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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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명환
卓明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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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명 전 이름
탁경술[1]
출생
1937년 7월 8일
전라북도 정읍군(현 정읍시) 신태인읍
사망
1994년 2월 18일 (향년 56세)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 삼호아파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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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가족
배우자 김춘심
자녀 탁지일, 탁지원, 탁지웅
직업
언론인, 종교 연구가
종교
기독교 ,(개신교),
소속
신흥종교문제연구소
1. 개요
2. 업적
3. 비판
4. 테러 피해와 사망
5. 사후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언론인. 신흥종교 연구가이자 이단, 사이비 종교 연구가이기도 하며, 이 분야로는 국내 최고 전문가였다. 아버지는 탁두섭 씨, 어머니는 안삼례 씨로 3남 3녀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배우자는 김춘심씨이며, 3남을 두었다. 장남 탁지일은 부산장신대학교 교수이자 목사이고, 차남 탁지원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재 월간《현대종교》 편집자를 맡고 있고, 3남 탁지웅은 성공회 사제도쿄에서 사목 중이다. 세 아들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이비 종교와 이단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2]

어린 시절,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자살한 사건을 겪고 사이비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2. 업적[편집]


1960년대부터 신흥종교 및 이단 종교에 관해 연구하였고,69년 7월 음란문서 혐의로 구속되었다. 경향신문 1969.7.15 1970년 신흥종교문제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1971년 기관지 <성별>을 창간하였다. 1982년 <성별>을 <현대종교>로 바꾸고 사이비 종교 탐사 보도를 계속하였다. 특히 개신교계 신흥 종교 전문연구자로 활동하면서 한국신학대학, 목원대학, 서울신학대학, 고려신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다. 또한 1970년 1월에 국제 종교 문제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1983년 3월 30일 부산의 이모씨의 아내 김모씨와 간통 사실이 밝혀져 3백만원을 주고 남편에게 합의서를 써주고 합의 했다.

주로 개신교/대한민국 바운더리에서 분파된 신흥 종교 및 이단들에 대해 연구하였고, 기독교 측면에서 이들 신흥 종교들의 이단성을 가리고, 신자들을 대상으로 노동력 착취, 및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비성을 밝히기에 힘썼다.

주요 기사로는 통일교, 영생교, 아가동산, 천부교, 용화교, 성락교회, 평강제일교회(舊 대성교회) 등 신흥 사이비 종교나 기독교계 이단 종교들에 대한 기사가 있다.


3. 비판[편집]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밝히는 데 노력한 점은 높이 평가받지만 논란점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현대종교를 후원하는 교파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으며, 사실확인이 되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일례로 조선일보 1978년 9월 10일, 서울신문 1978년 9월 11일자 등 국내 6대 일간지에 통일교에 대한 사과문을 기재했으며 한때 형제복지원을 옹호하는 실수까지 저지르기도 했다. 그로 인하여 몇 차례 소송에서 패하기도 한다. 또한 없는 증거를 조작하여 만들어서 공격하는 일도 자주 있었는데, 대성교회 박윤식 목사가 다른 신도 3명과 찍은 사진을 오려서 한 여성 신도와 박윤식 목사가 단둘이 찍은 사진으로 편집을하여 현대종교 83년 5월호에 "젊은 여인과의 다정한 한 때"라는 설명으로 실었다가 발각되어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여자 관계가 문란하여 비판을 받기도했다. 1990년 12월 탁씨와 김모 여인이 함께 찍힌 사진과 함께 탁씨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투서가 전국 교회에 배달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탁씨는 이단의 모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익명의 제보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1991년 2월에 김모여인과의 사진, 통화 내용이 도청된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을 교계에 유포하였다. 만약 더 거짓말을 한다면 더 수위가 높은 증거자료를 배포하겠다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이것 때문에 탁씨는 "전화 도청 없는 세상에 살고싶다"는 신문 광고를 내기도 했다. 동아일보 1991.4.4 결국 탁씨는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이 출석하던 새문안교회를 더이상 다니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

탁씨를 살해한 임홍천도 범행 전날 탁씨를 미행하면서 탁씨가 30대 여자를 차에 태우고 중화3동 고수부지 외진 곳 둑밑에서 껴안고 애무하는 것을 보고 살해의사를 굳혔다고 진술했다.1994.3.28 한겨레


4. 테러 피해와 사망[편집]


사는동안 여러 차례 테러와 위협을 받았으며 심지어 1985년 5월경에는 자신의 승용차에서 폭발물 테러까지 당하여 생명이 위독해진 적도 있었다.

탁명환 자신은 만약 자신이 살해 당한다면 100% 유병언의 소행이라고 지인들에게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구원파로부터 테러를 당하거나 협박을 받은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1990년 12월에 자신에 대한 폭로사건으로 교계에서 매우 곤란하게 되고 91년에 구원파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 기소까지 되어 처벌을 앞 두게 되자 구원파의 소행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1991년 7월 오대양 자수자 사건이 일어나자 오대양의 배후가 구원파라는 내용으로 언론에 폭로하여 사회적인 이슈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결국 탁씨를 고소했던 유병언은 구속이 되고 탁씨는 무죄가 되었다.

