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음악 인생/데뷔 과정과 1집 Christina Agui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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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유년 시절과 MMC, 데뷔 과정
3. 1집 'Christina Aguilera', 팝의 요정(Genie)이 되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음악 인생


성장 과정, MMC, 초기 활동
(1980~2001)


이미지 변신과 2집 활동
(2002~2004)



1. 개요[편집]


미국의 팝 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음악 인생 중 데뷔 과정과 1집 활동을 정리하는 문서.


2. 유년 시절과 MMC, 데뷔 과정[편집]


1980년 12월 18일 뉴욕 스태튼아일랜드에서 태어난 크리스티나 마리아 아길레라남미 에콰도르의 출신의 아버지 파스토 아길레라, 독일, 아일랜드계 혼혈이었던 어머니 셸리 컨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크리스티나는 남미 에콰도르와 독일,아일랜드 혼혈이다. 크리스티나는 갓난아기 때부터 음악에 민감하게 반응했었는데, 집에서 TV를 볼 때도 콘서트를 보다가 채널을 돌리려고 하면 크게 울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보였던 그녀가 태어난 뒤, 파스토는 셸리에게 군대에 입대한다고 상의 한마디 없이 계약 서명까지 끝냈고 결국 아길레라 가족은 하루아침에 군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셸리는 이때 대학을 포기하고 오직 파스토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기 시작한다. 아길레라 가족은 텍사스주 산안토니오에 있는 기지에서 지내다가 얼마 뒤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 생활했다.

그러나 파스토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아길레라 가족은 그의 일방적인 폭력으로 멍들어가고 있었다. 셸리에게 틈만 나면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던 파스토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크리스티나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줬고 매일 밤 부부 싸움이 일어나면 크리스티나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노래를 부르며 아픔을 이겨냈다. 몇 년 뒤 둘째 딸 레이첼을 출산한 셸리는 파스토의 명령으로 미국 뉴저지로 돌아왔고 이 시기 파스토는 크리스티나한테까지도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으며 측근에 따르면 아길레라 가족이 가장 힘들었을 시기라고 밝혔을 정도로 암흑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하루는 크리스티나가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로 계단에서 밀어버려 얼굴이 피범벅 된 적도 있었다고 하니 그의 폭력 수위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매일 밤 셸리에게 "오늘 밤이라도 할머니 집으로 가면 안돼요? 엄마 제발 부탁이에요"라고 간절히 애원했고 결국 셸리는 두 딸을 위해 파스토와 이혼하고 펜실베이니아 로체스터에 있는 친정 엄마 집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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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크리스티나의 모습.

이들이 찾은 새로운 보금자리는 5000명 남짓 사는 아주 작은 동네였다. 크리스티나는 항상 집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사운드트랙 테입을 집에 크게 틀어놓았고 극중에서 쥴리 앤드류스가 들판을 돌면서 노래하는 부분을 따라하면서 온 집안을 뛰어다닐만큼 음악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크리스티나는 매일같이 인형을 관중으로 샴푸 병을 마이크로 삼아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러나 셸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바빠 크리스티나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는 걸 모르고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셸리의 엄마가 크리스티나의 재능을 눈치채게 해줬고 때마침 유치원에서 열린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셸리에게 부탁한다. 망설임 없이 셸리는 공연을 허락했으며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크리스티나는 그동안 갈고 닦은 노래실력을 사람들 앞에서 뽐내게 된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파워풀한 가창력을 지켜본 관중들은 당연히 립싱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안가 립싱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노래가 끝나자마자 모두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다고 한다. 5분 동안 기립박수가 계속 됐다고 하니 당시 공연이 상당히 대단했던 게 아닐까.

장기자랑이 끝난 후 무대의 기쁨을 알게된 크리스티나는 새로운 무대를 찾아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고 셸리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못이겨 비욘세등도 거쳐간 유명 TV쇼 '스타 서치(Star Search)'에 장기자랑 영상을 비디오로 녹화해 보낸다. 셸리는 당연히 무시당할거라고 생각했지만 보낸지 일주일도 안돼서 연락이 왔고 셸리는 크리스티나를 데리고 스타 서치에 참가한다. 크리스티나의 첫 TV 데뷔 무대가 된 셈. 당시 그녀나이 8살이었다.


1990년 3월 15일 Star Search
그녀의 영원한 우상 에타 제임스의 곡 "Sunday Kind of Love"

크리스티나가 참가하기 전까지 스타 서치의 챔피언이었던 크리스토퍼 이슨은 당시를 회상하기를 크리스티나와 맞붙게 된 날 가족들이 먼저 리허설을 보고 "이제 우리는 짐을 싸야될거 같다"고 말했으며 정말 초조했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의 크리스티나는 8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기교와 노래 실력으로 관중을 휘어잡았고 지금봐도 꽤나 놀라운 무대였다.

