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파워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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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스토리
역대 최초 만렙 달성 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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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역대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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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명
파일:imageKaini.png 타락파워전사
파일:ico_croa.png 베베
파일:ico_nova.png 오늘만징징
-
달성 일자
2007.04.07
2014.02.22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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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파워전사

파일:타파전 오한별.jpg

타락파워전사 육성자 권순국(오른쪽)과
메이플스토리 4대 디렉터 오한별(왼쪽)

프로필
본명
권순국
출생
1955년 (69세)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안동 권씨
가족관계
아내, 아들 권홍인[1], 조카 장영재[2]
소속 월드
파일:imageKaini.png카이니파일:ico_luna.png루나[3]

1. 개요
2. 소개
2.1. 최초 200 레벨 달성
2.2. 만렙 확장 이후
3. 인지도
4. NPC 타락파워전사
5. 여담
6. 함께 보기



1. 개요[편집]



파일:타파전B.png

타락파워전사 캐릭터[4]

메이플스토리의 유명인. 카이니 월드(現 루나) 소속 히어로 유저로, 메이플스토리 최초 만렙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세간에 알려진 메이플스토리 유저 중에서는 모험가 전사 직업인 히어로로 최초 200레벨 달성으로 가장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2. 소개[편집]



파일:타락파워전사 전설.jpg

10대 존경 한몸에 받는 50대… 그는 ‘타락파워전사’였다

빅뱅 전 메이플스토리를 플레이해봤다면 거의 모두가 아는 유저이며, 게임 서비스 개시 이래 최초의 만렙이라는 점에서 이후의 만렙 달성자들과 차원이 다른 상징성을 가진다. 당시 만렙은 200이었고, 현재는 하루만에 달성이 가능한 레벨이지만, 빅뱅 패치로 경험치 요구량이 급락한데다 사냥 환경도 크게 개선된 지금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이후 확장된 만렙보다 당시 200레벨이 달성하기 더 어렵다고 여겨질 정도다. 게다가 만렙 달성 당시 이미 나이가 53세로 게이머 중에서는 상당한 고령이었다.

타락파워전사(200) 이후로 베베(250)[5], 오늘만징징(275)[6]으로 계보가 이어지지만 이 중에서도 타락파워전사의 인지도는 단연 독보적이다.[7] 일반 언론에까지 오르내리며 메이플스토리 비유저 층이나, 중년 이상에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일한 유저이다.

패치에 패치를 거듭하며 레벨업이 쉬워지고 각종 정보력과 고자본으로 초고속 육성을 하는 요즘과 달리, 타락파워전사가 만렙을 달성한 시기의 메이플스토리는 레벨업이 어려운 게임으로 악명이 높았다.[8] 주력기의 대부분이 단일 공격기였는데, 몬스터가 지금과는 비교가 힘들 정도로 느리고 적게 생성되어 단일 공격기로 사냥하는 게 정석이었으니 레벨업도 엄청나게 느렸다. 2차 전직도 최소 몇 달을 투자해야 가능했고, 50레벨 정도면 어디 가서 알아주는 고렙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스킬 구성도 얼기설기 되어 있어 타락파워전사의 직업인 히어로는 3차 전직까지 1차 전직때의 주력 공격기인 '파워 스트라이크'를 주로 사용하였을 정도였다. 4차 전직에 주 공격기로 '브랜디쉬'가 추가되긴 했지만 4차 전직 패치는 2006년 12월, 타락파워전사의 만렙 달성은 2007년 4월로 브랜디쉬로 사냥한 기간은 몹시 짧다.

당장 위아래에 서술되어 있다시피, 그가 캐릭터 생성 후 만렙 달성까지 무려 3년 8개월이 걸렸고 이게 사상 최초라는 것만 봐도 얼마나 레벨업이 힘들었는지를 방증한다. 단적으로 레벨 200 달성 직전에야 추가된 4차 전직 주력기였던 브랜디쉬는 이후 성능이 상향[9]된 채로 2차 주력기로 내려갈 정도로 지금과 비교하면 얄팍하기 짝이 없던 스킬인데, 이마저도 얼마 써보지도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레벨 200을 달성한 그의 위상은 가히 압도적이다. 공식에서도 그를 특별 대우해주는 것이 납득되는 업적.

