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리야마 치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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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배우.
2. 활동[편집]
1989년에 아역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1995년에는 공포영화인 하나코(トイレの花子さん)와 TBS 드라마인 파파 서바이벌(パパ・サヴァイバル)로 배우로도 데뷔했다.
1997년 중1당시 유명한 사진작가인 시노야마 기신 작가가 촬영한 사진집 '신화소녀~쿠리야마 치아키~'(神話少女〜栗山千明〜)가 발간되었으며 같은 해 영화 사국[2] 의 으로 주역급 배우급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작품인 《배틀로얄》에 출연했으며 2003년에는 유명한 《킬 빌》의 고고 유바리로 출연했다.
이후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여전히 현역 여배우로 활동 중이다.
3. 출연 작품[편집]
3.1. 영화[편집]
3.2. 드라마[편집]
3.3. 게임[편집]
4. 이야깃거리[편집]
- 긴 생머리와 날카로운 인상 탓인지 주로 호러 영화에서 주연을 맡는 일이 많다. 호러 영화 외의 영화에 출연할 때에는 조연을 맡은 일이 많은데, 조연으로 출연해도 워낙 특이한 조연을 맡은 적이 많아 국내에서도 배우 이름은 몰라도 "OO 연기한 배우" 라고 하면 알아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연예인 활동을 한지 꽤나 오래 되었음에도 이제까지 큰 스캔들 한 번 없이 순탄한 연예활동을 하고있다. 생김새로만 보면 꽤나 무서워 보이지만 그 생김새와 다르게 예의 바르고 성실하며 모범적이라고 한다.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는 좋은 예다.
- 특이한 점은 같은 스펙 세계관인데도 스펙 천에서는 아오이케 사토코 라고 하는 역할로 나온다. 세계관만 같고 다른 인물이라고 보면 될듯. 2013년 ATARU가 영화화 되면서 영화에 출연했다.
- 2020년 3월 기준으로 30년 동안 몸 담은 스페이스 크래프트 엔터에서 독립했다.
4.1. 조연작(?)[편집]
《배틀로얄》에서 노란 츄리닝을 입은 치구사 타카코 역으로 나왔을 때 "그렇게 변명이나 해대는 게 전신전령(全身全靈) 극도로 싫단 말야! 상대해 주겠어! 나의 전 존재를 걸고! 너를 부정해 주겠어!"라는 명대사를 남기는 등 임팩트 있는 조연을 연기하기도 했다. 사실, 치구사 타카코는 원작 소설에서 비중이 있는 캐릭터였는데 영화에서는 비중은 적지만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킬빌》에서는 최고 모에 캐릭터이자 철퇴를 휘두르는 여고생
공포 영화 주온의 오리지널 버전인 비디오판에서 여고생 미즈호 역으로 나왔다. 쿠리야마 치아키의 10대 소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 극중에서는 중반부에 학교에서 토시오와 맞닥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직접적인 사망 장면은 없다.
4.2. 오타쿠소녀[편집]
왠지 오타쿠인 것 같다. 일단 나기사 카오루가 이상형이라는 게 그 증거(...). 특히 2008년 3월에 비스트로 스맙에 출연했을 때 SMAP의 멤버인 이나가키 고로가 치아키와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를 이야기하며 그녀에 대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좋아한다, 에반게리온에 대한 내공은 장난 아니다."라고 말한걸 보면... 마찬가지로 카오루의 성우 이시다 아키라의 열혈 팬이라고 잡지 다빈치에서 공언한 적이 있다.
거기다 카토리 싱고와의 대화 중 어느 만화를 제일 좋아하냐는 말에 나온 답이 타이틀이 아니라 우라사와 나오키. 싱고가 파프리카를 이야기하자 바로 해당 제목의 애니메이션에 출연한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이름을 거론하고 정말 좋아하는 성우라며 살짝 흥분하기도 했다. 이후 2012년에 드라마 ATARU의 멤버들과 비스트로 스맙에 출현했는데 그때 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드라마 뒤풀이 때 에반게리온의 주제가와 애니송을 불렀다고 한다. 이정도면 빼도박도 못하게 오타쿠 확정.
만화 간츠를 좋아한다고 하며, 작가에게 요청해서 작중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 외에 AKIRA도 좋아한다고 하며, SF틱한 소년만화들이 주 타켓이라는 듯. 현실적인 작품보다는 비현실 위주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인은 여성이지만 소녀만화는 영 취향이 아니라고(...). 순정만화 계열에서 좋아하는 작품은 나의 지구를 지켜줘 정도.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의 특징이나 작화특성 등도 어느 정도 꿰고 있다고 한다. 즉, 왠지 이번 화 작화가 이상하다 싶으면 엔딩 스텝롤을 보며 "아, 전에 담당하던 사람이 아니구나"하며 납득하는 수준. 이 정도면 소프트 오타쿠는 살짝 지난 수준이라고 봐도 될 듯 하다(...)
추가로 2010년 2월 기동전사 건담 UC 주제가 流星のナミダ로 가수 데뷔를 했다.
