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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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명칭
3. 역사
4. 사회
4.1. 민족
4.2. 언어
5. 기타


1. 소개[편집]


Bandaraya Perpaduan

단결의 특별시


Kuching[1]
کوچيڠ

말레이시아의 도시이자 사라왁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


2. 명칭[편집]


'쿠칭'은 말레이어로 '고양이'를 뜻한다. 그래서 별명은 '고양이의 도시'라고.대한민국에는 고양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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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인지 쿠칭에는 진짜로 고양이 동상이 있는데 쿠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가볼만한 명소.

다만 현대 말레이어로 '고양이'는 'kucing'이라고 표기하는데, 'kuching'이라는 표기는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표기이며 영국인들이 만든 표기다. 아랍 문자를 차용하던 말레이어에 영국이 자아바라는 알파벳 표기법을 제정했는데 이에 기초한 표기. 그러나 이웃한 인도네시아수완디라는 다른 표기를 사용하면서 양국 간 불편함이 발생하자 1972년 EYD라는 합의 철자법을 제정하여, 'ㅊ'에 해당되는 'ch'는 'c'로 바뀌었다.[2]


3. 역사[편집]


원래는 허허벌판의 정글이었고, 현지에서 흔히 '무아라'라고 하는 강 하류가 끼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이반족이나 다약 같은 해상 원주민들이었고 그냥 고기잡이나 하고 다녔다.

1827년 이곳을 지배하고 있던 브루나이 술탄국에 의해 발견된 뒤 조그만 타운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가, 1839년 영국인 제임스 브룩이 이곳에 도착하였고 1841년 브룩이 세운 사라왁 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규모가 제법 있는 도시로 성장한다. 참고로 '쿠칭'이라는 이름은 브룩이 발견하던 당시 이미 사용 중이었다. 사상 유례없는 아시아의 백인 왕조의 중심도시로서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1942년 일제침략하면서 위기를 맞이했다. 1945년 일제의 패망 이후 백인왕조는 다시 이 지역을 수복했으나, 당시 한마디로 썰렁했다.

1946년 영국은 사라왁 왕령식민지를 설치했는데 쿠칭은 이곳의 수도로 남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민들의 독립열기가 고조되고, 1963년 독립인사들의 결정으로 말레이시아잠정 편입이 결정된 후 7월 22일 독립에 이어 9월 16일 말레이시아로 편입, 동말레이시아의 최대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쿠칭은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연방정부의 차별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공산주의자 척결'을 명목으로 개발을 저해한 결과 생각처럼 그리 번영한 곳은 아닌 꼴이 되었다. 동말레이시아 최대도시 지위도 코타키나발루로 넘어가고.

1988년 8월 1일 특별시로 승격되었으며 동말레이시아 최초의 특별시가 되었다. 2015년 7월 29일 '하나의 말레이시아' 정신에 의거하여 "단결의 도시"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현재 사라왁의 수도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이전부터 미리로 수도를 옮기자는 떡밥이 계속 나돌고 있다. 쿠칭은 성립 초기에는 그래도 사라왁 중앙에 가까웠지만, 브룩을 중심으로 점차 영역이 북동쪽으로 쭉 뻗어진 결과 지나치게 서남쪽의 한구석에 쳐박히게 된 것. 그래도 북동쪽은 브루나이 덕분에 빈곤한 꼴은 간신히 면하고 있으나, 그쪽으로 행정력이 쉽게 닿지 못하는 문제점 등이 여러모로 발생하자 그나마 국토 중앙에 더 가까운 미리로 옮기려는 걸로 보인다.[3] 하지만 수도 천도 자체가 매우 민감한 사안이고 지금도 논의 중일 뿐이며 지금은 아무런 말 없다.


4. 사회[편집]


이렇게 규모있는 도시라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별 존재감이 없다. 동말레이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코타키나발루 뿐, 그 외에는 알아주지를 않으니...
다만 축구 팬이라면 안 좋은 의미에서 이 곳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199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역대 최강이라 불리던 대표팀이 브라질에게 3대 10으로 패한 소위 '쿠칭 대참사'가 있었던 동네다.[4]

그러나 2020년대 초부터 아이가 있는 30~50대 한국인들이 자주 이민가는 곳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가 비자에 대해서는 많이 깐깐하고 엄격한 편이지만 아이가 있고 학교 다니면 학생 비자도 주고 보호자 비자도 준다. 그리고 말레이시아는 마인어 뿐 아니라 영어도 공용어여서 이민 가기 괜찮은 곳이다. 국제학교들은 공립과 다르게 영국식 영어를 가르치고 학교 선생님들도 대부분 영미권에서 유학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발음도 망글리시 보단 오히려 영국식,호주식,캐나다식,미국식을 쓴다. 그리고 예전에 영어 배우기 위해 필리핀을 주로 갔지만 여긴 치안도 불안정한 이유 덕에 요즘엔 오히려 치안도 안정적인 말레이시아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말레이시아가 동남아에선 물가가 좀 센 편이라곤 하나 싱가폴,브루나이에 비하면 낮아서 여기가 더 각광받는다. 사라왁주는 비자 문제에선 그나마 다른 주에 비하면 유한 편이기에 최근엔 여기가 알려지는 중이다.


