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라노 토모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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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aira_no_Tomomori.jpg

平知盛
1152년 ~ 1185년

1. 개요
2. 대중매체에서
2.1. 머나먼 시공 속에서 3의 등장인물



1. 개요[편집]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4남. 어릴 적부터 아버지 키요모리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며,[1] 겐페이 전쟁기에는 헤이케의 동량 자리를 이은 용렬한 형 무네모리를 대신해 동생 시게히라(重衡)[2]와 함께 사실상 헤이케를 이끌다시피 했다.

성격도 시원시원했는지 1160년에 무사시노쿠니(武蔵國)의 카미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이곳이 헤이케의 지행국(知行國)이기는 했지만 과거에는 카와치 겐지의 세력권에 있었던 곳으로 헤이케에 대한 감정이 결코 좋지는 않은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시노카미로 8년을 재임하고 다시 1180년에 무사시의 지행국주(知行國主)를 맡으면서 무사시노쿠니 안에 많은 헤이케 세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비유하자면 여당 지도부 요인이 야당 텃밭 지역에서 지지층을 얻은 셈이다.

단노우라 해전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자신의 어머니 니이노아마에게 "우리 일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되겠습니다."라고 하고는 다시 자신의 아내 및 일문의 여성들에게 "쓸데없는 것일랑 다 갖다 치워 버리십시오. 여러분은 이제 그 진기한 아즈마(東) 사나이를 보시게 될 테니!" 라며 배 곳곳을 돌며 청소를 했다. 그리고 갑옷 두 개를 겹쳐 입고 "보아야 할 것은 모두 보았다(見るべき程の事をば見つ)"는 말을 남긴 뒤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이렇게 보면 인생사 한 점 티끌 없는 무결점의 용장 같지만, 이치노타니 전투 패전 후 튀다가 겐지 적병을 다수 만나는데, 이때 15살 난 아들 토모아키라가 아빠 살리겠다고 적장을 끌어안고 뒹굴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냉큼 튀어버린 전적이 있다(...). 나중에서야 세상 다시 없는 못난 아비라며 부끄럽다고 징징 짜면서 무능하지만 아들 버린 적은 없는무네모리한테 위로받는다.


2. 대중매체에서[편집]


겐페이 전쟁을 다룬 매체에서도 시게모리, 키요모리 사후 다 쓰러져 가는 헤이케 일문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로 묘사되는 경우가 잦다.

파일:平知盛.jpg
100만인의 신장의 야망

100만인의 신장의 야망에선 특전무장으로 등장.

2005년 NHK에서 방영된 사극 요시츠네에서는 아베 히로시가 맡았다. 키요모리 사후 헤이케 세력이 겐지의 거병으로 거듭 패하고 쇠약해지는 가운데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의 군대가 쿄토 코앞까지 들이닥친 상황에서 일단은 헤이케 일문의 본거지인 서쪽으로 낙향해 힘을 회복한 뒤에 다시 쿄토로 돌아오기로 하자며 헤이케 일문의 서쪽 낙향을 진언하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인다. 요리토모와의 대립으로 궁지에 몰려 배를 타고 서쪽으로 향한 요시츠네 일행 앞에 원혼으로 등장해 "서국의 바다는 헤이케의 것. 네놈한테 넘겨줄 것 같으냐? 한 놈도 남김없이 바다 밑으로 끌어내려 주마"라며 풍랑이 이는 바다 위에서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원래는 승려였던 무사시보 벤케이가 계속해서 불경을 읽는 바람에 고통스러워 하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풍랑은 그치지 않고 요시츠네가 탄 배는 표류해 결국 요시츠네 일행은 뿔뿔이 흩어지고, 서쪽으로 가려던 계획은 실패한다. 작중 양식이 충분하지 못하면 전쟁을 할 수 없다는 말에 "곡식이 없으면 들판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하면서 싸우면 되지 않느냐"고 대답하는 무네모리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전쟁터를 겪어 보신 적이 없으니 굶주림이라는 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아실 턱이 없죠"라고 일갈한다거나, 쿄토를 떠나 후쿠하라로 낙향한 뒤 헤이케 일문이 자기 위안을 위해 마련한 연회에서 빠져나와 "오늘 연회에서 우리 일문 사람 모두 악기를 잘 다루는 것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헤이케는 어느새 무가(武家)가 아니라, 귀족이 되어 있었구나."라며 뼈저린 탄식을 하는 것은 명장면.