이들의 승패가 갈라지는 첫 판정단 결과에서는 같은 점수가 나와 동점이었으나 최종 점수까지 합산한 최종평가에서 결국 프로그램은 크리스토퍼의 손을 들어줬다. 크리스티나는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도 해맑게 웃으며 퇴장했지만 무대에서 내려온 뒤 정말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때 셸리는 울고있는 크리스티나에게 진정하고 크리스토퍼를 축하해달라고 했고 "너의 노래 실력은 신이 주신 은총이니까 신이 도로 가져가실 수도 있다"며 그녀의 정서적인 성장을 도왔다.

스타 서치에 참가한 이후 그 작은 동네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킬 정도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크리스티나는 주변 반응에 힘입어 작은 TV쇼에 출연해 노래를 불렀다. 반응은 역시나 대단했고 9살이 된 해에는 피츠버그에서 탤런트 쇼를 진행하던 쥬드 폴의 눈에 띄어 스타 서치와 비슷한 형식의 토너먼트 오디션 프로에 출연하게 된다.[1] 크리스티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도전자들을 넉 다운 시켰고 일부 도전자들은 크리스티나와 맞붙는거 자체를 두려워 해 자진 포기한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몇번은 상대 없이 이긴적도 있다고. 당시 크리스티나와 붙었던 한 참가자는 그때도 크리스티나는 굉장한 자신감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으며 다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 당하고 싶지 않다며 안타까운 소감을 밝혔다(...) 크리스티나는 이 쇼에서 6번 출연해 6번 모두 이기는 그야말로 압승을 차지했다.

이후 피츠버그에서 전설로 불리는 아역 캐스팅의 대가 월트 매덕스의 눈에 들어와 피츠버그의 소극장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점점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자 주변 사람들은 점점 질투하기 시작한다. 또래 아이들은 자기들의 입지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는지 못되게 굴기 시작했고 심지어 학부모들까지 개입해서 그녀의 앞길을 막으려 했다. 크리스티나가 공연할때 앰프의 플러그를 빼버린다든지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한 아이들도 있었다고한다. 그래서 결국 크리스티나는 장기자랑 대회에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됐고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의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도 못한 상태에서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된다. 그때 셸리는 고작 어린 소녀였던 크리스티나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자초지종을 설명할수도 없는 처지였고, 정말 심적으로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

"크리스티나 잘은 모르겠지만, 더 큰 일을 위한 준비 과정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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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셸리 컨스가 어린 시절 크리스티나에게.[2]


크리스티나는 이런 주변의 시기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다. 9살이 되던 해 어느날 크리스티나의 할머니는 신문 기사를 셸리에게 보여줬다. 그 내용은 디즈니채널에서 새롭게 재편된 MMC에 출연할 아역 탤런트들을 뽑는다는 모집 공모였으며 MMC는 디즈니 간판 프로그램이자 10대 탤런트들이 출연하는 당대 최고의 인기 쇼였다. 당연히 크리스티나는 오디션을 보고싶다고 했고 약 400명이 자리한 지역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다. 오디션 현장에서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50여개의 노래 테입들을 보여주며 여기서 무엇을 원하냐고 당당하게 말했고 멋드러지게 불러냈다. 당시 오디션에 함께 참가했던 제시카 심슨이 회상하기를, "내 인생을 통틀어 최대 치명적 실수는 내 바로 앞 번호였던 클쓰의 MMC 오디션을 CCTV로 봐 버린거에요. 그녀는 머라이어 캐리처럼 정말 잘 부르더군요"라고 했다.[3]

심사위원은 그녀의 노래를 듣고 감정, 테크닉, 음정 어느곳에서도 흠잡을 게 없다고 평가했지만 크리스티나는 당시 나이 10살로 MMC의 나이 기준에 맞지 않아서 결국 출연하지 못한다. 당시 감독은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크리스티나는 많이 실망했다고 한다. 한편 이 시기 셸리는 응급 의료 보조원 제임스 컨스(James Kearns)를 만나기 시작했고 제임스는 파스토와는 달리 믿음직스럽고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이들은 크리스티나가 14살이 되던 해 재혼하게 되고, 이복형제 케이시 컨스(Casey Kearns)[4]와 이복자매 스테파니 컨스(Stefani Kearns)[5] 그리고 제임스와 셸리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마이클 컨스(Michael Kearns)[6]와 같이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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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의 새로운 가족사진.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피고 있었다.

이후 크리스티나는 동네에서 가장 큰 행사였던 대퍼댄 디너에 참여하게 되는데 대퍼댄 디너는 1000여명에 가까운 스포츠 관련 인사들이 참가하는 자리였고 여기서 크리스티나는 그들 앞에 서서 당당히 노래를 불렀다. 당시 프로 야구팀인 피츠버그 파이러트에서 미국 국가를 불러줄 사람을 찾고 있던 관계자는 크리스티나의 모습을 보고 국가를 불러줄 만한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해 단번에 그녀를 픽업했다. 크리스티나는 16000석의 대형 경기장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 반주도 없이 국가를 불러냈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그때 크리스티나는 겨우 11살의 어린 나이였다.

