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문화축제/노출 긍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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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출을 하는 이유
1.1. 한국에서는 노출전략이 효과가 없을 것이다?
2. 법률적 해석
3. 성소수자에 대한 이미지 악화 우려에 대한 반박
4. '보기 불편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5. 상식/사회통념에 어긋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6. '역사적 맥락이 없다'의 의견에 대한 반박
7. 기타


1. 노출을 하는 이유[편집]


우선 퀴어문화축제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퀴어문화축제는 영어로는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라 불리우는데,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시초는 흔히 1969년 뉴욕 시 맨해튼에서 발생한 스톤월 항쟁으로 꼽힌다. 당대의 성소수자 권익 활동가들은 성소수자들은 미치광이가 아니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고 설득하는, 꽤나 점잖은 방식의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스톤월 항쟁을 기점으로 성소수자들은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성소수자들의 권리투쟁도 힘을 얻게된다. 이 후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노출패션이 결코 빠지지 않는 이유는,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스톤월 항쟁의 정신을 이어 받았기 때문이다.

퀴어퍼레이드는 "성소수자도 '평범한' 사람이에요"를 표현하기 위한 행사가 아니다. 퀴어퍼레이드에서의 노출은 무의미하거나 상업적인, 아니면 단순히 '음란성'을 띠는 노출이 아니며, '존재'에 대한 표현, 자기긍정, 저항, '시혜적 시선'의 거부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서양에서는 퀴어퍼레이드는 물론 반전, 모피 반대, 성차별 반대 등 시위에서 맨몸을 드러내는 행위가 코드화되어 있다. 인류 사회에서 발생한 불평등을 상징하는 무기나 제복으로부터 탈피함으로써 평등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한 생물로서 더 이상 침범당할 경우 피를 흘리게 되는 마지막 선을 드러내고 이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1.1. 한국에서는 노출전략이 효과가 없을 것이다?[편집]


퀴어문화축제/노출 부정론에서는 서구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전략적 노출이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효과는 커녕 역효과만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구 사회가 처음부터 개인주의적이였던 것이 아니며, 집단주의는 현대의 서구 사회에서도 관측된다. 게다가 집단주의가 극단에 달해 발생하는 파시즘이나 전체주의와 같은 문제들은 오히려 서구 사회가 동아시아보다 먼저 더욱 뼈져리게 겪은 바 있다. 인간의 정서에는 보편성이라는게 있어서, 시대나 지역을 초월해 유사한 사회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게 없다. 서구 사회도 기독교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엄숙한 도덕이 강요되었으며, 20세기 초중반 서구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은 현대 한국보다 훨씬 더 적대적이었으며,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또한 역사적으로 봤을 때, 서구 사회가 노출에 관대하다고 보기도 힘들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서구 열강들은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미개하다고 깔보았다. 이는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당시 젖가슴을 내놓고 다니던 조선의 여인들을 보고 서양은 조선이 미개하다고 여겼다...고 주장했다만 조선 관련 토플리스 사진은 연출된 소위 주작인데 자세한 내용은 항목에 나온다.

결론적으로, 서구 사회가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의 노출전략이 먹혀들었던게 아니라, 원래 편협했던 사회가 수많은 활동가들 덕분에 조금씩 개방적, 관용적으로 변모해간 것이다. 무엇보다도, 2018년의 서구 사회라고 해서 성소수자 반대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며, 여전히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2. 법률적 해석[편집]


공연음란 여부 판단에 대한 판례에 따르면 "신체의 노출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일시와 장소, 노출 부위, 노출 방법·정도, 노출 동기·경위 등 구체적 사정에 비추어, 그것이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음란죄를 적용하지 않는다. 상대를 선별하여 노출행위를 해 특정인을 공격하는 바바리맨과 달리, 퀴어퍼레이드에서의 노출은 정해진 시위 일시 및 장소에서 시위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서라는 사정이 뒷받침되므로 음란행위로 볼 수 없다.

한편 공연음란죄와는 별개로 경범죄처벌법상 과다노출에 해당한다는 검찰의 판단이 있었는데#, 그 판단이 있은 후 해당 법조가 명확성 원칙을 위반하여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1]으로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였던 조문을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하여...'로 개정했다. 따라서 팬티조차 입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서야, 어지간한 신체 노출은 경범죄 처벌법에도 걸리지 않는다.

