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누트 한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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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nut Hansson.png
이름
크누트 "부클라" 루벤 뵈르예 한손
(Knut "Buckla" Ruben Börje Hansson)
생년월일
1911년 5월 9일
사망년월일
1990년 2월 10일 (향년 78세)
국적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출신지
불명
포지션
포워드
신체조건
불명
소속팀
란스크로나 BolS (1932-1934)
IS 할미아 (1934-1935)
란스크로나 BolS (1937-1942)
국가대표
7경기 / 6골 (1933-1938)



1. 개요
2. 생애[1]
3. 수상
3.1. 클럽


1. 개요[편집]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2][편집]


한손은 란스크로나 BolS(Landskrona BoIS)에서 알스벤스칸에 데뷔했고, 데뷔 시즌이던 1932-33시즌부터 리그 득점 2위에 오르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한손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속팀 란스크로나는 꼴찌로 2부 리그로 강등당했지만 한손은 블로굴트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한손은 월드컵 지역예선 리투아니아전에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는데 2골을 넣어 스웨덴의 2대0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다. 이 승리로 스웨덴은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한손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1934년, 란스크로나의 알스벤스칸 재승격 이후 한손은 강등팀 IS 할미아(IS Halmia)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하지만 할미아에서의 생활은 1년에 그쳤고 한손은 1937년에서야 다시 친정팀 란스크로나로 복귀했다.

그는 대표팀에도 다시 복귀했고 이번에는 프랑스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어갔다. 한손의 대표팀 복귀전 상대는 6월 10일의 라트비아. 원래대로라면 스웨덴은 리옹에서 오스트리아와 1라운드 경기를 치렀어야 했지만 안슐루스로 인해 오스트리아는 기권했고 오스트리아 선수들은 독일에 흡수되었다. 스웨덴은 이 경기에서 3대3으로 라트비아와 비겼는데 한손의 2골이 없었으면 월드컵 직전에 제대로 망신을 당할 뻔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도 한손의 자리는 없었다. 한손은 대회 내내 단 한번도 주전으로 나서지 못했고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은 그렇게 끝났다.

1938년 가을까지 한손은 대표팀에서 총 7경기 출전, 6득점을 기록했고 1942년에 은퇴할 때까지 란스크로나에서 154골을 넣었다. 이는 란스크로나 역대 득점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3. 수상[편집]



3.1. 클럽[편집]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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