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티야나 타라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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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유니버시아드 피겨 스케이팅 페어 챔피언
파일:FISU 로고.svg

파일:소련 국기.svg 타티야나 타라소바 / 게오르기 프로스쿠린
(1966)


파일:체코 국기.svg 보훈카 스람코바 / 잔 스라멕
(1968)



파일:타티아나 타라소바.jpg

이름
타티야나 아나톨리예브나 타라소바
Татья́на Анато́льевна Тара́сова
Tatiana Anatolievna Tarasova
국적
[[러시아|

러시아
display: none; display: 러시아"
행정구
]]

출생
1947년 2월 13일 (77세)
종목
피겨 스케이팅
은퇴
1966년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브콘탁테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3. 코치 및 안무가 경력
3.1. 前 제자 아사다 마오
4. 김연아와의 악연
5. 수상 기록
6. 기타



1. 개요[편집]


러시아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 코치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배출한 지도자로, 타라소바의 지도를 받은 선수들이 획득한 금메달만 굉장히 많다.

2. 선수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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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코치였던 아버지 아나톨리 타라소프[1]의 권유로 5살 때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당시 타라소바는 페어 선수였고 게오르기 프로스쿠린이라는 선수와 팀을 이루어[2] 2번의 소련선수권에서 각각 3위와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1회 우승한 것을 제외하면 국제 대회 입상은 없었고, 18세에 부상으로 인해 은퇴했다.

3. 코치 및 안무가 경력[편집]


예카테리나 고르데예바 / 세르게이 그린코프, 옥사나 그리슈크 / 예브게니 플라토프, 일리야 쿨릭, 알렉세이 야구딘 등 수 많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유럽선수권 금메달리스트를 길러냈다. 그녀의 제자들이 따낸 올림픽, 세계선수권, 유럽선수권 금메달이 40개가 넘는다고 한다. 러시아 선수들 외에 미셸 콴, 에반 라이사첵 등 다른 나라의 많은 선수들에게 안무를 짜주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아사다 마오의 전 코치로도 유명하다.

1990년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선수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가[3]2006년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다.

코치로 활동하던 시절 안무가도 병행했으며, 기술적인 요소보다는 표현력으로 유명했다. 이는 알렉세이 야구딘, 아라카와 시즈카를 통해 알 수 있는데, 기술 요소들은 완성되어 있었으나 표현력 및 안무 해석이 떨어져 프로그램이 밍밍해보이는 선수들에게 화룡점정을 찍어주었다. 그녀가 짠 유명한 유명한 프로그램들로는 명작으로는 윈터(알렉세이 야구딘 2001-02 쇼트 프로그램), 말라게냐(사샤 코헨 2002~04 쇼트 프로그램), 메모리얼 레퀴엠(옥사나 그리슈크 / 예브게니 플라토프 1997-98 프리 댄스) 등 굉장히 많다. 그녀의 안무에 쓰이는 곡이 대체로 난해하였고 당시에는 생소했던 동작들이 많아 선수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많았다. 선수를 대하는 방식은 강압적이고도 일방적이였으며, 아라카와 시즈카가 올림픽 직전 니콜라이 모로조프로 코치를 변경한 것도 타라소바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타라소바가 페어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싱글, 페어, 아이스 댄싱 모두를 지도할 수 있었고[4] 여자 싱글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냈다. 하지만 여자 싱글의 경우, 대표적인 제자가 없었기에 마지막 여자 싱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제자 배출을 목표로 아사다 마오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3.1. 前 제자 아사다 마오[편집]