설령 퀴퍼에서 행해지는 노출이 위법이라고 해도 애초에 시위에서 노출을 제한하는 법률 자체가 위헌 소지가 크다. 대한민국 헌법 21조 1항에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타 헌법 조항을 위배하지 않는 이상 그 시위의 방법을 규제할 수가 없다. 따라서 '퀴퍼를 봐야하는 사람은 생각 안 하냐?'란 반박은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퀴퍼를 통해 침해되는 기본권은 없으며 만에 하나 관습적인 기본권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집회의 자유는 성문조항이기 때문에 성문법 우선원칙에 따라 퀴퍼에서의 노출이 정당화 된다.

3. 성소수자에 대한 이미지 악화 우려에 대한 반박[편집]


퀴어축제에 "노출"이 있어서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것보다 성소수자를 반대하는데 "퀴어축제"에 노출이 있어서라는 이유로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게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고 보인다. 즉 인과관계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즉 노출을 하지 않고 퀴어축제를 했어도 이미지가 덜 나빠진다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또한 성소수자들은 본인 스스로를 약자로 치부하니 호모포비아들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노출을 삼가는 게 맞지 않냐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곧 왕따에게 니가 조심하면 될 일이라며 약자에게 책임전가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퀴어퍼레이드 반대자나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내에서도 노출로 인한 성소수자 이미지 악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퀴어퍼레이드에서 추구하는 바는 평소 '평범'을 가장하고 대중 속에 숨어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억눌러 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평범을 가장해야만 공존을 인정하겠다는 사람은 어차피 성소수자 본연의 "평범하지 않음"이 드러나는 순간 공존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서 행동하라는 요구도 억압일 뿐이다. 과다한 노출로 인해 성소수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가시화되자 숨어있던 반대자들이 모습을 드러났을 뿐이다.

퀴어퍼레이드는 그러한 편견 및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의 연대의 장이며, 따라서 '여성적인' 남성 성소수자, '남성적인' 여성 성소수자, '문란한' 성소수자, PL(People Living with HIV/AIDS)[2] 성소수자 등 모든 종류의 "평범하지 않음"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러한 "평범하지 않다"는 주장은 단지 성적정체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모든 종류의 "평범하지 않음"에 대한 배척에 대항하겠다는 의지 표현이기도 하다.

4. '보기 불편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편집]


'퀴어축제인 날에 퀴어축제를 하는 곳에서'가 아니라면 축제 참가자들도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으로서 평범한 옷차림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굳이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공간에서 열리는 축제의 장에 와서 단순히 "내가 보기 불편하니 하지 말아야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다수에 의한 폭력에 가깝다. 이는 마치 일본의 남근축제에 가서 "남근의 형상이 보기 불편하니 여기서 하지 마라."고 딴지를 거는 것과 다를게 없다.

노출 비판론자들은 '퀴어 축제는 성적으로 수위가 높으면 안된다!'라는 전제를 깔고 논지를 펼치는데, 퀴어축제에 직접적으로 성적인 것을 드러내면 안되는 이유(축제 취지, 축제 운영측 자체 내규 등)가 전혀 없다.

간혹 남성 엉덩이 골이 묘사된 사진에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1987(영화)에서도 짤막하긴 하지만 하정우의 엉덩이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고 "어우 눈 버렸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시스젠더 호모포비아들은 정작 사우나에서 자신의 알몸을 동성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노출하고, 타인(주로 동성)의 알몸을 보고 "아 극혐!!" 소리를 외치지 않는다. [3] 이는 곧 성소수자에게 적용되는 노출의 잣대와 비성소수자[5]의 그것이 (합리적 근거 없이) 서로 다르다는 것, 결국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퀴어축제는 일년에 딱 한번 정해진 시각에 일정한 장소에서 질서있게 행해지는데, '보기 불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1년 365일 내내 떠들고 다닌다. 이러한 점이 이들이 과연 진심으로 과도한 노출이 불편한 것인지, 아니면 성소수자에 관한 사회 전반의 논의를 퀴어축제 노출 논란으로 묻어버리려는 것인지 그 의도를 의심하게끔 만든다. 조선일보, 기독일보 등으로 대표되는 성소수자 배척 언론사들을 살펴보면, 동성애에 대해 진지하게 파고든 기사는 거의 없다. 잘 해야 노출에 대한 부정적 입장, 나아가야 전환치료다.

