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랴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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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어: Коряки[1]
  • 코랴크어: Нымылъын[2], Чавчыв[3]

1. 개요
2. 역사
2.1. 고대~중세
2.2. 근현대
3. 문화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Koryak_ceremony_of_starting_the_New_Fire.jpg
의례용 불을 피우고 있는 코랴크 정주민.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캄차카 지방 북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축치캄차카어계 민족으로 캄차카 내에서 두번째로 많은 소수민족이다.[4]

언어는 축치캄차카어족에 속한 코랴크어를 썼으나 현재는 러시아의 소수민족 대부분이 그러하듯 러시아어를 일상어로 쓰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러시아 내 인구수는 약 7,485명이며, 나머지 400여 명의 인구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2. 역사[편집]



2.1. 고대~중세[편집]


신석기시대부터 전통 수렵을 기반으로 오호츠크해 연안 지역에서 문화를 형성했으며, 기원전후 수세기에 걸쳐 이들의 문화는 해양동물 사냥 문화로 발전하면서 코랴크 종족 공동체가 형성되고 코랴크의 선조들은 점차 캄차카 반도 깊숙이 이동했다.

이후 정주생활을 시작하면서 해양동물 사냥을 업으로 하던 코랴크인 일부 그룹이 펜지나강(Пенжина)과 캄차카 동부 해안가에 살고 있던 에벤족으로부터 순록 유목을 접하였다.[5]

초기의 순록 유목은 해양동물 사냥, 어업, 채집에 비해 부수적인 활동에 그쳤으나 점차 그 중요성이 커지면서 코랴크인들의 주요 경제 활동으로 변화하였다.

2.2. 근현대[편집]


파일:Koryak_shaman_woman.jpg
20세기 초반에 촬영된 코랴크 여성 샤먼.
17세기 말엽에 약 10,000~11,000명이던 코랴크인의 인구는 주변 종족들과의 다툼[6]과 캄차카로 진출하려 하는 서쪽에서 온 카자크로부터의 저항으로 인해 그 사이에 인구는 절반으로 감소해버렸다.[7]

그 결과 한때 11,000명에 달하던 코랴크인 인구수는 1800년에 이르러선 정주그룹과 유목그룹을 모두 합쳐 4,800명 정도로 많이 감소했다.

1931년 소련 시절에 코랴크 자치구가 생겼으나 소련 해체 이후인 2007년 7월 1일 캄차카에 합병되었다.


3. 문화[편집]



영상은 코랴크 전통 춤이며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로부터 약 40km 떨어진 북부 지역의 카이니란(Кайныран) 마을에서 볼 수 있다.

코랴크 정주그룹인 "니밀란"의 주요 경제 활동은 어업과 해양동물 사냥이었다. 다양한 그물낚시를 이용하여 주로 연어를 잡았으며, 해양동물 사냥은 5월 말이나 6월 초에 시작되어 늦가을까지 지속되었다.

이들의 또다른 경제 활동은 순록 유목이었다. 그룹별로 약 400~2,000마리 정도의 순록을 유목하여 생활하였다.[8]

또한 코랴크 사회에서 순록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록의 고기가죽은 음식재료, 의복 및 신발 재료, 야란가의 덮개로도 쓰였다. 순록의 또한 버리는 것 없이 장식품으로 만들거나, 먼곳까지 짐을 날라주는 운송수단이 되어주기도 했다.

신랑신부 집안을 위해 반년에서 3년 정도 일을 한 후 신부의 아버지 또는 그 집안의 장남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어야 결혼을 할 수 있는 데릴사위제가 존재했다. 결혼을 한 뒤에도 첫날밤을 맞이하기 전 신부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겉옷과 바지 소매를 끈으로 단단히 동여매 칼로 자르지 않고는 벗길 수 없게 만들고서 온종일 신랑을 피해 다녔다.[9]

의복문화에서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대부분 시베리아 민족들이 쓰는 모자는 원통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코랴크인의 모자는 사각형이란 점이다.

4. 기타[편집]


배우 이동욱의 모계 유전자에서 미량의 코랴크인의 혈통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들의 하위 민족으로 알류토르인이 존재한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캄차카 지협에 고립된 상태로 살면서 에스키모와 집중적으로 접촉한 결과 코랴크인 집단으로부터 문화와 언어가 분리되어 고유의 특성을 갖게된 것으로 간주된다.[10][11]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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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유카기르인들이 코랴크인을 부르는 명칭인 '카라카'(карака)에서 유래됐다. 뜻은 '순록과 함께'.[2] 또는 нымылъу, 캄차카 반도 동부와 서부 해안가의 펜지나 행정구와 타이고노스 반도에서 정주하던 그룹.[3] 또는 чавчывав, 캄차카 내륙의 툰드라에서 순록치기로 살아가는 그룹.[4] 제일 많은 수를 자랑하는 건 우크라이나인, 세번째로 많은 민족은 이텔멘족들이다. 다만 극동 지역은 항상 인구가 감소세에 있기 때문에 순위가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다.[5] 순록 유목을 시작한 건 약 11~16세기 사이로 추정.[6] 주로 축치인과 퉁구스계 민족이던 에벤족. 코랴크인 순록 유목그룹(차브추벤)은 축치인 순록 유목그룹(차우추)과 잦은 무력 충돌을 일으켰고, 이들 간의 전쟁은 1780년대에 들어서 겨우 종결됐지만 결과는 코랴크의 패배였고, 코랴크인은 많은 순록을 빼앗겼다. 이로 인해 축치인과 에벤인에게 순록 유목영역을 내주고 아나디르 강 유역에서 캄차카 반도로 이주해야 했다.[7] 또한 1769~1770년에 창궐했던 천연두 또한 코랴크인의 인구가 감소하는데 한몫했다.[8] 이들은 계절에 따라 1년에 네 번 이동하는데, 에는 이끼가 자라는 곳으로, 여름에는 깔따구가 적은 곳으로, 가을에는 다량으로 순록을 잡기 편한 마을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여 유목했다. 겨울에는 마을 가까운 곳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며 유목했다.[9] 이 중에서 신부가 신랑을 진심으로 싫어하여 다른 여자들의 도움으로 이리저리 숨어 다니는 바람에 신랑이 결혼을 단념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10] 다만 일부 학자들은 알류토르인을 코랴크의 하위 집단이 아닌 개별적으로 독립된 민족으로 보기도 한다.[11] 하지만 코랴크인과 알류토르인의 기원이 같다는 점은 확실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