그러나 워낙에 코칭에 간섭이 많던 일본 연맹 탓에 타라소바는 컨설턴트에 불과했으며 대체로 안무만 짜주고 대회를 앞두고 만나 협력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제자의 뺨을 후려칠 정도의 무서운 코치라 할지라도 아사다가 자신의 마음대로 안무를 바꾸든 말든, 안무를 제대로 구사하든 말든 간에 별다른 제제를 하지 않았다. 많은 비난을 받았던 2009-10 시즌 프리 프로그램(모스크바의 종)의 전주곡만 하더라도, 타라소바가 계획한 안무와 실제로 아사다가 구사하는 안무가 많이 달랐다.[5] 이는 아사다의 곡 해석 능력이 나쁘다는 뜻이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2008~10 시즌 쇼트 프로그램인 가면무도회 또한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당시 아사다에게 시급했던 것은 점프의 기초였으나, 타라소바는 점프 전문가가 아니었고 점프 문제를 올림픽을 앞두고 개선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몸을 가볍게 유지하여 트리플 악셀 횟수를 늘려 기초점을 높이거나, 안무가 더 형편이 없어지더라도 일부 트랜지션과 스텝을 빼서 여유를 남기게 하는 등의 지도 방식으로 일본 팬들 내에선 비난이 쇄도했다.

아사다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 중 하나인 2010 세계선수권을 앞두고는 거의 코칭을 하지 않았다. 아사다가 2010년 이후 일본 코치의 지도를 받고 안무만 따로 타라소바에게 요청한 것을 보면, 코치로서의 명성에 오점을 남긴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김연아의 전직 코치이자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대모라고 불리는 신혜숙이 아사다의 프리 곡 <가면무도회>는 웅장하지만 안무는 지루하고, 신체점제에 적합한 안무는 아니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타라소바의 안무는 스텝에 큰 비중을 두는 편인데, 가면무도회와 모스크바의 종 모두 겉으로 보기엔 대단해 보이지만 세밀한 요소들을 분석해보면 트위즐만 있고, 색다른 안무가 없어서 재미를 주는 요소가 없었다. 거기다가 선수 개인이 점프 성공률을 높이고자 점프 사이의 안무나 트랜지션을 많이 삭제한 바람에 처음에 의도한 안무랑은 많이 달라졌다. 심지어는 알렉세이 야구딘조차 타라소바가 마오를 지도하는 것을 만류했다고 한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한 인터뷰에서 타라소바는 "마오는 그저 사랑스럽다. 확실히 김연아의 경기력이 마오보다는 좋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오의 코치를 그만두면서 마오의 실력에 대한 객관화가 조금씩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타라소바와 마오의 케미는 코칭 관계를 멈춘 이후에 맞기 시작했다. 타라소바가 안무를 봐준 2012-13 프리 프로그램인 백조의 호수와 2013-14 프리 프로그램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호평을 받은 프로그램이었다. 이 시기에는 마오가 전면적인 기술교정을 거듭 반복하면서 엣지 컨트롤을 비롯한 스케이팅 스킬이 나아지고 선수 생활 후반부에는 표현력도 발전했다.

4. 김연아와의 악연[편집]


김연아에 대해 안 좋은 발언을 몇 차례 한 적이 있어서 국내 피겨 팬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매우 나쁜 인물 중 한 명이다.

타라소바가 처음부터 김연아에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2007 컵 오브 차이나에서 김연아의 트리플 룹 점프를 보고 “남자 선수도 저렇게 뛰기는 쉽지 않다.”며 놀라워했고[6], 김연아 특유의 스핀으로 유명한 유나 카멜스핀을 보고 “사랑스럽다.”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사다 마오의 코치를 맡으면서 김연아에 대한 태도가 돌변했다. 이때부터 “트리플 악셀 3번을 성공한 마오에 비해 김연아의 점수가 터무니없이 높다.”등 김연아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쏟아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결국 김연아가 우승하자 심판들이 김연아에게 점수를 너무 많이 준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는 타라소바가 구 채점제에 익숙해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구 채점제였다면 마오가 프리에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김연아와 아사다의 점수 차이는 GOE 점수에 기인하는데, 각 요소의 수행을 평가하는 신 채점제와 달리 전반적인 프로그램의 인상과 심판의 감상에 의해 평가되는 구 채점제라면 마오가 역전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다만]