결국 1994년 2월 18일, 탁 소장이 거주하던 노원구 월계3동 삼호아파트에서 대성교회[3]신도의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 출혈과 장기 손상으로 사망했다.[A][4] 향년 57세. 범인은 당시 대성교회 박윤식 목사의 운전기사 임홍천으로 살인죄로 범행 3일 만인 2월 21일에 임 씨를 검거하였고, 동년 6월 29일에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5] 6개월 뒤인 동년 12월에는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원심의 형량이 너무 과하다며 무기징역에서 15년 형으로 감형되어 복역한 후 출소하였다.[A] 참고로 임홍천은 특전사 부사관 출신으로, 대성교회 계열 신학원에 재학 중이었으며, 군에서 요인 암살 훈련을 받은 바 있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대성교회(現 평강제일교회)와 박윤식 목사는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유족들의 요구에 # 침묵으로 일관하였다.[6] 설령 직접 사주한 적이 없다고 해도, 운전기사라는 박윤식 목사의 최측근이 저지른 사건인데도 유족들에게 단순 유감 표명 조차도 없는 점은 상당히 유감스러운 사실이다.

심지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올라온 관련 기사에는 '박윤식', '대성교회'가 나온 부분이 전부 검열삭제 처리 되어 있다. 다만 '박 목사' 등으로 나온 표현은 남아있으며, 이 기사처럼 삭제가 완벽하지 못해 朴(박)과 植(식)이 남아있는 경우는 있다.


5. 사후[편집]


탁 소장의 시신은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7]에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되었다. 기사에 의하면 생전에 탁 소장은 ‘사후 장기기증 서약’을 한 뒤 사망하면 주검을 의과대학 실습을 위해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겨둔 상태였다.

아들 중 한 명인 탁지원 소장이 부친의 뒤를 이어서 "신흥종교문제연구소"와 잡지 <현대종교>를 운영하며 기독교계 사이비종교 및 이단단체들과 싸우는 중이다. 나머지 아들인 탁지일 교수와 탁지웅 신부도 탁지원 소장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이비 종교와 이단의 문제점을 연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팟캐스트로 '현대종교의 이단까톡'이 있다. 팟빵

2014년 2월 10일에 20주기 추모식이 열렸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에게 협박을 당했던 일화가 알려졌다.

최태민이 목사 두 명을 대동하고 탁 소장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탁 소장은 단호히 “최태민 당신의 과거는 당신들보다 내가 더 잘 안다”고 말하고는 몇 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첫째는 목사직을 사퇴하고 평신도로 돌아갈 것, 둘째는 칙사론 교리의 주장 중지, 셋째는 평신도로서 교회에 출석할 것 등이었다. 그러나 동행한 목사 중 한 사람이 “탁 소장! 말조심하시오. 지금 이분이 어떤 분이시라고? 함부로 말이면 다하는 거요. 그런 식으로 하면 탁 소장 신상에 좋지 않아요” 라며 협박을 했다. 탁 소장은 “진짜 목사가 가짜 목사를 비호하고 두둔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고 했다. 당시 ‘가짜 목사’ 최태민 주위에는 유신 치하에서 권력에 편승하려는 ‘진짜 목사’들도 적잖이 있었다.


2019년 한국 영화 사바하의 등장인물 박웅재 목사(배우 이정재 역)의 실제 모티브가 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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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4년 11월 17일에 개명하였다.[2] 막내인 탁지웅 신부는 성공회의 신부인데, 성공회는 분류상 개신교의 한 교파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천주교와 개신교가 적당히 섞여있다는 느낌이 강하고 간혹 성공회 교인들도 개신교, 천주교와는 다른 별개의 정체성을 가진탓에 개신교 이단연구에는 딱히 관여하진 않는지라 성공회의 신부로서 아버지, 형제들의 뜻을 이어 이단에 관한 사역에 함께한다는것은 이례적인 일이다.[3]평강제일교회[A] A B “공수부대 출신이 사탄도 때려잡지 못하고…”(2013.09.29 한겨레신문)[4] 살해되기 4일 전에 방영된 PD수첩의 "의혹, 영생교를 밝힌다(139회, 1994년 2월 15일 방송분)" 에피소드에 나왔던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5] 탁명환씨 살해범 임홍천 무기선고(1994.06.30 조선일보)[6] 대성교회는 오래 전부터 이단 의혹을 받았으며, 1991년 예장통합 교단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이단성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1996년에는 예장합동 교단도 역시 이단성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박윤식 목사는 이후 평강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계속 운영하였다. 2014년 한기총에서 이단이 아니라고 발표했다가 많은 기존 교단들이 한기총을 탈퇴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그 이후 평강제일교회는 2016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이단 사면 취소 사태와 관련되기도 했다.[7] 참고로 세브란스병원은 개신교 재단의 병원이다[8] 차이점이라면 탁소장은 사이비종교를 연구하여 경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하는일이지만 영화속 박웅재 목사는 신에 대한 믿음은 버리고 목사직은 그저 이곳저곳에서 사이비 종교에 관한 강의를 하여 사례비를 받기 위한 생계수단으로 취급하는 점이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