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라인/목록/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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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합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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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eaeaea본 문서에 다음을 적용한다.1. 해당 문단의 개요 아래에 '우승이 전무한 경우'와 '우승이 있지만 그 수가 적은 경우'로 문단을 분리하여 서술한다.2. 이 경우 '우승이 있지만 그 수가 적은 경우'에 등재하기 위해서는 (가)~(라) 중 적어도 하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 (가) 지역 언론을 포함한 [[제도권 언론]] 및 계열 브랜드 언론의 기사에 준우승과 관련된 별명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 '콩' 혹은 '준'이 포함된 별명은 '준우승과 관련된 별명'으로 볼 수 있다. * (나) 매년 1회 이상 열리는 대회: 마지막 우승 이후 10년 이상이 지났으며 마지막 우승 이후 준우승 4회 이상 * (다) 격년 이상 간격으로 열리는 대회: 마지막 우승 이후 20년 이상이 지났으며 마지막 우승 이후 준우승 3회 이상 * (라) 마지막 우승 이후 3회 '''연속'''으로 준우승한 적이 있었던 경우 3. 본 합의안에 따라 문서에 기재된 인물 혹은 단체가 새로이 우승을 하게 될 경우, [[콩라인/목록/전직 멤버]]로 이동한다.이상은 본 문서에만 적용하며 [[콩라인/목록]], [[콩라인/목록/e스포츠]] 등 다른 문서는 이 내용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참고 사항}}}


1. 개요
2. 우승이 전무한 경우
2.1. 야구
2.1.1. 개인 타이틀 관련
2.2. 축구
2.2.1. 국가대표
2.2.2. 구단
2.2.3. 선수
2.3. 농구
2.4. 배구
2.5. WWE (프로 레슬링)
2.6. 종합격투기
2.7. 연고 지역
2.10. 기타 스포츠
2.10.1. 팀
2.10.2. 개인
3. 우승이 있지만 그 수가 적은 경우
3.1. 야구
3.1.1. 개인 타이틀 관련
3.2. 축구
3.2.1. 국가대표
3.2.2. 구단
3.2.3. 선수
3.3. 농구
3.4. 배구
3.4.1. 국내 배구
3.5. 종합격투기
3.6. 연고 지역
3.9. 기타 스포츠
3.9.1. 단체 및 팀 선수
3.9.2. 개인



1. 개요[편집]


콩라인/목록의 스포츠 문단이 매우 길어지는 바람에 이 문서로 분리됐다.

토론 합의에 따라 우승 경험 유무에 따라 분류한다.


2. 우승이 전무한 경우[편집]




이 문서는 나무위키의 이 토론에서 국가대표 및 구단으로 예시할 수 있는 조건은 매년 열리는 대회인 경우 우승 없이 준우승 4회 이상 / 격년 이상 간격으로 열리는 대회인 경우 우승 없이 준우승 3회 이상으로 함으(으)로 합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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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야구[편집]


  • 마루 요시히로: 히로시마 시절인 2016, 2018년, 자이언츠 소속으로 2019, 2020년에 일본시리즈에 나갔으나 모두 패했다.
  • 마스코트
  • 박병호: 히어로즈 시절인 2014년,2019년, KT 소속으로 2023년 한국시리즈에 나갔으나 모두 패했다.
  • 성준: 삼성 선수 시절인 1986년, 1987년, 1990년, 1993년 한국시리즈 4회 준우승. 롯데 선수 시절인 1999년에는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했지만 성준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 있지 않았다. 2012년에는 SK 코치 신분으로 1년 전에 몸 담았던 삼성을 상대로 준우승을 거뒀다.
  • 아시아 시리즈에서의 대만프로야구 구단: 2005년 싱농 3위, 2006년 라뉴 준우승, 2007년 퉁이 3위, 2008년 퉁이 준우승, 2011년 퉁이 3위, 2012년 라미고(舊 라뉴) 준우승. 2013년은 대만이 개최국 자격으로 두 팀 나갔는데 EDA(舊 싱농)는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였고 퉁이는 준결승에서 일본의 라쿠텐을 잡고 결승에서 호주의 캔버라를 만나며 대만 구단으로는 첫 아시아 시리즈 우승이 점쳐졌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캔버라에게 참패하며 또 준우승했다.
  •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합병되어 해체되기 전까지 일본시리즈 우승이 없고 4회 퍼시픽 리그 우승(1979년, 1980년, 1989년[1], 2001년)만을 했다.
  • 이강돈: 4회. 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빙그레 콩라인 역사의 산 증인.
  • 이종욱[2]: 4회. 2007년, 2008년, 2013년, 201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여담으로 2013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뒤 전 소속팀 두산 베어스는 한국시리즈에서 무려 3번의 우승을 추가했고, 이종욱이 2018년 선수로서 은퇴를 발표하자마자 NC 또한 2020년에 창단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선수 생활 내내 우승반지랑 지독하게 인연이 없었던 케이스.
  • 정재훈: 4회. 두산 소속 시절인 2005년, 2007년, 2008년, 2013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2014시즌 후 FA 보상선수로 롯데로 옮겼다가 1년만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으로 복귀했는데, 하필 그 2015시즌에 두산이 한국시리즈를 우승했기에 더더욱 안습이었다. 2016년에는 본인이 압도적인 차이로 홀드 1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팀도 시즌 내내 1위를 하고 있었기에, 정재훈은 홀드 1위 타이틀 획득은 물론이고 당연히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 중 오른팔에 타구를 맞는 부상을 당하여 시즌 아웃되었고, 팀은 21년 만에 통합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결국 정재훈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하면서 콩라인을 탈출하지 못했다. 2017년에 팀은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했지만 정재훈은 재활하느라 퓨처스 리그에서조차도 경기를 뛰지 못하고 은퇴했다. 그나마 이후 2019년에 코치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다른 콩라인들에 비하면 어느 정도 한을 푼 케이스.
  • 키움 히어로즈: 2014년, 2019년, 2022년 모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매 시즌마다 꾸준한 호성적을 보여주는 팀이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다.
  • 한희민: 빙그레의 콩라인 역사의 산 증인으로 한국시리즈 4회 준우승. 빙그레 시절인 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에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했다. 삼성 시절인 1993년에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했지만 한희민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 한큐 브레이브스 1962~1971 유니폼: 퍼시픽 리그를 5번 우승했으나 시대를 잘못 만났다. 물론 팀 자체는 1975년에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함으로써 탈출하였다.
  • 돈 서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에이스로 300승과 3000K를 기록하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레전드지만, 1976년 사이 영 상 투표 3위에 오른게 최고일 정도로 수상과 연이 닿지 않았으며 선수 생활 내내 우승과도 지독하게 인연이 없었다. PO 운은 따랐기 때문에 통산 다섯 차례 PO를 밟았는데, 그 중 4번이나 월드 시리즈에 올라갔다. 하지만 신인 시절인 1966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마운드에 서지 못하며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패배하는 장면을 봐야 했고, 1974년에 비로소 PO 마운드에 올라 월드시리즈까지 가지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게 패배했다. 1977년과 1978년에는 2년 연속 월드 시리즈에 올라 모두 뉴욕 양키스에게 패배했다. 밀워키 브루어스 소속이던 1982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패배. 그래서 우승 반지가 없다. 이 사람의 콩라인 속성을 더욱 빛내주는 장면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1986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소속으로 ALCS에서 3승 1패로 앞서다가 5차전 마무리 투수의 블론 세이브를 시작으로 내리 3연패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여기에 더해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공교롭게도 그가 데뷔하기 직전 시즌인 1965년에 미네소타 트윈스를 꺾고 우승했고, 그가 처음 팀을 떠난 시즌인 1981년에 뉴욕 양키스를 격파하고 우승했다. 추가로 1988년에는 친정 다저스로 돌아왔지만, 세월을 속일 수 없는지 부진한 투구를 보이며 8월에 방출되고 은퇴했다. 그런데 그가 방출된 후, 다저스는 PO에서 승승장구했고 월드 시리즈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누르고 우승하며 최후의 우승 반지 기회도 그렇게 날아갔다.


2.1.1. 개인 타이틀 관련[편집]


2013년에도 다승 1위, 이닝 1위를 하지만 클레이튼 커쇼라는 더한 괴물에게 밀리며 사이영 상에서 또 2위에 머물렀다. 2014년에는 커쇼도 부상당하고 이제 사이영 좀 타나 싶더니, 그 커쇼가 부상 복귀 이후 그야말로 커친놈 모드로 달리며 21승 1.77이라는 치트급의 성적을 찍어버렸다. 사이영상은 당연히 만장일치에, MVP까지 타버렸으니 말 다 했다.
  • 심정수 & 양준혁: 둘 다 역대 최고의 1인자를 끝까지 넘지 못하고 은퇴했으며 각각 해당 문서 참고.[3]
  • 커트 실링: 1990년대에는 브레이브스 왕조 3인방에게 밀렸고, 승수 자체도 소속팀이 만패팀인지라 워낙 밀렸다. 그나마 1997년 17승을 거두면서 사이영상을 기대했으나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외계인 한 놈이 리그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바람에 밀렸다.
2000년대 들어가면서 외계인이 리그를 옮기고 브레이브스 왕조 3인방도 황혼기를 맞이하면서 이제야 사이영 한 번 타보겠구나 했더니 새로 옮긴 팀에 있던 콧수염 멀대가 리그를 초토화하며 2001, 2002년 모두 2위로 밀렸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한 덕에 외계인, 콧수염 멀대가 모두 옆 동네에 있게 되어 이번에야말로 사이 영을 받는구나 했지만,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또 다른 외계인이 튀어나와 리그를 씹어먹는 바람에 또 2위. 결국 은퇴할 때까지 사이 영은 못 받았다.
  • 키요하라 카즈히로: 팀 우승은 세이부 시절 때부터 이미 밥먹듯이 우승했었고, 본인도 꾸준히 성적을 올리며 통산 홈런, 타점 10위권에 이름을 올렸지만, 삼관왕의 주요 타이틀인 수위타자, 홈런왕, 타점왕[4]을 한번도 못 타 팀 우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콩라인 취급된다. 하필 키요하라와 동시대의 선수들이 파리그 시절엔 오치아이 히로미츠, 랄프 브라이언트, 아키야마 코지,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 카도타 히로미츠, 부머 웰즈, 스즈키 이치로, 세리그 시절엔 마쓰이 히데키, 마에다 토모노리, 로버트 로즈, 로베르토 페타지니, 카네모토 토모아키 등 하나같이 괴물들이 많긴 하였다. 무관의 제왕이란 별명이 붙여질 정도였다.
  • 손아섭: 최다 안타상을 제외하고는 콩라인. 데뷔 이후 3차례의 시즌 최다 안타 1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2013년과 2020년에 타율 2위를 기록하며 타격왕을 차지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현역 통산 타율 또한 2020년 기준 박민우에게 밀려 2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기록에서도 2위가 많아 득점 2위 3차례, 볼넷 및 도루에서 2위 2차례를 기록하는 등 스톡킹에서 본인도 스스로 한 시즌이라도 KBO리그를 씹어먹을 정도의 활약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고 FA 당시 메이저리그 진출 또한 포기하게 된 이유라며 자조했다.[5] 그나마 2023년 타격 1위, 안타 1위로 그나마 개인기록으로는 콩라인에서 탈출했다.
  • 오재일: 2016년 수위 타자로 올라서며 첫 풀타임 주전을 맡은 이후부터 주전 1루수로서 수준 급 성적을 낸 시즌은 많지만 정작 수상 경력은 단 한 번도 없다. 본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던 2017년에는 이대호의 국내 복귀로 인해 경쟁에서 밀리고[6], 2019년에는 박병호가 홈런왕을 차지하며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다. 어찌보면 커리어 하이 시즌마다 경쟁자들에게 타이틀에서 한끗 앞서는 역전을 허용하는 점+시즌 초반에 개점 휴업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잔부상에 시달리며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점이 평가절하의 원인이었다.