물론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므로 퀴어축제의 과도한 노출패션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러므로 퀴어축제를 금지해야한다.", "그러니까 노출하지 마"과 같은 "요구"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보기에 불편하다.'를 넘는 논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노출 부정론의 주장들은 제 아무리 '사회', '윤리', '도덕' 같은 거창한 단어를 썼다 한들 '내가/우리가 보기에 불편하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개인의 선호는 사람 간의 갈등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데 아무런 준거가 될 수 없는 데도 말이다.

대한민국은 엄연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법률을 어기지 않는 행동을 어떠한 이유로도 제재할 수 없다. 개고기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비슷한 논지를 볼 수 있다. 개고기 금지론자들은 개고기가 일부 시민, 외국인들에게 혐오감을 주므로 개고기를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개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개고기 금지론자들의 불평불만을 들어줘야할 이유가 없다. 퀴어문화축제도 그 과정에 불법적인 요소가 없었다면, 퀴어문화축제 노출 반대론자들의 불평을 들어줘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

5. 상식/사회통념에 어긋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편집]


'상식/사회통념에 어긋난다'는 말은 퀴어문화축제/노출 부정론의 주요 레퍼토리이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퀴어문화축제가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건데, 2019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범법을 저지르지 않는 한에서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칠 자유가 있는 나라다. 퀴어문화축제의 노출이 공연음란죄 같은 경범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런 주장은 사법부에 의해 부정되었다.

상식/사회통념은 무조건 옳고 불변인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어서 어느 곳에서는 상식인 것이 어느 곳에서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고, 옛날에는 상식이었던 것이 현대에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해외에서 노출 시위는 '상식'이며, 과거에는 미니스커트도 과다노출이었다. 무엇보다 '상식/사회통념'이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사회적 약자를 통제, 억압, 탄압하는 일은 옛날부터 있어왔던 일이고, 이것도 그 범주에 불과하다. 실제로 반대세력들은 일부 행사 참가자의 노출을 자의적으로 잘라내고 노골적으로 연출하여 극단적으로 일반화하여 확대생산 및 재배포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식/사회통념은 반드시 정의이자 진리인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 옛날 서양국가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백인과 비백인의 분리, 비백인 인종을 열등한 인종으로 간주하는 "상식/사회통념"을 현대로 들어오면서 점차 버려나갔듯, 상식과 사회통념은 얼마든지 수정하고 보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딴거 모르겠고, 21세기 한국에서는 노출을 하지 않는게 상식/사회통념이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있으려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규범을 지켜야지 ‘언젠가 맨몸-붐은 올거야!’라고 억지로 옹호하는 것은 생떼입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군중에 의거한 논증에 해당한다.

상식/사회통념으로 치자면, 한국의 개고기 문화도 21세기의 주류문화를 차지하고 있는 서구인들의 관점으로는 비상식적, 반사회적인 식문화이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문화상대주의를 근거로 개고기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6. '역사적 맥락이 없다'의 의견에 대한 반박[편집]


