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제이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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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출판까지
3. 출판 이후
4. 관련 사이트


1. 개요[편집]


Kinsey Reports

미국의 동물학자 앨프리드 찰스 킨제이[1](Alfred Charles Kinsey, 1894~1956년)가 사람들의 성적 행위에 대해 조사한 1948년과 1953년 출간된 2권의 책.


2. 출판까지[편집]


킨제이는 인간의 성생활에 대한 연구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미 전역 교도소에 복역중인 사람들 중에서 18,000여명을 인터뷰해서, 그 자료들을 가지고 1948년에 《인간 남성의 성적 행위 (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를 출판했고 1953년에는 《인간 여성의 성적 행위(Sexual Behavior in the Human Female)》를 출판했다. 다만 교도소에 복역중인 사람들은 첫 조사에서의 이야기이고, 그 뒤로 10만명 가량 대다수가 일반인들로 구성된 모집단에서 조사를 하여 지속적으로 개정된 보고서를 내었다. 킨제이 스스로 1948년의 첫 책은 단지 sample progress report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였을 정도이므로 이 점을 명확히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는 '인간의 성(性)'이라는 금기시되었던 내용을 주제로 방대한 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했다는 점에서 당시 미국 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조사 내용 역시 큰 충격을 가져왔는데, 이성애금욕생활이 도덕적이고 일반적인 규범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깨뜨렸다.[2]

동성애, 혼외정사, 혼전순결, 난교 등 당시 기준으로 꽤나 쇼킹한 내용이 많았기에 숫자와 도표, 그리고 그래프만 잔뜩있는 단순한 학술보고서에 불과함에도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하였으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내용이 내용인 만큼,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킨제이의 조사는 교도소에서 시작되었지만, 이후 다양한 곳으로 확대되었으며, 10만명 가량의 대상자에게 조사를 하게 된다.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는데, 첫째, 킨제이는 '부유하고 교육받은 중산층'의 샘플이 아닌 비교적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하류층 사람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길 원했다. 둘째, 킨제이가 조사했던 교도소들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흉악범 단체 수용소와는 많이 다르다. 연구가 이루어지던 1940년대의 미국은 교회의 영향으로 지금보다 한없이 성에 대해 종교적이고 폐쇄적이었고, 자녀를 낳기 위한 부부관계를 제외한 모든 성적인 행위는 불법으로 간주되었다. 그중에는 서로 동의 하에 성관계를 맺은 커플(중에서 남성)이 잡혀오거나, 심지어는 자위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인지 이전 금주법 시대에 밀주 사업 등으로 자본을 축적한 마피아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해나간 시기이기도 하다. 영화 대부의 시대적 배경이 1940~50년대이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대상 선정 자체가 무작위가 아닌,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의도된 대상들로 선정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신빙성은 낮아졌다. 더 정확하게 언급하자면, 이후의 연구와 비교하면 수치가 너무 높게 나오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통계적 처리에 있어서 모집단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킨제이가 일부러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들만 표본에 집어넣고 조사를 한 것인지, 모든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결과에 맞추기 위해서 비율을 조작했는지[3], 모든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지만 응답을 해준 사람들의 비율 때문에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많은 편이다. 대상이 성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질문에 응답 자체를 거부한 사람들의 비율이 상당할 것인데, 이 회피자들은 모집단에 포함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4]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워낙에 사회에 던진 충격이 컸기 때문에, 그 영향력과 파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통계학회 저널(Journal of American Statistical association)에는 어느 통계학자의 킨제이 보고서에 대해서 평가가 실렸다. "내가 처음에 킨제이 보고서를 읽었을때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때 나는 흥미로운 결과에 초점을 두었고, 조사방법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조사가 행해진 방법에 관심을 돌리자 결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결점들은 사소한 기술적인 문제들로 생각했다. 마치 거대한 기념물의 표면에 난 흠집같은, 전체적인 결론에는 영향이 없이 세부적으로 결과의 일부를 수정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결점으로 생각했다. 즉 두세 개의 오류 요인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결과는 여전히 중요하고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조사에 사용된 통계적 방법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보고서에 있는 결과들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 없었다. 사실 내가 보기로는 조사방법에 있어서의 결점이 너무 커서 킨제이 보고서는 중요한 영역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는 역할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기가 불가능하다."


3. 출판 이후[편집]


  • 1953년, 마릴린 먼로의 폭발적 인기에도 같은 해 발표된 킨제이 보고서가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고 미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상술하였듯이 기존까지 사회에서 여성의 성욕은 남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의존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킨제이 보고서는 여성에게도 독자적인 성욕이 존재한다(지금은 매우 당연해진)고 지적하여서 엄청난 사회적 파란을 몰고 왔다. 하지만 1950년대 섹스 심볼이었던 마릴린 먼로의 경우 그녀의 섹스 어필은 여성의 독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남자에게 의존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여기서 남성 대중들은 안심하고 그녀에게 하앍하앍 거리면서(...) 그녀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얘기.