크리스티나가 점점 TV에 나오기 시작하자 그녀의 모습을 본 케이블 TV쇼 진행자 그레그 히멜스타인은 자신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크리스티나를 섭외했고 이 방송에서 인터뷰도 하고 무대에서 'Black Velvet'을 멋드러지게 불렀다. 방송 이후 방송국에 이 소녀가 누구냐는 편지가 100통이나 넘게 왔다고 하니 작은 케이블 방송에서도 그녀의 가창력은 진가를 발휘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가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같은 반 친구들은 다시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그녀뿐만 아니라 여동생 레이첼, 그리고 어머니 셸리까지 괴롭히기 시작했다. 크리스티나는 신문에서 자기의 이름이 나오면 또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올까봐 무서워했고 당시 괴롭힘을 주도하던 한 여학생은 완전히 미친거 같았다고 어머니 셸리는 얘기했다. 이들은 크리스티나 가족의 차 타이어를 펑크내기도 했으며 단순한 질투나 괴롭힘이 아니라 점점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위에 이르렀다.

셸리는 결국 이사를 결정했고 동네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웩스퍼드(Wexford)로 집을 옮겨야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다. 노래에 대해서는 셸리도 간섭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니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히 굳건했다. 그러던 중 탈락의 고비를 마셨던 미키 마우스 클럽의 관계자가 다시 연락을 해와서 새로운 시즌의 오디션을 보러 올 것을 제안했고 결국 당당히 합격하여 여기서 훗날 자신의 최대 라이벌이 되게 되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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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마우스 클럽 시절의 크리스티나.


Mickey Mouse Club Season 6
크리스티나의 영원한 아이돌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 I Have Nothing

크리스티나는 12살때부터 본격적인 MMC에 합류하게 됐는데, 당시 동기로는 저스틴 팀버레이크, 라이언 고슬링등이 있었다. 밀레니엄 시절 스타들의 등용문인 셈. 그리고 앞서 말한 그 한 소녀는 바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였다. 비슷한 나이 또래에 쇼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둘은 단짝 친구로 항상 붙어다녔고 각자의 집에 놀러가 화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우정을 쌓기도 했다. MMC에서 그녀는 항상 행복했으나 학교에서도 따돌림이 심해지고 있었다. 크리스티나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같은 나이 또래지만 모두의 주목을 받는 스타의 길을 걷고 있는것이 불쾌했던 이들은 체육 수업을 하던 어느 날 미리 계획을 짜고 크리스티나만 집중적으로 공으로 맞추는 악행을 저지르는 행동을 했고 결국 학교도 여러 차례 전학을 거치면서 MMC 촬영 등으로 인해 수업에도 참여하지 못해 그녀는 학교 생활에 아예 미련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MMC로 활동하던 1994년, 디즈니는 일방적으로 MMC 후속 시즌 취소를 통보하면서 출연자들이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브리트니와 크리스티나가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진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을 정도였는데 한순간에 낙동강 오리알이 된 출연자들은 모두 멘붕이었다. 결국 출연자들의 반발에도 MMC는 매정하게 종영됐고 이후 크리스티나는 학교를 포기하고 홈 스쿨링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가수 데뷔 준비에 돌입한다.