퀴어문화축제/노출 부정론에서는 한국에서 성소수자는 관심밖이었을 뿐 공권력이 성소수자를 탄압한적이 없다고 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사회적 이슈 내지 관심의 대상이 전혀 되지 않는 것 자체가 엄청난 폭력이다. 일단 주목을 받아야 문제점이 분석되고 개선안도 제시되고 그러는 건데, 주목을 못받으니 문제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물론 성소수자를 감금하고 사형시키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물리적 폭행/제도적 차별만이 성소수자 탄압이 아니다. 그렇다고 물리적 폭행/제도적 차별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아래 차별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 물리적 폭력
    • 청소년 성소수자가 커밍아웃 했다가/아웃팅 당해서 집단폭행에 시달렸다는 사례가 많다. 이 때문에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률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보다 높다.
    • 군대에서 성소수자임이 드러나면 [6] 관심병사로 분류되는 건 기본이고, 간부와 선임은 물론 동기와 후임에게 까지 집단 폭행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 물리적 폭력이 없더라도, 성소수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관심병사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이해가 가질 않는다면, 미국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관심병사' 취급을 한다고 생각을 해보자.
    • 가정도 만만치 않다. 부모는 '이 녀석이 어디서 못된 걸 배워와서!'라는 마인드로 사랑의 매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폭행은 물론 성폭행까지 모의하기도 한다. "XX이가 남/여자 맛을 못 봐서 그래!"라는 안드로메다급 논리로. 그나마 폭행은 하지 않더라도 성매매 업소에 데려가서 강제로 성관계를 시키는 막장 부모도 있다. [7] 거기다 전환 치료나 무당까지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최악의 경우 집에서 강제로 쫓아내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 제도적 차별 사례
    • 군형법상 동성 접촉은 합의와 상관없이 무조건 처벌 대상이다. 이성간 접촉은?
    •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아직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소수자의 인권 보호에 힘을 써야 할 공권력이 호모포비아 측의 의견 때문에 제 할일을 하지 않는데[8], 이 역시 충분히 차별적이다. 공권력이 제 기능을 다한다면 반대를 무릅쓰더라도 소수자의 권익 신장에 힘을 써야 마땅하다.
    • 동성결혼이 허용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서로 평생 사랑하고 헌신하기로 맹세를 했어도 파트너로서 권한이 전혀 부여되질 않는다. 즉 파트너에게는 배우자로서의 어드벤티지가 전혀 부여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일례로 동성 부부중 한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파트너는 단 1원도 받지 못하여 파트너가 알거지가 된 사례가 있다. 정말로 호모포비아적 사고가 없고 그냥 성소수자에 대해 단순히 무지한 거라면,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대두되기 전에는 동성결혼이 허용된 나라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 역시 설명이 되지 않는다.
    • 심지어 한 나라 법 체계의 뿌리가 되는 헌법에서조차 성소수자는 차별받는다. 9차 개헌 헌법 (2019년 기준 현행) 제 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이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헌법 해석을 바꾸면 해결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남녀간의 결합만 결혼으로 인정하려는 점에서는 차별적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1980년대라는 시대적 한계도 감안해야겠지만. 그렇다고 10차 개헌에서는 이 문제가 해결이 되느냐? 그것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헌법개정안에서도 이 부분은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기독교 우파 측에서 이 부분을 개정하면 안된다고 으름장을 내놓고 있다.

  • 성소수자의 인권을 조금이라도 고려한 요소가 들어가면 여론의 물매를 맞는 경우가 매우 많다.
    • 청년 계층이 중장년 계층보다 동성애에 관대한 경우가 있지만, 문제는 이 '관대한 사고방식' DADT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막말로 닥치고 너네끼리 물고 뜯고 핥고 자빠져 있으면 터치는 안 하겠다 식이라는 것이다. 성소수자를 존중한다면서 성소수자의 특성이 양지로 나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유색인종을 존중한다면서 피부색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 국립국어원에서 '사랑'의 정의를 남녀에서 성소수자까지 포괄하는 범위로 확장하려 했으나, 기독교 우파 등의 호모포비아 측 단체의 극렬한 반대 때문에 무산된 경우가 많다.
    • 솔져 76이 게이라는 사실이 2019년에 드러나자 수많은 게이머들이 호모포비아적 개소리를 지껄였다. 물론 오버워치 제작진이 출시 이후 전개하라는 스토리는 전개안하고 설정놀음만 반복해서 게이머들의 불만을 사긴 했다. 하지만 이는 오버워치 제작진들 태도의 문제이지 게이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 흑인캐릭터만 계속 내세웠다고 흑인을 욕하는 것이랑 무엇이 다른가? 몇몇 인터넷 댓글을 보면 '게이가 싫어질 것 같다'식의 헛소리를 지껄인 게 있는데, 이것 때문에 게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게이를 싫어했는데 이걸 알게된 것이다. 즉 핑계다.
    • 네이버다음의 메인 기사에 성소수자의 인권문제를 다룬 기사가 올라가면 '이딴게 왜 TOP에 올라가냐', '기레기XX', '똥꼬충한테 돈 받았냐' 식의 저급한 댓글들이 줄줄이 나온다. 역차별 문제를 들먹이면서. 정작 '니들끼리만 안 보이는 데에서 물고 뜯어라'식의 발언이 '차별'이라는 것은 인지하지도 못한다.
    • 기독교의 교리상 동성애는 죄로 규범한다. 여기까진 성서에 쓰여 있는 대로고, 본인이 안하는 것까지는 상관이 없다. 문제는 그걸 핑계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고, 나아가 동성애=항문성교=AIDS 헛소리까지 유포하고 있다. 그것도 개인단위도 아니고 집단 단위로 말이다. 예수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소수자 빼고요.

