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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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키보드 배틀에서 주로 저지르는 실수
4. 키보드 배틀이 발생하는 원인
4.1. 가치관 차이
4.2. 자존심 싸움
4.3. 용어 개념을 오해
4.4. 문장 이해력 부족
5. 문제점
5.1. 인생 낭비
5.2. 무의미한 언쟁
5.3. 적을 만듦
5.4. PTSD
6. 건전한 인터넷 토론을 위한 조언
6.1. 자기만의 규칙을 정하자
6.2. 논리적 오류에 착목
6.3. 양보하고 사과하자
6.4. 인터넷에 미련을 버리자


1. 개요[편집]


키보드 배틀이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사용자들 간의 논쟁을 의미한다. 키보드 배틀을 일으키고 참여하는 사용자를 키보드 워리어라고 부른다. SNS가 발달됨으로써 인터넷 사용자간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짐에 따라 등장한 개념이다.

유튜브 댓글다는 환경이 안좋아지면서 주로 오픈채팅디스코드에서 키배가 자주 일어난다. 옾챗의 경우 정지사유가 엄격하고 강력하지만, 디코는 신상유포가 아닌 이상 신고해도 아무런 재제가 없으며 외국회사라 아청법이 아닌 이상 고소도 불가능하기에 옾챗보다 디코가 채팅수위가 높다.

디시나 유튜브에선 키배가 발발하기 전에 상대가 자리를 뜨거나 시비를 걸어도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옾챗이나 디코같은 곳에선 상대를 무시하기도 애매하다. 디스코드에는 "키배전용방"이 따로 있을 정도로, 그냥 소통이 아닌, 키배를 벌이기 위해 디코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면 되겠다.

2. 역사[편집]


키보드 배틀은 2000년대에 들어 급격하게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형태는 다르지만 고대에도 키보드 배틀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말싸움이 존재했다. 사이가 나쁜 나라의 왕끼리 서신을 보내 도발했던 것이 그 예이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에도 할 일 없는 빈곤 노인, 노숙자들이 탑골공원, 굴다리에서 대낮부터 술에 쩔어서 정치 얘기로 쌈박질을 일삼았다.

이처럼 옛날에도 말싸움은 있었다. 하지만 문자로 기록하지 않는 이상 발화 즉시 사라지는 음성 언어의 특성과 발달하지 못한 통신 매체 때문에 흔적이 남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21세기, 인터넷과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말보다 문자를 통해 말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통신망이 깔린 곳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인터넷은 그 개방성을 더했다. 말싸움의 흔적을 제3자가 찾아보기 쉽게 된 것이다. 컴퓨터에 문자를 입력하기 위해 쓰는 입력 장치가 키보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로 이 말싸움을 키보드 배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키보드 배틀이란 SNS나 온라인 게임 등에서 각종 이유로 발생하는 말싸움이다. 원인은 정치적 의견 차이, 특정 상황에 대한 의견 차이, 단순 감정 싸움 등으로 다양하다.


3. 키보드 배틀에서 주로 저지르는 실수[편집]






4. 키보드 배틀이 발생하는 원인[편집]



4.1. 가치관 차이[편집]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살다 보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개방된 공간인 인터넷에서는 특히 만나기 쉽다.

이때 정상인이라면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하면서 넘어가지만, 오직 자신만이 옳고 타인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그저 의미없는 토론을 즐기는 사람들(...)은 격렬한 언쟁을 벌이게 된다.


4.2. 자존심 싸움[편집]


양자(兩者) 혹은 다수(多數) 간의 감정, 자존심 싸움 때문에 벌어진다. 그 목적은 주로 상대방에게 굴욕감을 안겨줌으로서 쾌감을 얻기 위함이다. 사실 어그로는 개인이 일방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도발하는 행위이므로 두 단어간 의미에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키보드 배틀은 상대방을 공격하거나[1], 약오르게 하려다가 발생한다. 다만 흔한 오해와는 달리 양 쪽 다 공격을 하려고 하기는 보다는 어느 한 쪽이 강렬한 적의를 갖는 경우가 많다. 선공을 당한 쪽은 자기 변호에만 임하더라도 혹은 도중에 빠져나가더라도 혼자 남은 악플러가 계속해서 모욕적인 댓글을 다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어떤 현명한 대처로도 키배를 피하기는 어렵다.