2.2. 축구[편집]



2.2.1. 국가대표[편집]




2.2.2. 구단[편집]


  • 바이어 04 레버쿠젠: 구단 역사를 통틀어 분데스리가 우승을 단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는데, 역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 팀들 가운데 자국 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것은 레버쿠젠이 유일하다. 2001-02 시즌 트리플 러너업을 달성했고,[7] 당시 수문장이었던 한스 외르그 부트월드컵까지 준우승하여 쿼드러플 러너업을 기록한 것도 모자라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고 나서 마지막 시즌인 2011-12 시즌에 또 트리플 러너업을 달성했다. 그래도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 리그 외에는 DFB-포칼 2회, UEFA 주관 유럽 대항전 2순위UEFA컵 우승 1회[8] 등 우승 경력이 있다. 아예 Neverkusen[9], Vizekusen[10]이 팀의 별명일 정도였다.
  • FC 샬케 04: 1963년 분데스리가 통합 출범 이후로 준우승만 7번 했을 뿐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11] 다만 챔피언스 리그 성적이 시원찮은지라 2위를 차지하고도 영 임팩트가 없고 DFB-포칼도 레버쿠젠보다 더 많은 5회 우승 경력이 있어서 레버쿠젠처럼 콩라인 이미지가 심하지는 않다.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콩라인. 라 리가 타이틀도 있고, 챔스 아랫단계 대회인 UEFA 유로파 리그 타이틀도 있지만 챔스에서는 준우승만 세 번 했다. 특히 2010년대 들어서는 두 번이나 챔스 결승에 올랐지만, 두 번 모두 마드리드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 CF에게 패했다. 챔스 우승이 없는 구단 중 가장 많은 준우승을 한 클럽이다.
  •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여자 축구단: 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 이후 현재 WK리그의 콩라인이다.


2.2.3. 선수[편집]


  • 김대환 - 이운재라는 넘사벽 때문에 선수 생활 내내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No.2 골키퍼로 있다 은퇴했다.
  • 곤살로 이과인 - 국대 한정. 전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격수로 세계적인 명성의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유벤투스, AC밀란(이상 이탈리아), 첼시(잉글랜드)를 거쳤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총 3번의 라리가 우승, 2015~2016시즌 세리에A 통산 한 시즌 최다골 기록(36골)으로 득점왕을 하였고, 유벤투스 마지막 시즌(2019~2200) 리그 우승에 힘을 보태는 등 훌륭한 커리어를 쌓았지만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 챔피언스리그 등 주요 메이저 타이틀 없다.세 차례 월드컵 (2010·2014·2018) 코파 아메리카에 수차례에 출전하여 리오넬 메시 등과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이끌었으나 월드컵(2014)과 코파 아메리카(2015, 2016)에서 모두 준우승(최고성적)이다. 또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이과인은 2022년 10월 미국 프로축구(MLS) 인터 마이애미에서의 활약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 다비드 트레제게 - 걸출한 실력으로 유벤투스의 주전급의 스트라이커지만 프랑스 대표팀에선 티에리 앙리에 밀려 늘 벤치 신세였다. 당시 대표팀 감독인 레몽 도메네크 감독은 전술을 4231 전술을 쓰는데 언제나 "1"의 원톱은 앙리였기에...이런 안습한 상황을 잘 나타낸 "트레제게의 눈물"이란 영상이[12] 꽤 유명하다. 이런 홀대와 감독과의 불화를 견디지 못해서 결국 트레제게는 "도메네크 감독이 있는 이상 더 이상 대표팀엔 안 돌아간다" 라고 하며 2008년 국가대표 은퇴 선언을 하고 만다.
  • 디에고 밀리토 - 득점왕 부문. 2004-05 세리에B, 2006-07 라리가, 2008-09 세리에A, 2009-10 세리에A, 2011-12 세리에A. 등번호도 22번.
  • 델리 알리 - 대회 경력의 시작부터가 EFL 리그 원 준우승[13]일 정도로 심각한 콩라인이며, 팀 동료와 더불어 프로 인생을 통틀어 우승 트로피가 단 한개도 없으며 이후 2016-17 시즌 프리미어 리그 2위,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2020-21 시즌 EFL컵 준우승을 차례로 달성하며 성인 대회 경력 포함 프로 인생을 통틀어 우승 없이 준우승만 4회다. 그리고 동료들과 뛰었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4위를 차지했다.
  • 마르크안드레 테어 슈테겐 - FC 바르셀로나의 주전 골키퍼로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으나, 대표팀에서는 팀의 주장이자 부동의 1번 마누엘 노이어의 존재로 인하여 세컨드 골키퍼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인 수상에서도 얀 오블락, 다비드 데 헤아, 티보 쿠르투아, 케일러 나바스, 알리송 베케르 등 다른 월드클래스 골키퍼들에게 밀려 수상하지 못하고 있다.
  • 미하엘 발락 - 워낙 인상적인 준우승이 잦아 콩락이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 우승 자체는 어느 정도 해 봤지만, UEFA 챔피언스 리그와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우승은 한번도 차지하지 못했다. 2001-02 시즌 레버쿠젠 소속으로 트리플 러너업을 기록하고 2002 월드컵에서도 독일 대표팀 소속으로 준우승하며 한 해 준우승 4회 달성, 이후 2007-08 시즌에도 첼시에서 리그, 챔스 준우승 더블+리그컵 준우승에 유로 2008 준우승을 하면서 또 4회 준우승을 기록해 준우승 쿼드러플을 2번 경험한 유일무이한 선수가 되고 말았다. 씁쓸하게도 발락이 첼시를 떠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2011-12 시즌 첼시는 구단 첫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 스티브 하퍼 - 골키퍼계의 콩라인. 뉴캐슬에서 20년 선수 생활을 했는데 넘버 원 저지를 2년밖에 달아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실력이 없는 골키퍼냐면 그것도 아니라서, 잉글랜드 국대감이라는 평가도 받았는데 2008년까지 뉴캐슬의 주전 골키퍼가 하필 기븐신이어서 묻히고, 기븐이 떠나자 주전 자리를 얻었는데 하필이면 그 시즌 뉴캐슬은 강등되었다. 게다가 승격 후에는 후배 팀 크룰이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또 다시 밀려났으며 결국 은퇴까지 영원한 2인자로 남았다.
  • 손흥민 - 역대 최고의 아시아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고,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까지도 해 본 선수이지만 정작 프로 경력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2016-17 시즌 프리미어 리그 2위,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2020-21 시즌 EFL컵 준우승에 국가대표에서도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준우승으로 굵직한 준우승만 4회를 기록했다. 그나마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 있다.
  • 에르난 크레스포 - 국가대표 한정.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 이후 그는 매양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로 인해 주전 자리를 빼앗겼다. 심지어는 남미 지역예선 역사상 최다득점을 하고도 바티스투타와 비엘사의 각별한 친분으로 인하여 2002 월드컵 때도 벤치였다. 1인자급 포스를 강렬하게 뿜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2등 인생을 살았다. 구단에서도 첼시에 임대 선수로 가더니 영어 못하는 크레스포는 영국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 강도가 드는 등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영어 잘하는 디디에 드록바에게 밀려 결국 첼시에 팔리지 못했다. 그러나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크레스포는 조별리그에서 드록바를 산뜻하게 눌러줬다. 하지만 이 역시 미로슬라프 클로제에 밀리며 득점 순위 2위라는 실버슈가 되었다. 그는 콩라인이기 이전에 월드컵에 출전했던 모든 선수들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불행아였던 것이다. 요한 크루이프가 그를 평하기를 "1인자보다 더 뛰어난 2인자"라 했다.
  • 잔루이지 부폰 - 20년이 넘는 선수 생활동안 월드컵을 포함한 많은 트로피를 들었으나 UEFA 챔피언스 리그는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결승전은 세 차례 올라갔으나, 전부 준우승했다.[14]
  • 조수혁 - 울산 현대 이적 이후 뛰어난 실력에도 김용대, 오승훈, 김승규, 조현우 등의 걸출한 경쟁자들에 밀리며 세컨 골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15]. 그럼에도 불평없이 팀을 위해 헌신하고 세컨 골리 자리를 받아들이며 프로의식이 투철한 선수라 울산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는다.
  • 파올로 말디니 - 국가대표에선 무관의 제왕. 구단에서 트로피는 들어올릴 대로 다 들어올렸지만 아쉽게도 국가대표에서 메이저 타이틀을 따내진 못했다. 그 중 1994 미국 월드컵에선 호마리우에게, 유로 2000에선 다 잡은 경기를 경기 막판에 교체로 들어온 선수에게 골을 헌납하고 ,트레제게에게 골든골을 먹혀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는데[16] 하필 이탈리아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 파트리스 에브라 - 챔피언스리그에서만 준우승을 5번이나 해서인지 콩라인이다.[17] # 게다가 유로 2016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 한스외르크 부트 - 무려 세계에서 유일한 트리플 러너업 2회 달성자[18]. 2002년에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주전으로, 2012년에 바이에른 뮌헨에서 백업으로 한 번씩 달성했다. 심지어 커리어 상 우승 경력이 1995-96 시즌 레기오날리가 우승, 2009-10 시즌 분데스리가DFB-포칼 우승, 2010년 DFL-슈퍼컵 우승이 전부이고, 준우승만 7번[19]을 했다. 문제는, 부트가 은퇴한 바로 다음 시즌 바이에른 뮌헨이 즉시 트레블을 해 버렸다는 것이다. [20]
  • 해리 케인 - 현재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이며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3회와 2018 러시아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한 2010년대 잉글랜드 최고의 완성형 스트라이커이자 201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시안 게임 금메달[21]이라도 있는 팀 동료와 달리 아직 성인 대회는 물론이고, 프로 인생을 통틀어 우승 트로피가 단 한개도 없다. 2016-17 시즌 프리미어 리그 2위,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2014-15, 2020-21 시즌 EFL컵 준우승, 유로 2020 준우승으로 성인 대회 경력 포함 프로 인생을 통틀어 우승 없이 준우승만 5회. 이에 2023년 사실상 우승 트로피 하나만을 노리며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과연 무관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받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적 후 첫 대회인 DFL-슈퍼컵에서 RB 라이프치히에 3대 0으로 대패하며 이번에도 아쉬움만을 삼키게 되었다.
  • 킹슬리 코망 - 밥먹듯이 우승을 경험한 소속팀에서와는 다르게 국대에선 준우승만 2번이다. 정작 그가 빠진 프랑스는 2번씩 우승한다
  • 마르코 로이스 - 도르트문트의 분데스리가 마지막 우승 시즌이었던 2011-12 시즌이 끝나고 도르트문트의 합류하여 11년동안 우승 시즌이 없다. 그 기간동안 준우승은 7번이나 했다... # 18/19 시즌에는 자신의 백태클로 스스로 우승을 날려먹었고, 22-23 시즌에는 8분 챔피언 사건이 터져버렸다. 구단 경력에서도 우승과 연이 없는데 자신이 부상으로 낙마했던 14 월드컵에서는 독일우승했지만, 정작 자신이 참가했던 대회에서는 우승하지 못했다. 다만 DFB 포칼 2회 우승과 DFL 슈퍼컵 3회 우승으로 총 5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긴 했다.