메이플스토리를 시작한 동기는 당시 9살이었던 아들이 해킹을 당해 게임 상에서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직접 나서게 됐다고 한다. 아들을 도와주기 위해 캐릭터를 대신 키워주다가 본인이 게임에 더 빠져버렸고, 본인의 캐릭터처럼 계속 키워나갔다. 이 때문에 계정의 명의는 아들의 명의로 되어 있다.

2.1. 최초 200 레벨 달성[편집]


파일:188cac9544a1db2f066c6f10c065eebb.jpg
당시 현장.
2층의 레벨업한 캐릭터가 타락파워전사다.


파일:Screenshot_20210609-044919_Samsung Internet.jpg}}}
200레벨 달성을 기념하여 변경된 공식 홈페이지의 배너

2007년 4월 7일, 메이플스토리에서 만렙을 최초로 달성했다. 캐릭터 생성부터 레벨 200 찍기까지 3년 8개월 걸렸다. 만렙을 달성할 당시 전사의 고향인 페리온에서 만렙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부러 와일드보어의 땅에서 사냥을 했다고 한다. 이때 수많은 유저들이 구름같이 모였다고. 홈페이지 메인에는 캐릭터와 캐릭터 옆에 만렙 라이딩인 레드 드라코가 나와 잔치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 혼자 한 것이 아니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키운 게 비결이라고 밝혔는데, 보통 RPG 게임 랭커들이 레벨업 경쟁을 위해 돈을 주고 부주까지 구해가며 레벨을 올렸던 당시의 추세[10]를 감안하면 한 가족이 키워서 최초 만렙을 달성한 것도 대단한 업적이다.

이것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는 빅뱅 업데이트 이전에 이룬 쾌거였다는 점이었다. 250레벨을 최초로 달성한 글자네현재(언리미티드 직후 시기) 250 찍기가 빅뱅 전 200 찍기보다 쉽다고 증언했다.[11] 실제로 글자네는 만렙이 확장된 후 약 1년 만인 2014년 2월 22일에 250을 찍었지만 빅뱅 전 200 찍기는 3년 반 이상이 기본이었다.[12]

빅뱅 이전의 흉악한 필요 경험치와 약하디 약한 데미지[13]와 더불어, 이 당시 더블점프라고는 허밋의 플점이 전부였고, 2007년 4차 전직 추가로 생긴 돌진이 전사의 기동력에 그나마 변수를 줄 수 있는 스킬이었다. 게다가 사실상 전 직업이 플점을 쓰고 광역기를 남발하는 지금과 달리, 주력기들의 타격범위는 대부분 y축은 100을 넘기 어렵고 x축은 200픽셀 언저리를 넘기 힘들었다.[14] 몹들의 경험치도 매우 낮았다.[15] 자쿰은 한 파티도 아니고 다섯 파티가 모인 30인 레이드 공대를 짜야 클리어가 될까말까 했고, 혼테일은 그냥 난공불락에,[16], 학교에선 레벨 60만 되어도 고렙이라 칭송받는 시기였다. 고렙 취급을 받으려면 270 정도는 가야 하는 현재의 메이플과 비교하면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게임의 난이도가 높았다.[17]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7년 당시에 추가된 4차 전직의 직업 밸런스 중 히어로, 보마, 나로가 TOP 3로 꼽히며 190레벨대부터 과열경쟁에서 치고 올라오는 데 박차를 가하기 유리한 조건이었고, 소속 길드인 JrFIM의 탄탄한 조직 기반으로 제네난사 비숍과의 높은 연계율로 타 경쟁자에게 추월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18]