애초에 신채점기로 전환된 이후 벤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큰 실수를 여러 번 하지 않는 이상 아사다가 김연아를 이길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아사다가 트리플 악셀 3번(쇼트 한 번, 프리 두 번)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여자 싱글은 트리플 - 트리플 콤비네이션이 불가능한 선수는 신채점기 상 매우 불리했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을 모두 성공했지만 트리플- 트리플 콤비네이션을 회전 부족 문제로 제외했기에 기술점이 예상만큼 높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롱엣지 문제로 인해 러츠를 구상에서 제외하면서 러츠를 두 번 구사하는 김연아와의 간극이 더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GOE 요소 역시 잘 받아가는 선수가 아니다보니 김연아와의 차이를 좁히기는 어려웠다.

아사다 마오와는 결별한 이후[7]부터는 다시 김연아를 호평했다. “김연아는 스케이터들의 완벽한 본보기이다.”, “김연아라면 4회전(쿼드러플) 점프를 뛸 수 있을 것이다.” 이라며 이례적으로 김연아를 칭찬해서 국내 피겨 팬들까지 얼떨떨해 했을 정도였다. 이것은 한국인 기자의 취재에 응한 것으로, 일종의 립서비스나 체면치레일 수 있다. 어쨌든 제 아무리 거물급 피겨계의 인사라도 김연아를 함부로 공적인 자리에서 평가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SBS와의 인터뷰에서 김연아가 제 실력만 발휘한다면 우승할 것 같다고 했고 “행운을 빌어요 연아.”라며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8]

4.1. 2014 소치 동계올림픽[편집]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김연아를 제치고 우승하자 180도 돌변했다. 단순히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을 옹호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정작 김연아는 가만히 있는데 본인이 찔려서“김연아의 프로그램은 이전과 다르지 않아 인상적이지 않았다. 보기 지루했다.”, “김연아는 뛰어났던 선수지만 그건 4년 전의 이야기다.”, “나라면 김연아에게 더 낮은 점수를 주었을 것이다.”, “심판들이 김연아의 의상을 안 좋아했다.”[9]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사실 김연아가 의상을 입었기 때문에 의상이 크게 문제되어 보이지 않는거지, 의상 자체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 의상으로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얼음 위에 섰을때 다소 답답해 보이고 온통 노랗게 보이기 때문이다. 거쉰의 파란색 의상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 타라소바가 연아를 깐다한들, "점프는 훌륭했지만 지루했다."라고 평가한걸로 보아 김연아의 점프는 그 누구라도 깔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쨌건 대놓고 소트니코바를 옹호했으니 소수의 김연아 안티나 외국 선수팬을 제외한 국내 피겨 팬들 사이에서의 이미지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특히나 제자인 소트니코바 역시 김연아에 대한 폄하성 인터뷰로 물의를 일으켰는데, 경력도 매우 오래된 원로급 코치가 어린 선수를 제지하기는 커녕 이에 동조하여 은퇴한 타국 선수를 깎아내리는 것에 실망감을 표한 팬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확실히 김연아아사다 마오보다는 나은 경기를 보였다." 라는 말로 자신의 옛 제자를 디스했다. 그래도 옛 제자로서의 정은 있었는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최종순위 6위였던 아사다 마오다카하시 다이스케와 함께 갈라쇼에 참가시켜주기도 했다.[10]

참고로 소트니코바는 단순한 러시아 선수도 아니고, 타라소바가 수장으로 있는 CSKA 모스크바 소속의 선수다. 중립적인 위치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을 심판에 앉힌 것부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었는지 알 수 있다. 그녀의 코치와 안무가도 모두 타라소바 라인이며 그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소속되어 있다. 하지만 연이은 소트니코바의 노답 행보[11]로 인해 마음에 변화가 생겼는지 2018년에 들어서 소트니코바에 대해 올림픽 챔피언으로서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소트니코바를 옹호했던 사람이[12]

