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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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명승
충주 탄금대
忠州 彈琴臺 | Tangeumdae Height, Chungju


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산1-1번지
분류
자연유산 / 명승 / 자연경관
면적
289,492㎡
지정연도
2008년 7월 9일
건축시기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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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탄금대 전경

1. 개요
2. 역사
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탄금대는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라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신라시대 낭성이 충주의 탄금대라고 밝혔다.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한 곳, 조선 신립장군이 왜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 곳이 열두대라는 곳이다. 열두대는 강에 솟은 바위 절벽 꼭대기로 탄금정 아래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와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충주시청 공식 소개 문구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우륵 및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신립 관련 사적지. 정식명칭은 충주 탄금대이다.

2. 역사[편집]


2008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42호로 지정되었다. 탄금대는 본래 대문산이라 부르던 야산인데, 기암절벽을 휘감아돌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으로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신라 진흥왕 때 당시 3대 악성 중 하나이자 가야금의 창시자격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해 왕으로부터 찬사를 받게 되어 충주 땅에 거처지를 마련하여 신라의 청년들 앞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데 그 소리를 듣게 된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었으니 바로 지금의 탄금대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우륵은 가야국 가실왕 때의 사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살게 하고는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 계고, 만덕을 뽑아 보내 음악을 배우게 하였다. 우륵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기 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한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아 풍치를 즐기며 커다란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곳을 탄금대라 불렀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무장 신립이 8,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를 맞아 탄금대 전투를 치른 전적지이기도 하다.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의 열두대라고 하는 절벽은 신립이 전시에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신립은 강에 투신자살하였다.

한편, 탄금대는 2013년 세계조정선수권대회의 배경으로도 사용되었다.


3. 둘러보기[편집]


파일:충주시 CI.svg
충주시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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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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