타락파워전사가 카이니에서만 알려졌을 시절, 신전 벽에서 공격스킬만 난사하는 모습이 목격돼서 매크로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그 시절엔 매크로가 대부분 좋지 못해서 점프를 하지 못하고 벽에 박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당시 카이니 유저들 중에선 매크로라고 믿는 유저들도 있었는데, 타락파워전사는 조카가 잘 몰라서 작동이 서툴렀을 뿐이라고 해명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고 추후 타락파워전사가 고렙이 되었을 때 매크로로 의심되는 행위를 한 적이 없어서 조카가 매크로를 썼거나 정말로 조작 미숙으로 인한 해프닝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재는 플레이포럼 폐쇄 사건으로 글이 전부 지워져서 타락파워전사의 매크로 의심 글도 해명 고확 스샷도 찾기 힘들다.

제니스의 랭킹 유저 '번개의신vv'와 마지막까지 경쟁했으며, 2007년 4월 7일에 만렙을 찍음으로써 결국 타락파워전사가 승리했다. 그 이후 다들 번개의신vv가 2위가 되리라 예상했으나 옐론드(現 엘리시움)의 lkc1031가 2007년 5월 5일 2위를 차지하는 반전이 일어나고, 번개의신vv는 2007년 5월 22일에 만렙을 찍어 3위가 된다.[19]

타락파워전사가 만렙을 찍고 1년이 지난 2008년에는 3개월만 열심히 노력하면 레벨 200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레벨업에 들어가는 노력이 매우 많이 줄어들었다. 아란으로 200레벨을 처음 달성한 'Kara'가 2009년 7월 9일에 캐릭터를 생성하여 2009년 9월 14일 만렙을 달성한 것이 그 사례다.

2.2. 만렙 확장 이후[편집]


만렙 달성 이후엔 메이플스토리를 잘 하진 않으나 가끔씩 들어와서 고확으로 인사를 했다. 타락파워전사가 있던 당시 카이니에서는 타락파워전사가 한번 접속했다 하면 그를 보기 위해 수많은 유저들이 몰려왔다. 카이니 서버에서 가장 큰 패밀리도 타락파워전사 패밀리였다.

이렇게 그는 최초 만렙 달성의 위상을 떨쳤으나, 2013년 1월 31일 250으로 만렙이 확장되었다. 이에 타락파워전사의 입지가 곤란하게 되었고 이에 우려대로 많은 유저들이 타락파워전사의 랭킹 문제에 대해서 논쟁을 벌였다.


파일:external/upload.inven.co.kr/i1107003637.jpg

만렙이 확장되자 그는 레벨을 올리기 위해 아이템을 새로 맞췄다.[20] 이카루스의 망토를 끼고 있던 캐릭터가 차차 여제 아이템 세트를 맞췄다. 기왕 이렇게 된거 타락파워전사가 1위에 다시 등극하기를 희망하는 유저들이 매우 많았지만, 타락파워전사가 반드시 랭킹 1위를 해야 한다면서 랭커를 노리는 다른 유저들을 팅벅으로 제압하겠다거나 1위를 하면 욕을 하겠다는 식의 유저들도 많았다. 또한 카이니의 몇몇 스틸길드나 무개념 유저들은 타락파워전사의 레벨업을 방해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인 사정으로 인해 214레벨에서 멈추고 랭커 도전을 포기했고, 그 탓에 3위였던 순위가 계속 하락하는 중이였다. 이로 인해 한때 타락파워전사가 캐릭터를 삭제했다는 루머가 돈 적이 있었다. 과거에 비해 쉬워진 레벨업과, 직업의 차이와 메이플을 주력으로 삼는 유저들의 광렙을 따라가기는 벅찼다는 것이 주 요인으로 꼽힌다. 네임드 유저들은 레벨업 방법을 수없이 알고 있고, 그 캐릭터를 키우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기에 무서운 속도로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타락파워전사도 레벨업 방법을 강구하고 찾았겠지만 우월한 캐릭터 성능과 더 많은 레벨업 방법을 보유한 이 시대의 네임드를 이길 수가 없었다. 빅뱅 이전의 괴물과 빅뱅 이후의 괴물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히어로도 레드에서 모험가 직업이 개편되기 전에는 최악의 사냥 성능을 보였던 직업인 것도 감안해야 했다. 오히려 사냥이 최악인 당시의 히어로로 한동안 랭커 자리를 유지했다는 것이 대단한 점이다.