얼마 뒤 뉴욕에 있던 매니저 스티브 커츠(Steve Kurtz)가 그녀에게 접촉을 해왔고 서로의 입장이 잘 맞았는지 그가 크리스티나의 첫 매니저가 된다. 스티브가 처음으로 내민 스케쥴은 일본의 음악 감독이자 가수였던 케이조 나가니시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이었는데 유년 시절 일본에서 자라기도 한 크리스티나는 다시 일본으로 날아가 그와 함께 'All I Wanna Do'를 녹음했다. 일회성이지만 몇번 무대에 같이 서기도 했다. 1997년에는 미국을 대표해 루마니아로 날아가 유럽에서 가장 큰 음악 축제 'Golden Stag Festival'에 참가했고 셰릴 크로우와 다이애나 로스의 노래를 선보여 신인치고는 꽤나 좋은 무대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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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전, 녹음중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이후 레이블사에 보낼 데모 테입를 만들기 시작한 크리스티나는 프로듀서 롭 호프만과 작곡가 헤더 할리와 연결이 됐고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 통화하던 와중에 수화기 넘어로 들리던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고 크리스티나가 이 노래가 뭐냐며 그들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그 노래는 헤더가 금방 작곡을 마친 곡이자 그녀의 초창기 음악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는 1집 수록곡 'Obvious'였다.[7] 크리스티나는 헤더에게 이건 자기 노래니까 다른 사람에게 절대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데모를 녹음하기 위해 혼자서 L.A에 날아왔다. 그리고 녹음실 부스에 들어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큰 성량때문에 녹음실이 떠나가라 노래를 불러댔고 거기에 있던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노래를 멋지게 부르고 나서도 다시 부르겠다며 고집을 부렸고 스탭들의 생각으론 도저히 그것보다 잘 부를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녹음에 돌입한 크리스티나는 정말 이전보다 더 잘불러내어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게 데모 테입 작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MMC에 함께 출연한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자이브 레코드와 계약한 소식을 듣게된다. 이 소식을 듣고 크리스티나는 너무 기뻐했고 축하해줬지만 측근들에 따르면 친구의 데뷔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함께 출연한 동료들이 자신보다 먼저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 초조해보이기도 했다고 얘기했다.[8] 당시 16살이었던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앨범을 발매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후 완성된 데모 테입을 여러 레이블에 보내도 특별한 연락이 없어 실망스러워 하던중 데모 테입이 RCA 레코드의 사장 밥 제이미슨의 손에 들어갔고 그는 테입을 듣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그걸 다룰만한 인재였던 RCA의 론 페어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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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론 페어는 처음 몇 곡을 들었을때 크게 뛰어난 점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이후 'Obvious'를 들으면서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 이 노래에 삘이 꽂힌 론은 재빨리 크리스티나에게 만나자고 요청했고 첫 만남 자리에서 론은 인사하기도 전에 대뜸 노래를 불러보라고 요청했다. 이에 처음에 조금 당황했지만 크리스티나는 당당하게 아카펠라로 휘트니 휴스턴의 'I Believe in You and Me'를 열창했고 론 페어의 편에 따르면 크리스티나는 가히 악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감과 두려움을 모르는 태도로 일관했으며 결국 이 모습에 코가 꿰인 론은 이 아이를 빨리 RCA와 계약시켜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정식으로 발탁하기에 이른다.[9]

RCA와 계약한 이후 론 페어는 자신의 친한 친구였던 음악 감독 크리스 몬텐에게 연락을 받는다. 크리스는 디즈니에서 새롭게 제작하는 영화 뮬란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고 있었고 주제가인 Reflection을 부를 사람을 찾고 있었지만 적임자가 나오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Reflection'을 작곡한 매튜 와일더는 노래에 높은 미(High E Above Middle C) 음을 진성으로 부를 사람이 필요했는데 이에 적합한 인물이 없었던 것. 그 얘기를 듣자마자 론은 크리스티나를 떠올렸고 곧바로 전화해 그 음을 부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크리스티나는 천진난만하게 "엄마 나 그 음 부를 수 있어요?"라고 되물었고 그 음이 들어간 노래를 찾다가 자신의 롤모델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Run to You'로 결정해 집에 있던 아주 낡은 레코더를 가지고 화장실에서 녹음해서 보냈다.

작업진들은 테입을 듣고 빛이 보이는 듯 했지만 음질이 너무 나빠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크리스티나를 직접 만나보기로 한다. 그들은 비행기를 준비해서 크리스티나를 찾아왔고 그 자리에서 크리스티나는 'Reflection'을 부르기 시작했다. 몇 소절 안가서 완벽하다고 합의를 본 제작진은 그 자리에서 'Reflection'의 주인공을 크리스티나로 낙점했고 RCA와 계약을 치룬 주에 영화 주제가까지 따낸 크리스티나는 이후에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한 주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이 곡의 최대 미션인 '높은 미' 음정을 부르는데 문제가 생긴 크리스티나는 작곡가 매튜와 3~4일밤을 걸려서 그 음을 연습했지만 정말 부르기 어려워서 결국 보컬 코치까지 대동하며 연습에 임했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 음을 제대로 때리는 순간, 모두가 기뻐하고 안도했다. 현재 같으면 오토튠으로 음정을 살짝 보정하면 될 문제지만, 이때는 98년이었고 음정 보정 기술 같은 것은 거의 보급되기 전이었다. 정말로 노래를 잘 하는 사람만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믹스보이스 보컬 트레이닝이 활성화된 현재 기준으로도 높은 미(E5)는 상당한 고음이며 이당시에는 더욱 귀한 고음이었다.