2010년 9월에 방영했던 은혼 걸작선(선발 은혼씨) 오리지널 3기 오프닝 주제가 可能性ガㅡル을 부르기도 했다. 보컬도 수준급이며 화려한 16:9 영상(…)과 어울리는 발랄한 목소리이다. 덤으로 27화에서 엘리자베스 목소리로 나오기까지 했다. 또한 애니메이션 레벨E의 오프닝 '콜드 핑거 걸'을 부르기도 했다. 원작의 팬이었다고.
은혼 은빛영혼 편에서 노부메가 실사화 된다면 그녀가 자기 역으로 캐스팅 됐으면 한다고 했다.
4.3. 사진집 신화소녀 논란[편집]
1997년 우리나이로 14살 때 누드가 약간 포함된 사진집 신화소녀를 낸 적이 있었다. 1991년에 미야자와 리에의 「Santa Fe」를 촬영한 유명한 사진작가인 시노야마 기신 작가의 작품인데도 누드가 거의 없다.
현재 이 사진집은 99년 도쿄 조례가 제정된 이후 출판사인 신초샤(新潮社) 자율규제로 절판시킨지라 더이상 출판되지 않는다. 예전에 그녀의 누드집 중고판은 발매 당시 원가의 10배 이상 가격으로 암거래중이는 말도 있지만 이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소지마저 불법화 시켜서 지금은 개인간의 거래마저도 불법이다.
사실 배우 본인은 이 사진집을 찍었던 과거에도 뭐라 말하지 못할 위치에 있어서일 뿐이었지 호의적인 태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해당 사진집 '신화소녀'가 현재 기준으로는 불법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상당한 작품이라. 사실제작 당시에는 합법이었고 수위가 높은 편이 아니니 하는 것도 해당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나 아는 이야기지, 언론등을 통해 쿠리야마 치아키, 아동 포르노 출연 경력 밝혀져 라는 기사로 접한 사람들은 진짜 아동 포르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여배우로서 이미지나 활동은 사실상 끝장나는 거다. 더구나 킬 빌 출연을 통해 아동포르노에 대한 규제와 처벌, 사회적 거부감이 엄격한 영미권에도 꽤 알려진 배우인 걸 생각하면... 호의적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해당 사진집을 찍었던 사실 자체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여담으로 사족을 달면 당시 일본의 10대 소녀 누드 사진집 분야는 상당히 비정상적인 형태로 과열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런 경우 이후 연예계 진출에 누드모델 활동 경력이 오히려 일종의 족쇄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고생이 되자마자 누드 사진집으로 데뷔한 요시오카 마유미 같은 경우는 그냥 여고생 누드모델로 각인돼서 원하던 연예계 생활은 못하고 여러 권의 누드 사진집과 영상물에 잡지의 누드 화보로만 활동하다 성인이 되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앞의 사례에서도 이시모토 미노리의 경우 사진집 자체는 잘 팔렸지만 분위기 전환에는 실패하여 누드 사진집 출간 이후 연예활동 경력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후 마츠카와 마미야(松川マミヤ)라는 이름의 그라비아 모델로 나왔지만 이전의 이시모토 미노리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다시 활동이 중단되었다. 스와노 시오리의 경우도 영화나 드라마 출연을 통해 연기력에 상당한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누드 모델 경력에 끝까지 발목을 잡혔고, 예명을 대여섯 번씩 바꾸면서 어떻게든 이미지를 전환해 보려던 노력도 실패하여 17세 무렵 세미누드 사진집을 하나 더 찍는 것으로 역시 연예활동 경력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5] 이후 잡지 DIME과의 인터뷰 등에서 '옛날 일은 힘든 일이 많아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서 누드 모델 경력이 연예계 정착에 큰 걸림돌이 되었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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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까지 스페이스 크래프트 소속이었다.[2] 나츠카와 유이 주연 영화다.[3] 광고 모델, 아이디어 등등[4] 간혹 뒷편에 토마 사야와 세부미 타케루의 모습을 한 이들이 지나가거나 토마 사야 특유의 종이를 찢어 날리는 모습이 보인다. 이걸 찾는 것도 나름 묘미이다. 그런데 정작 토마 사야 역을 한 토다 에리카는 같은 게츠구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 활약 중이다.[5] 물론 꼭 누드가 문제는 아니다. 70년대 일본의 유명 여배우였던 세키네 케이코(関根恵子) 같은 경우는 중학교 졸업 후인 15살에 지금은 없어진 대형영화사인 다이에이(大映)에 입사해서 첫 영화부터 누드를 선보인 후 1년동안 6작품 연속 누드를 보여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작품에서 연출의 일부로 등장하는 누드는 예술적인 목적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기에 노골적인 목적의 누드 사진집과는 사회적으로 다르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시대적 상황 역시 소아성애에 대한 경각심이 그리 높지 않던 70년대와 사회 전반에서 심각한 문제제기가 일어나던 90년대의 상황은 결코 같지 않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 두 요소의 상호작용도 생각해야 한다. 미성년자 누드 매체의 제작량이 상대적으로 적던 70년대에는 예술적인 목적이라는 설명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제작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90년대에 말 그대로 쏟아져나오던 미성년자의 누드 매체들이 예술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변명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당연히 이러한 매체들은 성적인 목적의 누드로 여겨지게 되어 사회적 경각심을 더욱 고양시킨 것. 따라서 위의 사례들과 70년대 세키네 케이코의 사례를 비교하는 것은 썩 적절하지는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