이로 인해 메이플스토리는 2013년 1월 31일 이전까지의 랭킹을 따로 분류하고 있고, 이후에도 확장될 때마다 랭킹이 재분류되고 있다.

2018년 7월 3일 오후 1시 루나서버 16채널에 등장해 유저들을 반겼으나, 본인이 아닌 JrFIM의 길드마스터였다.[21] 해당 링크 5차 전직을 마쳤다고 하며 간간히 접속해서 육성할 것이라고 한다. 타락파워전사 본인이 아니면 아무 의미 없다는 말과, 그래도 존재 자체만으로 포스가 느껴진다는 반응이 공존했다. 이후에도 간간이 메이플 접속을 하고 있다.

2023년 레벨기준으로는 242레벨이다.

3. 인지도[편집]



파일:Screenshot_20210609-045727_YouTube.jpg

오늘날까지 메이플스토리 유저들과 운영진들 모두가 이견 없이 인정하는 최고의 네임드 유저라 할 수 있다. 사실상 메이플스토리에서도 공인한 네임드 중 하나. 이후에도 활동을 보이는 네임드 유저는 이 타락파워전사와 '빅토리 메이플스타' 작가인 싸비, 간간히 근황만 전하다 NEW AGE 업데이트 이후 다시 본격적으로 플레이를 재시작한 앙잉옹[22] 등 극소수이다. 메이플스토리 10주년 프로모션 동영상에서도 '타락파워전사 세상 위에 우뚝 서다.' 라는 소개로서 등장했다.

이는 메이플의 빅뱅 전후의 시스템적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빅뱅 이후 인격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유저들이 부모의 재력을 앞세워 네임드가 되고 일반 유저들의 눈이 찌푸려지는 행동을 하다 보니 유저들은 빅뱅 후의 네임드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이에 유저들은 인격적으로도 큰 문제점이 없었으며 점점 과거의 잔재들이 사라져가는 메이플스토리에서 그나마 과거의 추억을 회상시키는 타락파워전사를 인정하게 되었다. 거기에 타락파워전사가 활동할 당시 학생이던 유저들이 성인이 되었기에 아버지 뻘인 타락파워전사의 수 년에 걸친 근성에 존경심을 표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23]

타락파워전사는 만렙 확장 이후 수많은 스틸러들에게 스틸을 당했지만 예전 비숍보다는 낫다고 평했다.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은 세글자나, 만렙까지 공정한 경쟁을 원한다며 메이플 인벤에 부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쓴 글을 올렸으나 정작 본인도 부주를 채용한 것이 들통나니 해당 글을 바로 삭제한 오늘만징징같은 역대 랭킹 1위들과는 확연한 차이점. 필드 파티 사냥이 주를 이루던 빅뱅 전의 메이플에서 비매너 행위를 한다는 것은 곧 파티 사냥, 즉 레벨업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었기에 일반적으로 레벨이 높으면 신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빅뱅 후에는 파워 인플레이션의 효과로 솔로잉, 던전형 컨텐츠가 주를 이루게 되고 캐릭터의 스펙 강화조차 캐시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다 보니 빅뱅 전후 유저들에겐 상당한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4. NPC 타락파워전사[편집]


파일:타파전B.png
프로필
성별
남성
종족
인간
직업
히어로
거주지
페리온 전사의 성전
표기
GMS
FangBlade[24]
MSEA
Dragon Warrior[25]
JMS
堕落パワー戦士
CMS
堕落狂战士
TMS
龍騎士


파일:타락파워전사.jpg

저는 레벨 200을 달성한 타락파워전사입니다.

