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쿠앙 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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沢庵宗彭
1573년 ~ 1645년

1. 소개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3.1. 배가본드


1. 소개[편집]


일본 전국시대에도 시대 초기의 인물이자, 린자이지(臨濟宗)의 승려. 요리연구가로 유명하며, 단무지를 부르는 일본어 타쿠앙이 그의 이름에서 나왔고 한국에도 중장년층 이상은 단무지를 변형된 발음 '다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2. 생애[편집]


무사 집안에서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10살에 불문에 들어가 죠도슈(浄土宗)의 쇼넨지(唱念寺)에 수행하였다.

14살 때 쇼후쿠지(勝福寺)로 옮겨서 수행하였으며, 1594년에 이시다 미츠나리가 세운 산겐인(三玄院)에서 소호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다이안지(大安寺)로 가서 몬사이 토닌(文西洞仁)에게는 유교한시, 호소카와 유사이(細川幽斎)에게는 와카를 배웠다.

1604년에 호인 타쿠앙을 받았으며, 1609년에는 고미즈노오 덴노의 명으로 다이토쿠지(大徳寺)의 153대 주지가 되었다. 1613년에 덴노가 고승에게 자주색의 법의인 시에를 입도록 허가하였으며, 1627년에 막부에서 막부와 상담하지 않고 공인했다는 이유로 취소하는 시에 사건(자의 사건)이 일어나 이에 반발했다가 데와국(出羽国) 카미노야마(上山)로 귀양을 갔다.[1]

1632년에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사망으로 특사가 내려지자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교토에 들어가는 것이 즉시 허용되지 않았다가 1634년에 야규 무네노리의 중개로 도쿠가와 이에미츠를 만나게 되어 그의 신임을 받게 된다.

1639년에 키타시나가와에 이에미츠가 도카이지(東海寺)를 세워 맞아들이자 도카이지의 주지가 되었으며, 1645년 12월에 꿈(夢)이라는 한 글자를 남기고 사망했다고 한다.

일본의 작가인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인 미야모토 무사시에는 무사시와 만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만난 적이 없으며, 이는 요시카와의 창작이라고 한다. 오히려 야규 무네노리와 교류가 많았다.

단무지를 처음 고안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에미츠가 토카이지에 방문하자 식사를 대접하는중 쇼군이 매일 산해진미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담백한 것에 맛을 느낄 것이라 생각하여 타쿠와에즈케라는 무절임을 대접했다. 쌀겨와 소금에 절인 무절임인 타쿠와에즈케를 먹은 이에미츠가 맛있다면서 타쿠와에즈케를 선사의 이름을 따서 타쿠앙즈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2]

그외에 쇼군대접설에 비하면 마이너하지만 병사들에게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줄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개발했다는 설도 있다.

그의 저서로는 타쿠앙 화상 법어, 부동지신묘록, 태아기, 이기차별론, 명암쌍쌍집, 도카이(동해)야화, 안심법문, 가마쿠라기, 영롱집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부동지신묘록은 이에미츠를 위해 무네노리의 부탁으로 검(劍)과 선(禪)에 대해 해설한 무학서이며, 오늘날까지도 검도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3.1. 배가본드[편집]


살생만 벌이는, 수라와 같은 인생이 정녕 네 바람이냐, 다케조?

아니야, 너는 그러라고 태어난 것이 아니야.

고목에서 다케조를 풀어준 이후


'사람이 저마다 살아가는 길은, 하늘에 의해 완벽하게 정해져 있고, 그렇기에 완전히 자유롭다. 자신의 뿌리를 하늘에 맡겨놓은 한은...'

요시오카 일문과의 결투 이후의 미야모토 무사시와의 대화 중


배가본드에 등장하는 승려 캐릭터. 본명은 타쿠앙 소호.

일본 오카야마 현(懸) 미야모토 마을에 있는 사찰인 칠보사(七寶寺)의 주지승이자 히메지 성의 성주(城主)인 이케다 테루마사의 친우(親友)로 성주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칠보사에서도 대승(大僧)으로 알려진 승려이다.

