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매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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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매튜슨의 주요 수훈 /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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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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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크리스티 매튜슨
Christy Mathewson

포지션
투수
득표수
249,747


파일:뉴욕 자이언츠 엠블럼(1904~1907).gif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05

파일:뉴욕 자이언츠 엠블럼(1918~1922).png
MLB 월드 시리즈
우승코치

1921






파일:MLB 로고.svg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

사이 영
(보스턴 아메리칸스, 1901년)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1905년)

루브 워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5년)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1908년)

파일:MLB 로고.svg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1905년)
루브 워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5년)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1908년)


월터 존슨
(워싱턴 세네터스, 1913년)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05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다승왕
조 맥기니티
(뉴욕 자이언츠)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조 맥기니티
(뉴욕 자이언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07년 ~ 190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다승왕
조 맥기니티
(뉴욕 자이언츠)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모데카이 브라운
(시카고 컵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1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다승왕
모데카이 브라운
(시카고 컵스)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05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왕
조 맥기니티
(뉴욕 자이언츠)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모데카이 브라운
(시카고 컵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08년 ~ 190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왕
잭 피에스터
(시카고 컵스)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킹 콜
(시카고 컵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1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왕
킹 콜
(시카고 컵스)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제프 테즈로
(뉴욕 자이언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1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왕
제프 테즈로
(뉴욕 자이언츠)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빌 독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03년 ~ 1905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탈삼진왕
빅 윌리스
(보스턴 비니터스)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프레드 비비
(시카고 컵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07년 ~ 190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탈삼진왕
프레드 비비
(시카고 컵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오벌 오버롤
(시카고 컵스)






파일:Matthewson_Christy_7319-89_FL_SN Conlon.jpg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No. NY
크리스토퍼 "크리스티" 매튜슨
Christopher "Christy" Mathewson

출생
1880년 8월 12일
펜실베이니아 주 팩토리빌
사망
1925년 10월 7일 (향년 45세)
뉴욕 주 사라낙 레이크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학력
케이스톤 아카데미 - 버크넬 대학교
신체
185cm / 88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00년 드래프트 (CIN[1])
소속팀
뉴욕 자이언츠 (1900~1916)
신시내티 레즈 (1916)
지도자
신시내티 레즈 감독 (1916~1918)
뉴욕 자이언츠 코치 (1919~1921)
기록
2회 노히트 노런 (1901.7.15, 1905.6.13)
가족
동생 헨리 매튜슨

1. 개요
2. 선수 경력
2.1. 데뷔 과정
2.2. 뉴욕 자이언츠의 에이스
3. 연도별 기록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5. 지도자 경력
7. 투구 스타일
8. 모데카이 브라운과의 라이벌 관계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Mathewson_in_NY_uniform.jpg

승리를 통해서는 작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패배로부터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메이저리그 다승 공동 3위를 기록한 투수이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5인 중 한 명이다. 스크류볼의 대가이자 당대 최고의 투수이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선수생활을 일찍 끝내고 세상을 떠난, 루 게릭과 비슷한 수준의 기구한 삶을 산 인물이기도 하다.

뛰어난 성적에 더해 금발벽안의 미남으로 17시즌 동안을 뉴욕 자이언츠에서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통산 성적은 373승 188패. 4788.2이닝. ERA 2.13. 2504삼진. BWAR 103.7.

2. 선수 경력[편집]



2.1. 데뷔 과정[편집]


파일:external/media2.wcpo.com/Mathewson%20warming%20up_1465272180769_39742129_ver1.0_640_480.jpg

"하버드 졸업생처럼 교양있게 말하고, 배우처럼 잘생겼고, 비지니스맨 같이 행동하고, 그리고 매우 신사적이죠."[2]

호머 크로이, 작가


매튜슨은 1899년 뉴잉글랜드 리그의 야구팀과 계약을 맺고 그 다음 시즌, 캘리포니아 리그의 노포크 팀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20승 2패를 기록한 후 뉴욕 자이언츠가 덥썩 그와 1500불에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바로 선발로 나선 세 경기에서 내리 3패를 기록한 후 계약 파기 및 계약금을 환불(...)했다. 곧바로 신시내티 레즈에서 100불에 드래프트로 그를 뽑아갔으나 다시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3][4]


2.2. 뉴욕 자이언츠의 에이스[편집]


다시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된 매튜슨은, 1901년 만21세의 나이로 ERA 2.41에 20승을 기록하며 놀라운 활약을 하였다. 하지만 이 젊은 투수가 얼마나 오래 활약할 지 의문이었던 감독은 유격수와 외야수 연습을 지시했지만, 자이언츠로 온 감독 존 맥그로가 이를 중단시켰다. 그 후 1903년부터 1914년까지 매튜슨은 매년 22승 이상을 기록하는 투수가 된다.