2.3. 농구[편집]


  • 1950-60년대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라이벌 보스턴 셀틱스한테 무려 7번(59년,62년,63년,65년,66년,68년,69년)이나 챔피언 자리를 내주었다.
  • 강동희: 선수 시절에도 허재에 밀려 2인자 신세였으며, 감독으로서도 2연준 달성. 특히 2011-12 시즌은 44승 10패로 역대급 시즌을 보내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안양 KGC인삼공사에게 2:4로 분패했다. 그 뒤 그가 감독 시절 승부조작을 하다 걸려서 지금은 영원한 금지어가 되었다.
  • 엘진 베일러(전 NBA 농구선수): 역사상 최고의 득점기계 중 한 명. 경이로운 체공력으로 유명했고, 결승전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61득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커리어 내내 LA 레이커스에서만 뛰면서 8번이나 결승에 올라갔음에도 모두 준우승. 더 황당한 건 1971년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했는데, 하필 바로 그 시즌에 팀이 우승했다.[22] 그리고 그의 등번호 22번은 LA 레이커스에서 영구결번이 되었고, 은퇴 후 LA 클리퍼스에서 22년간 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 유니폼
    • 서울 삼성 썬더스 2007~2010: 이상민이 있었던 시기, 챔피언 결정전에 두 번 진출하지만 한 번은 동부를 상대로 준우승, 한 번은 KCC를 상대로 7차전 끝에 분패하면서 2연준을 달성했다.
  • 유타 재즈
    • 존 스탁턴(전 NBA 농구 선수): 챔피언 결정전에서 번번히 마이클 조던에게 가로막혔다.
    • 칼 말론: 스탁턴의 영혼의 파트너. 역시 챔피언 결정전에서 번번히 마이클 조던에 가로막혔다. 이후 그는 2003년, 나도 우승하겠다고 18시즌을 뛰었던 유타 재즈에서 나와 샼-코비의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지만 또 준우승을 하고 은퇴했다. 통산 득점 2위도 달성. 1989, 90시즌엔 득점왕급인 평균 29점, 31점을 찍었으나 조던이 각각 32점, 33점을 찍어버리면서 밀린다. 1992시즌까지 4년연속 득점 2위를 기록한 뒤 1993시즌엔 나란히 득점 콩라인인 도미닉 윌킨스와 함께 2, 3위를 기록했고 조던이 1993시즌 이후 은퇴하면서 득점왕 좀 노려보나 했는데 갑자기 그 전까지 둘보다 항상 낮은 득점을 보이던[23] 데이비드 로빈슨이 각성이라도 했는지 29.8점을 찍으면서 득점왕을 차지한다.[24]또한 통산 득점에서도 카림 압둘 자바에 이어 2위다.
  • 윤호영: 원주 동부 프로미 소속으로, 2010-2011, 2011-2012, 2014-2015, 2017-2018 총 네 번 준우승을 맛보며 '콩호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박지현: 고양 오리온스에서 2002-2003, 원주 동부 프로미에서 2010-2011, 2011-2012, 2014-2015 총 네 번의 준우승.
  • 이시준: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11년 동안 원클럽맨으로 뛰었지만 준우승만 3번 했다. 윤호영, 박지현과는 다르게 정규 시즌에서 1번도 우승한 경험이 없다.
  • 찰스 바클리(전 NBA 농구선수): 포워드로서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매 경기 20득점-10리바운드 정도 잡아내는 당대 최고의 선수. 1993년 정규시즌 MVP까지 수상했으나 그 해 결승전 때 바클리가 이끄는 피닉스는 마이클 조던[25]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에게 패했다. 재미있게도 이쪽은 코트 밖에서는 조던의 절친이다.
  • 창원 LG 세이커스: 준우승은 2번뿐이지만 정규리그 준우승은 더 많다. 하지만 2013~2014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정규리그에서는 콩라인에서 벗어났다.
  • 청주 KB 스타즈 - WKBL에서 2018-19시즌 첫 통합우승을 하기 전까지 나머지 5팀 중 4팀에게 준우승을 먹어 이제 KDB생명에게만 준우승을 당하면 준우승 그랜드슬램을 이루게 된다.
  • 테렌스 레더(2007~2008 프로농구, 2008~2009 프로농구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각각 4:1, 4: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후 2009~2010 프로농구 시즌 중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전주 KCC 이지스로 이적, 다시 한 번 결승전까지 오르지만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4:2로 패하며 3연준을 달성했다.)
  • 패트릭 유잉(전 NBA 농구선수) 1990년대 4대 센터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훌륭한 실력을 지녔으나 동부 플레이오프에서 그분이 이끄는 시카고나 레지 밀러의 인디애나 등에게 번번히 좌절당했다. 결승에 오른 적은 2번 있으나 한 번은 7차전 접전끝에 패하고, 다른 한 번은 부상으로 출전을 못했다. 그러나 조던이 첫 우승을 한 이후 그의 팀을 7차전까지 몰고간 팀은 닉스와 페이서스 뿐이란 점에서 닉스는 불스왕조를 가장 힘들게 했던 주인공이자 최대의 라이벌이기도 했다. 특히 인디애나는 힘이 빠진 1998시즌의 불스를 상대한 것이었지만 닉스가 불스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던 1992시즌에 불스는 67승씩이나 거둔 대단한 전력이었다.[26]
  • 황진원: 2006~2007 부산 KTF 매직윙스 소속때 준우승, 2010~2011 시즌과 2011~2012 시즌 원주 동부 프로미에서 준우승을 맛보았다.


2.4. 배구[편집]




2.5. WWE (프로 레슬링)[편집]


  • 골든 제네레이션

  • 뉴 제네레이션
    • 숀 마이클스 - 젊은 시절에는 브렛 하트에게 밀려 명확한 1인자가 되지 못했고,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 잠시 1인자가 되었지만 등부상으로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해 오스틴에게 1년도 안돼서 자리를 넘겨줬다. 복귀 이후에는 본인 나이도 있고, 그래서 2002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올랐던 적은 있지만 그 후에는 타이틀 샷을 스스로 거부하여 간혹 태그팀 챔피언에 오르는 정도였다.

  • 애티튜드 시대
    • 더 락 - 애티튜드 시대의 양대 아이콘이지만 명백한 1인자 스티브 오스틴에게는 상대 전적에서 압도적으로 밀린다.[27] 단, 영화배우로서는 더 락이 오스틴을 콩라인도 무색할만큼 격차를 벌려놓았다.

  • VS 존 시나
    • 에지 - 존 시나가 1인자로 등극하면서 새롭게 떠오른 라이벌. 하지만 챔피언으로서 기록이 짧은데다가 중요한 경기에서는 결국 시나의 제물이 되기 일수였다.
    • 랜디 오턴 - 존 시나와 지겨울 정도로 대립했으며 할아버지,아버지 부터 활동해왔던 레슬링 가문에다가 나름대로 나쁘지 않는 비주얼과 경기력으로 회사에서도 많이 밀어주었으나 결정적인 때에 항상 일이 꼬여 아이콘이 되지 못한 경우다.

  • 기타
    • 언더테이커 - 물론 타이틀도 여러번 차지했지만 인기나 단체에서의 비중을 보면 데뷔 이후 줄곧 브렛 하트-숀 마이클스-스티브 오스틴-더 락 시대의 1인자를 받쳐주는 2인자 포지션이었다. 바꿔 말하면 수많은 시대의 1인자들이 제대로 1인자 노릇 하게 해준 든든한 버팀목 노릇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는지라 팬들에게는 1인자보다 위대한 2인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쯤 되면 사실상 공인 명예회원 수준이다.[28]
    • 리타 - 실력과 캐릭터에서는 트리시 보다 훌륭했지만 하필 심각한 부상을 당한데다가 WWE 공식 커플 소리 들었던 매트 하디를 버리고, 에지랑 바람나는 바람에 이미지가 안좋아지고 말았다.
    • 로얄럼블 매치 한정의 로만 레인즈 - 로얄럼블 준우승 4회.


2.6. 종합격투기[편집]


1등을 한 적이 있어도 2위 자리가 굳어지면 콩라인으로 편입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인데 2001년 정상에 올랐다가 2003년에 2위로 내려앉은 후 약 6년간 줄창 2위만 하다보니 넘사벽의 2인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 조셉 베나비데즈 - UFC 플레이급의 강자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자기 밑으로는 싹다 정리해버렸으나 드미트리우스 존슨만큼은 죽어도 넘지 못하고 있다. 존슨이 벤텀급 월장을 하거나 핀급이 신설되지 않는 이상 베나비데즈는 영원히 콩라인으로 머물지도 모른다. 그러나 드존이 가자 해당 체급에 데이비슨 피게레도 라는 또다른 GOAT가 나타나 그에게 두번 도전했다 두번 모두 압도적으로 패배하며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 존 피치 - 2005년부터 2011년까지 UFC 웰터급에서 15전 13승 1패 1무라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1패는 조르주 생 피에르에게 당한 것인데 이 경기에서 지면서 타이틀 획득에 실패하고 만년 콩라인이 되고 말았다. 2010년 UFC 117에서 가진 티아고 알베스와의 콩라인 결정전에서도 승리.
  • 케니 플로리안 - TUF 시즌 1 미들급 결승에서 디에고 산체스에게 TKO를 당하면서 콩라인으로 UFC 커리어를 시작하더니 2006년과 2009년 UFC 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각각 션 셔크BJ 펜에게 패했다. 결국 2011년 페더급으로 체급을 낮추었으나 또다시 타이틀 매치에서 조제 알도에게 패했으며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 탱크 애봇 - 1995년 UFC 6 토너먼트 결승에 진출하지만 올렉 탁타로프에게 패한다. 이듬해인 96년 올스타전인 Ultimate Ultimate에서도 결승까지 오르지만 돈 프라이와의 난타전에서 패하면서 또 다시 준우승.
  • 페드로 히조 - 2000~2001년에 걸쳐 모두 3차례 UFC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케빈 랜들맨랜디 커투어에게 패했다. 특히 UFC 31에서의 커투어와의 대결은 손꼽히는 명승부. 그밖에도 전직 챔피언, 훗날 챔피언에 오르게 될 선수들과 대결해서 4번이나 승리했지만 정작 본인은 한번도 타이틀을 차지해 본 적이 없다.
  • 채드 멘데스 - 2010년 이후로 항상 랭킹 3위 이내를 유지하고 있고, 충분히 페더급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실력을 가졌으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조제 알도만 두 번 만나 두 번 다 졌다. 조제 알도의 부상으로 2015년 7월 코너 맥그리거와 잠정 챔피언전을 가졌으나 역시 패배.
  • 유라이아 페이버 - 2016년 6월 5일 도미닉 크루즈와의 타이틀전에서 패하면서 ufc 챔피언 도전 경기에서 4번이나 패했다. 이쯤되면 완벽한 콩라인.
  • 맥스 할로웨이 - UFC 4대 페더급 챔피언이었고, 모든 컨텐더들을 압도적으로 때려 눕히는 극강의 선수지만 현 챔피언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에게 3번이나 지면서 콩라인이 되었다. 할로웨이가 1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인 선수라고 하는 반면 볼카노프스키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인 선수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볼카노프스키가 챔피언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상 할로웨이가 다시 챔피언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2.7. 연고 지역[편집]




