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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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Hollywood Walk of Fame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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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크리스토퍼 리브
CHRISTOPHER REEVE
분야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입성날짜
1997년 4월 15일
위치
7021 Hollywood Blvd.





크리스토퍼 리브
Christopher Reeve


파일:external/www.purme.org/img1.jpg

아내인 데이나 리브와 함께
본명
크리스토퍼 디 오라이어 리브
Christopher D'Olier Reeve[1]
출생
1952년 9월 25일
뉴욕주 뉴욕시
사망
2004년 10월 10일 (향년 52세)
뉴욕주 마운트 키스코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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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93cm, 98kg
직업
배우, 작가, 영화감독
활동
1970년2004년
데뷔
1978년 영화 '위기의 핵잠수함'
종교
개신교
학력
코넬 대학교
줄리어드 스쿨
부모
아버지 : F. D. 리브
(1928. 9. 18. ~ 2013. 6. 28.)
어머니 : 바바라 피트니
(1929. 9. 28. ~ 2000. 1. 27.)
배우자
데이나 리브(1992년 결혼)
(1961. 3. 17. ~ 2006. 3. 6.)
자녀
장남 : 매튜 리브(1979. 12. 20. ~ )[2]
장녀 : 알렉산드라 리브(1983. 12. ~ )
차남 : 윌리엄 리브(1992. 6. 7. ~ )[3]

1. 개요
2. 생애
2.1. 무명시절
2.2. 슈퍼맨의 대명사가 되다
2.3. 다양한 활동
2.4. 부상과 좌절
2.5. 진정한 슈퍼맨이 되다
2.6. 사망
3. 기타
4. 대중매체에서
5. 출연작
5.1. 영화
5.2. 텔레비전
6. 관련 링크



1. 개요[편집]



미국배우 & 영화 감독 & 작가슈퍼맨 앤솔로지(1978~1987)에서 슈퍼맨으로 열연을 펼쳤다.


2. 생애[편집]



2.1. 무명시절[편집]


1952년에 뉴욕의 족보 있는 최상류층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진외조부(아버지의 외조부) 프랭클린 돌리어(Franklin D'Olier[4], 1877~1953)는 미국 재향군인회(The American Legion) 초대 회장을 지냈고, 프루덴셜 보험 사장과 이사회 의장, 종신 이사를 역임했다. 친조부 리처드 헨리 리브(Richard H. Reeve, 1904 ~1986)도 장인의 뒤를 이어 프루덴셜 생명보험 최고경영자를 25년이나 지냈었다. 부친 프랭클린 돌리어 리브(Franklin D'Olier Reeve, 1928 ~2013)는 가업을 이어받지는 않고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러시아 어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까지 지낸 학자였다. 모친 바버라 피트니 램(Barbara Pitney Lamb, 1929 ~ 2000)는 언론인이었는데, 그녀의 친조부는 연방 하원의원과 대법관을 지낸 말론 피트니 4세(Mahlon Pitney IV, 1858 ~ 1924)였다. 그러나 아주 어릴 적인 1956년에 친부모가 이혼하여, 친모와 양부 손에서 자랐다.

이후 프린스턴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에, 명문 코넬 대학교로 진학하여 영어와 음악 이론을 전공했다. 굉장히 어린 시절부터 연기에 뜻을 두고, 15세 때 연기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다만 부모는 선뜻 승낙하기가 내키지 않아 일단 대학교를 마치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코넬 대학교로 진학한 것도 일단 부모와 떨어져 연기 관련 일을 해보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재학 중에는 영국 글래스고, 프랑스 파리 등을 돌아다니며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 유럽 경험을 거치며 연기에 더욱 조바심이 난 나머지 졸업 이수 요건은 줄리어드 스쿨에서 마저 채우기로 하고, 1973년에 줄리어드 스쿨에 편입하여 연기를 배웠다. 1975년 졸업 후에는 브로드웨이에서 힘겨운 무명 시절을 거쳤으며, 이때 리브는 너무 바빠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 의사에게 "빌어먹을 바보 같으니, 고기를 먹어!''라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2.2. 슈퍼맨의 대명사가 되다[편집]