  • 그 외의 차별 사례
    • 직장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장 내 따돌림 및 해고당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 동성과 이성과의 성적 접촉에 대한 수위 기준이 다르다.
      • 2014년에 방영된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여고생간 키스신이 있었는데, 좆문가로 구성돼서 그런지 방통위는 이에 중징계를 내렸다. 조영기 위원은 “(해당 방송이) 동성 간의 교제를 어떤 측면에서는 조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의 관습이나 이런 걸로 봤을 때 과연 동성애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헛소리를 지껄였다. 출처 막장드라마는 손도 안 대면서 말이다.
      • 퀴어 영화 친구사이?에서 동성간 성적 접촉때문에 청불 딱지를 받았다. 문제는 영화에서 청불딱지의 사유가 되는 동성간 직접적인 성관계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해야 키스하고 드러눕고 준비(?)하는 정도인데, 이정도면 당시 수위로는 15세 관람가정도에 불과하다. 불행중 다행으로 2013년에 대법원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딱지가 불공정한 것이라고 판결을 내려서 누명을 벗었으나, 여전히 구글에서는 본 영화를 청불영화로 취급한다.
    • 성소수자에 옹호적인 한국기독교장로회 섬돌향린교회는 아예 기독교계에서 이단 내지 사이비 취급을 받는다. 이는 주류 기독교 집단이 동성애나 트렌스젠더를 차별하는 거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이 전혀 없음을 드러낸다.

이외의 사례에는 호모포비아/사례에서도 많이 있다. 여기는 대표적인 예시 몇가지만 나열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만으로도 충분히 퀴어축제를 벌일 역사성 및 당위성은 충분하다. 노출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퀴어축제만한 과격한 표현을 해야 할 정도의 대대적인 탄압'[9]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격'은 개인 의견이니 논외로 치더라도, 탄압이 공공연히 있었다는 것은 맞다.


7. 기타[편집]


각종 반대 단체에서는 노출을 핑계로 퀴어 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들은 성소수자를 탄압하고 있으므로, 노출에 대한 비난은 단지 여론몰이를 위한 핑계거리일 뿐이다. 노출을 핑계로 온갖 악의적인 왜곡과 비난을 일삼는 반대세력들이 노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퀴어퍼레이드에 우호적 내지는 중립적으로 태도를 바꿀 리도 만무하다. 실제로 2014년 퀴어퍼레이드 때는 노출이 아닌 퍼레이드 차량을 문제삼고 차량만 포기하면 길을 내주겠다고 반대세력들이 주장한 바 있다.

한편 국내에서 이러한 노출 표현에 대한 반발이 심한 것에는 시위에 대한 인식 부족타인의 복장에 대해 평가하거나 간섭하고자 하는 시각도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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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헌가3[2] HIV 감염인, AIDS 환자[3] 여기서 트랜스젠더의 문제는 논외로 친다. 물론 트랜스포비아도 정당화될 수 없다.[4]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5] 배우 하정우가 자신이 '남성 시스젠더 이성애자'라고 밝힌 적은 없지만, 사회 통념상 모든 사람의 성적지향을 기본으로 '남/여성[4] 시스젠더 이성애자'로 보기 때문에 본 서술에선 이렇게 쓴다.[6] MtF 트랜스젠더는 진단서를 떼어 오면 기본으로 4급을 주므로 공익에 배정받을 수 있어 사정이 낫긴 하다.[7] 성매매가 한국에서 불법인 건 논외로 치더라도 강제로 원치않는 사람과 성관계를 맺게 하는 거 자체가 문제다. [8] 심지어 한국의 7대 종교 지도자들이 뜻을 모아서 반대를 했다. 종교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9] 본 서술은 노출 반대론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