페리온의 전사의 성전에 NPC로 있다. 다른 만렙 유저들은 전부 만렙 전용 맵에만 있고, 말을 걸어도 딱히 이벤트는 생기지 않는 반면 타락파워전사는 전직 NPC 바로 옆에 있어서 보기도 쉽고, 퀘스트에 관여할 정도로 격이 다른 대우를 받는다.[26][27]

에반의 라이딩 퀘스트 때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만렙 전용 라이딩인 레드 드라코가 드래곤이기 때문이다. 에반이 미르를 타기 위해 타락파워전사를 찾아오는 이유가 이것이다.

패치로 만렙이 확장되면서 기존 만렙 달성자들의 분신은 모두 전당에서 삭제되었는데, 타락파워전사의 분신만은 항상 그대로 있다. 상술했듯 메이플 최초로 만렙을 달성했다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그대로 남기는 것으로 보인다.


5. 여담[편집]


  • 동시대의 유명 유저 '아시안느'와도 친분이 있었다. 타락파워전사 이전 랭킹 1위였던 유저들[28] 중 한 명으로, 게임 초창기부터 플레이하여 꾸준히 1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락파워전사와 맞먹거나 더 높은 인지도를 가졌던 유저다. 직업은 헌터. 나이는 당시 20대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50대인 타락파워전사를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2006년경 갑자기 랭킹에서 사라졌는데, 이와 관련되어 온갖 근거없는 뜬소문이 떠돌자 타락파워전사가 본인 대신 홈페이지 서버 게시판에 해명[29]을 해 주었다.

  • 2008년 ‘e스타즈 서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10, 20대가 대다수인 와중 50대였으니 단연 돋보였다.[30]

  • 템페스트 당시 벼루의 기자간담회 영상에도 출연했지만 그림체가 그림체다보니 이를 알아보는 유저는 거의 없었다.[31]



  • 한때 젤라비 피자하우스라는 피자집을 운영하기도 했었는데, 이후 퓨전 레스토랑으로 전향했다. 하지만 레스토랑 4층의 전세 문제를 시작으로 거주민들과의 마찰로 인해 문을 닫았다.

  • 이스터 에그로 모험의 서 7장에서 파괴된 메이플 아일랜드의 초보자 NPC들 중에 그의 이름을 딴 암흑파워법사가 있다. 메이플 월드가 검은 마법사의 공격으로 초토화되자 하필 이때 메이플 아일랜드에 도착한 다른 모험가들은 무슨 상황이냐며 당황하거나 이벤트냐고 현실도피를 하는 것에 반해 홀로 "강력한 무기만 있었다면..." 이러면서 상황을 똑바로 인지하고 분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 노멀 시그너스를 100회 잡으면 달성할 수 있는 업적 이름이 '타락파워여제'이다. 둘이 딱히 별 관계는 없고, 타락한 여제 → 타락 → 타락파워전사로 끼워 맞춘 것이다.


  • 메이플스토리에서는 캐릭터 생성이나 일부 컨텐츠 이용 시 매크로 방지를 위해 문자 입력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문자는 메이플스토리 게임 리소스 내의 모든 이름값들 중에서 랜덤으로 추출해서 띄워주는 식이다. 헌데 타락파워전사는 위에서 볼 수 있듯이 NPC로 존재하기 때문에 입력 문자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희귀한 경우이고 유저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렇게 뜨면 커뮤니티에 영접인증글이 올라오곤 한다.

  • 여담으로 캐시 코디 중에서 청모자가 제일 유명하다. 16주년 뉴트로 이벤트, 18주년 블루밍 이벤트, 20주년 메모리아 주년 이벤트 때 캐시샵에서 랜덤상자를 판매했는데 바로 사고 까면 교환불가이고 랜덤으로 청모자를 팔았다. 당시 가격은 200캐시.

  • 27000일 이벤트 때(6000일) 타락파워전사와 대화해 볼 수 있었다. 예전의 그리움을 느낄 수 있냐며 레벨 범위 몬스터 200 마리를 잡아와 달라고 했다.