1905년에 다승, ERA, 탈삼진에서 1위를 달성하며 투수 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고, 같은해 월드 시리즈에서는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1차전 4피안타 완봉승, 이틀 후 4차전 4피안타 완봉승, 3일 후 5차전 6피안타 완봉승을 기록하며 자이언츠를 우승으로 이끈다. 그리고 109년 뒤똑같은 팀에서 매디슨 범가너가 나왔다.

다음 해인 1906년에는 디프테리아에 걸려 고생했으나 ERA 2.97에 22승-12패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5] 물론 병이 나은 다음 해 1907년에 다승왕, 탈삼진왕을 차지하고 1908년에 또 한번 트리플 크라운(...)[6]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Christy_Mathewson_1913.jpg
1913년, 뉴욕 자이언츠

그러나 그 해 페넌트레이스는 통과하지 못했다. 1908년은 바로 시카고 컵스가 우승한 해(...)

그 다음 해 1909년에는 아깝게 2승 차이로 다승왕을 놓쳤지만 ERA 1.14와 승률왕을 기록하였다. 특히 1.14의 평균자책점은 밥 깁슨의 1.12에 이은 역대 5위. 데드볼 시대라는 점을 물론 감안해야 하지만 조정 ERA로도 222다. 그 다음 해에는 다시 한번 다승왕을 차지하고 1911년에는 루브 마쿼드[7]와 원투펀치를 이루며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둘 모두 프랭크 베이커[8]에게 결승홈런을 얻어맞고 우승 문턱에서 패배한다.

다음 해 1912년에 또 다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다. 상대는 보스턴 레드삭스. 매튜슨은 3경기 3완투 ERA 0.94라는 환상적인 투구를 보여줬지만, 야수들은 이에 전혀 보답하지 못해 실책을 연발하면서 0승 2패로 고배를 마셨다(...)

1913년에 다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여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2완투 1완봉 ERA 0.95를 기록하였으나 1승 1패에 그쳤고, 팀은 다시 우승을 놓쳤다. 그나마 정규 시즌에서 다시 한번 평균자책점왕을 기록한 게 위안.

1914년 시즌에 겨우 33세의 나이로 365승을 거두었고, 승수 페이스를 봤을 때 2년안에 사이 영월터 존슨만이 도달했던 400승을 거둘 전망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정상급 시즌이었다. 사실 1914년 시즌도 표면적으로는 312이닝과 24승이란 대단히 우수한 시즌이었지만, 그 이면에 리그 최다 실점에 최다 피홈런이라는 불길한 징조가 있었다.[9] 그리고 바로 다음해부터 폼이 급격하게 하락하며 이듬해에는 100이닝도 못채우고 그대로 은퇴했다. 로이 할러데이의 케이스처럼 십수년동안 누적된 피로수치가 갑자기 터진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3. 연도별 기록[편집]


파일:MLB 로고.svg 크리스티 매튜슨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00
NYG
6
0
3
0
-
33⅔
5.08
37
1
20
4
15
1.693
71
-0.1
-0.6
1901
40
20
17
0
-
336
2.41
288
3
97
13
221
1.146
138
5.4
8.9
1902
35
14
17
0
-
284⅔
2.12
246
3
77
10
164
1.135
131
3.8
4.2
1903
45
30
13
2
-
366⅓
2.26
321
4
100
10
267
1.149
150
7.5
10.5
1904
48
33
12
1
-
367⅔
2.03
306
7
78
4
212
1.044
134
6.7
5.4
1905
43
31
9
3
-
338⅔
1.28
252
4
64
1
206
0.933
233
7.4
9.6
1906
38
22
12
1
-
266⅔
2.97
262
3
77
3
128
1.271
89
3.7
2.5
1907
41
24
12
2
-
315
2.00
250
5
53
2
178
0.962
125
6.8
8.6
1908
56
37
11
5
-
390⅔
1.43
281
5
42
3
259
0.827
169
10.8
11.8
1909
37
25
6
2
-
275⅓
1.14
192
2
36
0
149
0.828
224
6.9
9.7
1910
38
27
9
0
-
318⅓
1.89
292
5
60
3
184
1.106
158
7.5
8.1
1911
45
26
13
3
-
307
1.99
303
5
38
1
141
1.111
167
6.8
7.9
1912
43
23
12
5
-
310
2.12
311
5
34
2
134
1.113
161
6.2
7.7
1913
40
25
11
2
-
306
2.06
291
8
21
0
93
1.020
153
5.3
7.1
1914
41
24
13
2
0
312
3.00
314
16
23
2
80
1.080
88
3.3
0.4
1915
27
8
14
0
0
186
3.58
199
9
20
1
57
1.177
72
1.7
-1.0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16
NYG/CIN
13
4
4
2
0
74⅔
3.01
74
4
8
0
19
1.098
83
0.3
-0.5
MLB 통산
(17시즌)