정리하자면, 토론 문화의 부재로 요약할 수 있다. 서로가 의견이 다른 것이나 심지어 호불호가 다른 것 조차 상대의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셈인데, 충분히 바쁜 사람들 조차 짬을 내서 키배에 골몰하는 경우가 충분히 많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한량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일축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의견이 다르면 지나가야지, 왜 반대되는 댓글을 다는가?' 와 같은 사고 방식은 단순히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방어 기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4.3. 용어 개념을 오해[편집]


하지만, 위에 나온 이유와는 무관하게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용어 개념 통일이 안 되어서 벌어지는 오해가 있다.

원래 하나의 단어에 여러 의미가 담긴 경우가 많은 데다가, 심지어 인문학 분야의 용어마저도 그 개념이 사람마다 다르게 알려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인 예가 개인주의. 본래는 나쁜 뜻이 아니며 이기주의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인데, 가짜사나이에서 개인주의라는 단어가 이런 오해를 더욱 증폭시켰다. 사실, 중고등학교 사회 시간 수업만 들어도 이 둘이 다른 개념임을 알 수 있음에도[2] 이런 간단한 것조차 사람들이 제각각 다르게 알고 있다 보니,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해 개인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많고 키배가 끊이지 않는 것.

특히, 인터넷 밈을 썼을 때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미 사전에 올라온 표준어도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의미로 쓰는 상황인데, 인터넷 밈은 애초에 사전에 없는 말이니 언중들 사이에서 통일된 개념이 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4.4. 문장 이해력 부족[편집]


심지어는 서로 같은 의견을 주장하면서 싸우기도 한다. 가령 'A와 B는 차이가 없다. 단, C라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을 때'라는 주장을 ㄱ이 펼쳤다고 해보자. 근데 ㄴ이 나는 C때문에 차이를 느꼈는데 왜 A와 B는 차이가 없다는 거냐, A와 B는 차이가 있다며 태클을 건다. ㄱ은 A와 B는 차이가 없다, ㄴ은 A와 B는 차이가 있다며 핵심 주장만 놓고 보면 의견이 달라보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한 쪽의 문장 이해력이 떨어져서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엔 다른 한 쪽은 상대를 이해시키려고 하다가 답답해서 감정적으로 나오게 되고 그게 키보드 배틀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5. 문제점[편집]



5.1. 인생 낭비[편집]


키보드 배틀에 집착하다 보면 나가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므로 손해를 보는 셈이다.

키보드 배틀을 뜰 시간에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도 있고,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친구와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하다 못해 낮잠을 잘 수도 있다. 이런 긍정적인 경험을 놔두고 굳이 싫어하는 사람이랑 머리 맞대고 소모적인 감정 싸움만 이어나가는 일이 키보드 배틀이다. 이는 에너지 낭비, 감정 낭비이고 정신과 육신의 건강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에 수명 단축에도 기여하는 셈이다. 차라리 함부로 의견 댓글들도 많이 달지 않는게 더 좋다.

간혹가다 특정 국가를 정말 싫어해서 그 나라 국민과 키배를 하려 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경우가 있다. 당연하지만 그 나라 언어로 키배한다고 해서 자국의 지위가 향상되거나 해당 국가의 지위가 하락하는 일은 없으므로 고작 이딴 일 가지고 키보드 배틀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니 하지 말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좋지만 그 목적이 고작 키배에 쓰기 위함이라면 상당한 낭비이다.[3][4]

참고로 평판조회를 엄격하게 하는 소수 직종의 경우, 키배 등으로 촉발된 명예훼손죄, 모욕죄, 통매음 등의 고소 등의 사건이 있으면 고소를 당한 것이 아니라 고소를 한 경우도 좋게 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직종의 경우 온라인에서 키배를 뜨는 행위 자체를 좋게 보지 않고, 설령 온라인에서 싸울 일이 있어도 참고 넘어가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5] 모욕죄로 고소를 한 사람도 '이 직종에서 일하려면 얼마나 행동을 조심히 해야 하는데 그런 모욕 하나 못 참아서 일을 크게 벌려?' 라는 식으로 좋게 보지 않기 때문.[6] 고소를 당한 것 뿐만 아니라 고소를 한 것도 조회하면 기록으로 나온다.