1978년에 영화 《슈퍼맨》의 주연을 맡았다. 캐스팅 당시 리브는 무려 193cm에 비해 겨우 70kg대의 매우 마른 몸매의 소유자였고, 슈퍼맨치고 몸이 너무 초라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가짜 근육 패드를 달자는 제안도 받았지만, 그는 몇 달 동안 죽어라 헬스클럽에서 단련해[5] 진짜 근육을 몸에 붙였다. 또한 리브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어벙한 클라크 켄트와 당당한 슈퍼맨의 1인 2역과 다름 없는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는데, 그가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보면 목소리 톤부터 자세, 평소 말하는 습관, 웃는 모습까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리브의 활약과 당시로선 센세이셔널했던 CG 기술, 화려한 조연진 등에 힘입어 영화는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슈퍼맨 2》(1980), 《슈퍼맨 3》(1983), 《슈퍼맨 4》(1987)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슈퍼맨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며 '슈퍼맨=크리스토퍼 리브'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심지어 원작 슈퍼맨 코믹스의 슈퍼맨 얼굴 생김새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가 슈퍼맨으로 나오기 전 1960년대 슈퍼맨을 구글 이미지에 검색해보면 슈퍼맨의 얼굴은 현재와 많이 다르게 그려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작화마다 다르지만, 25년이 넘게 현재에서도 코믹스에서 슈퍼맨의 외모는 항상 그를 매우 닮게 그려진다.[6] 특히 둠스데이 클락 등을 맡은 게리 프랭크의 작가가 리브스의 얼굴을 거의 그대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제작비 절감과 감독 교체 등으로 슈퍼맨 시리즈는 갈수록 작품성이 떨어졌고 《슈퍼맨 4》는 흥행 면에서도 실패하고 만다. 1987년 《슈퍼맨 4》를 마지막으로 그는 슈퍼맨 영화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7] 다행인지 영화의 실패와는 별개로 그가 맡은 슈퍼맨 역에 대한 평가는 현재도 호평일색이다.


2.3. 다양한 활동[편집]


슈퍼맨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이 사고를 당한다거나 슈퍼맨 외의 다른 역할들로 별다른 주목을 못 받았다는 점에서 슈퍼맨의 저주라는 말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지만, 리브는 그 말과는 대조적으로 성공한 축에 든다. 《사랑의 은하수[8] 같은 로맨스 영화는 아시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9] 마이클 케인[10]과 주연으로 같이 나와 양면적인 소시오패스를 훌륭히 연기한 《죽음의 게임(Deathtrap)》(1982)은 미국에서 제법 성공을 거두기도 하는 등 슈퍼맨 외의 흥행작들도 있으며, 《보스톤 사람들(The Bostonians)》(1984)[11]과 같은 독립영화들과 각종 연극에 참여하는 등 여러 장르에 도전해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중엔 공포거장 존 카펜터의 공포영화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각종 시상식에서 8차례 수상, 12차례 노미네이트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안심하고 있던 중, 1995년, 슈퍼맨의 저주가 그를 덮치고 말았다.


2.4. 부상과 좌절[편집]


1995년 5월 27일, 리브는 승마 경기 중 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브는 영화 《서스피션(Above Suspicion)》(1995)에서 몸이 마비된 남자를 연기했는데, 이 영화가 개봉한 지 6일 만에 낙마 사고를 당했다.

승마 경험도 많고 안전장구도 갖추었음에도 부상은 심각해서, 그는 전신마비를 선고받고 목 아래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호흡조차도 기계에 의존해야 했다.[12]

크리스토퍼 리브의 SCI 레벨은 C2 레벨 손상으로, C2 신경과 C3 신경 사이가 손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 완전손상의 경우 고개를 좀 끄떡이는 것만 가능하며 그 밑으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다. 또한 횡격막의 마비로 자가호흡이 불가능해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면서 살아야한다.

누구보다도 활동하기 좋아하는 운동광이었던 그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너무나 심한 고통에 아내에게 총을 가져다 달라고 애원할 정도였고, 그에게 남은 희망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슈퍼맨의 저주가 실현된 것이다.


2.5. 진정한 슈퍼맨이 되다[편집]


하지만 그는 자신의 노력과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 그리고 의료진의 치료에 힘입어 다시 일어섰다. 꾸준한 재활훈련 끝에 리브는 기계장치의 도움 없이도 30분 정도는 스스로 호흡할 수 있게 되었고, 죽었던 감각이 어느 정도 되살아나 따뜻함과 차가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크리스토퍼 리브 재단(Christopher Reeve Foundation)'[13]을 설립해 자신과 같은 마비 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을 위한 사회활동에도 활발하게 참가하였다. 리브는 세계 곳곳을 돌며 강연을 했고, 미국마비환자연합(American paralysis Association)의 대표와 국제장애인협회(National Organization on Disability)의 부대표도 맡았다. 이런 분야에 대한 리브의 공헌은 매우 대단한 것이어서, 척수 손상과 관련된 의학적 연구가 더 활성화됐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사람들의 사회적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더불어 그는 1996년 8월 26일자 타임(주간지)지의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다.