636
373
118
30
0
4788⅔
2.13
4219
89
848
59
2507
1.058
136
90.0
100.3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크리스티 매튜슨
92
350
303
84[10]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7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크리스티 매튜슨
101.7
66.5
84.1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50.3
62.1


5. 지도자 경력[편집]


1916년 빌 맥케치니, 에드 루시[11]와 함께 벅 허조그, 레드 킬리퍼를 상대로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 해 플레잉 코치로 전향하여 단 1승만을 거두고 이듬해와 그 다음 해 중반까지 감독으로 재직하여 164승 176패를 기록했다.


6. 제1차 세계 대전[편집]


파일:external/fromdeeprightfield.com/Christy-and-Jane-Mathewson-1918.jpg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매튜슨은 아내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이미 당시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군 면제 대상이었다.) 대위의 계급장을 달고 화학병으로 참전했다. 타이 콥, 조지 시슬러 등과 함께 독가스 제거, 오염지대 개척 임무를 담당하였으나 훈련 과정에서 실수로 화학 가스를 흡입하고 만다. 전쟁이 끝난 후 1919년에서 1921년까지 3년간 친정팀 뉴욕 자이언츠에서 코치직을 맡으며 1921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가스 흡입으로 인한 후유증과 싸우는 데 보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The_Christy_Mathewson_Cottage.jpg
그가 말년에 지냈던 휴양지의 저택
1923년에 그는 다시 현장에 복귀했으나, 일을 하기에는 병세가 너무 심했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25년, 45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그가 죽기 전 남긴 유언은 다음과 같다.

‘나는 결코 야구든, 인생이든 비겁하지 않았다.’



7. 투구 스타일[편집]



선수생활을 했을 때의 체격은 신장 6피트 2인치(188cm), 체중 90kg로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체구였다.[12] 동시대의 월터 존슨이 불같은 강속구로 리그를 호령했다면 매튜슨은 통산 BB/91.6개인 것에서 알 수 있는 정교한 제구력과 80구 이하의 완투 경기가 9경기나 될 정도의 공격적인 피칭으로 타자들을 제압했다. 그야말로 19세기의 그렉 매덕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렉 매덕스 이전 69이닝 연속 무볼넷 기록을 보유했던 사람이 크리스티 매튜슨. 그렉 매덕스가 엄청난 무브먼트를 지닌 투심 패스트볼과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을 가지고 있었다면, 매튜슨에게는 당시 '페이드어웨이'라고 불린 스크류볼과 커브가 있었다. 투수가 동일한 투구폼에서 다른 구종을 던질 수 있을 때가 가장 이상적인 경우인데, 매튜슨의 경우는 커브와 스크류볼을 던질 때의 투구폼이 똑같았다. 같은 투구 동작에서에서 한 놈은 이리 오고 다른 놈은 반대쪽으로 날아오니 타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

1911년 월드 시리즈 당시 찍힌 그의 투구폼 사진이 현대 야구팬들을 놀래킨 적이 있다. 스트라이드가 톰 시버를 연상시킬 정도로 엄청나게 넓다. 데드볼 시대에 투수들이 설렁설렁 던졌다는 편견을 깨버린 자료 중 하나. 솔직히 설렁설렁 던졌으면 에이스 투수 출신 팔병신, 어깨병신들이 그렇게 많이 나왔을 리 없다. 그때가 지금보다 관절장애 비율이 더 높다.