5.2. 무의미한 언쟁[편집]


"나는 인터넷에서 (비속어, 욕설을 동반한) 논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후로 내 가치관이 180° 변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키보드 배틀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좌파, 우파를 떠나서 일반적으로 사람은 학교 교사/교수, 직장 동료, 가족이나 친구의 의견 또는 신문 사설, TV 아니면 유튜브 방송같은 이름 있는 논객들을 참조하지,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지나가는 사람 말을 듣지는 않기 때문이다. 설령 유명한 논객의 의견을 듣는다고 해도, 자기 성향이랑 반대되는 논객이 가치관을 바꾸게 했다는 말도 사실은 드물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트집을 잡기 마련이다.[7]

키보드 배틀을 통해 상대를 설복시켜서 사상을 바꿀 가능성은 0%에 수렴하는데, 이를 알고서도 굳이 쓸모없는 언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 말하자면 이런 논쟁은 아무런 생산성이 없다.

5.3. 적을 만듦[편집]


키보드 배틀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많이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또한 현실에서나 온라인 공간에서나 적을 많이 만드는 것은 자신의 신상을 깎아먹는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사람인 이상 키보드 배틀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실수를 하는 때가 오며, 실수를 하지 않더라도 그 때는 지금까지 쌓아둔 적(敵)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서 물어뜯기고 사회적 매장을 당하게 된다. 사회적 매장이라는 것은 신상털이, 고소, 고발, 해고, 왕따 등을 의미한다.

심지어 현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심한 경우에는 살인 사건이 난 경우도 있으며, 정사갤러 피살사건이 대표적이다.


5.4. PTSD[편집]


키보드 배틀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탈자와 남은 자가 생긴다. 남은 자들은 생존자 증후군에 빠져 같이 살아남았다는 동질감으로 뭉치고, 역전의 용사들이 된 듯한 승리감에 고취되어 내면에 악영향이 일어나고, 상시 경계 및 감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지만 기력이 필요 이상 소모되어 판단력을 잃을 수 있다.[8]

이는 겉보기에만 경미한 PTSD와 비슷하다. 그러나 키보드 배틀에 참전한 자들은 전쟁에 참전한 것이 아닌데 설마 자신이 PTSD에 걸렸겠느냐고 생각하는데 이는 피드백의 의도적인 무시가 아닌 인터넷 사용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라 비난할 부분은 되지 않는다.[9] 이로 인해 극단주의 네티즌 중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구호를 쓰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잘 못하면 '무엇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가?'라는 구체적인 질문과 증명이 빠져 실존주의의 탈을 쓴 사이버 테러 사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 키보드 배틀은 질문과 역질문만 주고받기도 쉽고[10] 사실을 증명하여 설득하려는 움직임이 부족해지기도 쉽다. 증상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문(自問)을 구하지 못하여 타인을 매도하기만 하여 인터넷의 방치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뒷전인 상태이나, 오프라인의 인플루언서마저 온라인 속 PTSD에 노출된 상황에서 해결을 향한 전망은 밝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려스러운 것은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 막연한 근성론에 근거한 정신력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흔히 남한테 '유리멘탈이라서 자업자득으로 망한 것이다'라고 조롱하는 문화다. 적어도 이탈자는 인터넷의 PTSD에 고통 받지 않을지도 모르나, 남은 자들의 PTSD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제자리 걸음으로 멈춘 것을 넘어서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생활 침해와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인터넷에서 키보드 배틀에 휘말릴 때까지의 자세한 삶의 고통을 의료진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자는 오직 인플루언서뿐이라는 네티즌들의 집단사고가 형성되었다. PTSD의 치료는 의료인에게 자신의 증상을 가감없이 상담해야 가능한 것이지만, 오프라인의 고통과 온라인의 고통이 어떻게 연결되어 PTSD로 고통 받았는지 설명하는 것은 네티즌들에게 아직까지 무리로 여겨진다.[11] 네티즌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숨길 자유가 있다. 그러나 PTSD는 인터넷처럼 숨을 공간이 없는 장소에 머무는 동시에 오프라인의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않으면 치유되기 어려우므로 '사상을 받아들여도 자신이 극단적으로 악용하거나 변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근거가 있는지를 자신에게 되물어봐야 한다.