2.8. 바둑[편집]


  • 서능욱 - 우승없이 준우승만 무려 14번을 한 바둑계의 전설적인 콩라인. 그가 활약한 시대는 소위 조국수서명인의 시대로 불리던 조훈현, 서봉수 양강체제의 시대로 본선에서는 늘 서봉수에게 무너졌고 어쩌다 간신히 서봉수를 꺾고 결승에 올라가면 조훈현에게 떡실신당했다. 조훈현에게 진 것만 무려 12번이며 조훈현이 1990년대에 들어가면서 전성기가 한 풀 꺾인 뒤에는 돌부처 이창호에게 결승에서 2번이나 만나면서 끝내 우승하지 못했다. 그나마 54세인 2011년에 제2회 대주배에서, 이듬 해 제3회 대주배에서는 각각 조훈현서봉수를 꺾고 우승했다.[30]


2.9. 체스[편집]


  • 폴 케레스 - 에스토니아 체스 그랜드마스터, 콩라인에 어울리는 선수들을 살펴보자면 빅토르 코르치노이와 알렉산더 벨리에브스키가 있겠지만 그중 제일 으뜸 콩라인은 바로 이 선수이다. 1938년에 AVRO대회를 우승하고 당시 세계챔피언을 도전할 기회가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산. 그 이후 세계체스챔피언 도전자 결정전을 4연속 준우승[31] 함으로써 매번 도전자 자격을 안타깝게 획득하지 못했다. 전성기 시절, 대회란 대회는 죄다 우승했지만 유독 세계 챔피언십 대회에서는 인연이 없어 챔피언 타이틀이 없는 선수 중 제일 강한 체스 플레이어라고 불리운다. 오죽하면 일부러 지라는 정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
  • 히카루 나카무라 - 21년 11월 기준 블리츠와 래피드 모두 세계 챔피언 망누스 칼센에게 뒤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요한 순간에 삐끗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며 FIDE 타이틀도 하나도 획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2022년 FIDE 피셔 랜덤 체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2번째 챔피언이 되어 설움을 풀었다.


2.10. 기타 스포츠[편집]



2.10.1. 팀[편집]


  • NFL
    • 미네소타 바이킹스 - 슈퍼볼 시행 이후 준우승만 4번(1970, 74, 75, 77) 우승은 0번. 문제는 이 쪽으로는 독보적인 버펄로 빌스 때문에 존재감마저 2등.
    • 버펄로 빌스 - 바이킹스와 마찬가지로 슈퍼볼에서 4번 준우승(1991~94). 특히 더 처절한 것은 4년 연속 슈퍼볼 준우승.[32]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처절한 건 이 팀을 제외하면 슈퍼볼을 4년 연속 진출한 팀이 없다는 사실이다[33]. 그리고 네 번 다 쿼터백 짐 켈리

  • 핸드볼
    • 스웨덴 남자핸드볼 국가대표팀 - 올림픽 한정. 올림픽에서만 4번 은메달을 받았다. 특히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 애틀란타 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3회 연속 올림픽 은메달을 기록했으며 그것도 전승준이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해 결승에 올랐지만 프랑스에게 21-22로 석패하면서 또다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34]
    • 베스프렘 KC - 헝가리의 핸드볼단. EHF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 없이 준우승 4회 기록 중이다.

  • 럭비 유니언
    • 프랑스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12년을 주기로 준우승을 하는 징크스가 있다. 1987 럭비 월드컵, 1999 럭비 월드컵, 2011 럭비 월드컵에서 3번 준우승하며 역대 럭비 월드컵에서 준우승 경험이 있는 나라 중 유일하게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게다가 역대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나라 중 유일무이하게 영연방이 아닌 나라로서 럭비가 축구와 함께 또다른 자존심인 곳인데도 번번히 우승에 실패하고 있다. 특히나 2011년 뉴질랜드 대회 결승은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프랑스 개최국인 뉴질랜드를 상대로 7:8, 단 1점차로 졌기 때문이다. 1987년에는 뉴질랜드에게 20점차, 1999년은 호주에게 23점차로 졌던 걸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결과. 그리고 다시 12년이 되는 2023년, 자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는데 2022년부터 프랑스 대표팀의 기량이 절정이라 어느 때보다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문제는 2023년 전반기에 아일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에 밀려 월드 럭비 랭킹 2위에 머물렀고 연초에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에서도 2위에 그쳤기 때문에 12년 징크스까지 겹쳐 또 준우승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2 x 2회 준우승 [35]
    • ASM 클레르몽 - 프랑스의 프로 구단인 클레르몽은 축구의 챔스격인 유러피언 럭비 챔피언스 컵에서 우승 없이 준우승만 3번 했다. 원소속 리그인 TOP 14에서도 우승 2회, 준우승 7회를 달리며 독보적인 준우승 횟수 1위를 자랑한다.

  • 아시안 게임
    • 대한민국 - 워낙 양 옆에 있는 나라들이 강력한 스포츠 강국들이다 보니 종합 우승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2위만 9번을 차지했다.[36] 동계 아시안 게임 역시 종합 우승은 단 한 번도 차지하지 못하고 2위만 3 기록했다.
  • 양궁
    • 중국 -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팀 9연패인 대한민국을 상대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2004 아테네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 전부 대한민국에 패배해 은메달을 획득했다.[37][38]

  • 필드하키
    • 스페인 남자 필드하키 대표팀 - 올림픽 은 3개(1980 모스크바, 1996 애틀랜타, 2008 베이징), 동 1개(1960 로마)를 획득했다. 월드컵에선 은 2개(1971 바르셀로나, 1998 위트레흐트)를 따냈다.
    • 아르헨티나 여자 필드하키 대표팀 - 월드컵에선 2회 우승했지만, 올림픽에선 은 3개(2000 시드니, 2012 런던, 2020 도쿄), 동 2개를 획득했다.


2.10.2. 개인[편집]