8. 모데카이 브라운과의 라이벌 관계[편집]


파일:external/media2.wcpo.com/Mathewson%20vs.%20Brown%20advertisement_1465272381515_39742130_ver1.0_900_675.jpg

"브라운 vs 매튜슨. 야구팬들을 위한 올해 최고의 선물"[13]


1900년대 내셔널리그는 자이언츠와 컵스의 양분 체제였다. 그리고 크리스티 매튜슨과 모데카이 브라운은 각각 자이언츠, 컵스의 당대 최고의 에이스였다. 브라운의 통산 승수는 239승에 불과하지만 이는 그가 매튜슨보다 7년이나 늦게 데뷔했기 때문이었으며, 오히려 5시즌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평균 26승을 달성하는 등 사실상 용호상박의 관계였다.

1903년 처음 맞대결을 벌인 이래 총 25번을 격돌하여 브라운이 13승 10패, 매튜슨은 11승 13패를 기록했다. 특히 1908년에 있었던 플레이오프에서의 격돌은 양팀이 98승 55패로 동률을 기록한 상태에서의 경기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머클의 본헤드' 사건이 발생하여 컵스와 브라운이 자이언츠와 매튜슨을 제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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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시네티 레즈가 100불을 대가로 지명한 후, 바로 뉴욕 자이언츠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2] https://www.si.com/vault/2003/08/25/348692/giants-among-men-exactly-100-years-ago-christy-mathewson-and-john-mcgraw-rescued-the-woeful-new-york-giants-and-helped-make-baseball-the-true-national-pastime[3] 당시 레즈의 구단주 존 T.Bush는 유망한 투수들을 자이언츠로 보내고 자이언츠를 인수할 계획이었다.[4] 이 때 매튜슨과 트레이드되었던 자이언츠의 투수는 아모스 루시로, 통산 246승을 기록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대투수다. 선더볼트라는 이름답게 강력한 속구가 주무기였지만, 트레이드 당시에는 이미 부상 및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 하락세였고, 1900년 트레이드 다음 해인 1901년에 3경기 8.59 1패를 기록하고 은퇴한다.[5] 조정 ERA는 88[6] 이 때 트리플 크라운 뿐만 아니라 출장수, 선발 출장수, 완투, 완봉, WHIP, 심지어 세이브까지 전부 1위를 해먹었다,말 그대로 다 해먹은거다[7] 본명은 리차드 윌리엄 마쿼드(Richard William Marquard). Rube(시골뜨기)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통산 201승을 기록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좌완투수[8]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뉴욕 양키스에서 뛰었던 3루수로 홈런왕의 시초격 되는 인물이다. 홈런 베이커라는 닉네임이 더 유명할 정도.[9] bWAR로 보면 전년도 7.1에서 0.4까지 수직하락했다.[10] 루스, 콥, 뮤지얼 등이 나눠먹고 있는 타자쪽 HOF 스탯들과는 달리 투수의 각종 HOF 스탯은 월터 존슨이 독주하고 있고, 사이 영이 엄청나게 길고 튼튼한 커리어를 바탕으로 그레이잉크는 1위를 기록중인데, HOF 스탠다드만큼은 매튜슨이 1위다. [11]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신시내티의 외야수로, 2376안타를 기록하였고 역사상 가장 무거운 배트의 사용자이기도 하다. 블랙삭스 스캔들의 상대 팀 외야수이기도 했다.[12] 그의 별명인 Big Six가 그의 큰 키에서 나왔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참고로 베이브 루스가 같은 키인 6피트 2인치이다. 당시로서는 굉장한 체격.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당시 투수나 타자나 170cm대 선수가 많았고, 160cm대의 작은 체구로 레전드가 된 선수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윌리 킬러나 퍼드 갤빈 같은 왜소한 체격의 레전드들. 현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 단, 그 시절에도 작은 선수보다는 180cm대의 큰 선수들이 투타 모두 레전드의 주류였다. 사이 영이야 엄청난 체구로 유명하고, 피트 알렉산더타이 콥도 185cm였으며, 트리스 스피커, 냅 라조이 등도 다 180cm대였다. 최초의 5인 중 최단신인 호너스 와그너도 5피트 11인치, 즉 180cm였다.[13] 1916년, 9월 1일. 신시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