인터넷의 키보드 배틀로 인해 악화된 오프라인 혹은 인터넷의 마음속 상처를 돌아보는 의료체계가 구축될지 확실하지 않은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오프라인의 상담은 의료진에게 일시적으로 노출되는 것이기에 다음 진료일까지 휴식을 취할 시간이 있다. 그러나 온라인 문제가 개입된 상담은 의료진에게 인터넷의 키보드 배틀 문화의 악영향에 노출되어야 한다는 의무를 강요할 문제가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의료진의 의무다. 그러나 네티즌들한테 키보드 배틀의 폐해를 근절할 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에게만 모든 책임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의사의 의무가 뒷받침되려면 의사의 의식주를 보장해야 한다. 의사가 의료에 쏟을 기력을 소진해서 회복하지 못하면 의료 체계와 복지 체계의 손실이다.

트라우마에서 흔히 언급되는 것은 '자신이 버려진 존재인 것인가?'라는 한이 담긴 의문이다.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나 적어도 배틀 때문에 상처를 입어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은 버려졌다는 슬픔일 수도 있다. 키보드 배틀의 폐해를 근절할 의료체계가 구축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언쟁 도중 다른 사람을 추방시키는 광경을 보면 남은 자와 이탈자에게 공포심이 일어날 수 있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고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들 수도 있다. 강해질 권리는 있지만 약하게 살아갈 권리가 없다는 절망이 네티즌 사이에 집단사고로 정착될 수 있다. 키보드 배틀은 결국 인간의 분쟁이라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온다고 하여도 관계 속 주관이 개입된다. 자신의 주관을 유지한 사람만이 인터넷에 남는다면 키보드 배틀은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기 쉽다. 결국 언쟁에서 침착해진 자도 침착해지지 못한 자도 추방과 고독에 의한 공포에 신경이 쓰이는데 객관적으로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방법은 찾기 어렵다. 버려졌다는 슬픔을 말할 자유도 있고 권리도 주어지나, 책임과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네티즌들은 한 가지 결정을 내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수많은 선택을 거듭하여도 깊은 관계를 쌓기 어려워한다. 네티즌들에게는 예의범절이 있지만 마음을 닫을 자유가 있다. 결국 버려졌다는 슬픔을 말하여도 마음을 닫고 싶은 네티즌들이 많아 개개인의 고민은 인터넷에서 잘 해결되지 못한다. 스트레스가 일어나는 주제는 사람의 거부감을 사고, 이를 막기 위한 키보드 배틀도 스트레스가 되어 동일한 문제를 반복한다. 인터넷은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안정감이 없는 공간이 되었다.

6. 건전한 인터넷 토론을 위한 조언[편집]


인터넷에는 수많은 서로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런 공간에서 의견충돌은 반드시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 감정이 상해 치고받고 싸우는 경우도 많이 일어난다. 갈등이 생기면 감정이 상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향한 맹목적인 비난과 인신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은 잘못된 일임은 자명하다. 의견차이가 발생했을 땐 상대방을 물어뜯기보다 건전하게 토론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6.1. 자기만의 규칙을 정하자[편집]


의무 교육 중에 토론을 가르치는 나라에서 조차 인터넷상에서는 키배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토론 자체를 금기시하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그러한 나라보다 더 하면 더 했지 키배 문화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 번 키배에 휘말리면 필연적으로 하루종일 시간을 날리게 되는데, 이에 대한 파해법은 스스로가 도중에 빠져나오는 것 뿐이다.[12]

예를 들어, 댓글의 개수에 제한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 사람과 똑같은 주제로 5번 10번씩 반복하여 대화를 나눈다면 상대를 설득에 성공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물론 어느쪽이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는 확실치는 않지만[13] 정말로 상대를 설득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설득에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시점에서 포기하는게 당연한 결론이다.[14] 그렇지 않으면 그저 자신이 이기고자 하는 욕심일 뿐[15]이니, 중독되지 않도록 5번 이상 같은 회화가 반복되면 빠져나온다는 자신의 규칙을 만드는건 매우 좋은 자기통제 수단이 된다.