리브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작가로도 활동해 <Still Me>라는 자서전을 내기도 했으며[14],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배우로서의 재기도 성공해 영화 주연부터 TV 드라마 카메오 등으로 활동하고 케이블TV 영화 《황혼 속으로(In the Gloaming)》(1997) 제작 때 메가폰을 잡았고, 1998년에 앨프레드 히치콕 영화 리메이크작 《이창》에도 출연했다.

그 외에도 1996년에 아카데미 시상식나타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환호도 보통 환호가 아니라, 단지 그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1분 넘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몇몇 쟁쟁한 배우들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997년에는 에미상을 받았으며, 2003년에는 라스커 상(Lasker Award)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인터뷰 도중 왼손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넣었으며, 2003년 6월 뉴욕 복제과학 학술회의에서 황우석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에게 "연구를 더욱 진전시켜 수백만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달라"는 영상 메세지를 보냈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회복할 것이라고 희망을 가졌지만...


2.6. 사망[편집]


2004년 10월 9일(현지시간 기준) 뉴욕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혼수상태에 빠졌고, 다음날 숨을 거뒀다. NBC 투데이는 그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그를 영웅(hero)이라고 지칭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유골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인계했다고 한다.

죽기 직전에 제작, 공동 감독한 CG 애니메이션 《에브리원 히어로》(2006)를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는데, 아내인 데이나 리브가 더빙과 같이 제작, 감독을 맡아 완성했다. 이 애니메이션을 완성한 후 그녀는 2006년 45살 나이에 폐암[15]으로 인해 남편의 곁을 따라가게 된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그의 부모와 장인, 그리고 그의 절친이었던 로빈 윌리엄스에 의해 보살핌을 받았으며, 역시 크리스토퍼와 데이나 리브 재단을 돕고 있다고 한다.

그가 죽었을 때 팬들은 슈퍼맨 마크 모양의 꽃다발을 만들어서 그의 영전에 바쳤으며, 그를 진정한 슈퍼맨(The Real Superman)이라고 불렀다. 죽을 때까지 슈퍼맨다운 삶을 산 그에게 어울리는 찬사다.

리브의 마지막 대중연설은 여기를 보면 나온다.


3. 기타[편집]


  • 슈퍼맨이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기기 위해 클라크 켄트로 행세하는 것을 훌륭하게 소화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해당 영상에서 찰나의 순간에 슈퍼맨에서 클라크 켄트로 변신하기 위해 자세와 목소리 톤, 말투 등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 로빈 윌리엄스와 줄리어드 대학에서 룸메이트였으며, 매우 절친한 사이로서 리브가 톱스타가 되고 윌리엄스가 무명인 시절에 리브가 윌리엄스를 계속 응원하고 격려했다고 한다. 윌리엄스도 대배우로 성공한 이후에도 둘의 교류는 계속되었으며, 리브의 사고 이후 윌리엄스는 병상에 있는 그를 항상 찾아왔고, 그와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남겨진 아이들을 입양하고 지원하였다. 그들의 우정은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14년 8월 17일 방영분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빈 윌리엄스도 자살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여담으로 배트맨 역으로 유명한 케빈 콘로이도 당시 줄리어드 대학의 학생이었다고 한다.

  • 사랑의 은하수》에 같이 출연했던 제인 세이모어는 그녀의 아들 이름을 리브의 이름을 따서 크리스토퍼라고 지었다. 리브는 그 아들의 대부였다고 한다.

  • 자격증을 가진 파일럿이었으며, 촬영이 없는 기간 동안은 자주 비행기 조종을 하며 여가를 즐겼다고 한다.

  • 리브는 개이 엑스턴과의 사이에서 장남 매튜 리브(1979년생)와 딸 알렉산드라 리브(1983년생)를 두었고, 이후 데이나 리브와 결혼하여 차남 윌 리브(1992년생)를 두었다. 현재 매튜 리브는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고, 윌 리브는 배우로 활동 중이다.

  • 역대 슈퍼맨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 중 키가 193cm로 가장 크다.