이렇게 우여곡절끝에 녹음한 Reflection은 1998년 6월 정식으로 세상에 나오게된다. 다만 실제 판매된 버전에서는 한키 낮춘 내림나장조(Bb Major) 편곡이며 최고음 역시 한키 낮은 미b(Eb5)다. (최후반부 who I am inside에서 진성 Eb을 찍는다.) 그래도 대단히 높은음인 것은 맞다. Reflection 싱글은 RCA에서 크리스티나가 뭘 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위한 중요한 싱글이었고 크리스티나는 각종 언론에 나와 프로모션을 가지며 홍보에 나섰다. 그러나 Reflection은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주지는 못했고 아쉽게도 마이너한 히트에 그쳤다. 결국 RCA는 같은 해 9월 1집 앨범을 발매하려던 계획을 연기시킨 다음, 철저한 준비 하에 1집 앨범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후 Reflection은 영화 뮬란의 흥행에 더불어 1998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얻었고,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커버 되면서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크리스티나의 첫 싱글, 'Reflection'

자신의 첫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피츠버그에서 L.A로 날아온 크리스티나는 어린 나이에 혼자서 빡빡한 일정을 감당해야 했다. 앨범 녹음을 위해 매번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만 묵으며 녹음했다고 한다. 그녀는 여러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프로듀서들을 만났고 그 와중에도 녹음은 계속됐다. 지친 와중에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열정과 감성을 보였다고 작업진들은 회상했으며 그렇게까지 힘들게 녹음했으니 크리스티나도 자신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좋은 앨범을 만들고 싶어했다. 당시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가창력이 돋보이게끔 화려하게 부르고 싶어했고 작곡가들은 그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한 소절 한 소절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정말 전쟁같았다고.

그녀는 강한 여자예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하라는 대로 할 여자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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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H1 <Driven>中 RCA 대표 밥 제이미슨의 한마디.


앨범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될 즈음, 앨범에 수록될 마지막 한 곡을 놓고 고심하던 RCA는 작곡가 데이빗 프랭크가 보내온 데모 트랙 Genie In A Bottle을 듣게 된다. 당시 데이빗은 여러 기획사에 이 노래를 보냈었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그러나 론 페어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이건 크리스티나의 첫 싱글이다!"라며 확신했고 크리스티나에게 이 노래를 부를것을 제안했지만 그녀는 가창력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곡을 부르기 원했기 때문에 처음엔 조금 망설였다고 한다. 고민 끝에 본인과 어울리는지 판단하기 위해 한번 불러보기로 한 크리스티나는 스튜디오에 걸어 들어와서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완전히 자기 노래로 표를 찍어버렸다. 사실 'Genie In A Bottle'은 이전 싱글 'Reflection'의 전통 팝 발라드와는 다르게 R&B 창법을 요구하고 있었고 이전까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가는 조금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Too Much할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본인도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이 노래를 부르기로 결정한다.

RCA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프로젝트는 여러 사람의 밥줄이 달린 큰 프로젝트였다. 그만큼 많은 투자를 했고 크리스티나는 떠야만 했다. 첫 싱글 'Genie In A Bottle'의 발표를 결정하고 RCA는 Genie의 팝 적인 이미지를 커버하기 위해 한번은 피아노 한대만 놓고 그녀의 쇼케이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언론에서 크리스티나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첫 자리였는데 당시 자리에 있던 관계자들은 모두 굉장한것을 본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볼건 다 보고 들을 건 다 들어본 베테랑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감탄했을 정도. 그렇게 그녀는 99년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다.


1999년 4월, 데뷔전 언론 매체 관계자들을 불러모은 쇼케이스[10]
I Turn To You

3. 1집 'Christina Aguilera', 팝의 요정(Genie)이 되다[편집]


1999년 6월 22일 대망의 데뷔 싱글 'Genie In A Bottle'이 발매되었다. 'Genie'는 발매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를 단 듯이 1위를 향해 독주하기 시작하는데 당시 어느 라디오를 틀어도 'Genie In A Bottle'이 흘러 나왔고 빌보드 핫 100에서 첫 주 61위로 데뷔해 12위로 껑충 뛰더니 얼마 안 가 1위를 탈환했다. 이 모든 것은 데뷔 한 달 만에 이뤄진 놀라운 흥행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이 시기를 꿈만 같았고,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뮤직비디오, 노래, 가수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었던 Genie는 5주 동안 빌보드 1위를 차지해 99년에 발매된 싱글들 중 최장 기간 1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크리스티나는 제2의 브리트니로 대중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당시 브리트니와 크리스티나는 모두 버블검 팝, 일명 틴팝을 위주로 한 금발의 10대 팝스타였으며 같은 MMC 출신에 나이도 한살 차이였고 라이벌 구도가 생긴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언론부터 시작해서 팬들까지 '두 팝스타의 대결', '누가 이길것인가?'에 대한 얘기 뿐이었다. 이 둘의 성공을 당시 미국 언론에서 틴팝 센세이션으로 다루기도 했다.

'Genie In A Bottle'은 말그대로 대박을 쳤다. 7월에 나온 노래가 연간 차트 7위에 올랐고, 90년대 디케이트 차트에서는 43위에 올랐다.