시간에 제한을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신이 한 번 댓글을 단 글에 24시간 이후에 달린 댓글은 모두 무시를 하는것도 건전한 이용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나중에 달린 댓글일수록, 상대가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것을 알면서 게시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자기가 마지막에 댓글을 달아야 성에 차는 사람일 가능성 또한 높다는 얘기가 된다. 당연히 이런 사람은 제 3자가 보면 정신승리로 밖에 보이지 않으므로 무시하더라도 전혀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댓글이 달리지 않으면 언제 댓글 달릴까 전전긍긍 할 수 밖에 없으니[16] 이런 글에는 답변을 하지 않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6.2. 논리적 오류에 착목[편집]


대개 키배는 어느 한 쪽, 혹은 양 쪽이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논리적 오류가 없다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평행선을 달릴 이유가 없기 때문. 정말 잦은 오류중 하나가 원천 봉쇄의 오류인데[17], 이러한 사람은 대개 감정적인 상태이므로 그 어떤 설득도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말 순수한 이유로 논리적 오류를 범한 사람은, 대개 짧은 의견교환으로 서로의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 오류의 유형에 따라서는 진지한 토론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 타당하다. 굳이 지적을 해야 하겠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범위 내에서 조롱을 하거나 비꼬는 편이 낫다. 당연한 얘기지만, 상대를 풍자할 의도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 말고는 자신도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상대가 나의 논리적 오류를 지적해서 들고 나오면 얌전히 인정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 나의 논리적 오류를 구실로 내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논리적 오류[18]를 들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6.3. 양보하고 사과하자[편집]


완벽한 인간은 없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만약 내 의견이 잘못되었을 경우 정중히 사과하고 화해를 청하는 것이 좋다. 양보하고 사과하는 것은 지는 게 아니다.

상대가 웬만한 인간 말종이 아닌 이상, 당신이 먼저 살갑게 굴면 뻘쭘해서라도 공격적인 글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이건 유토피아에 가깝고 현실은 키보드 앞에선 인간말종들 널렸으며 먼저 쫄아서 꼬리 내렸다며 까인다[19]


6.4. 인터넷에 미련을 버리자[편집]


요악하면 너무 과몰입 하지 말고 네가 옳습니다하는 그냥 무시하는 마인드를 가지자

새삼 강조하자면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겨우 한 시간 지난 글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달린 댓글에 전부 대응하는 것은 인생 낭비이다. 답변을 달지 않는다고 도망갔다고 조롱하는가? 혹은 다른 글까지 쫒아와서 비난하는가? 그렇다고 원래 글에 돌아가서 키배를 재개하면 더욱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물론 이로 인해 정상적인 커뮤니티 이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 억울할 수는 있으나, 어차피 익명이라서 서로를 알 수 없음으로 이용을 잠시 그만두거나 댓글들을 삭제하거나 아예 접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단, 정도가 심하면 사이버 스토킹으로 신고하도록 하자.

인터넷과 현실의 경계가 점차 허물허져 가는게 시대의 흐름이기는 하나[20] 아직까지는 혹은 앞으로도 익명성이 있는 커뮤니티 활동이 현실에 필요 불가결한 요소가 될 가능성은 낮다. 언제든지 과감하게 끊어버려도 큰 탈이 없는 셈. 다만 거듭 강조하지만, 개인 정보를 찾아내서 공격하는 등 사이버 스토킹에 가까운 짓을 할 경우 과감히 신고하자.[21] 이 경우 더 이상 현실과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인터넷에서 여포질하는 사람이 현실에서도 맹수가 되는것이 아니다. 키보드 배틀 따위나 하는 인간들의 상당수가 현실에서는 약자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현실에서까지 평소에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아니며, 인터넷 자체가 막말로 일반인 기준으로도 신체적으로 약자인 사람들 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강호동이나 마동석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도 (특히 상대가 현실에서 해코지 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만 있다면) 말을 함부로 하는게 가능한 공간이다.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잘나간다고 해서 현실에서 잘나가는 것도 아니며, SNS에서 인기 끄는 사람들중 같은 정치성향인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사람들을 예로 들면 현실에선 웬만한 사람들은 마주쳐도 상대가 SNS에서 인기있는 사람이란걸 모르거나 기껏해야 현실에서도 같은 정치성향인 사람들만 알아보는 정도다. 오히려 현실에서 잘나가는 사람들 중엔 넷상에선 조용히 살거나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경우가 태반이며, 특히 현실에서 맹수인 사람들중 상당수는 오히려 인터넷을 잘 안하거나 하더라도 타인과 교류가 없어 키배를 벌일 기회가 사실상 없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넷상에서 여포질하면서 현실에서도 맹수인 경우는 주로 정치병자이면서 집회에도 나갈만큼 정치색이 확고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나마도 보통사람들은 정치관련이 아니면 이런 유형의 인간들과는 엮일 일이 없다시피하다.