  • 슈퍼맨 리턴즈》(2006) 엔딩 크레딧 부분에, 죽은 크리스토퍼 리브와 데이나 리브 부부에 이 영화를 바친다는 메시지가 있다.

  • 그가 출연한 슈퍼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슈퍼맨은 실버 에이지 슈퍼맨으로 분류되어 있다.

  • 2013년 개봉한 슈퍼맨 영화 《맨 오브 스틸》에서 그를 기리는 CG가 삽입되어 있다. 작품 후반 클라이맥스에서 슈퍼맨이 비상하려는 무렵 헨리 카빌의 얼굴에서 크리스토퍼 리브의 얼굴로 바뀐다. # 영화가 개봉한지 3년 후 기자가 잭 스나이더에게 이것을 일부러 넣었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으면서 "It's just the way it looks. It's not... I mean if it looks like that, that's the gods. Not me(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에요. 아니... 제 말은 그렇게 보인다면, 그건 신이 한 거겠죠. 제가 아니라요)."라는 의도치 않았다고 하지만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았다. #

  • 2000년 미국 대선 때 '줄기세포 연구 허용'을 공약으로 내건 앨 고어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 바 있다.

  • 대학에서 음악 이론을 전공한 만큼 훌륭한 피아노 실력과 노래 실력을 갖추었다. 확인하고 싶다면 여기 참조.

  • 2021년 9월 25일 탄생 69주년 기념 구글 두들이 공개됐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미국 성인애니 <사우스파크> 시즌7 2화[16]에서 등장했는데, 이 에피소드에선 태아세포를 이용해 다시 일어선 후 진 해크먼의 충고조차 무시한 채 악당연합에 가담했으나 결국 유리감옥에 갇혔다.

슈퍼맨의 성장기를 그린 스몰빌에서 주요 조연인 스완슨 박사로 출연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를 모티브로 휠체어를 탄 천문학자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클락 켄트를 지원하는 멘토 역할로 팬들에게 최고의 팬서비스가 되었다. 하지만 배우 본인이 사망함에 따라 스완슨 박사도 마지막 조언을 남기고 퇴장하였다.

5. 출연작[편집]



5.1. 영화[편집]



5.2. 텔레비전[편집]




6. 관련 링크[편집]



[1] 간혹 가다 '리브스(Reeves)'로 표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리브(Reeve)'가 옳은 표기이다.[2] 영화제작자 겸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운 재단의 회장을 맡고 있다.[3] 뉴스 아나운서가 되었다.[4]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프랑스 귀족 집안의 후손이었다.[5] 이때 리브의 전담 트레이너로 붙은 사람이 영화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 역할을 맡았던 데이비드 프라우즈라고 한다.[6] 비슷하게 마블의 아이언맨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출연한 아이언맨 영화판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원작 아이언맨의 외모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닮은 모습으로 바뀌었다.[7] 2003년에 《스몰빌》의 로제타(Rosetta)라는 에피소드에서 카메오로 나온 적은 있다. 정확하게는 로제타(Rosetta)와 레거시(Legacy) 2개 에피소드에 걸쳐 출연했는데, 단순 카메오라고 하기에는 주인공 클락 켄트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배역이었다.[8] 생전에 리브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라고 한다.[9] 중국에서 그 해에 가장 수익을 많이 낸 영화들 중에 하나였고, 홍콩에서는 반응이 뜨거워 무려 18달 동안이나 상영되었다.[10] 리브와 영화 《막을 올려라(Noises Off...)》(1992)에서도 같이 나온 적이 있다.[11] 독립영화인 점을 고려했을 때 상당한 흥행을 한 작품이었다. 이 영화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눈에 들었는지 남아있는 나날에도 출연했다.[12] 인공호흡기를 달면 말을 못하게 되는데, 그나마 다행히도 호흡기를 달고서도 말은 할 수 있었다.[13] 이 단체는 나중에 크리스토퍼 리브와 그의 아내 데이나 리브가 죽은 후에 '크리스토퍼와 데이나 리브 재단(Christopher&Dana Reeve Foundation)'으로 개명한다.[14] 리브가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아내 데이나 리브가 한 말인 "You're still you.(나에겐 여전히 당신이에요.)"에서 제목을 따온 듯 하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15] 그녀는 단 한 번도 흡연을 한 경험이 없다고 한다. 유전성 암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16] 해당 에피소드에선 흑인 갱단 크립스와 블러드 간 화해 노력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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