  • 강민구 - PBA 당구 선수. PBA TOUR 첫번째 준우승자가 된 이후 총 4번의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결승전 상대는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 프레데릭 쿠드롱, 하비에르 팔라존 그리고 다시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 4번의 준우승으로 1회 우승 상금을 넘어서는 상금을 획득하였다.
  • 김동문-라경민 복식조 - 14개 대회 연속 우승, 국제경기 70연승에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부동의 세계랭킹 1위를 지켜내던 환상의 배드민턴 혼합복식조. 반면 올림픽 금메달과는 지독하게 인연이 없는데 2000 시드니 올림픽2004 아테네 올림픽 연속 8강을 기록했다. [39]
  • 닉 하이트펠트 - 독일의 F1 드라이버. 실력도 준수했고 '퀵 닉' 이라는 별명도 가졌지만 그의 커리어 12년 동안 단 한번도 그랑프리 우승을 하지 못했다.
  • 다니 페드로사 - MotoGP의 라이더. 250cc 클래스[40]에서는 챔피언을 3번이나 했지만 2006년에 MotoGP 클래스에 올라오면서부터는 10년 동안 시즌 3위 3번, 시즌 2위 3번으로 챔피언에 아주 가까이만 근접할 뿐 챔피언 자리에 오르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2013, 2014 시즌에는 팀메이트였던 마르크 마르케스가 보란 듯이 2년 연속으로 챔피언을 먹었으며 잦은 부상으로 인한 기량저하로 콩라인 탈출에 실패하고 2018년 은퇴를 발표하게 되었다.
  • 다리아 콘다코바 - 이리나 차시나의 뒤를 잇는 리듬체조계 콩라인의 적자이다. 예브게니야 카나예바에게 밀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선수권에서 3회 연속 개인종합 은메달이라는 위업에 그쳐야 했다. 세계선수권 뿐만 아니라 유럽선수권, 월드컵, 그랑프리시리즈에서도 전부 카나예바에게 밀려 은메달이었다.
  • 데니스 아블랴진 - 러시아의 체조선수로 남자 도마판 왕하오. 2012 런던 올림픽부터 2016 리우 올림픽, 2020 도쿄 올림픽까지 한민족 선수들[41]에 의해서 올림픽 체조 남자 도마 부문 3연속 준우승을 기록했다.
  • 도미니크 팀 - 오스트리아테니스 선수. 세계 랭킹 3위, US 오픈 챔피언이라는 성적을 거둘 정도로 뛰어나지만 결승에서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라는 괴물을 만나 4번의 결승 진출에도 불구하고 1회의 우승에 그치고 있다.[42] 연말 왕중왕전이라 할 수 있는 ATP 파이널스 역시 스테파노스 치치파스, 다닐 메드베데프에게 패해 준우승 2번을 기록하고 있다.
  • 라슬로 체흐 - 헝가리의 수영 선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에게 밀려 메달만 3개를 획득했다.
  • 루벤스 바리첼로 - 포뮬러 1계의 대표 콩라인. 커리어의 전성기를 페라리 소속으로서 팀동료였던 어느 먼치킨을 뒷바라지하는 데 고스란히 갖다 바쳤다.[43]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십 시즌 최고기록 2위 2회.
  • 리총웨이 - 2008, 2012, 2016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단식 은메달, 2011, 2013, 2014, 2015 배드민턴 세계선수권 준우승. 세계랭킹은 1위였지만 실질적인 1위는 린단이었다.
  • 마르틴스 두쿠르스 - 라트비아의 스켈레톤 선수. 스켈레톤계의 우사인 볼트로 불리며 2010년대 세계 스켈레톤계를 씹어먹다시피했지만 정작 올림픽 무대에서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연달아 개최 선수에게 밀려 은메달에 그치더니 윤성빈이 금메달을 차지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마지막 4차 시기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목메달에 그쳤다.
  • 마크 마틴 - 바리첼로가 F1의 콩라인이면 이 분은 나스카계의 콩라인. 30년동안 시리즈 챔피언쉽 종합 우승은 못 해보고 2위만 총 5번했다.
  • 멀린 오티 - 자메이카 출신의 세계적인 여자 육상선수.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 출전한 이래 세계 선수권 대회, 실내 육상대회, 영연방 대회에서는 3개씩 금메달을 땄으나 유독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이 없다. 현재까지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은 은메달 3개, 동메달 6개인데 1996 애틀랜타 올림픽 100m 결승에서는 불과 0.005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때에는 슬로베니아로 국적을 바꿔가면서까지 금메달에 도전했으나 100m 부문과 200m 부문 모두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선수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 최고령 육상 선수. 이 멀린 오티의 동계스포츠 버전이 바로 차민규다.
  • 모리시타 타쿠 - 쇼기계의 대표적인 무관의 제왕. 7대 타이틀 전에서 6회 패배, 기사 선수권에서 준우승만 9회. 그가 아직도 타이틀을 한번도 획득하지 못했다는 자체가 일본장기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통산 800승을 기록중인데 타이틀 획득 경험이 없는 기사로는 유일한 기록이다.
  • 문세영 - 서울 경마공원 소속의 한국 최정상급 기수지만 1500승에 빛나는 박태종 기수의 존재감이 워낙 뛰어나 경마꾼들 사이에서 2인자 취급을 받고 있으며 개인 최다승수 기록 대신 1년 최다승수 (128승. 2의 7승이다!)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9년 혹서기 휴장 전까지의 누적 수득상금은 22억으로 2위. 콩라인 확정이 되었다.
  • 문의제 - 대한민국 레슬링 자유형에서 마지막으로 국제경쟁력을 지녔던 선수. 국내 및 아시아권에서는 아시안게임 2연패[44]를 차지했을 정도로 적수가 없었지만 세계 무대에서는 우승을 눈앞에 두고 한 끗 차로 아쉽게 준우승한 대회가 4회나 되었다. 1998년과 2001년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했고 2000 시드니 올림픽[45]2004 아테네 올림픽[46]에서 연속 은메달을 땄다.
  • 미카 히르보넨(WRC) - 핀란드가 배출해낸 WRC 굴지의 드라이버지만 현재까지 단 한 시즌도 제대로 세바스티앙 로브를 제치고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적이 없이 2위만 4번. 2009 시즌 마지막에 준우승을 하면서 로브에게 1점차로 2위, 2011시즌 최종전인 웨일즈 랠리에서 리타이어를 하는 바람에 로브의 8년 연속 챔피언 등극을 알아서 갖다바친 꼴이 되었다.
  • 박광덕 - 백두장사는 3번 했으나, 천하장사 등극에는 실패. 천하장사 준우승만 5번했다.
  • 박세리 - 한국에선 챔피언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 분도 은근 콩라인이다. 동시대에 활약한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이 있었다. 미 LPGA 데뷔시즌부터 상금랭킹 2위로 콩을 하나 까더니 2001년~2003년 3년 연속으로 상금랭킹 2위를 찍었다. 거기에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나비스코 챔피언십 딱 한 대회만 우승한 적이 없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했다.[47]
  • 박인비 - 국내한정이다. 이미 세계 최정상급선수에 우승기록도 많으며 112년 만에 올림픽에 복귀한 골프 금메달리스트이지만 국내 KLPGA대회에서는 준우승 기록만 있다.
  • 사샤 코헨 - 미국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2회 연속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이다.
  • 서수연 - 장애인 탁구 선수.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 패럴림픽에 출전해 개인전 두 번, 단체전 한 번으로 3개의 은메달을 획득. 모두 중국에 패했으며 특히 개인전 2연속 은메달의 경우 리우 징이라는 한 중국 선수에게 2연속으로 패하여 얻은 결과다. 아시안게임에서도 두 개의 은메달을 획득.
  • 소피아 벨리카야 - 올림픽 개인전 한정, 여자 사브르의 대표적 콩라인, 2012년, 2016년, 2021년에 세 번의 올림픽에서 모두 개인전 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의 김지연에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같은 국적의 야나 에고리안에게,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같은 러시아 출신의 소피아 포즈냐코바에게 패했다.
  • 스털링 모스 - F1의 원조 콩라인. 1955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후안 마누엘 판지오), 1956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판지오), 1957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판지오), 1958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호손). 물론 바리첼로와 같이 대놓고 팀에서 2인자로 설정한 경우가 아니었고 기량도 대단했으며 당대 영국을 대표하는 드라이버였기에 평가가 굉장히 높은 선수이다. 일종의 무관의 제왕. 기사작위도 받았고 다수의 챔피언보다도 위상이 높은 선수. 심지어 2021년 10월 기준으로는 월드 챔피언을 한번도 못해본 드라이버 중에서 2번째로 많은 승수인 16승을 기록하고 있다.(1위는 17승의 막스 베르스타펜.)
  • 스티븐 뒤부아 - 캐나다의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은메달만 6개를 가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선수의 은메달 경기 금메달 수상자는 전부 황대헌이다.
  • 실레시 시히네: 에티오피아 장거리 육상선수, 케네니사 베켈레에 밀려 2위만 줄곧 했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피디아 실레시 시히네 문서로.
  •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 - 2004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결승에서 문대성 선수한테 헤드샷 맞고 떡실신하며 은메달. 절치부심하며 준비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역시나 우리나라의 차동민 선수한테 막판 쳐맞으며 은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콩라인 등극.
  • 알베르트 뎀첸코 - 러시아의 루지선수이며,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딴 메달이 은메달이다.
  • 얀 에길 스톨홀트 - 노르웨이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유럽선수권에서 1977년, 79년 2번이나 우승했었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나 북미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라 유럽 1위가 곧 세계 1위였으나, 하필이면 그의 전성기가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미국 에릭 하이든의 4년 간의 현역 시절과 정확히 겹쳤다. 스톨홀트는 1977~79년까지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하이든에게 밀려서 2위에 그치며 3년 연속 준우승을 달성하였다. 끝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지 못 하고 자국에서 열린 1981년 세계선수권에서 3위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그나마 1976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에서 1500m 금메달은 따서 다행.[48] 사실 이 시기는 모든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가 콩라인이었다.
  • 얀 울리히 - 사이클계의 홍진호. 독일의 자전거 선수로, 사이클링 실력 자체는 최상위권이었으나 하필이면 활동하던 시대에 랜스 암스트롱이 있어 세계구급에서는 준우승만 했다. 물론 둘 다 약물 복용으로 기록과 자격을 싸그리 박탈당했는데, 약물 복용으로 박탈당한 선수의 등위는 그 다음 사람이 메꾸는 게 아니라, 공석 처리를 하기 때문에 랜스 암스트롱이 먼저 걸려 박탈당했음에도 울리히는 끝내 1위가 되지 못했다.
  • 앤디 머리 - 테니스 선수. 다른 국제 경기에서는 우승 경험이 있지만 호주 오픈에서만은 이상하게 준우승만 5번해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 중에서 상대가 4번은 노박 조코비치로, 이상하게 결승에서 조코비치만 만나면 힘을 못쓰고 지고 만다.
  • 앤디 쉴렉 - 2009/10 두 시즌에 걸쳐 투르 드 프랑스 2연준. 게다가 투르의 이벤트 격인 화이트 저지[49]3년 연속 획득, 콩라인의 자격을 갖추었다. 2011년 투르에서는 똑같이 2회 준우승자 출신인 카델 에반스와 콩라인 결정전으로 격돌, 막판 TT에서 허무하게 역전을 허용하면서 3연준의 위업을 달성했다.[50]
  • 왕하오 - 중국탁구 선수로,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부문 3연속 준우승을 달성하였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 수 아래라 여겼던[51] 유승민에게 결승에서 4:2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결승에서 대표팀 동료 마린에게 패,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결승에서 또다시 대표팀 동료 장지커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우노 쇼마 - 일본피겨 스케이팅 선수.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2회 연속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다.
  • 이규혁 -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동계올림픽에(6회) 출전했음에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4위를 한 게 최고 성적이다.
  • 이리나 차시나 - 리듬체조계의 콩라인이였다. 별명부터가 영원한 2인자였다. 그녀와 동시기에 활동했던 알리나 카바예바에게 밀려 늘 2위를 했지만, 예술성만은 카바예바를 능가했다는 평을 받는다. 성적과는 별개로 카바예바와 함께 리듬체조계의 레전드로 꼽히는 선수다.
  • 이비차 코스텔리치 - 크로아티아의 알파인스키 선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2014 소치 동계올림픽 3회 연속 은메달을 획득했다.
  • 이호석 - 안현수이정수에 밀려서 올림픽에선 개인전 은메달만 3개가 있다. 그래도 2006년에 계주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나마 한국 선수 중 대표팀 최다 출전 기록은 있었으나 그마저도 곽윤기에 의해 깨졌다.
  • 잡다캐릭 - TEKKEN CRASH 시즌 4 4위, 시즌 5 3위, 시즌 6 준우승, 시즌 7 준우승, 시즌 8 준우승.
  • 제롬 르 밴너 - K-1 WGP 결승에 숱하게 진출했지만 그때마다 피터 아츠,앤디 훅,어네스트 후스트에게 막혀 준우승에 그쳤다.
  • 제이 커틀러 - 그 어느 시대에 내놓아도 전설로 남을 퍼포먼스를 뽐낸 보디빌더이지만 하필 함께 활동한 선수가 보디빌딩의 신 로니 콜먼이었다. 마냥 속수무책으로 밀리기만 한 것은 아니고 그를 턱 끝까지 몰아붙이기도 했지만 로니 콜먼의 부상으로 유독 부진했던 한 해를 제외하면 번번이 그에게 미스터 올림피아를 내준 만년 2인자. 특히 로니 콜먼의 은퇴 후에도 클라스는 어디 가지 않아 몇 번 미스터 올림피아 타이틀을 땄으나, 도중에도 덱스터 잭슨에게 한 번 패했고 하필 말년에 등장한 신인이 그 전성기 로니 콜먼과도 비견될 만한 축복받은 자 필 히스라 또 2위를 기록한 불운한 보디빌더이다.
  • 쥘리앵 베네토 - 프랑스의 1982년생 테니스 선수. ATP 투어 개인 타이틀 결승에서 10번 올라서 준우승만 했다. 웬만큼 투어에서 비빈 선수들은 거의 타이틀 하나쯤은 따는데 결국 은퇴 시점까지 타이틀을 따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
  • 짐 켈리 - 버펄로 빌스와 함께 4년 연속 슈퍼볼 준우승을 해낸 미식축구계의 대표적인 콩라인이다. 개인기록마저 댄 마리노, 존 엘웨이에게 밀려서 콩라인이다. 미국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콩라인 드립 지분의 반 이상은 이 사람. 그나마 나머지의 반 이상은 소속팀이었던 버펄로 빌스이다.
  • 차민규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0.01초 차이로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콩라인에 합류했다. 2017년 12월에 캘거리에서 있었던 월드컵 3차대회에서도 0.001초 차이로 1위에 오르지 못하는 등 이래저래 콩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이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도 0.07초 차이로 은메달 획득. 이쯤되면 남자 스피드스케이팅판 멀린 오티다.
  • 최예림 - KLPGA의 골프 선수. 우승 없이 준우승만 5번.[52][53]
  • 킴 부탱 - 2022 몬트리올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2위를 기록했다. 종목별에서도 전부 2위를 기록. 500m, 1000m, 1500m, 3000m 슈퍼 파이널, 3000m 계주.
  • 타이슨 게이 - 우사인 볼트에 밀려 참여하는 대회마다 2위를 했으나, 요즘은 2위도 버거워하고 있는 안습한 상황이다.
  • 탄량더 - 1984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1988 서울 올림픽,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스프링보드 3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 파트릭 루스트 - 네덜란드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올림픽에서는 은 3개, 동1개를 획득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1500m 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에서 5000m와 10000m에서 은 2개로 콩라인의 정점을 찍었다.
  • 프랭키 프레데릭스 - 나미비아의 육상선수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1996 애틀란타 올림픽 2개 대회 연속 100m, 200m 2종목 은메달의 신화를 썼다. 참고로 이 네 종목의 금메달리스트는 전부 다른 사람이었으며(바르셀로나 100m:린포드 크리스티, 200m:마이클 마쉬, 애틀란타 100m:도노번 베일리, 200m:마이클 존슨), 2019년 현재까지 나미비아가 올림픽에서 딴 메달은 이 은메달 네 개가 전부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실로 위대한 선수이자 위대한 콩라인이다.
  • 필 미켈슨 - 전성기가 하필이면 역대 최고의 사기캐와 겹치는 바람에 PGA투어 시즌 상금 랭킹 2위만 5번을 했다.
  • 황형범 - 대한민국의 당구 선수로 준우승만 4회 있다.


