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리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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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리 사토시
田尻 智 | Satoshi Taj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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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5년 8월 28일 (58세)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1]
국적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직업
게임 개발자
직책
게임 프리크 대표이사 사장
소속
게임 프리크 (1989년 ~ 현재)

1. 개요
2. 생애
2.1. 유년기
2.2. 청소년기
2.3. 게임 프리크 창립 이후
3. 여담
4. 관련링크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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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우스 관련 인터뷰에서의 타지리 사토시(중앙)[2]
스기모리 켄(우)과 엔도 마사노부(좌)의 모습도 보인다.

주식회사 게임 프리크의 사장이자 포켓몬스터의 아버지로 유명한 게임 개발자다. 포켓몬스터 1세대와 2세대의 디렉터를 맡아 게임 개발을 총괄하였다.

개발자가 되기 이전에는 라이터였는데, 이런 경험 덕분인지 포켓몬스터 1세대의 시나리오는 그가 총괄 집필하였다.


2. 생애[편집]



2.1. 유년기[편집]




타지리 사토시: 어떻게 포켓몬은 탄생했는가 - Did You Know Gaming
그는 동네의 들판과 호수, 숲을 돌아다니며 곤충을 모으는 것을 취미로 삼았는데, 수집 뿐만 아니라 직접 사육과 관찰, 연구까지 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그가 살고 있던 마치다 시가 재개발로 인해 도시화되기 시작하면서 그가 좋아했던 곤충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자연히 그의 취미 생활도 끝나게 되었다.


2.2. 청소년기[편집]


중학생 때는 오락실에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해본 것을 계기로 비디오 게임이라는 새로운 취미에 빠져들게 된다. 중고서점에서 저렴한 참고서를 사고 남은 돈으로 게임을 했으며,일본의 모 다큐에서 언급하길 1백엔으로 2시간 이상 게임을 하다 돌아가던 것으로 유명했다. 하이 스코어 랭킹에 꾸준히 이름이 올랐고, 덕분에 게임 매니아들 사이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중학교 졸업 후엔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고등전문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1983년, 자신이 그동안 연구해온 비디오 게임들의 공략을 담은 잡지 '게임 프리크'를 만드는데, 이 잡지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된다. 이때 제비우스를 공략한 동인지는 엄청난 주문이 들어와 부모님,여동생과 함께 하나하나 택배 포장을 했다고 한다.

2.3. 게임 프리크 창립 이후[편집]


고등전문학교 졸업 후에는 게임 라이터(칼럼니스트)로서 각종 게임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다가 당시 후지 테레비 산하의 영상 프로덕션의 디자이너였던 이시하라 츠네카즈와 인연이 닿게 된다. 당시 이시하라는 '게임을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타지리 사토시는 '제비우스'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생겨나고, 본인이 어떻게 플레이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등 게임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했고, 이시하라는 타지리를 게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타지리는 이시하라가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줬던 유일한 어른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게임 프리크 잡지를 통해 만난 동료들과 함께 인디 게임 '퀸티'(북미판 Mendel Palace)를 만들어 남코(북미에서는 허드슨)를 통해 발매하면서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퀸티 판매로 얻은 인세를 바탕으로 1989년에 주식회사 게임 프리크를 설립한다.

게임 프리크를 설립한 이후 타지리 사토시는 유년 시절 곤충 채집에서 얻은 지식과 게임에서 얻은 영감, 그리고 스스로 게임을 만들면서 쌓은 노하우를 총결집하여 새로운 게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기본 컨셉은 '내가 어렸을 때 채집한 곤충/동물들을 전자 게임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였다. 이 시기에 이시하라 츠네카즈이토이 시게사토가 설립한 APE(현 크리쳐즈)에 입사하고, 그는 이시하라와의 인연으로 APE에다 새로운 게임에 대한 기획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APE에게 개발비를 지원받아 게임 프리크의 명의로 게임을 개발하게 되는데, 그 결과 탄생한 게임이 바로 포켓몬스터이다.[3]

원래 포켓몬스터는 1990년에 새로운 콘솔인 게임보이용으로 개발이 시작되어서 1991년에 발매하기로 예정되었으나, 당초 기획보다 더 많은 아이디어를 계속 추가하면서 개발기간이 길어졌고, 개발자들 간의 트러블에 의하여 몇몇 개발자는 퇴사를 하는 등, 언제 개발이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게임 프리크는 벤처기업에 불과했기에 중간에 제작비가 동나기도 했고, 개발 경험도 부족해서 말 그대로 개발지옥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개발 시작 반 년만에 프로듀서인 이시하라 츠네카즈로부터 개발비도 벌 겸 게임 개발 경험을 쌓고 다시 포켓몬스터를 개발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되고 닌텐도로부터 하청을 받아 게임을 개발하면서 장기간 개발이 중단되었다. 이 시기에 제작된 게임은 요시의 알과 마리오 & 와리오였다. 타지리 사토시는 이 때의 제작 경험이 재정적으로나 향후 포켓몬스터를 제작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으며, 특히 요시의 알은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어 본인들의 게임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을 기쁘게 여겼다고 말했다.