크리스티나를 슈퍼스타로 발돋움하게 한 대망의 데뷔 싱글
'Genie In A Bottle' (199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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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 Aguilera
1999년 8월 24일 발매
전세계 1,300만장 판매

그리고 얼마 뒤 99년 8월 대망의 1집 앨범 ''Christina Aguilera''가 발매 된다. 이 앨범이 나왔을땐 그냥 또 하나의 음반이었다. 그러나 대중들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발매 첫주 메이저 래퍼였던 퍼프 대디를 꺾고 초동 253,000장으로 1위데뷔했으며 발매 직후 전세계에서 수백만장이 팔리기 시작했다. 'Genie In A Bottle'에 이은 데뷔 앨범의 성공으로 두번째 싱글을 발표할 시기가 다가오자 원래 내정됐던 R&B 넘버 'So Emotional'의 싱글 컷을 취소하고 소프트한 분위기의 앨범 수록곡이었던 'What A Girl Wants'를 틴팝스럽게 리믹스해서 발매한다.

RCA가 WAGA를 밀었다는 얘기도 있고 크리스티나가 직접 제안했다는 얘기도 있다. 확실한 건 GIAB의 성공으로 비슷한 장르로 편곡해 내놓은건 맞다. 애시당초 본인이 생각했던것처럼 가창력을 뽐낼 수 있는 'I Turn To You'나 'Obvious' 같은 곡들을 싱글로 밀고 싶었지만 대중들은 이미 금발을 휘날리며 버블검 팝송를 부르는 크리스티나에 열광하고 있었다.

'What A Girl Wants'는 'Genie In A Bottle'의 인기를 이어 받아 가뿐하게 빌보드 HOT 100 1위를 차지했고 원히트 원더로 끝날 거라는 세간의 의심을 뒤엎고 너무나도 순조로운 행보를 걷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자이브 레코드의 싱글 발매 억제 전략으로 HOT 100에서 인기에 비해 고전했던것과 달리 크리스티나는 싱글 CD 판매량이 좋아서 손쉽게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당시 브리트니는 1집에서 단 한 곡의 넘버원을 배출하는데 그쳤으나, 앨범 판매고는 크리스티나의 두 배 가량이었다(...) 여담으로 'What A Girl Wants'는 2000년의 첫 오리지널 넘버원 곡이기도 하다.[11]'What A Girl Wants'에서 크리스티나는 더욱 러블리한 이미지를 어필했고 미국 사람들의 사랑을 독자치 받는 팝의 요정으로 떠올랐다.

'What A Girl Wants'가 한참 인기를 얻고 있을때였던 2000년 그래미 어워즈는 일생에 한번밖에 못받는다는 최우수 신인상 부문과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부문 후보 명단에 크리스티나의 이름을 올렸다. 이것은 데뷔 6개월만에 오른 쾌거였는데 심사 기간 동안 제출된 싱글은 'Genie In A Bottle' 단 한장으로 'Genie' 한 곡만으로 그래미 후보로 지명된것이다. 그러나 당시 최우수 신인상 부분에는 자신의 최대 라이벌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메이시 그레이, 키드 록등 쟁쟁한 후보가 몰려 있어 당연히 수상하지 못할것으로 생각하고 후보에 오른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2월 어느 추운날, 그래미 시상식이 다가왔다. 그날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첫 그래미 시상식에 몸 상태가 안좋았던 어머니도 동행하지 못한채 시상식 장에 들어섰다.


2000년 제 42회 그래미 시상식 「최우수 신인상」
Christina Aguilera.

..Mommy!!!

- 크리스티나가 신인상 수상 직후 걸어나오면서 참석하지 못한 어머니 셸리를 외쳤다. (영상 28초)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래미는 최우수 신인상에 크리스티나의 이름을 호명했다. 충격을 받은듯한 크리스티나는 "전 수상소감도 준비하지 못했는데요"라며 놀라워 했고 데뷔 6개월 만에 최고의 신인 자리에 올랐다. 당시 그래미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은 노래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기 마련이다라는 언급을 했다고 알려진다. 아길레라의 보컬 실력을 높게 사서 그에게 신인상을 안긴 것. 당시 틴팝 장르를 거의 배척하다싶이 다루던 그래미가 틴 팝 아이돌에게 제너럴 부분을 넘겨준건 꽤 신선한 사건이었다. 크리스티나의 탄탄한 가창력을 기반으로 이후 행보에서 예상되는 디바 기믹을 예측해서 상을 줬다는 인상인데, 0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래미의 변화를 알리는 대목이라고 분석되기도 했다.

그래미 상을 받은 이후 아시아 프로모션을 진행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팝스타들이 중국일본은 들러도 한국은 빼놓고 가는 일이 번번했지만 크리스티나는 한국을 찾아 국내 팬들에게 인사를 전한다. 크리스티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공개 방송 참여 및 각종 인터뷰와 싸인회를 갖고 SBS 인기가요에 출연해 TV 프로모션을 갖기도 했다. 그녀가 인기가요에 출연한것에 대해 시간이 흐른 뒤 한국 방송 불가사의라고 다시 끌올되기도 했다. 사전녹화로 진행된 당시 방송에서는 플라이 투 더 스카이등의 국내 가수들이 대신 관객석을 채웠고 립싱크가 비일비재하던 시절에 당당히 올 라이브를 선보이면서 '좋지않은 음향 탓'을 하며 립싱크를 하던 국내 가수들을 한방에 아닥시켰다. 여담으로 배철수는 라이브 현장에서 쩌렁 쩌렁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반했다고 하면서 이후에도 크리스티나에 대해 이런저런 좋은 평가를 늘어놓기로 유명하다.