3. 우승이 있지만 그 수가 적은 경우[편집]



3.1. 야구[편집]


  • 김경문 감독: 1982년 OB 선수였을 때와 코치 시절에 우승을 한 적이 있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감독 시절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경험이 없어서, 특히 2007년과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에게 패하여 2연준을 기록하면서 콩라인으로 취급되고 콩경문이라 불렸다. 여기에 NC 다이노스 감독시절인 2015 페넌트레이스 2위를 기록하고, 2016년에는 페넌트레이스 2위&한국시리즈에서 4연패로 2위를 기록하며 콩경문 어디 안 간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2016년까지를 기준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잠실 10전 전패, 홈 경기 10전 전패를 기록하는 중이다. 2019년 국가대표 감독으로도 또 한번 준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적이 있으니 감독 우승 경력이 아예 없다고 보기 어렵다. 여담으로 선수 시절에는 등번호를 22번만 썼다.
  • 김영덕 감독: KBO 리그 원년 우승 감독이지만 이후엔 죄다 준우승을 기록했다.
  •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 일본시리즈 8회 준우승. 단, 선수로는 1950년 최초의 일본 시리즈 당시 마이니치 오리온즈 소속으로 우승한 바 있다.
  • 류지현: 바람의 아들을 넘지 못해서 콩라인이며 우승은 1994년에 했다.
  • 이만수: 한국시리즈 우승 없이, 준우승 6회. 게다가 선수 시절 등번호도 22번! SK 코치 시절에는 우승한 바 있으나 2011년 감독 대행으로 한국시리즈 준우승, 2012년 감독으로 페넌트레이스 2위 및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 그러나 1985년 전후기 독식으로 이룬 우승도 있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있을때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했기에 완전한 콩라인은 아니다.
  • 이종욱: 4회. 두산 소속이던 2007년, 2008년, 2013년에 한국시리즈 준우승. NC 소속이던 201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현대 유니콘스에 소속 시절인 2003년에 팀이 통합 우승했지만, 이종욱은 그 당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그나마 코치로는 1개가 있지만 선수 시절로 한정하면 콩라인 중에서도 심한 편.
  •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와후 추장의 저주 하나로 설명 끝. 우승 가뭄 동안 월드 시리즈에 4번 더 나갔지만 괜히 저주가 아니다. 심지어 콩라인을 확정한 시리즈는 염소의 저주를 끊어주는 그 시리즈였다.
  • 히로시마 도요 카프: 클리블랜드보다야 덜하겠지만 그래도 우승 가뭄이 길기로 서러운 팀이다. 1984년 우승 이후 1986년, 1991년, 2016년, 2018년에 일본시리즈에 진출해 우승 가뭄을 끊으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이던 1955년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 기록한 준우승 횟수가 무려 6번으로 그중에서도 1941년, 1947년, 1949년, 1952년, 1953년은 모두 뉴욕 양키스를 만나 월드 시리즈에서 지면서 그야말로 콩라인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줬다.[54] 이후 LA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인 1977년과 1978년에도 2년 연속 양키스에게 월드 시리즈에서 패했고, 88년 우승 이후 29년만에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던 2017년과 이듬해 2018년에도 각각 휴스턴[55]과 보스턴에 패하며 2년 연속 준우승을 했다.[56] 현재 다저스는 7번의 우승과 함께 준우승이 무려 14번으로 모든 스포츠팀 통틀어 최다 준우승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3.1.1. 개인 타이틀 관련[편집]


  • 노무라 카츠야: NPB 최다 경기 출장 1위, 최다 타수 1위, 전쟁 후 최초의 3관왕을 달성했으나[57] 최다 안타, 홈런, 타점은 오 사다하루, 장훈 등에게 빼앗기며 2위를 기록하였다. 거기다 인기도 퍼시픽리그 소속이라는 특성상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 등에 밀려 2인자 신세였다. 오죽하면 본인이 "나가시마와 오가 해바라기면 나는 쥐죽은듯 피는 달맞이꽃 이란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 홍성흔[58]: 2008년 ~ 2010년 3년 연속 타율 2위, 2010년 타율, 장타율, 안타, 타점 2위. 2010년에 같은 팀에 7관왕 이대호가 있었기에 1위를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2001년 두산 베어스 우승 멤버지만 키요하라처럼 개인 타이틀이 없어서 콩라인 취급. 게다가 마저!그래도 기자들과 친분덕분인지는 모르지만 골든 글러브에서는 혜택을 많이 보았다. 2009년은 사실 매우 억울한게 그 유명한 타격왕 밀어주기로 인해 피해자가 되었다. 2010년도에도 정말 억울한건 윤석민의 사구에 손등을 맞고 부상을 당한게 컸다. 이래저래 2년간은 운이 없었다고 봐도 된다. 물론 2010년에 풀타임을 뛰었어도 이대호가 졌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 호세 피렐라: 2022 시즌 리그를 폭격하는 성적을 보여줬으나, 이정후의 존재로 인해 타율, 안타, 홈런[59],타점, 출루율, 장타율, wRC+, sWAR 모두 2위에 머무르는 콩라인이 되었다. 즉, 이정후만 없었다면 2022시즌 MVP가 되고도 남을 수준이였다. 다만, 득점 부분에서는 1위를 기록해 개인 타이틀은 가져갔다.


3.2. 축구[편집]



3.2.1. 국가대표[편집]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AFC 아시안컵 한정): 결선 토너먼트로 대회 방식이 바뀐 1972년 이란과의 최초 결승전을 포함, 아시안 컵 결승전 공식 전적은 4경기 1무[60] 3패[61]로 최다 준우승. 단, 개편 이전 풀 리그 방식일 때에는 두 차례 우승한 바 있다. 물론 2022년 기준 62년 전이다.
  • 타히티 U-16 축구 국가대표팀 (OFC U-16): 우승 0회, 준우승 4회(2007, 2009, 2011, 2015). 오세아니아는 호주와 뉴질랜드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에 콩라인 입성에 용이하다. 다만 타히티는 성인대회에서는 2012년 대회에서 우승을 한 적이 있어서 콩라인이 아니다.
  •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아프리카 여자 네이션스컵): 우승 1회(2022), 준우승 5회(1995, 2000, 2008, 2012, 2018).
  • 모리야스 하지메 : 어째 국가대표팀만 맡으면 준우승에 그친다. 코치로 참여한 2006년 AFC U-19 챔피언쉽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감독이 된 뒤로도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 결승에서 대한민국에 패해 준우승, 2019 아시안컵에서도 카타르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하고 2019 동아시안컵 결승에서도 대한민국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2022 EAFF E-1 풋볼 챔피언십에서 대한민국을 꺾고 이 대회 우승을 차지하여 콩라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3.2.2. 구단[편집]


  • 유벤투스 FC: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준우승 구단으로, 우승은 2회[62] 차지한 반면 준우승은 총 7회[63] 기록했다. 특히 1995-96 시즌부터 3연속 결승에 올랐으나 우승은 1995-96 시즌 한 번 뿐이었고, 이 우승을 마지막으로 이후 준우승만 무려 5번을 기록하는 중이다. 그나마 리그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승 횟수 1위를 수성 중이긴 하다.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분데스리가의 신흥 콩라인. 우승경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64], 마지막 우승이 11/12 시즌으로 11년전이고[65], 그동안 무려 7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콩라인 이미지가 생겼다. 위의 샬케와 비슷하게, 로이스의 백태클 사건이나 8분 챔피언 사건처럼 스스로 유력한 기회에서 날려먹은 적도 많다.
  • 제주 유나이티드 FC : 1989년 마지막 K리그1 우승 이후 우승 없이 준우승만 4회 기록했다.
  • SL 벤피카: 유럽 대항전의 콩라인으로, 1961-62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끈 벨라 구트만 감독이 남긴 '구트만의 저주' 이후 바로 다음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시작으로 무려 60년이 넘게 챔피언스 리그, 유로파 리그 가릴 것 없이 우승하지 못했으며, 결승에 올라도 준우승만 기록했다. 그나마 UEFA 챔피언스 리그는 7회 준우승한 유벤투스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UEFA 유로파 리그는 아예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함께 우승 없이 최다 준우승이다. 그래도 이쪽도 리그 우승 횟수는 1위다.

3.2.3. 선수[편집]


  • 마리오 고메스 - 마리오 콩메스.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대표팀에서 활약하고는 있지만 스페인과 독일의 중국적이다. 유로 2008에서는 벤치에서 독일이 스페인을 상대로 준우승에 그치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독일이 스페인에게 4(22)강에서 무릎 꿇었다. 하지만 콩라인 본색은 2011-12 시즌에서 수많은 콩의 위엄을 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팀 바이에른 뮌헨이 리그 준우승, DFB-포칼 준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으로 준우승 트레블을 달성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리그와 포칼에서 뮌헨을 물리치고 우승한 팀 도르트문트는 리그-포칼 더블,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뮌헨을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고 우승한 첼시는 UEFA 챔피언스 리그-FA컵 더블을 달성한 팀들이었다. 거기에 유로 2012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독일이 4(22)강에서 이탈리아에게 2 대 1로 패했다. 만약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발로텔리가 한 골 혹은 스페인의 토레스/파브레가스/사비 알론소가 두 골 이상을 넣게 된다면 득점 2위를 달성하게 된다...였는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결승전에서 교체투입된 토레스가 1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동률이 되었으나 출전시간이 고메스가 더 길었기 때문에 결국 득점왕 경쟁에서 밀려버렸다. 그리고 이 시즌 리그 득점 2위[66],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 2위[67]를 기록하며 전무후무한 득점왕 콩레블[68]을 달성했다. 이 정도면 발락 이후 최고의 콩라인. 결국 2012년에 트로피에서 준우승 쿼드러플[69]과 득점 순위에서 준우승 트레블[70]를 달성하며 2012년 한 해에 준우승 레인보우를 달성 역대급 콩라인을 완성했다. 그래도 다음 시즌인 2012-13 시즌에 고메스 본인은 부상 등으로 인해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도[71] 팀이 트레블[72]을 달성하는데 일조하며 본인의 숙원이었던 챔피언스 리그도 제패했다.
  •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 성인 국가대표 경력 한정이다.[73] 2004년 코파 아메리카,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7년 코파 아메리카, 2014년 월드컵, 2015년 코파 아메리카, 2016년 코파 아메리카 등 6회 준우승


3.3. 농구[편집]


