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블랜드 클리닉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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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클리블랜드 클리닉
3. 상세
4. 결과



1. 개요[편집]


파일:클리블랜드 클리닉 화재.jpg

1929년 5월 15일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의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발생한 화재.


2. 클리블랜드 클리닉[편집]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비영리 병원으로,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의대 교수들이었던 프랭크 위드와 플랭크 번츠, 조지 크라일이1886년 클리블랜드 시내의 한 건물에서 환자를 돌본것이 시작이었다. 1891년 위드가 사망한뒤 동로 윌리엄 로우어가 자리를 잇고, 건물을 옮겨다니다가 1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야전병원서 근무하면서 팀 어프로치, 월급제, 상호보롼적 기술 3개를 창설 기본 개념으로 삼아 개원하기로 결정, 1921년 2월 28일 개원했다. 환자 입원 및 치료 외에 의학 연구, 교육 목적으로 설립됐다.

1층엔 접수실, 2층에선 진료와 검사가 이뤄졌다. 계단 2개와 엘레베이터, 철제 자동문과 나무 인테리어로 내부가 장식됐다. 만들어진 이후 병원은 의도대로 성공적으로 돌아갔고, 건물 하나로 시작한 병원은 새로운 병동을 지어가며 점차 확장됐다.


3. 상세[편집]


1929년 5월 15일, 약 오전 9시경, 지하 방사선과 창고에 노출된 전구 하나가 엑스레이 사진과 너무 가까이 붙어있었고, 열에 의해 사진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필름을 만들 땐 니트로셀룰로오스가 사용됐는데, 엄청 불이 잘 붙는 가연성 물질이었다. 고압 증기 파이프에서 노란 연기가 세어나오자 11시 경 수리를 하러 나섰지만 이미 창고는 연기로 가득 찬 상황이었다. 니트로셀룰로오스가 타면서 일산화탄소산화질소, 염화메틸등의 유독가스를 내뿜었다. 11시 30분경, 폭발이 두차례 일어났고, 유독가스는 아래에서 위로 점점 올라갔다. 이와 동시에 불길이 점점 커져 폭발까지 일어났고, 폭발로 벽면과 환기구가 파손되면서 가스는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들은 제대로 대피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건물이 파손되면서 세어나간 유독가스에 근처 행인들 마저 쓰러졌다. 급하게 달려운 소방대가 물을 뿌렸지만, 니트로셀룰로오스 화재엔 물을 뿌리면 오히려 더 큰 유독가스가 나오기에 피해는 더 커졌다.

사태는 계속해서 악화됐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이라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썼다. 당시 30세였던 경찰관 Ernest Staab은 화재 현장에 들어갔다 나오고를 반복하며 21명을 구출하고 결국 숨졌다. 그 외에 다른 시에서 온 소방대와 구조대들이 안에 갇힌 피해자들을 구조했다. 사다리차가 동원되어 사람들을 구출했고, 뛰어내리려는 사람들을 위해 안전매트가 병원 주변 곳곳에 깔렸다. 불은 오후 1시가 되돼야 진압됐다.


4. 결과[편집]


123명이 사망하고 92명이 부상당했다. 사인은 모두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였다. 사망자 중에는 원장 존 필립스도 있었다. 피해액은 약 5만 달러(2021년 기준 약 80만 달러)였다.

피해자들은 인근 자선가 Samuel Mather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1931년에 건물은 재건되어 재 오픈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센터는 증축과 확장을 거듭해 현재 클리블랜드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1931년 재건된 건물도 아직 활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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