괜한 미련, 집착 때문에 본인이 힘들어지는 수가 있다.[22]

아주 간혹 정치인, 연예인, 운동선수 같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의 경우 과거의 키배 이력 때문에 몰락하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자신의 특기로 승부를 볼 수 있고, 상류층은 아니라 고고함이 그렇게까지 요구되지 않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은 좀 낫지만 상류층들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정치인들은 과거에 키배를 상습적으로 떠 온 것이 밝혀지면[23] 사실상 정계에서 추방될 정도로 치명적이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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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말하는 답정너를 떠올리면 된다. 편 들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오해하여 진지하게 답변이라도 하면 이런식의 싸움이 발생한다. 반대로 내가 정해둔 답과는 다른 의견을 게시하는 사람을 보고 싸움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선후공의 차이만 있을 뿐 원인은 똑같은 셈이다. 결국 커뮤니티에 의견을 게시하는 순간 키배를 피하기는 어렵다.[2] 나무위키개인주의 문서를 보면 7차 교육과정까지는 국정 도덕교과서에 개인주의가 부정적으로 설명되었다고 나왔지만, 그래도 문민정권 시절에 나온 6차부터는 이기주의와 구별하여 설명했다. 이기주의는 건전한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지양해야한다고 나왔지만, 적어도 개인주의에 대해서는 절대악으로 서술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3] 거기다 한국어 화자들은 외국인과 시비가 붙으면 모국어가 아니고서야 해석하기 힘든 종성초성체를 써 못알아먹게 하는 경우가 있고, 영어도 마찬가지니 효용성은 더 마이너스가 된다. 거기다 한국어는 초급 실력만 가지고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쉬운 언어가 아니다.[4] 일본인과 근현대 역사나 독도 문제로 싸워서 이기겠다고 덤벼드는 것도 한심한 짓이다.[5] 이런 직종들은 보통 대중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명예와 지위가 있는 직종들이 많다. 대중에게 모범을 보이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안 되지만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는 행위조차도 지양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듯.[6] 당연히 폭행, 사기, 도둑질 등의 피해를 입어서 소송을 한 것은 문제삼지 않는다. 명예훼손죄, 모욕죄, 통매음의 경우 기형적인 처벌 기준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꽤 많은 논란을 빚었으며, 사이버상에서 고소 협박을 할 때도 자주 언급되는 법들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고소를 하더라도 실제로 처벌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참고 넘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꽤 강하기 때문에 화를 참지 못한다는 점에서 거의 악플을 잔뜩 남기고 다녔던 사람과 동일하게 본다고 한다.[7] 야구같은 경우는 자기 팀 선수가 어떤 잘못을 해도 응원하는 경우가 많다. 김재환이 약물때문에 욕먹고 강정호나 안우진이 음주, 학폭때문에 욕을 많이 먹지만 키움 팬들은 응원하고 있다. 그 팀팬들에게 저선수 범죄선수니 나쁜거야라고 말한다고 해서 등을 돌릴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인터넷에서 논란 있는 유명인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은 유명인이 반성하고 그래도 가치관을 바꾸지 않는다.[8] 유사 개념으로 사이비 종교의 세뇌, 단체기합 및 극기훈련 후 혹사된 자들의 심리 상태가 있다. 문제의 예시에서 비판 대상은 혹사시키는 자들이다.[9] PTSD 문서 중 'PTSD는 나약해서 걸린다?' 문단에서 정신이 건강한 사람도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을 받으면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정리된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심각한 문제다.[10] 결국 키보드 배틀의 모든 행위는 '타인이 왜 자신에게 불편함을 주는가?'라는 경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대화 형식이 의문문이 아니더라도 실제로는 의문문으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질문과 역질문만 주고받기 쉽다.[11] 원인은 많다. 