한국 프로모션 당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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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Sweet Heart' 시절의 크리스티나.

'Genie In A Bottle'과 'What A Girl Wants'의 흥행, 그래미 신인상 수상까지 많은 사랑을 받던 크리스티나는 1집의 세번째 싱글로 본래 자신의 뜻이 담긴 가창력 위주의 발라드 'I Turn To You'를 발매한다. 사실 발매 시기가 여름이라 조금 무리가 아니었을지 싶었지만 빌보드 HOT100 3위까지 올라 좋은 성과를 올렸고 당시 CD 발매까지 맞췄으면 1위를 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연속 1위 기록이 깨져서 일부에서는 아쉬워 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I Turn To You'는 크리스티나가 노래도 할 수 있다는것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던 싱글이고 이후 레이디 가가등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실력을 쌓았다고 알려졌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브리트니와 아길레라를 포지셔닝해 등장한 국내 10대 여가수들의 기본 코스기도 했다. 보아, 다나, 죠앤등이 그 주인공인데 이 곡을 부른 장면이 하나씩은 다 남아있다.[12]

이후 9월에는 네번째 싱글 'Come On Over Baby (All I Want Is You)'를 싱글컷하는데 'What A Girl Wants'때와 마찬가지로 앨범에서는 소프트한 편곡으로 되있던 노래를 힙합을 가미해 원곡보다 더 틴팝스럽게 편곡해서 발매했다. 그리고 이 곡이 마돈나의 'Music'을 제치고 4주동안 빌보드 HOT 100 1위에 오르면서 데뷔 앨범에서 무려 세 곡이나 넘버원으로 올려놓는 기록을 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 10대 여자가수 중에서는 압도적인 빌보드 성적이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알겠지만 투톤 헤어의 원조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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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틴팝 요정 시절의 크리스티나

여담으로 1집 앨범 당시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주요 팬층이던 10대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항의를 받은것으로 꽤 유명한데, 첫번째가 10대 여가수가 부르는거치고 가사가 선정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Genie In A Bottle'도 자신을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램프 속 지니에 비유 해 잘 비벼(?)달라느니(Rub me the right way), 몸은 오케이(My body is saying let's go), 마음은 노(But my heart saying no)라고 하고 있어 순수하다고 치부하기에는 어느정도 수위가 있던 노래였고[13] 'Come On Over'에서는 2절 가사를 아예 대놓고 섹슈얼하게 개사해 발표하면서 디즈니 라디오 같은 10대 청취자가 듣는 채널쪽에서는 원래 앨범 버전 가사로 편집해서 틀었다고 알려진다. 또 크리스티나가 당시 너무 말라서 빼빼 마른 슈퍼스타는 청소년들한테 악영향을 끼친다고 지적받기도 했다.

크리스티나는 1집 활동이 중반기에 접어갈 즈음부터 마이애미에서 프로듀서 루디 페레즈와 함께 첫 스페인어 음반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녹음을 마친 크리스티나는 2000년 9월 12일 첫 스페인어 음반 ''Mi Reflejo''를 발매했고, 이 음반을 통해 자신이 라틴 혈통이라는것을 강조한다. 이 음반에는 영어 노래에서 스페인어로 바꾼 노래들과 새로운 스페인어 노래도 수록됐는데 당시 일부에서는 라틴 음악 붐에 참여해 돈을 벌려한다는 크리스티나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프로듀서였던 페레즈에 따르면 크리스티나는 녹음 당시 스페인어를 어느정도는 유창하게 말했다고 전했다. 또 크리스티나의 아버지는 에콰도르계 사람이였기 때문에 더 쉽게 스페인어를 이해했다고 했다. 앨범이 발매되자 빌보드 라틴 앨범 차트에서는 19주 동안 1위에 머물렀고 이 앨범으로 2001년 열린 라틴 그래미 상과 빌보드 라틴 뮤직 어워드에서 최우수 여자 팝 보컬 앨범을 수상했다. 이 외에 월드 뮤직 어워드에서 베스트 셀링 라틴 여자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라틴 앨범 'Mi Reflejo' 수록곡
Pero Me Acuerdo De Ti[14][15]