  • 도미니크 윌킨스: 1980년대~1990년대 초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는[74] 득점기계이자 덩크 스페셜리스트.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했으나 1986년에 득점왕을 차지한 이후로는 마이클 조던에게 순위에서 번번히 밀리곤 했다. 1987시즌엔 무려 평균 29점을 기록했지만 1위 조던이 평균 37을 찍는 바람에 8점 차이로 2위했고, 1988시즌엔 커리어하이이자 어느 시대에서라도 득점왕급인 30.7점을 찍었으나 조던은 35점을 기록했다. 득점 2위만 4번우승 경력은 커녕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조차 해본 적 없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못간 선수 순위에서 크리스 폴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으며 또한 하필이면 래리 버드와 전성기가 겹치는 바람에 1980년대 최고의 스몰포워드란 항목에서도 확고한 2위다.
  • 르브론 제임스 : 11 파이널부터 8년 연속 파이널 진출을 포함해 우승 4회를 기록했지만 준우승 또한 6회. 현재 올타임 넘버 2로 평가받고 있다.[75]
  • 스카티 피펜(전 NBA 농구선수): 실력은 뛰어났지만 팀동료이자 농구의 황제로 불린 마이클 조던에 밀려 최고의 2인자로 불린다. 다만 우승은 6번이나 경험했다. 샤킬 오닐과의 설전에서 6회우승을 거론했으나 조력자 빠지라는 식의 말로 굴욕 당했다.[76]
  • 2010년대 후반의 샌안토니오 스퍼스: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15 16 시즌 67승 15패, 16 17시즌 61승 21패를 기록할 만큼 막강한 전력을 가진 팀이었지만 당대 최강이었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밀려 2년 연속 서부 2위, 리그 전체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 유니폼
    • 원주 DB 프로미 2010~현재 녹색 바탕 유니폼[77]
  •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 WKBL 최고의 콩라인. 리그 초반에는 4회 우승하는 등 잘나갔으나 그 후로 5연속 준우승 4연속 준우승을 한 번씩 쓰면서 여자농구에 한해서는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콩라인이 되었으며 2002년부터 콩콩콩콩콩-우승-콩콩콩콩-콩을 찍고 있다. 그러나 2020~2021 시즌 정규리그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그들은 플레이오프에서 우리은행을 이기고 결승에서 KB를 이기면서 15년만에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3.4. 배구[편집]



3.4.1. 국내 배구[편집]


  • 서울 우리카드 우리WON: 프로배구 컵대회(Kovo 컵)에서 2015년에 우승했지만, 네 번이나(2011, 2013, 2014, 2017) 준우승했다. 덤으로 19~20시즌에는 정규 리그 1위를 달리던 중에 코로나19로 인해 플레이오프가 취소되면서 통합우승이 좌절되었으며 20~21 시즌에는 창단 첫 챔프전에 올랐으나 5차전 접전 끝에 준우승을 거두었다.
  •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V-리그에서 만년 우승 후보로 지목받았지만, 네 번이나(2011, 2012, 2013, 2017) 준우승을 거두어 대한항콩으로 불렸다. 그러나 2017-18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을 꺾고 팀 역사상 최초로 우승의 영광을 안았고, 2020-21 시즌에는 팀 역사상 최초로 통합우승을 하였다. 뒤이어 2021-22, 2022-23 시즌에서도 통합우승을 기록하며 이제는 만년 3위와 콩라인에서 탈출했다. 22-23 시즌 후 4우승 5준우승이다.
  •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그 동안 여자부 한정 만년 준우승 팀(2005, 2006, 2015)으로서 도로콩사로 불렸우나, 2017-18 시즌 정규리그에서 우승하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를 꺾고 최초로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22-23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리버스 스윕으로 두 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프로배구 컵대회(코보컵)에서는 2011년에 우승했으나, 준우승 횟수는 다섯 번(2006, 2008, 2010, 2017, 2022)이나 된다.
  • 안산 OK금융그룹 읏맨: 프로배구 컵대회(KOVO컵) 한정. 우승 없이 3회 준우승을 기록하여(2015, 2019, 2021) 코보 콩(Kovo Kong)에 등극했다. 하지만 2023년 컵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콩라인에서 탈출.


3.5. 종합격투기[편집]


  •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 2001년 Pride 17에서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며 MMA 헤비급의 정상에 올랐지만 2003년 PRIDE 25에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에게 벨트를 내준다. 2004년 헤비급 그랑프리와 남제에서 2차례 러버매치를 가졌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 켄 샴락 - 1993년 UFC 초대 토너먼트에서 호이스 그레이시에게 패하며 탈락한다. 리벤지를 위해 출전한 94년 UFC 3 토너먼트에서는 반대편 블럭에 있던 호이스가 기권하면서 샴락도 연달아 기권했으며 UFC 5에서 원매치로 재대결하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결국 호이스가 떠난 95년 UFC 6에 이르러서야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토너먼트 우승은 아니었고 댄 서번과의 원매치 대결에서 얻은 슈퍼파이트 챔피언이었다.
  • 파울로 필리오 - PRIDE 웰터급(-83kg 미들급)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무사도 4인 토너먼트와 2006 웰터급 그랑프리에서도 각각 결승에 오르지만 부상을 이유로 기권하며 팬들의 의혹을 샀다. 웰터급 타이틀은 댄 핸더슨이 가지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필리오가 1인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2007년 WEC 타이틀을 얻긴 하지만 PRIDE 시절의 무관포스가 워낙 강했다.
  •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미르코 크로캅은 PRIDE에서의 2인자가 아니었다. 중요한 시점마다 호드리고나 랜들맨 등에게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특히 2003년 호드리고와의 잠정 타이틀에게 패한 것은 꽤나 뼈아팠다. 실질적으로 헤비급에서의 크로캅은 락라인이거나 그 이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인자라는 이미지가 박힌건 K-1에서 어네스트 후스트에게 번번히 패해서 콩라인을 타면서 유래되었다. 후스트가 은퇴한 후 2012년 마지막 K-1 WGP에서 우승하면서 콩라인을 탈출했지만 이미 K-1의 인기가 퇴조된 때며 Pride 선수로 잘 알려진 때인지라 묻혀졌다.


3.6. 연고 지역[편집]


  • 2010년대 창원시 연고 팀: 2012년 경남 FCFA컵 준우승을 시작으로 2014년 창원 LG 세이커스챔피언결정전 준우승[78]을, 2016년에는 창원 LG 세이커스가 프로-아마 최강전 준우승, NC 다이노스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달성했으며, 2018년에는 경남 FC가 K리그1 준우승을 기록하며 2년마다 콩을 적립하고 있다. [79] 하지만 2020년 NC 다이노스가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통합우승을 차지하면서 콩라인에서 벗어났다.


3.7. 바둑[편집]


  • 최명훈 - 한국 바둑계의 콩라인을 논할 때 빼면 안 되는 기사. 2000년 LG정유배 하나, 그것도 여류기사인 루이나이웨이 九단[80]을 꺾어 차지한 것을 제외하면 전부 준우승이다. 그 준우승의 원인은 그 당시 최고의 포스를 달리던 바둑의 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3.8. 체스[편집]


  • 빅토르 코르치노이 - 체스계에서의 영원한 콩라인. 세계 챔피언십 우승경력이 없는 선수중 최강선수로 언급된다. 무려 10번이나 세계 챔피언 도전자 결정전에 진출했고(1962, 1968, 1971, 1974, 1977, 1980, 1983, 1985, 1988, 1991) 이중 1977년과 1980년에서는 도전자 결정전에서 우승하여 당시 챔피언이었던 아나톨리 카르포프에 도전했으나 두 번 모두 패배하면서 챔피언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세계 챔피언 칭호는 못얻었지만 이외 경력은 무려 소련 체스 챔피언 4회 우승, 유럽 챔피언 5회 우승, 체스 올림피아드 6회 우승. 소련에서 탈출한 이후로는 가족들이 공산당에 볼모로 잡힌 상태에서 소련출신 세계 챔피언 아나톨리 카르포프와의 라이벌구도로 유명하다. 2006년엔 드디어 노인 세계 챔피언십 (60세 이상)에서 우승했으며 이후 2009년과 2011년에 스위스 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여 그는 역대 자국 내 체스 챔피언십 최고령 우승자로 남게 되었다.


3.9. 기타 스포츠[편집]



3.9.1. 단체 및 팀 선수[편집]




3.9.2. 개인[편집]


