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부세 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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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츠노미야 브렉스 No. 0
타부세 유타
Yuta Tabuse

(田臥 勇太)

출생
1980년 10월 5일 (43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신학교
브리검 영 대학교/하와이 캠퍼스
신장
175cm (5' 9")
체중
75kg (165 lbs)
포지션
포인트 가드
드래프트
2002 NBA 드래프트 언드래프트
소속팀
알바르크 도쿄 (2002~2003)
롱비치 잼 (2003~2004)
피닉스 선즈 (2004)
앨버커키 썬더버즈 (2005~2006)
베이커스필드 잼 (2006~2007)
애너하임 아스널 (2007~2008)
링크 도치기 브렉스 - 우츠노미야 브렉스 (2008~)

1. 개요
2. 농구선수 입성전
3. 농구선수 입성후
3.1. 모국 일본에서의 활약
3.2. 미국 시절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6. 기타




1. 개요[편집]


일본의 농구선수. NBA에 입단한 첫 일본 출신의 농구선수이기도 하다.


2. 농구선수 입성전[편집]


요코하마시에서 태어난 그는, 인기 스포츠인 야구나 축구보다는 농구에 더 흥미가 있어서 8살때부터 하기 시작했다.[1] 3학년 때는 소프트볼(당시 포지션은 포수)도 하기 시작해 시니어 리그로부터 권유도 있었지만, 중학교 진학과 동시에 다시 농구를 하기로 결정했다. 1995년 8월에 있었던 제25회 전국중학교 농구대회에 출전해 3위를 기록하였고, 베스트5에도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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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の9冠"を現実にした最強チーム。

"꿈의 9관"을 현실로 만든 최강의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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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후, 농구계의 명문고등학교인 아키타현립 노시로공업고등학교[2]로 진학한 타부세는 모든 경기를 스타팅멤버로 나가, 3년 연속으로 모든 타이틀을 제패해 사상 처음으로 9관을 달성하여 현역 고등학생으로써는 2명째가 되었다.

1998년에는 남자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3위를 기록하여 주니어 세계 선수권에 진출하였다. 1999년 1월에는 사상 첫 특별추천으로 그가 다니는 모교가 전일본 종합 선수권에도 나간 적이 있었다. 같은 해 3월에는 일본인으로써는 처음으로 나이키 후프 서밋에 출전하여 같은 해 7월에는 남자 주니어 세계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4위를 기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인 2000년에는 모국의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고 미국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되어 NCAA2부리그 소속의 브리검 영 대학교/하와이 캠퍼스로 입학하지만, 첫해는 학점 취득과 부상으로 인하여 출전하지 못했다. 2001년에는 "일본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소개가 되어 모든 경기를 선발로 나가 MVP에 선정되었고, 같은 해 8월에는 영맨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하여 11위를 기록하였으나 2002년에 대학을 중퇴했다.


3. 농구선수 입성후[편집]



3.1. 모국 일본에서의 활약[편집]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으로 귀국한 뒤, 토요타자동차 알바르크에 입단한다. 같은 해 11월 8일 니가타 알비렉스와의 경기에서 3쿼터부터 출전해 JBL 데뷔전을 치뤘다. 데뷔전에서 14분을 뛰며 8득점, 2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정규 시즌 21경기, 플레이오프 4경기에 출전해 시즌 113득점, 6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아이신세이키 아이신 시 호스[3]와의 결승전에서 82-85로 패하여 팀은 준우승하였으나 타부세는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팬들이 뽑은 올스타 투표에서 1위를 했다.