6. 함께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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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락파워전사 계정의 본주이다. 2013년에 인하대 정보통신공학부에 입학하였다.[2] 메이플스토리 10주년 기념 행사에 권순국 씨, 권홍인 씨와 함께 참석했다. 타락파워전사가 소속되어있는 JrFIM 길드의 일원으로, 길드 정기모임을 통해 아내를 만나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고 한다.[3] 월드 통합으로 인한 이적.[4] 타락파워전사의 당시 만렙 200을 찍은 코디이면서 페리온 전사의 성전에 있는 대표적인 코디이다. 그 뒤 타락파워전사를 존경하는 유저들은 코디를 따라하거나 비슷하게 닉네임을 짓거나 경험치까지 맞추는 경우들도 있다.[5] 과거 크로아 서버 당시.(글자네테리서,제논.) 현재는 루나 서버 카인 캐릭터 '페이커' 육성 중이다.[6] 오늘만징징은 닉네임을 변경해서 만렙 달성 이후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오늘만징징이라는 닉네임을 가졌던 3세대 만렙 달성자는 당시 유저 수가 가장 적은 노바 서버 출신이다.[7] 그나마 275레벨 확장 이후로는 5차 전직으로 사냥이 더욱 수월해지고, 아케인 리버에서 경험치가 높은 몬스터가 추가되며 레벨업의 장벽이 낮아졌기에 경험치 7만대의 무기고에서 사냥을 해야했던 250레벨 최초 달성 정도가 비교적 인정받는 편이다.[8] 이는 3번째 만렙 달성자였던 번개의신vv가 2020년 2월 복귀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데, 대부분의 유저들이 경악할 정도로 엄청난 레벨업 속도를 보여주면서도 "경뿌 경쿠 그런거 없어도 옛날보다 훨씬 레벨업 빠른데?"라거나 "꼭 한방으로 사냥을 해야 돼?"라고 묻는 등, 당시의 고레벨 랭커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사냥을 해왔는지 몸소 증명하고 있다.[9] 현재는 최대 6명 공격이지만, 초창기에는 3명이었으며, 이마저도 스킬 레벨 1렙에는 1명으로 시작해서 마스터해야만 3명을 공격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10] 메이플스토리의 대리 게임은 2021년에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랭커들이 방송 등에서 부주 얘기를 가끔 꺼내고 대리 게임을 컨텐츠로 즐길 정도로 공인되어 있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같은 경쟁 게임과는 달리 타인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던 환경이었다.[11] 참고로 이 당시 250레벨까지 사냥터는 '무기고2'였다.[12] 참고로 이 말은 5차 전직 출시 이전인 2014년에 한 말이다. 당시에는 아케인 리버는 커녕 타락한 세계수기계무덤도 없이 미래의 문, 황혼의 페리온이 최고레벨 지역이었으며 스타포스 지역도 없었다. 만렙에 가까운 유저들을 위한 고레벨 사냥터는 기계무덤이 최초이며, 그 이전에는 몬스터의 레벨이 만렙과 한참 동떨어진 것이 당연했고, 부실한 경험치는 몹을 많이 잡는 것으로 커버해서 레벨을 올리던 시절이었다.[13] 혼테일 격파 전 시즌 당시의 데미지는 199999가 최대였고, 이 당시 대다수 유저들이 스공이 1만도 되지 않았다.[14] 대략 캐릭터 사이즈에서 좌우로 2명의 캐릭터, 높이는 캐릭터 키의 반을 조금 넘는 정도.[15] 보스가 아닌 몬스터의 최고 레벨은 T-스켈로스의 113이었다. 경험치 획득량을 보면 4차 초기엔 시간당 1000만도 꿈의 경험치였는데, 199에서 200 찍는 데 필요한 경험치는 약 21억이었다.