과거의 실수 혹은 잘못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의료진에게만 환자의 부담과 책임을 가하는 행위를 환자 자신이 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는 적어도 PTSD 피해자에게 존재할 수 있다.[12] 상기했다시피 키배에서 의미있는 토론이란 없다. 그냥 내 생각이 맞네 네 생각이 맞네를 두고 벽 보고 싸우는 격이니 먼저 나와서 관심을 끊는 쪽이 진정한 승리한 병자라고 할 수 있다.[13] 당연히 내가 고집을 부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걸 상시 명심하자.[14] 상대를 설득하고자 한다는건 상대를 설득 시킬 수 있는 수단을 골라야 한다. 설득을 못시키는 수단을 고집하는건 설득이 목적이 아닌, 다른것이 목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15] 물론 이기고자 하는 욕구도 자연스러운 욕구중 하나이다. 하지만 댓글을 무한정 게시한다고 어느 한 쪽이 이기는건 아니고 무승부로 끝날 확률이 높다.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건 무의미의 극치. 더군다나 마지막에 댓글을 달면 승리한다고 생각하는 건 정신적으로 위험한 상태이니 진지하게 상담을 받거나 인터넷을 멀리하는것을 권한다. 농담이 아니라 이 상태에 이르면 인터넷 중독이다. 이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난 거기까진 아니야' 라고 넘길 가능성이 높은데, 상대가 댓글을 달았으니 나도 거기에 답하는게 당연하잖아와 같은 식의 사고 방식이 마지막에 댓글을 달아야 승리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자기 점검을 한 번 해보자.[16] 자신이 마지막에 댓글을 달아야 성에 차므로, 당연히 또 다시 댓글이 달리면 스트레스 일 수 밖에 없다. 댓글을 계속해서 달아서 의도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방법도 있지만, 결국엔 나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므로 자폭에 불과하다. 따라서 언제 댓글이 달릴지 모른다는 스트레스를 주는 편이 더 이득이다.[17] 예를 들어 누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피해자로 단정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심지어 오류를 범하는 본인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오류를 범하기도 하니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설득이 불가능하다. 성별 분쟁이 소모적인 키배로 빠지는 이유이기도 한데, 서로 자기의 성별이 피해자라는 전제를 깔고 주장을 하면 절대로 결론이 나올수가 없기 때문이다.[18] 성급한 일반화, 오류에 의거한 논증 등[19] 그러나 다른 사람도 보는 댓글창 등의 경우, ‘사과했는데 끝까지 달려드네’라며 역으로 까이는 상대방을 볼 수도 있다.[20] 더 이상 사람의 정신을 육체와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듯이, 전기 신호와 물리적 저장장소로 구성된 인터넷 세상을 그저 가상현실 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현실과 밀접하게 상호작용 하면서 저장 매체라는 물리적 형태로 현실에 존재하는 이상, 가상과 현실의 구분은 점차 무의미해질 수 밖에 없다.[21] 물론 어지간히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범죄까지 저지르면서 남을 이겨먹으려는 사람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럴경우 바로 신고를 통해 인실좆을 보여주면 된다.[22] 자신의 댓글로 실수로 오해했을 때 차단당하거나 무시당하는 경우가 있다. 중고거래에서도 네고나 예의없는 행동을 안했음에도 일어나기가 쉽다. 이럴 때는 차라리 너무 상대하지 말고 직접 사거나 좋은 구매자를 찾는게 더 낫다.[23] 이는 초중고 시절도 마찬가지라서 정치인들 보면 SNS, 포털사이트 계정을 여러 번 삭제한 기록이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금수저로 태어나서 정치인으로 키워진 것이 아니면 초중고 시절에는 키배나 뻘글 작성, 악플 등을 한번도 안 한 사람은 드물기 때문.[24] 어떤 느낌이냐면 정용진이 SNS로 욕을 엄청 먹는데, 정용진의 SNS 사용을 보면 일반인들처럼 직접적으로 댓글 하나하나에 답을 달고 쌍욕을 하는 수준의 키배를 뜨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욕을 먹는다는 것은 상류층 사회에서의 키배는 일반인에 비해 훨씬 엄격한 잣대로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 사람은 본인이 처신만 잘 하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사기업 오너니까 피해가 덜하지, 권력이 영원하지 않은데다 상속받은 것도 재벌가에 비해 부족한(물론 정치 명문가도 있지만 재벌가에 비해서 정치인은 아직 자수성가한 사람도 꽤 있다.) 민주국가의 정치인이 이런다는 것은 거의 은퇴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