3.2. 미국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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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알바르크를 퇴단한 뒤, 같은 해 7월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NBA의 댈러스 매버릭스의 서머리그에 참가해 13분을 소화하였고 4.5득점, 1.7개의 리바운드, 1.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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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9월 27일에는 덴버 너기츠의 트레이닝 캠프에 참가해 프리 시즌을 3경기에 출전했지만, 정규 시즌 로스터에는합류하지 못하고 방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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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1월에는 ABA(미국 독립 프로리그)의 롱비치 잼과 계약을 하여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시카고 불스 등에서도 뛴 데니스 로드맨과 함께 플레이 해 18게임에 출전해 5.3득점과 2.4개의 리바운드 그리고 팀에서 가장 높은 6.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여 우승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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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내시가 타부세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2004년 9월 6일, 피닉스 선즈와 계약한 뒤 11월 1일에 열린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홈경기에서 정식으로 데뷔를 치르게 되어, 일본국적의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정규시즌에서 뛰게 되었다.[4] 이 경기에서 7득점과 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그 후 개막전을 포함해 4경기에 나갔으나(17분 소화, 7득점, 어시스트 3개), 12월 18일에 방출되어 ABA의 롱비치 잼과 다시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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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에는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 계약을 맺어 프리 시즌 7경기에 나갔지만, 시즌 개막전에 경험 부족을 이유로 방출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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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1월 3일에는 NBA D-리그의 앨버커키 썬더버드에 입단하여 34경기에 나가 평균 6.5득점과 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나, 시즌 후반에 부상을 당해 2006년 3월 16일에 방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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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에는 댈러스 매버릭스의 서머리그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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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에는 NBA D-리그의 베이커스필드 잼과 계약하여 13분 출전, 4득점과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다음해 11월에 로스터에서 빠지게 되었고, 2007년 12월 8일, D-리그의 애너하임 아스널로 이적하여 39경기를 나가 1.2득점과 2개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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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에는 뉴저지 네츠와 계약하여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개최된 서머리그에 참가하였으나, 계약도 하지 못한 채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탁월한 스피드와 패스센스가 장점이며, 시야와 점프 슛도 괜찮은 편. 일본인 최초로 세계 주니어 선발대회에 발탁되는 등, 일본인 선수중에서는 역대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토요타자동차 알바르크와 일본 농구 대표팀에서 함께 뛴 오리모 타케히코(折茂武彦)는[5]는 "유타는 필요한 곳에 패스를 주기 때문에, 다른 가드 선수와는 달리 전혀 다른 눈을 지니고 있다." 고 평가하고 있다.


5. 여담[편집]



당시 중학생이었던 타부세가 출연한 베넷세 코퍼레이션에서는 한때 뉴욕 닉스에서 뛰었고, 현재 샬럿 호네츠의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고 있는 패트릭 유잉과 함께 출연했다.


6. 기타[편집]


  • 당시 일본 대표였던 나카자와 유지[6]와 친분이 있는 타부세는 나카자와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은퇴를 표명했었을 때, 타부세의 농구를 향한 진지한 태도와 열정에 대한 감동을 받아 "난 이렇게 타고난 환경에서 뛰고 있는데, 뭘 하고 있는거지? 좀 더 도전해야해."라고 대표에 복귀를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 2004년 이노우에 작가가 그린 'Slam Dunk 10 days after' 에서, 재활교사가 강백호에게 "일본인 최초로 NBA 선수가 나왔다." 라고 알려주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선수는 바로 타부세 유타를 이야기한 것이다. 그 당시에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NBA 진출은 무리라고 쉽게 생각했기 때문에 강백호"무리라고 말하는 건 항상, 도전하지 않는 녀석들이지. 뭐, 두고 보라니까... 다음에 가는 건 나야." 라고 다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실제로 타부세 유타가 NBA에 입성했으니, 메타적인 요소도 포함한 대사다.

[1] 어머니가 고등학교 시절에 칸토대회까지 간 영향도 있어 하게 된 계기.[2] 유니폼을 보면 뭔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텐데 바로 만화 슬램덩크에서 산왕공고의 모티브로 유명한 학교로 실제로 수많은 우승을 거둔 농구명문 학교다.[3] 현 시 호스 미가와[4] 일본계 미국인이기도 한 와타루 미사카는 예외.[5] 1997년 FIBA 아시아컵 한국과의 결승전에서 2점 차로 지던 후반 종료 직전에 유도해낸 자유투 2개를 모두 실패,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에게 마지막 아시아컵 우승을 선사한 분이다.[6] 현재 J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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