[16] 혼테일은 2006년 9월 27일 나와서 1년 동안이나 격파되지 않다 2007년 8월 9일 데메토스 서버에서 최초 격파되었다.[17] 이그니션 업데이트 기준으로 보아도 250레벨을 고레벨로 쳐주던 것은 옛말이 된지 오래이며 260레벨 이상도 진정한 고렙으로 인정받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의 메이플은 200레벨은 말할 것도 없고 250레벨도 비교적 낮은 레벨로 취급받는 편이다.[18] 브랜디쉬의 타격범위는 다크나이트의 버스터, 팔라딘의 블래스터나 차블에 비해 근소한 차이지만 당시로서는 무시하기 힘든 조작 여건을 만들 정도로 우월했고, 화력마저 보스형 단일딜링으로 최상위 직업군의 70%에 달하는 딜링에 3마리 타겟을 보유했었다. 가장 핵심은 혼테일 격파전까지 사실상 등장하지 않은 마스터리북에 주 화력 스킬인 브랜과 어콤이 포함되지 않았다.[19] 현재 번개의신vv는 제니스 서버에 북극성길드에 있고 몇년 전부터 복귀해서 22년 기준으로 285레벨이 훌쩍 넘었다. 번개의신vv는 22년 11월에 큰 논란에 겪고있는 상태로 비호감들로 가득하며 오랜 시간 함께했던 길드까지 큰 배신을 했다. 2022년 7월 기준 올드 유저 중 283레벨의 사랑파이브와 함께 아직까지 플레이하는 빅뱅전 랭킹권 복귀유저이기도 하다.[20] 카루타 세트가 생기기전 여제 세트가 유명했었다. 당시 시그너스를 잡으려면 넘사벽이었다.[21] 계정을 길드마스터에게 양도한 것으로 보인다.[22] 빅뱅 전 가이드북 중 하나인 퀘스트탐정의 저자이다. 복귀 이후로도 한동안 컨셉 유지를 위해 3차 전직인 허밋에 머물러 있다가 2023년 8월 말 드디어 나이트로드를 달았다.[23] 이 시절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가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타락파워전사는 게임상에서 구걸을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게임을 제지하거나 혼내기는 커녕 오히려 게임을 하는 아들을 존중해 왔고, 이내 온 가족이 합심하여 아들의 캐릭터를 키워 갔다. 즉 소중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부성애가 키워 낸 캐릭터라는 것. 이러한 모습이 평소 타락파워전사의 신사적인 태도와 맞물려 타락파워전사는 250, 275레벨 최초 달성자와는 비견조차 되지 않는 전설이 될 수 있었다.[24] 2008년 3월 14일, GMS 최초로 200레벨을 달성한 유저이다. 아예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외형도 딴판.#[25] 이쪽도 마찬가지로 외형이 전혀 다르다. 외형은 페리온의 무기상인 리버와 비슷하게 생겼다. #[26] JMS에서는 堕落パワー戦士라는 이름으로 동일하게 존재하지만, GMS와 MSEA에서는 해당 국가의 200레벨 달성자로 캐릭터가 변경되어있다. CMS와 TMS에서는 각각 타락광전사 / 용기사로 번역되었지만, 캐릭터 이미지는 타락파워전사의 것이 아닌 별개의 것으로 쓴다.[27] NPC로 나온만큼 모험가 전사의 성우인 이호산이 맡는다.[28] 아시안느가 1위를 달리고 있을 때 타락파워전사는 5위권이었으며, 이후 번개의신vv와 지발돈좀 등의 유저들이 1위를 거쳤다.[29] 20대 후반이 되면서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는데, 랭킹 1위에 대한 정신적 압박이 심해 랭킹이 밀려나는 추한 꼴을 보느니 그냥 랭커인 모습 그대로 아예 캐릭터를 삭제했다고 한다.[30] 10대였던 카트황제 문호준 선수도 있었다.[31] 자세히 잘보면 털모자와 얼굴장식에 단풍잎 장식을 하고 있는 게 과거 타락파워전사의 코디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