같은해 10월 24일에는 크리스마스 앨범 ''My Kind Of Christmas''를 발매했으며 크리스마스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최고 28위까지 올라갔고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라틴 앨범이 나온지 겨우 한달째 발매한 앨범이지만 정식 스튜디오 앨범으로 치진 않고 B-Side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끔 이 두 앨범도 정규 앨범으로 칠때가 있다. 그리고 1집 앨범은 최종적으로 미국에서만 900만장, 전세계 1,3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둔다. 또 1집은 국내에서만 공식적으로 29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16]


2000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 Female Artist of The Year <Christina Aguilera>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시상으로 여겨졌던 빌보드 뮤직 어워즈는 2000년 최고의 여성 아티스트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지목했고, 쟁쟁했던 그 해 여성 아티스트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빌보드 성적을 인정받았다. 데뷔 앨범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앨범 차트를 석권하고 그래미에서 인정을 받은 가수는 미국 가요계 역사상 통틀어도 흔치 않은 성과였으며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함께 크리스티나는 한동안 명맥이 끊겨있던 여가수 계보를 이어나갈 최고의 신인으로 떠오르기에 충분했다.

브리트니와의 라이벌 관계는 두 가수 모두 틴팝을 기반으로 마케팅 되던 가수였기 때문에 1집 시절부터 시작됐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브리트니가 펩시 CF 계약을 맺을때, 크리스티나는 코카 콜라 CF 계약을 맺으면서 둘의 라이벌 관계는 언론에서도 화제였으며 90년대 초중반 휘트니 휴스턴머라이어 캐리 이후에 가장 대중적으로 인식된 라이벌 관계이기도 하다. 2002년 틴 팝 아이콘들을 디스하며 스타덤에 올라선 에이브릴 라빈의 주요 먹잇감이기도 했다. 이 둘은 MMC 이후에는 각자의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 큰 교류는 없었으나 이따금씩 VMA에 초대돼서 같이 시상을 하거나 무대를 함께 서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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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틴 팝 시장을 양분했던 두 여가수

크리스티나는 항상 인터뷰에서 브리트니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럴때마다 브리트니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지만 타블로이드에서는 둘의 불화설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머라이어와 휘트니가 실제로 사이가 나쁘지 않았듯이 둘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이 둘은 한참 언론에서 비교되던 시기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태를 진정시킨 적도 있다고. 이후 행보를 보면 알겠지만 서로 각자의 노선을 확실히 걸어갔기에 비교가 무의미 하지만, 80-90년대 휘트니 휴스턴 - 머라이어 캐리를 잇는 최고의 팝 센세이션임은 확실했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음악 인생


성장 과정, MMC, 초기 활동
(1980~2001)


이미지 변신과 2집 활동
(200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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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기획 담당자가 크리스티나의 무대 테이프를 보고 셸리에게 립싱크는 받지 않는다고 했으나 셸리는 크리스티나를 데리고 와 직접 무대를 보여줬다는 후문이 있다.[2] VH1 Driven 중 그녀의 인터뷰를 발췌.[3] 이후 아쉽게도 제시카는 낙방했다.[4] 1984년 3월 5일생[5] 1986년 12월 13일생[6] 1996년 4월 30일생[7] 한가지 재밌는 점은 크리스티나는 이 노래를 한번도 라이브한적이 없다.[8] 다만 후에 제시카 심슨의 아버지가 밝힌 바로는, 이미 이 시기부터 아길레라와 브리트니는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던 대형 가수 지망생으로, 관계자들은 이때부터 이미 이들이 팝 시장을 이끌어갈 차세대 디바가 될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고 말했다.[9] 당시 RCA는 소속 가수였던 엔싱크가 자이브 레코드로 레이블을 옮긴 상황이라 이들을 대체할 가수를 찾고 있었는데 이때 크리스티나가 등장하면서 RCA는 크리스티나에 포커스를 맞춰 전폭적인 지원을 할 수 있었다.[10] MTV와 VH1 관계자들이 자리했다.[11] 엄밀히 말하자면 두 번째이지만, 바로 전에 넘버원을 차지한 곡 "Smooth"는 99년 10월 후반기부터 1위를 차지하고 있어 오리지널 첫 넘버원은 'What A Girl Wants'라고 한다.[12] BoA는 데뷔 초반 한밤의 TV 연예에 나온 보도 자료에 녹음실에서 부르는 영상이, 다나는 데뷔 초 천리안 인터뷰에서 이 노래를 불렀고, 죠앤은 공백기 시절 녹음실에서 부른 영상이 가창력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13] 그래서 인지, 이후 디즈니에서 저 곡을 리메이크 했을때는 해당 가사를 개사해서 공개했다.[14] 하지만 네가 기억나. 영어로는 "But I Remember You"[15] 이 뮤직비디오는 한국의 10대 가수였던 죠앤이 '순수'라는 곡에서 완벽히 베껴갔고 크리스티나의 것을 참고한게 맞다며 소속사가 시인한적도 있었다.[16] 스탠다드 버전 (99+01년) = 194,101장, 리패키지 에디션 (00+01년) = 98,938장, 도합 = 293,03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