배가본드에서는 2권 초반 신멘 타케조가 미야모토 마을 사람들과 관군들에 의해 추적을 받고 도망치던 중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으며 어찌 된 일인지 신멘 타케조를 무서워하기보다는 그를 아는 자인양 친하게 대하듯 싶다가 나중에는 오츠를 데리고 오게 되더니 신멘 타케조를 붙잡아 마을로 데려오게 되어서 칠보사 고목(古木)에 매달아 놓게 된다.

신멘 타케조에게 처음으로 삶을 제대로 일깨워주었던 장본인이며 그에게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이름으로 개명시켜준 것도 바로 이 사람이다. 미야모토라는 성씨는 고향인 미야모토 마을의 미야모토에서 본따왔는데 고향을 가슴과 마음에 품고 살아가라는 뜻에서 지은 성씨라고 한다.

체격이 커보이고 승려임에도 대머리이긴 하지만 머리털이 나있는 것이 특징이며 나중에 미야모토 무사시와 만나게 되었을 때는 머리털이 자라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배가본드 2권 당시 관군의 수장으로 나왔던 아오키에게 겁도 없이 시비를 걸어대며 그의 성질을 건드리게 되면서 팔목을 칼에 베이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호쾌하게 웃어대는 대인배적(?) 모습도 보였다. 결국 아오키도 처음에는 건방진 중놈 자식이 관군의 수장을 능멸하느냐는 식으로 덤벼들었다가 나중에 그가 히메지 성주의 친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제서야 오해를 풀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였다고 한다.

사사키 코지로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에도 등장하며, 여기서는 아직 어리고 칼을 무서워 하지 않는 그에게 경고의 의미로 팔을 그어준다.[3]

작중 딱히 무력을 과시하는 장면은 없지만 여러모로 비범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에 매달린 무사시를 베려던 츠지카제 고헤이의 배후에 나타나 응시하는데, 겁 없이 사람을 죽이는 츠지카제 고헤이가 쫄아서 제풀에 물러날 정도의 기세를 보여줬다. '칼이 있었으면 분명 베였을 거다'라고 생각했을 정도. 하지만 무사시에게 한번 싸워 보자고 권하자 무사시가 '관두쇼 힘조절 못하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고 일축하는 것을 보면 무력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오츠의 이름을 꺼내 무사시를 동요시킨 뒤 대갈통을 후려쳤다 실전이었다면 즉사다 요놈아 그렇지만 무사시 역시 타쿠앙을 비범하게 보는지, 시시도 바이켄과의 승부에서도 타쿠앙의 '전체를 보라'는 가르침을 되새기며 승리를 거둔다. 무사시 자신이 바닥에 튀어나온 못을 밟고 발에 큰 상처를 입을 때도 넋이 빠진 자신을 나무라며 '타쿠앙이라면 밟았더라도 다치지 않았을 거다'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이건 전투력 문제라기보다 항상 정신적으로 경지에 올라 있어 무사시처럼 방심해 몸에 기가 빠지는 일이 없었을 거라는 추측이긴 하지만, 이 만화에서 무력과 정신력이 같이 가는 스탯임을 감안하면 정신적으로 경지에 오른 타쿠앙 역시 의외로 한가락 하는 자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친구만 해도 아규 무네노리고, 위의 아오키에게 팔을 베이는 일화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허리가 빠져 있으니까 살가죽에 생채기만 내고 만 게지 이 사람아' 하고 조롱하는 걸 보면 날붙이가 낯선 것도 아닌 모양이다.

[1] 덴노제를 비판하는 카리야 테츠의 만화 일본인과 천황에서 막부가 덴노를 허수아비로 취급한 사례로 이 사건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2] 이것과 밑에 만화 덕에 한국 드라마 MBC판 일지매에 타쿠앙 대사가 미야모토 무사시와 함께 등장한다. 배우는 야인시대 이승만으로 유명한 권성덕 옹. 주먹밥을 반찬없이 먹는 일지매 옆에 슬쩍 나타나 자신이 개발한 단무지를 얹어주고, 뒤이어 따라온 무사시와(황정리가 분했다.) 함께 자기 갈길 가는 역.[3] 이때의 대사 : 그 검은 너를 살리는구나. 그러나.. 너를 죽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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