  • 1953년, 월급 등 여러가지 문제로 골치가 아팠던 한 젊은 기자가 이 보고서를 감명깊게.. 읽고서는 바로 직장을 때려치고 한 잡지를 창간하는데 바로 플레이보이...

  • 1953년, 이 킨제이 보고서는 그동안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청교도적 도덕관, 성윤리에 엄청난 균열을 내면서 그 전 해 1952년 시판 시작된 경구피임약[5], 같은 해 1953년 창간된 플레이보이와 함께 1960년대 성혁명(sexual revolution)[6] 의 단초가 되었다.

  • 1956년, 알프레드 킨제이가 사망한 해, 윌리엄 마스터스와 버지니아 존슨이 성 혁명을 이어간다. 알프레드 킨제이가 설문조사에 의존했다면, 이들은 1956년 10월 ~ 1969년 8월에 걸쳐 성을 실험연구(!)도 한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드라마(?)가 2013~2016년 방영한 마스터즈 오브 섹스다. 대표적으로 '성적 흥분은 흥분-고조-오르가슴-회복의 4단계다', '포경수술과 사정능력은 영향이 없다', '오르가슴은 남성의 체력을 고갈시키지 않는다. 중추신경계의 피로일 뿐', '폐경 이후에도 오르가슴은 존재한다' 등 오늘날엔 상식이 된 영역들을 발표한다.

  • 1974년, 해군 복무를 하며 플레이보이감명깊게 접한 래리 플린트 역시 성인잡지 허슬러를 창간한다. 그리고 법적 투쟁을 통해 '성인잡지에 성기가 표현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판례를 따낸다. 1983년에는 성인물을 금기시하는 폴 웰 목사를 맹비난하고 '공인을 비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판례를 따낸다. 나아가 1995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성 스캔들을 적극 비호하며, '성의 정치적 도구화를 반대한다'며 자신이 알던 양당 정치인들의 성 추문을 까발리는 위엄을 보인다. 2012년엔 책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원제: One Nation Under Sex)'이라는, 미국 역사상 성이 정치적 도구로 쓰여온 사례의 역사책을 출간한다.

  • 1979년, 킨제이 보고서에서 대표적으로 모집단을 왜곡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온 감옥 수감자를 제외하고 모집단을 clearing하여 Gebhard와 Johnson이 수만명의 일반인들에 대한 데이터만 재분석한 데이터베이스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당시 미국 남성의 경우 36.4%가 생애 중 적어도 1번 이상 동성과 성적 관계의 경험이 있으며, 16세~55세 사이에 이성보다 동성에 더 매력을 느낀 시기가 3년 이상이었던 사람이 백인 대졸 이상 학력자 중 9.9%, 백인 고졸 이하 학력자 중 12.7%라고. 다만 이 비율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지만 100%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는 아니긴 하다.

  • 2003~2004년, 강동우가 미국 킨제이 성 연구소를 대한민국 최초로 연수했다. 이후 보스턴의대에서도 성의학을 연수하고, 국내 언론에 다수의 칼럼을 쓴다. 강동우는 이후 2019년 4월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성의학전문가로 출연하여, 포경수술에 대하여 2차 성징기에 해면체가 크게 성장하는데 포피는 그렇지 않아서, 포피를 아동기에 절제하면 성장이 저해될 수 있기 때문에 하더라도 성인기에 할 것을 권한 바 있다. #

  • 2004년, 알프레드 킨제이의 일생이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 2013년 8월 8일, MBC의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던 배우 장혁군복무시절 맥심(잡지)은 있지만 어린 동생들과 같이 읽는 게 거시기해서 교양있는 척하고 싶어 이 책을 3번이나 정독했다고 하여 방송 이후부터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왔다.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연애 상담 등도 대부분 이 책을 읽은 다음 더 깊어진 것이라고 한다.

4. 관련 사이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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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음상 올바른 표기는 '킨지'이다.[2] 특히나 킨제이 보고서에서 사회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은 내용은 여성들에게도 독립적인 성욕이 존재한다는 언급이었다. 기존까지 사회에서 여성의 성욕과 오르가즘은 남성의 삽입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의존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3] 이 쪽 주장은 거의 없다.[4] 다만 당시 성적으로 문란하지 않은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쉽게 응답하고, 응답 자체를 거부한 사람들이 오히려 당시 사회적으로 터부시되었던 성생활이었던 경우가 많았을 거라는 추론도 가능하기에 정확한 면은 알수 없다.[5] 다른 하나는 여성이 주기적으로 복용하는 배란조절형 피임약.[6] 이 표현은 미국의 남성패션잡지 에스콰이어(Esquire) 1961년 7월호에 처음으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