만화 차나왕 요시츠네에서는 첫 등장 장면에서 키요모리가 대놓고 "우리 가문에서 무예는 네가 제일이지, 토모모리"라고 인정할 정도. 요리토모의 거병에 맞서 요리토모를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던 조카 코레모리[3]가 후지 강 전투에서 물새 소리에 놀라 정신줄을 놓고 전쟁이고 뭐고 내던지고 도망쳐 오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키요모리가 진노해 유배형에 처하려는 것을 말리면서, 앞서 코레모리를 보좌하기 위해 함께 보냈던 케닌 이토 타다키요가 이미 열다섯 나이에 스즈카 산의 도적을 직접 베어죽였던 담이 큰 사람이라며 "그런 사람이 설마 그까짓 물새 소리 때문에 퇴각을 결정했겠느냐"며 적극 변호해, 간신히 유배형에 처해지는 것은 막는다.

요시츠네가 쿄토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키요모리를 만나야겠다며 가신의 만류도 뿌리치고 무작정 키요모리의 처소로 쳐들어가려 대드는 사촌 동생 노리츠네를 힘으로 제압하고 "아버님이 쓰러지셨다"며 일갈해서 진정시킨다. 이치노타니 전투에서 아들 토모아키라를 잃고 눈이 뒤집혀 초점 없는 눈이 되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죽여버리겠다고 벼르면서 노리츠네와 함께 겐지측 무사들을 마구 죽이고 다니는데, 비쩍 말라 광대뼈가 드러나고 눈이 초점이 없는 것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섬뜩하게 변했다. 포로로 잡힌 시게히라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헤이케가 안토쿠 천황과 함께 가져간 삼종신기를 돌려달라는 법황의 요구에도 "삼종신기를 돌려줘 봤자 시게히라의 목숨은 구명할 수 없다"며 삼종신기를 돌려주는 것을 거절하고, 법황이 보낸 사자에게 "먼 길 오신 분을 맨손으로 돌려 보낼 수 있나"면서 얼굴에다 말에게 찍는 낙인을 찍어버린다.

단노우라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며 분전하다가 요시츠네를 맡고 있던 노리츠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마지막 희망이 무너졌는가라며 좌절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그때서야 아들 토모아키라가 죽기 전의 생기 있는 눈으로 돌아온다. 어머니 니이노아마와 여동생 토쿠코가 있는 배로 들어와서 전황을 묻는 니이노아마의 물음에 역사대로 "이제 곧 그 진기한 관동 남자를 보실 수 있겠군요."라 대답한다. 헤이케 무사들에게 "이제 우리 헤이케 일문은 끝났으니 너희는 더 이상 우리 일문을 위해 부질없이 목숨을 버릴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는 너희의 살 길을 찾아 가도록 해라. 하지만 너희야말로 진정한 일당백의 헤이케의 용사들이다. 지금까지 우리 일문을 위해 잘 싸워줬고 또 이렇게 남아 싸워 줘서 고맙다."라며 감사를 표한다. 여기서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함성 소리로 화답하는 것은 명장면이다. 그리고 아들 토모아키라를 죽게 한 원수 요시츠네에게는 자신의 혼신을 담아서 마지막 화살 한 발을 쏘아 요시츠네의 갑옷을 맞히고(그때 요시츠네가 입은 오슈의 갑옷 때문에 죽이지는 못했다) "이걸로 용서해다오. 토모아키라..."라고 씁쓸하게 중얼거린 뒤, 헤이케 병사들이 도주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여기 헤이케의 무장 토모모리가 있으니 와서 나를 잡아 공을 세워봐라."라며 겐지 무사들의 눈길을 끈다. 배 위에서 겐지 무사들을 베어 넘기다 역사대로 커다란 을 집어들고, "가서 요리모토한테 전해라. 오늘 이렇게 사라지는 이 모습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고. 조만간 너희 겐지도 똑같이 재가 되어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 날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 뒤, 정토(淨土)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바다로 뛰어든다.

수라의 각에서는 요시츠네편의 주요 적장으로 등장한다. 날카로운 인상의 지장으로 등장하며 유약한 무네모리 대신 헤이케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묘사된다. 역사대로의 행적을 밟다가 결국 단노우라 해전에서 패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한다. 여기서의 유언은 "해가 가라앉는구나. 헤이케와 함께..."


2.1. 머나먼 시공 속에서 3의 등장인물[편집]


1을 모델로 한 머나먼 시공 속에서 3의 등장인물. 성우는 하마다 켄지[4].

