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성명 (r20210301판)

 


1. 개요
2. 배경
3. 내용
4. 반응
5. 결과
6. 참고문헌
7. 관련문서


1. 개요


1935년 9월 24일, 신임 화북 주둔군 사령관 타다 하야오가 발표한 성명으로 일본 군부가 화북분리공작을 추진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표명한 성명이다.

북중국 자치 성명이라고도 한다.


2. 배경


1935년 7월 22일, 화북 주둔군 사령관 우메즈 요시지로 중장이 2사단장으로 전임가게 되면서 8월 1일, 새로운 사령관으로 타다 하야오가 임명되었다. 8월 19일, 톈진에 부임한 타다는 우메즈 사령관 시절부터 진행되던 화북분리공작의 업무를 인수인계받아 옌시산, 쑹저위안, 한푸쥐, 상진 등 화북의 유력 군벌 4인에 대한 포섭 작업에 돌입했다. 타다는 이들에게 화북에 새로운 정권을 세워 화북을 번영시키라고 부추기며 장제스의 진압 시도는 일본군이 막아주겠다고 구슬렀다. 이에 군벌들은 모두 중립 정권의 수립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과 만주국을 도울 의향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찬성한다면 충분히 돕겠다는 회답을 전해왔다. 타다는 군벌들의 포섭이 성공한 것으로 여겨 곧 화북에 신정권을 수립할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군벌들의 대답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비위를 맞춰주려는 립서비스에 불과했지 장제스에게 거역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에 대해 도이하라 겐지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중국인과 교섭할 때, 한 사람인 경우에 그는 매우 시원스럽고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만약 두 사람 혹은 두 사람 이상일 경우에 그들은 곧 '만약 당신이 한다면 나도 하겠다'라는 관망적인 반응을 보인다. 특별히 이들 인물에 대해 한사람 한사람씩 개별적으로 설득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서로 대놓고 함께 약속하라고 하지 않는다면 신정권은 수립할 수 없을 것이다."


나중에야 군벌들이 입발린 소리만 했다는 것을 알게 된 타다는 부임 이후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격노했다. 여기에 국민정부가 화폐개혁을 위해 영국에 접촉, 영국 재무성에서 특사 프레더릭 리스로스를 파견하자 일본 군부는 영국이 중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여겨 격렬히 반발했다. 이에 타다는 9월 24일, 평진 지역의 일본 신문기자를 관저에 불러 회식을 베푼 다음에 개인적인 성명을 발표하게 된다.


3. 내용


  • 1. 우리 군의 공명 정대한 방침은 근본적으로 화북의 중국 민중을 구제하고 그 복리를 증진시키는 데 있다. 이 방침은 시종일관 관철될 것이다. 부정과 불의를 파괴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당한 위력을 행사해야 한다. 화북 민중의 역량에 의지하여 점차 화북을 명랑화시키는 것은 바로 일만화 공존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당과 장 정권은 이를 저지하려 하므로 국민당과 장 정권을 화북으로부터 배제시키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 2. 이같은 기본적인 입장을 근거로 하여 우리 군은 화북에 대한 이하 세 가지의 태도를 밝힌다.

  • 1. 반만항일 분자를 철저히 화북으로부터 축출할 것.

  • 2. 화북 경제권의 독립(화북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화북의 재정을 난징 정부의 관할로부터 이탈시켜야 함).

  • 3. 화북 5성의 군사 합작을 통해 적화를 방지할 것.

  • 3. 이를 위해 반드시 화북의 정치기구를 개조하고 수립해야 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반드시 화북 5성 연합자치단체를 조직하는 공작에 대해 지도를 해야 한다.

성명을 낭독한 타다는 이어 기자들에게 <일본의 중국에 대한 기초 지식>이라는 소책자를 배부하였다. 소책자는 1. 서언, 2. 화북 정책에 대한 근본주의, 3. 제국의 대중국 태도, 4. 국민당 및 장제스에 대한 인식, 5. 중국의 적화 운동, 6. 화북 대책 여부의 중요성, 7. 결론으로 구성되었다. 타다는 이 소책자를 통해 화북 자치를 주장, 화북을 공존공영의 낙원으로 만들어야 하며 장제스 정권이 대일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장제스도 장제스 정권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4. 반응


타다 성명은 1935년 9월 25일, 경진마이니치신문에 게재되면서 중일 양국에 모두 충격을 주었다. 중국의 각계는 대놓고 너희 나라 영토 뺏어서 자기네 입맛 맞는 괴뢰국을 세울 것이며 말 안들으면 무력으로 소멸시킨다고 협박하는 성명에 격분하여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일본 정부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9월 26일, 일본 정부는 경진마이니치신문을 통해 성명을 발표, "해당 소책자는 일본의 의견을 대표하기에는 부족하며 다만 타다 개인이 교부한 참고 소인쇄물에 속할 뿐이다."라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도 주일 대사 장작빈을 소환하여 외상 히로타 고키가 직접 일본 정부의 진의에 대해 질의하는 장작빈에게 "해당 소책자가 결코 본국 정부 및 군정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며 해당 성명을 게재한 경진마이니치신문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경진마이니치신문에 대한 법적 처벌을 내렸다.

하지만 일본 군부는 타다의 성명에 오히려 찬동하는 입장을 보였다. 9월 25일, 일본 육군성 대변인은 "일본 육군이 무력으로써 국민정부 및 장제스 정권을 화북 밖으로 축출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라고 성명하며 중국에 대한 3가지 방침을 발표했다.

  • 1. 화북의 반일반만 분자를 축출할 것.

  • 2. 화북은 경제적으로 난징을 이탈하여 스스로 독립의 길을 간다.

  • 3. 화북 5성의 군사 합작을 거쳐 공산주의의 만연을 저지한다.

9월 29일, 내몽골에서 독립운동을 획책하고 심양으로 돌아온 도이하라 겐지는 관동군 사령관 미나미 지로와 의논하여 역시 담화를 발표, "화북 5성을 포함하여 조직한 자치 정부는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성명했다.


5. 결과


이후 일본은 히로타 3원칙 발표, 다롄 회의 개최 등으로 계속 화북분리공작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으며 이해 11월, 한간 인루겅을 포섭하여 기동사변을 일으키게 된다.


6. 참고문헌


  • 일제의 대륙침략사, 소운서, 이문영, 고려원.
  • 서안사변, 나가노 히로무, 일월서각.
  • 다큐멘터리 중국 현대사 3권, 서문당 편집실, 서문당.
  • 태평양 전쟁사 1권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일본역사학연구회, 채륜.


7. 관련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