4.2. 2018 평창 동계올림픽[편집]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해설자 자격으로 내한하였다. 당시 우승자였던 알리오나 사브첸코 / 브루노 마소 조, 하뉴 유즈루와 포옹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 싱글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13]를 많이 총애하였다. 그런데 금메달은 자기토바가 땄다. 그리고 메드베데바가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를 떠나 브라이언 오서 코치에게 갈 때도 메드베데바를 누구보다도 많이 응원해줬으며[14] 2019 러시아선수권 당시에 오서 코치와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서로 김연아아사다 마오를 두고 엄청난 기싸움과 신경전을 벌였을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많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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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러시아선수권 당시 알렉세이 야구딘[15], 타티야나 타라소바,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브라이언 오서

5. 수상 기록[편집]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1966 세스트리에
페어

6. 기타[편집]


  • 젊은 시절에는 상당한 미인이었다.[16] 러시아 특유의 역변으로 인해 지금은 그냥 평범한 러시아 할머니가 되었다. 다만 지금은 몸이 불어난 것뿐이지 얼굴은 나이에 비하면 동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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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라소바가 이끄는 CSKA 모스크바 클럽은 러시아 피겨계의 성골로 평가받는 라인이다.[17] 콩라인 진골로 평가받는 라인은 알렉세이 미쉰이 이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클럽이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최근 스폰서가 떨어져나가는 등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 진골 자리도 위태한 상황이다. 이런 사태가 지속된다면 타라소바의 CSKA 모스크바가 러시아 피겨계에서 원탑 독주체제를 구축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탑 독주 체제를 완성한 곳은 에테리 투트베리제의 Sambo70이다.

