칠 등 연합국 수뇌부까지도 르부프를 포함한 갈리치아 지역만이라도 건지고자 협상을 시도했지만 강철의 대원수에게 거부당했다. 이 때 스탈린이 한 말이 걸작이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내가 커즌 경보다도 러시아인스럽지 않다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인가?"

대신 연합국이 폴란드에게 꿩 대신 닭으로 준 것이 바로 슐레지엔포메른, 그리고 동프로이센 남부 등 패전국 독일의 옛 동부 영토이다. 이로 인해 옮겨진 독일의 국경선을 오데르-나이세 선이라고 부른다. 오데르-나이세 선으로 촉발된 독일과 폴란드 간의 영토분쟁에 관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스탈린 입장에서는 독일의 국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촉발될 독일-폴란드간 국경분쟁에서 폴란드가 소련에 의존할 게 뻔하니 꿩먹고 알먹고였다.

한편, 이 시기에 갈리치아 지역이 소련에게 넘어감으로써 우크라이나라는 민족국가의 경계가 확정되는 데에도 기여하기도 했다. 르부프폴란드인이 다수 거주하는 폴란드의 도시였지만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발전에서 핵심이 되는 지역이기도 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역사에서도 이 커즌 라인으로의 국경선 조정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 말기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에서도 이 지역은 특히 찬성률이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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