생일은 9월 23일, 나이는 25세, 혈액형은 B형, 키는 183cm. 무기는 쌍검, 속성은 금. 상징물은 붉은 양귀비. 이미지 컬러는 쇼죠히(猩々緋. 황색을 띤 심홍색). 팬들 사이의 애칭은 '치모링'.

주인공(카스가 노조미)과는 적대하는 헤이케 측의 장수. 카에리나이후 타이라노 시게모리와 함께 헤이케 군을 이끌고 있다. 싸울 때 느끼는 고양감을 좋아하며, 주인공의 싸우는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전투광만은 아니고 춤에도 능숙하다.

전투시에는 상당히 호전적이지만 평상시에는 나른한 분위기를 풍긴다. 옷도 한쪽 소매를 넣지 않는 등 흐트러진 복장을 하고 있다. 동생 시게히라의 발언으로 미루어 추측하건대 여성을 꼬셔놓고 잊어버리는 일도 있는 듯.

공략 불가 캐릭터였으나 많은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확장팩인 이자요이키에서는 숨겨진 공략 캐릭터로 격상. 사실 본편에서 선택지가 있는 등 마치 공략 캐릭터 같은 뉘앙스를 풍겨서 일부 팬들은 확장팩에서 공략 가능 캐릭터 되는 거 아니냐는 추측도 했었다.

힌트도 많고 키즈나 등 정보를 직접 볼 수 있어 공략이 편한 다른 공략 캐릭터와는 달리 숨겨진 공략 캐릭터라 정보도 볼 수 없어 상당히 공략이 어렵다. 거기다 성격이 약간 비틀려서 더 싸우고 싶다느니 전투적인 선택지를 고르면 호감도가 올라가고, 일반적인 오토메 게임의 선택지, 즉 착한 선택지를 고르면 호감도가 떨어진다.

하루카 3의 수위를 책임지는 캐릭터로 엔딩이 굉장히 의미심장해서 성인 유저들에게 '애프터 아니냐'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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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루트에서는 단노우라 전투에서 주인공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 뒤 패배하고 '보아야 할 것은 모두 보았다'는 유언을 남긴 채 바다에 뛰어든다. 히라이즈미 루트에서는 약간 바뀌어 무녀와 만나 만족한 뒤 바다에 뛰어드는 스틸이 추가되었다. 이 최후의 결전에서 헤이케 측을 선택하는 선택지가 있는데, 이 선택지를 고르면 무녀는 팔엽을 다 죽이고 토모모리의 손에 죽는다. 혹시 있을지 모를 토모모리 배드 엔딩을 기대하고 이 선택지를 고른 유저들은 충공그깽.

히라이즈미에서 만날 수 있는 시로가네가 그와 꼭 닮았고 성우도 같아서 발매 전에는 바다에 빠진 토모모리가 기억을 잃은 거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사실은 형제라서 닮은 것일 뿐이었다. 거기다 직접 플레이해보면 시로가네와 토모모리는 명백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운명의 미궁에서는 공략이 불가능하지만 전용 이벤트가 있다. 이자요이키에서 토모모리를 공략한 세이브 데이터가 있다면 운명의 미궁에서 데이터 계승을 하면 볼 수 있다. 즉 전작이 있어야 볼 수 있는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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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키요모리의 장남이자 이복 형인 시게모리는 키요모리와 고시라카와 텐노 사이에 끼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고, 그나마도 요절했다. 무네모리는 시게모리 사후 '토료(棟梁, 동량)'로서 헤이케 일문을 이끌었지만 아버지만큼의 역량을 갖지 못해 결국 헤이케 일문을 멸망으로 내몬 용렬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2] 토다이지(東大寺, 동대사)와 코후쿠지(興福寺, 흥복사)를 불사른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로 이치노타니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고 나라로 호송되어 자신이 불태웠던 코후쿠지 승병들에게 넘겨져 처형당했다. 이렇게 보면 우락부락한 헤이케 악당 1 같지만 모란 꽃에 비유되는 수려한 용모와 교양으로 유명했으며 나름의 불심도 갖췄던 인물로, 전투 중 뜻하지 않게 고찰들을 마구 불태우게 된 것에 일찍부터 PTSD에 시달린다. 헤이케 멸망기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앞에 끝려와서도 다 업보라며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깨끗한 모습을 보이는데, 요리토모도 이를 인상적으로 여기지만 요리토모 개인의 원수가 아니고 조정과 종교계의 원수라 그 개인이 처우를 결정할 수 없었고, 결국 승병들에게 넘겨진다.[3] 시게모리의 아들이므로 토모모리에게는 조카가 된다.[4] 시로가네와 1인2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