그렇게 경험을 쌓은 뒤에 포켓몬스터를 다시 개발할 때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었는데, 특히 개발 말기인 1995년에는 많은 스태프들을 일일이 다 관리하는 한편 본인이 게임 개발에 관여하는 등 경영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서 이시하라 츠네카즈가 새로 설립할 예정인 크리쳐즈와 합병하는 것도 고민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이 10대 때부터 함께 해온 게임 프리크의 정체성이 없어지는 것과 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결국 게임 프리크 단독으로 끝까지 가기로 한다. 그렇게 6년 뒤인 1996년 2월, 1990년 당시엔 새로운 콘솔이였던 게임보이가 끝내 단종되기 직전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이 발매되었다.[4]

이후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시리즈 3위가 되기에 이른다.[5] 그래서인지 '아이가 너무 놀기만 한다고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는 사회의 의견에 그는 '내가 어렸을 때 열심히 놀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포켓몬스터는 전세계로 수출되고 있다'는 내용의 반박성 글을 한 어린이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 ###

포켓몬을 몬스터볼로 잡는다는 아이디어는 울트라 세븐캡슐괴수[6]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괴수들의 진화 패턴을 보고 포켓몬의 진화를 생각해내기도 했다고 한다. 해일괴수 시고라스코뿌리를 한번 비교해보자.[7] 코뿌리는 항목을 참조해도 알겠지만 최초로 개발된 포켓몬이기도 하다.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사토시의 이름은 타지리 사토시의 이름을 따 와서 지어진 것이며,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토시는 어릴 적 자신의 분신이라고 답했으니 사실상 오너캐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 한국명 "지우" 또한 智(지) 자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포켓몬스터 금·은 이후로는 개발 현장에서 한 발 물러나 게임 프리크의 사장으로서 경영에만 집중하고 있다.[8] 실제로도 본인은 그저 게임을 개발하는 게임 개발자일 뿐이라 게임 프리크에만 집중하고 싶고, 본인이 애니메이션이나 카드 게임 제작에 관여를 한다면 원작에 더 가까워지겠지만 원작과는 똑같이 갈 필요는 없다면서 다른 분야의 스태프들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현재 포켓몬스터 관련으로 주로 얼굴을 내비치는 사람은 주식회사 포켓몬의 CEO인 이시하라 츠네카즈이며, 이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3. 여담[편집]


  • 스기모리 켄마스다 준이치와는 친구이자 동업자 관계이다. 스기모리는 18세 부터, 마스다는 20세 부터 친구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 일부 웹 사이트나 언론에서는 그를 아스퍼거 증후군을 극복한 인물로 소개하곤 하는데, 이는 출처 불명의 소문이다. 본인이나 주변인들의 공식적인 언급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현재 위키피디아에서는 근거 부족이라 하여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다는 서술이 삭제된 상황이다.

  • 여담으로 위 사진에 나온 저 모습을 보면 본인이 제작한 시리즈의 게임에서 등장하는 아크로마를 닮았다. 글고 옷 입은 거랑 안경 쓴게 이 분 닮았다

  • 2018년에 쇼가쿠칸에서 그의 전기 만화를 출간했다. 제목은 '포켓몬을 만든 남자 타지리 사토시'. 이 책은 한국에서도 '포켓몬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4. 관련링크[편집]


  • 위키백과 - 타지리 사토시
  • 네이버캐스트 포켓몬스터
  • 특별 대담 타지리 사토시 vs 이시하라 츠네카즈 (일본어) (전편) (후편)[9]
  • 타지리 사토시 게임 콜렉션(상편) / (하편)[10]
  • 게임센터 CX - 포켓몬을 만든 남자 타지리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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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마치다시로 이사했고,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모두 마치다 시에서 보냈다. [2] 가장 최근(2016년)의 모습이다.[3] 그래서 이 게임을 만들 때 닌텐도 게임 마더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 드래곤 퀘스트는 말할 것도 없다.[4] 자신은 포켓몬스터가 마침내 완성되었을 당시에도 닌텐도 측에서 게임의 출시를 거절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아웃될 것을 이미 알면서도 2루로 슬라이딩하는 야구선수와 같은 심정이었는데 운 좋게 세이프 처리가 되었다고. #[5] 마리오 전체 시리즈를 합친다면 1위 마리오, 2위 테트리스, 단 마리오 전체가 아닌 게임 시리즈로 볼 경우 테트리스가 1위를 하고 슈퍼 마리오 시리즈가 2위를 기록한다. 그리고 닌텐도 내에서 2위라는 것을 의식하는지 초대 라이벌 시게루의 이름은 미야모토 시게루에게서 따왔다. 그리고 그 역시 초창기에 마리오 시리즈 게임을 제작했는데, NES판 퍼즐 게임인 "요시"와 "마리오&와리오"가 그것이다.[6] 울트라 세븐의 주인공 모로보시 단은 위기의 순간에 캡슐에서 괴수를 꺼내 시간벌기 등의 서포트 용으로 사용한다.[7] 어찌보면 마기라스, 삼삼드래, 불카모스 같은 괴수가 모티브가 된 포켓몬의 등장은 이미 예정된 건지도…[8] 디렉터에서 물러난 이후 타지리 사토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관여한 게임은 본인이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1세대의 리메이크작인 포켓몬스터 파이어레드·리프그린뿐이다. 다만 이조차도 메인 시나리오 라이터는 사토 히토미라고 나오기 때문에 원작자로서 감수 정도만 맡은 듯.[9] 2000년에 진행한 인터뷰이며, 타지리 사토시가 참여한 몇 안되는 인터뷰다.[10] 1987년을 전후로 후지 TV에서 방영한 VHS 비디오 채널의 장면 중 하나로 게임 라이터 시절에 나왔다. 영상 속의 게임은 리턴 오브 더 인베이더(타이토), 신입사원 토오루군(코나미), Mr.Do 시리즈(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 미사일 커맨드(아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