  • 마르가리타 마문 - 라이벌인 야나 쿠드랍체바에 밀려 늘 2인자였다. 2014, 2015 세계선수권 2회 연속 은메달이라는 기록[81]과 콘다코바에 이은 리듬체조계의 2인자였으나 꿈의 무대인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콩라인에서 벗어났다.[82]
  • 이봉주 - 1996 동아국제마라톤 1초 차 2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3초 차 은메달, 1998 로테르담마라톤 2위, 2000 도쿄마라톤 2위였다.[83] 하지만 1993 호놀룰루마라톤, 1995 동아국제마라톤, 1996 후쿠오카마라톤[84], 2001 보스턴마라톤, 2007 동아국제마라톤 우승에 1998 방콕 아시안 게임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연속 금메달을 따는 등 우승 기록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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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3연승으로 우승 직전까지 갔으나 그 후 4연패로 요미우리에게 처참하게 처발렸다.[2] 선수 시절 한정 콩라인이다.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NC의 1군 주루코치 소속으로 첫 우승 반지를 획득하였다.[3] 더불어 양준혁은 2007년 시즌에 타율, 출루율, 장타율, 안타 4개 부문에서 2위를 기록했다[4] 최고출루율이나 베스트나인같은 수상들은 많이 했다.[5] 2013년은 이병규가 규정타석을 겨우 채워서 마지막에 안타를 기록해 2등을 했다.[6] 근데 17년도에는 이대호가 없었더라도 로사리오가 역대급 커리어를 달성했기에 1루수 골글 수상자는 로사리오였을 것이다.[7] 트리플 러너업은 11-12 시즌의 FC 바이에른 뮌헨도 기록했으나, 이쪽은 독일 내 리그, 컵, 챔스 최다 우승팀이고 바로 다음 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했다.[8] 1987-88 시즌으로 당시 차범근이 에이스로 활약했다.[9] 절대(Never) 우승 못한다고 붙여진 별명[10] Vise는 독일어로 "2등"을 뜻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대략 '레버젠' 정도다.[11] 4분 챔피언 같이 아쉽게 우승을 놓친 사례도 많다.[12] 2006 독일 월드컵에선 거의 벤치였으며 기껏 결승전때의 승부차기에서 나왔는데 직접 보도록 하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3]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준우승 팀에게 어떠한 트로피 혹은 메달을 주지 않는 프리미어 리그와 달리, EFL 리그 원은 승격에 대한 혜택인지 준우승 팀에게도 메달과 트로피를 준다. #[14] 2002-03 AC 밀란, 2014-15 바르셀로나, 2016-17 레알 마드리드.[15] 예외적으로 2020년 ACL에서는 조현우의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풀타임 주전으로 뛰었다.[16] 말디니는 2009년까지 현역 선수로 뛰었고, 유로 20042006 독일 월드컵 때는 감독이 직접 출전을 요청하기도 했다.[17] 그나마 다행인건(?) 2007-2008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은 한번 해봤다는 점이다.[18] 다만 리그컵도 포함한다면 발락도 해당자이긴 하다.[19] 리가 1회, 포칼 2회, 챔스 3회, 월드컵 1회[20] 여담으로 부트가 은퇴한 후 뮌헨은 톰 슈타르케를 서브 키퍼로 영입했는데, 이 분은 부트와 달리 5시즌 간 12경기 출전 15회 우승이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달성하고 은퇴했다.[21] 물론 성인 대표팀 기록이 아닌, 연령별 대표팀 기록[22] 다만 엘진 베일러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은퇴는 구단도 감독도 은퇴를 강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은퇴를 만류했음에도 자신이 팀의 우승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팀의 우승을 위해 본인이 직접 내린 결정이었고, 자신의 은퇴로 팀이 우승을 하자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23] 직전 시즌에 23.4점, 그전까지 가장 높은 평득이 25.6점이었다.[24] 윌킨스와 말론은 각각 4위, 5위. 여담이지만 이 시즌에는 1위 로빈슨이 29.8점, 2위 샤킬 오닐이 29.3점, 3위 하킴 올라주원이 27.3점을 기록하며 득점 1,2,3위가 센터라는 무시무시함을 보였다. 또한 4대센터의 마지막이자 가장 나이가 많은 유잉은 24.5점으로 득점 6위였고, 올라주원, 로빈슨, 오닐, 유잉은 해당 시즌 MVP 투표에서 각각 1, 2, 4, 5위를 기록한다.[25] 이때 그분은 결승전 평균 41득점을 퍼붓는다.[26] 특히 운동능력과 기술, 노련함의 조합이 절정을 이룬 이 시즌의 조던을 역대 최강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27] 달랑 2승으로 1승은 2001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WWE(당시 WWF) VS WCW&ECW 연합군의 엘리미네이션 태그 매치에서 최후 생존자로 올린 승리고, 나머지 1승은 2003 레슬매니아 19에서 클린 핀폴로 이겼다.[28] 참고로 언더테이커는 골든 제너레이션,뉴 제너레이션,애티튜드 에라,PG 에라를 거친 유일한 선수이며 모든 세대의 아이콘 들과 대립한 경험이 있는 흔치 않는 선수이기도 하다.예외로 존 시나와는 존 시나가 아이콘이 되기 전 기믹인 랩퍼 기믹때 대립하였다.[29] 단, 그 해 정규시즌은 우승했다.[30] 다만, 대주배는 50세 이상의 기사만 참여하는 제한기전이며 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이벤트전의 성격이다.[31] 1950년도에 4등. 1953년, 1956년, 1959년, 1962년 동안 연속 2등. 1965년엔 8강에서 탈락했다.[32] NFL, MLB, NBA, NHL까지 미국 4대 프로스포츠까지 범위를 넓혀도 4년 연속 준우승은 버펄로 빌스 밖에 없다.[33] 마이애미 돌핀스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3년 연속 진출해서 2승1패를 기록한게 그 다음의 연속진출 기록이다.[34] 2004 아테네 올림픽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35] 2011년 준우승 이후 세대교체 실패로 2015 럭비 월드컵에선 8강에서 만난 뉴질랜드에게 13:62, 무려 49점차라는 월드컵 사상 최악의 대참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한국에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프랑스 여론이나 스포츠 언론은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0:5로 지는 수준으로 시끌벅적했다. 그 다음인 2019 럭비 월드컵에서도 결승 진출 경험도 없는 웨일스(4강 2번이 최고 성적)에게 덜미를 잡혀 또 8강에서 탈락했는데, 이 때는 19:20으로 1점차였다.
과거 프랑스는 자국에서 처음으로 개최한 2007 럭비 월드컵에서 4위에 그쳐 "그동안 결승조차 못 가본 축구도 첫 자국 대회는 우승했는데, 럭비는 자국 대회에서 겨우 4위냐?"고 비웃음을 받았다. 이는 개회 전 "대부분 백인 선수로 이루어진 럭비 대표팀이야말로 진정한 프랑스의 국가대표팀이다"던 장 마리 르펜같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인종차별적 발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5년의 8강 참패에 이어 2019년에도 8강에 그치자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축구 대표팀과 더욱 비교되며 망신을 당했다.
[36] 1966 방콕 아시안 게임, 1970 방콕 아시안 게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37] 단, 개인전에서는 자국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쥐안쥐안이 자국 관중들의 무개념 소음응원을 등에 업고 결승에서 박성현을 1점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대한민국 여자 양궁의 1984년 이후 올림픽 도전사에서 유일한 옥에 티다.[38] 참고로 대한민국 여자 양궁 단체 팀은 양궁 경기 방식이 토너먼트식으로 바뀐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래 결승에서 1992, 2004, 2008, 2012 올림픽 때 중국을 패퇴시킨 것을 비롯하여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독일을,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우크라이나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러시아(올림픽위원회) 팀을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39] 김동문-라경민 조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다. 단, 김동문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길영아와 함께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이 결승전 경기의 상대는 박주봉-라경민 조였다. 부인은 파트너를 바꿔도 콩라인이다. 한편, 김동문은 하태권과 함께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복식 금메달을 딴 적이 있다.[40] 현재 Moto3 클래스와 동급이다.[41] 2012 런던 올림픽 양학선, 2016 리우 올림픽 리세광, 2020 도쿄 올림픽 신재환[42] 1번의 우승도 라파엘 나달, 로저 페더러의 불참과 노박 조코비치의 실격패 덕분에 어렵게 우승을 거두었다.[43] 레이스 막판 바리첼로가 1위, 슈마허가 2위로 달리고 있던 도중 '슈마허가 1위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어라'는 지시를 받았을 정도. 페라리가 매번 이런 식으로 대해서 빡칠 만한 데도 묵묵히 팀오더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위대한 2인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44] 1998 방콕 아시안 게임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방콕대회 때 금메달을 결정짓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대성통곡하며 급히 귀국했던 선수로 유명하다.[45] 당초 3위였으나 준결승에서 문의제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한 독일 선수가 도핑테스트에 적발되어 2위로 격상되었다.[46] 시드니 때보다 한 체급을 올려 도전했다. 아테네에서는 당당히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무릎부상 후유증으로 아쉽게 패했다.[47] 나머지 메이저 대회인 LPGA 챔피언십, US오픈, 브리티시 오픈은 우승했었다.[48] 이 동계올림픽 1500m가 하이든의 성인 데뷔경기로 7위를 했다.[49] 25세 이하 라이더 중 가장 기록이 좋은 선수에게 시상[50] 2010년 투르 드 프랑스 우승자인 콘타도르가 뒤늦게 약물복용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앤디가 우승한 것으로 기록이 되었다.[51] 2012년 8월 7일 기준 왕하오:유승민의 역대 전적은 14:2. 그 2패 중 1패가 바로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이다.[52] 본인의 절친인 이가영도 해당이 되었으나 2022년 우승으로 탈출.[53] 똑같이 5번 준우승한 서연정은 2023년 우승으로 탈출.[54] 첫 우승을 차지한 바로 다음 해인 1956년에 또 월드 시리즈에 올라 또 양키스를 만나는데, 이때는 5차전에서 양키스 투수인 돈 라슨에게 역사상 유일무이한 월드 시리즈 퍼펙트까지 헌납하는 치욕을 맛보며 또 준우승을 했다.[55] 창단 첫 우승이다.[56] 2019년 이후 밝혀진 바로는 두 팀 모두 해당 시즌에 싸인 훔치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2017년 휴스턴의 경우 포스트시즌에서도 전자기기를 이용한 싸인 훔치기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얼룩진 우승으로 남았다.[57] 덤으로 불명예스런 기록인 병살타 통산 1위 도 달성했다. 물론 오래 선수생활을 했으니 그만큼 쌓일 수밖에 없긴 하다. 그 외에도 희생플라이 통산 1위 등을 달성하였다.[58] 2004년에 최다안타 타이틀이 있지만 논외로 취급된다.[59] 다만 홈런은 박병호가 1위를 차지했다.[60] 1988년 아시안컵에서 사우디에게 승부차기로 패배했다.[61] 1972년 이란과의 결승전에서 1-2로 패배, 1980년 쿠웨이트 상대로 결승전에서 0-3로 패배, 2015년 호주 상대로 결승전에서 1-2 패배[62] 1984-85, 1995-96[63] 1972-73, 1982-83, 1996-97, 1997-98, 2002-03, 2014-15, 2016-17[64] 5회 우승. 또한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더불어 2번째로 우승 횟수가 많은 2팀 중 하나다.[65] 사실 다음 시즌부턴 뮌헨이 우승을 다해먹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최근이긴 하다.[66] 1위는 클라스 얀 훈텔라르[67] 1위는 리오넬 메시[68] 챔스, 리그, 유로. 참고로 포칼은 2 득점으로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69] 리그, UCL, 포칼 + 유로[70] 리그, 챔스 + 유로[71] 비록 시즌 내 13경기에만 선발 출전할 정도로 주로 조커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총 19골을 기록하며 녹슬지 않은 득점력을 보여주었다.[72] 리그, UCL, 포칼, 슈퍼컵[73] 연령별 대표팀 기록까지 포함하면 2004년, 2008년 올림픽 금메달이 있다.[74] 윌킨스와 조던이 둘 다 건강하게 뛰었을때 윌킨스는 단 한번도 조던을 능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는 없다. 윌킨스가 유일하게 앞선게 1986년인데 이때 조던은 큰 부상으로 20경기도 못 뛴 시즌이었다.(심지어 후반기에 부상에서 복귀하고 컨디션 조절하며 잠깐씩 뛰느라 시즌 평균 출장시간도 평균 25분대에 그쳤다. 근데 평균 22.7점 넣었다.) 심지어 윌킨스는 2년이나 먼저 데뷔한 선배인데도 슈퍼루키 조던에게 득점순위에서 밀렸다. (신인이던 조던은 28.2점, 윌킨스는 27.4점을 기록)[75] 넘버 1은 당연히 그분이다.[76] 사실 이건 오닐의 어그로라고 할 수 있다. 피펜이 2인자인 건 맞지만 본인도 1990년대 최고의 스몰 포워드로 올NBA 퍼스트팀에 여러번 올랐고 조던이 없을때는 MVP후보였을 정도로 슈퍼스타였다. 또한 불스에 조던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팀의 리딩을 전담하고 수비의 축이었던 피펜을 단순한 조력자로 볼 순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오닐은 이 설전에서 피펜보다 론 하퍼나 스티브 커가 더 공헌했다고 했는데 이쯤되면 그냥 막 내뱉는 것이었다.[77] 다만, 2011~2012 시즌과 2017~2018 시즌에는 정규 시즌 우승은 차지했다.[78] 단, 정규시즌은 우승했다.[79] 근데 2019년 준우승을 하자마자 뒤에서 2등으로 승강 PO에서 강등당하며 그럴 가능성이 생겼다.[80] 하지만 루이나이웨이는 여류기사 최초로 타이틀을 따는등 전성기때에는 웬만한 남자기사 못지 않았다.[81] 2013년에는 치명적인 실수로 개인종합 6위를 차지했다.[82] 로테이션 2까지 했을때 중간 순위 2위였으나 쿠드랍체바가 곤봉을 떨어트리는 실수를 하면서 전 종목 19점대로 금메달을 땄다.[83] 뒤에 언급한 두 대회는 이봉주가 한국신기록을 경신한 대회다.[84]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이봉주를 3초 차로 제치고 우승한 조시아 투과니는 이 대회에서 중도에 기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