  • 명 피아니스트로 특히 드미트리 키타옌코(Dmitri Kitayenko)와 함께 녹음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전집으로 족적을 남긴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Vladimir Krainev)의 미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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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딸인 타라소바에게 “2등은 부끄러운 것이다.”라고 가르쳤다.[2] 프로스쿠린 이전에 알렉산드르 티호미로프라는 선수와 팀을 결성했다.[3] 이 시기에 러시아의 경제적 상황이 워낙 안 좋다 보니 피겨 스케이팅 인프라에 대한 지원이 거의 끊기다시피 했었다. 그러다보니 러시아의 피겨계 종사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외국(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으로 떠나는 경우가 잦았다. 당연하지만 지원이 없으니 아이스링크 관리는 형편이 없었고, 결국 상위권 선수들마저 연습할 곳을 찾아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들은 2000년대 들어 러시아의 경제가 회복되자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왔다.[4] 싱글선수 출신의 코치는 페어나 아이스 댄싱 요소를 지도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싱글 선수들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5] 출처- 아사다 마오 다큐멘터리[6] 김연아의 룹은 굉장히 정석에 가깝다. 정확하게 X자로 꼬아서 후진하다가 도약을 하는데, 비거리와 회전 속도가 타 선수보다 월등하다. 다만 이 방식은 다리가 감겨진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다리 힘을 이용한 추진력이 약해져 도약하는 데 있어 고관절에 엄청난 무리를 준다. 결국 2009-10 시즌에는 룹의 도약방식을 바꿔서 연습했다. 물론 공식 경기에선 시도하지 않았다.[다만] 김연아 역시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룹이라는 고난도 콤비네이션 점프를 깔끔하게 성공했고 예술성에 대한 평가 역시 아사다보다 우세하다는 평가가 있기에 구채점기 기준으로도 김연아가 우위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당장 마오의 자국 선배인 이토 미도리 역시 올림픽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했으나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을 성공시킨데다 우아함과 섬세한 수행을 보여준 크리스티 야마구치에게 금메달을 내준 전적이 있다. 피겨에서 점프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이 피겨의 전부가 아님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7] 다만, 코치로서 결별한 후에도 안무가로서 그녀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기는 했다.[8] 이때 타라소바를 인터뷰했던 기자가 꽤 훈남인데다가 타라소바가 인터뷰하는 앵커를 보며 좋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국내 일부 피겨 팬들이 ‘타라소녀’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9]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 의상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 의상은 외신에서 쇼트 프로그램 최고의 드레스로 선정되었다.(해외 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김연아의 역대 최고 의상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최악의 드레스로 선정된 의상은 소트니코바의 쇼트 프로그램 의상이었다.[10] 원래 올림픽 갈라쇼는 개최국 출신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최종순위 5위까지만 참가자격이 주어진다.[11] 농담이 아니고 소치 올림픽 이후 단 한번도 메이저급 대회에서 제대로 된 성적을 낸 적도 없고, 시즌을 계속해서 스킵하는데다가 이제는 더블 악셀까지도 제대로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코치인 예브게니 플루셴코마저도 은퇴를 권유했다.[12] 이미 러시아는 몇년 전부터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를 비롯해서 그랜드슬램을 이룬 알리나 자기토바나 쿼드러플 점프를 성공한 수많은 여자 싱글 인재들이 포진해있는 만큼, 소트니코바는 거의 잊혀진 존재나 다름이 없다. 다만 분위기상 타라소바를 비롯한 러시아 연맹의 높으신 분들은 평창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자기토바보단 메드베데바를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13] 아이러니하게도 이쪽은 타라소바가 소속되어있는 CSKA 모스크바가 아닌 에테리 투트베리제를 필두로 한 Sambo70 소속이었는데, 러시아 내에서 이 둘의 파벌싸움 또한 만만치 않은 편이다. 무엇보다 CSKA 모스크바푸틴의 총애도 꽤 등뒤에 업은 모스크바 성골라인이라 소치 동계올림픽 때 소트니코바가 금메달을 딸 때까지만 하더라도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파벌이었지만, 소치 올림픽 이후 Sambo 70 소속 선수들이 제일 주목을 받았다. 덤으로 소치올림픽 당시 다른 러시아출신 선수였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도 Sambo 70이였다.[14] 메드베데바는 당시 코치에게 제대로 통보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결별을 한대다가, 동료 선수인 자기토바에게 왜 1년 주니어에 잔류시키지 않았냐고 코치에게 따지기까지도 해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던 때였다. 게다가 좁은 피겨 판 특성상 예전부터 러시아를 필두로 한 유럽 라인과 미국캐나다를 필두로 한 북미 라인의 서로간 파벌 싸움이 심각하단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타라소바의 행보는 예상 외의 일이기도 하다. 당장 솔트레이크 스캔들이 일어났을 때 이러한 파벌싸움이 도마 위로 오르기도 했고,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예브게니 플루셴코가 고난도 쿼드 점프에도 불구하고 은메달에 그쳤을 때 북미출신 심판들의 농간 때문이라는 논란이 일어났었다. 특히 국수주의 성향이 강한 러시아 피겨계의 특성상 자국 유망주나 노하우가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특히 자국에서 열렸던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피겨 종목에서 금메달을 석권하기 위해 러시아의 유명 코치들은 오로지 러시아 선수들의 코칭만을 담당하고, 타국 출신 선수들의 지도는 더 이상 담당하지 않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였다.[15]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은퇴하였지만 타라소바가 가장 총애하고 있는 애제자인데다가 가장 성공한 제자라 그런지 최근에도 타라소바와 자주 만남을 가지며 해설자로서 둘이 엄청난 케미를 보이기도 한다.[16] 포털 사이트에서 타라소바 젊은시절이나 리즈시절로 검색하면 젊었을 적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17] 러시아 자국대회에 출전하면, 비슷한 수행을 했을 때 다른 선수들보다 타라소바 라인 소속의 선수들이 점수가 더 잘 나오며, 국제대회에서도 타라소바 라인의 선수들을 더 밀어주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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