4.1. 민족[편집]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인구는 402,738명이다.[5] 말레이인이 제일 많은데 이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말레이인이 아니라 명목상 말레이인과 같은 부미푸트라에 속한 칼리만탄계나 브루나이계이다. 실제 말레이인의 수는 이들의 반에 못미치며, 오히려 중국인과 원주민 등을 포함한 수가 말레이인을 훌쩍 넘는다.

5,048명의 외국인들이 거주하는데, 이것도 쿠알라룸푸르에 비하면 진짜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규모있는 도시 치고는 유학시설이 덜 발달해 있으며, 그나마 대표적인 유학의 대상인 사라왁기술대학교(UCTS)도 여기서 한참 떨어진 시부에 있다. 물론 여기도 스다야국제대학교(UCSI)의 분교가 있으나 외국인들은 대개 쿠알라룸푸르 캠퍼스를 주로 가지 여기로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본토에 비해 인도인의 영향력은 매우 약하다.[6] 수가 3,257명으로 외국인보다도 적은 수이니, 여기는 인도인의 영향을 보기 힘들다. 본토처럼 인도인들이 바글바글거리는 곳이 아니다.[7] 대신에 중국인들은 은근 많아서 그런지 영향력이 매우 센데, 은근 중국계 학교들이 힘이 세다.


4.2. 언어[편집]


말레이어가 주로 쓰이지만, 전통적인 면도 그렇고 비말레이인 중심이라 그런지 영어도 많이 쓰인다. 참고로 특별시들 중 영어가 행정용으로 사용되는 유일한 특별시이다. 이게 본토에 대한 반감이 약간 맞물리다 보니 생긴 결과물. 1973년 영어는 공용어의 직위를 박탈당했으나, 2015년 사라왁 주정부를 주도로 영어가 다시 주의 공용어로 지정되면서 영어 열풍이 불고 있다. 그렇지만 말레이어의 영향이 매우 세며, 원주민들도 근래에는 본인들의 토착어를 놔두고 말레이어를 사용한다.[8]

말레이어는 사라왁 말레이어라는 방언이 사용되는데 여기서 쓰는 말투와 미리에서 쓰는 말투가 다르다. 해당 문서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아예 별도의 언어로 봐도 무관할 정도로 심한 사투리라 타 지역 사람들은 전혀 못 알아듣는다. 말레이어라고 하지만 원주민어의 영향이 매우 세다.


5. 기타[편집]



[1] 현지 화교들은 古晉 (고진)이라 부른다.[2] 참고로 인도네시아는 과거에 'tj'를 썼다.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한 표기이다.[3] 근데 이것도 정확히는 미리가 제2의 도시다 보니 중앙에 가까운 규모 있는 특별시는 미리뿐이라 그런 것 같다. 오히려 빈툴루가 좀 더 중앙에 더 가깝다.[4] 1승 제물로 여겼던 남아공에게 뜻밖의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고 앙리-트레제게 듀오에게 농락당하며 프랑스에 2대4로 패배, 그리고 마지막 경기 상대인 브라질에게 대패했다. 박이천 감독은 대회 직후 경질됐다.[5] 인근 광역권 포함시 723,854명[6] 애초에 사라왁,라부안,사바는 인도계 인구는 거의 없다 시피 하며 있더라도 본토에서 이주한 경우고 여기로 이주한 중국계나 말레이인에 비하면 역사도 짧다. 애초에 이쪽 동네들은 서말레이시아와 좀 다르다. 사라왁은 말레에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독교가 다수인 주이며 그 다음으론 이슬람,불교가 따라온다. 그러나 힌두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본토에서는 힌두 사원을 적지 않게 보는게 가능하나 보르네오 쪽은 최근에 이주한 인도계들이 세운 사원을 제외하곤 오랫동안 있던 사원은 없다.[7] 그럼에도 최근 인도계 민족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8] 근데 이건, 토착어가 쇠퇴하면서 본인들의 토착어 실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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