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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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
Tuskegee Syphilis Study}}}'''
파일:tuskegee-syphilis-experiment.jpg
기간
1932년 ~ 1973년
발생 위치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키기

The Tuskegee Syphilis Experiment
Tuskegee Study of Untreated Syphilis in the Negro Male

1. 개요
2. 사건의 전말
2.1. 실험
2.2. 폭로
2.3. 이후
3. 파장
4. 유사 사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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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0년간 미국 앨라배마 주 터스키기(Tuskegee)에서 벌어진 정부가 주도한 생체실험으로 1973년 봄에 중단되었고 실체가 폭로되었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 준다고 해놓고 몰래 생체실험을 한다'는 음모론과도 같은 도시전설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2. 사건의 전말[편집]



2.1. 실험[편집]


1932년 미국 공중보건국에서는 매독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려던 중 터스키기의 흑인들이 매독에 많이 감염되어 있고 가난한 탓에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생체실험을 하기로 했다. 즉, 치료를 하지 않으면 매독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정부에서 파견된 의사들은 매독으로 고통받는 흑인들에게 '당신들은 지금 악혈(Bad Blood)이라는 병에 걸려 있으니 치료해 주겠다'고 속여 뇌척수액을 뽑아 검사했으며 약이라고 속여 아스피린과 철분제만 줬다. 1943년에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페니실린이 나왔지만 이후에도 이 실험은 계속되었다.

정부는 해당 지역 의사들과 보건소에 공문을 보내 생체실험에 참여한 흑인들이 병원에 올 경우 그냥 돌려보내라는 요구를 했다. 그리고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터스키기 지역 청년들이 미 육군에 징집되었을 때 매독에 걸린 것이 발견되어 치료하려고 했지만 공중보건국에서 청년 256명의 명단을 건네며 이들을 치료하지 말라고 요청했고 육군이 이를 받아들이는 사건도 일어났다.


2.2. 폭로[편집]


그러던 중 1966년에 공중보건국에서 성병 조사 임무를 맡고 있던 피터 벅스턴이 실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묵살당하자 6년 후인 1972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신문기자 친구에게 제보하여 이 실험은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1973년에 실험은 중단되었고 미국 상원에서 청문회까지 열리게 되었지만 생체실험에 직접 참여했던 의사들은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람들은 어차피 가난해서 치료도 못 받고 죽을 사람들인데 그냥 죽을 바에야 의학 발전에 기여하고 죽는 게 낫지 않는가"라고 발언하여 공분을 샀다.



결국 실험 생존자와 유족들은 정부에 소송을 걸어 총 9백만 달러의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이 생체실험에 대한 반성의 일환과 미국의 연구윤리에 대한 스탠다드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벨몬트 보고서1979년에 나왔으며 1997년 5월 16일 빌 클린턴 대통령이 실험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백악관에 초청하여 공식 사과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터스키기 대학의 생명윤리연구 및 건강관리를 위한 국립 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투자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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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터스키기 실험을 주도한 게 바로 죽음의 천사로 악명을 떨친 미국 공중보건국의 '존 커틀러(1915 - 2003)' 박사다. 1942년 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국에 들어가 각종 생체실험의 대가로 승진을 거듭했고 1967년 피츠버그 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생체실험을 계속했다.


2.3. 이후[편집]


터스키기 실험을 추적하던 수전 레버비 교수가 2010년 10월 1일에 추가로 밝혀낸 바에 의하면 1946~1948년 사이 페니실린의 매독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과테말라수용소교도소 수감자들, 매춘부, 군인들을 매독에 일부러 감염시켰다고 한다.#1, #2 해당 실험을 진행한 것도 터스키기 사건의 주도자인 공중보건국의 존 커틀러로 알려져 있으며 이 사실이 발표된 당일에 바로 미 대통령이 직통 전화로 사과를 하고 국무장관과 보건장관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2011년 9월 이 사건에 관한 조사보고서 중간 결과가 공개되었다. 무려 5500여 명에게 생체실험을 자행했으며 심지어 9세 소녀도 있었다고 한다. '백색 가운의 악마'. 잔혹성에 미국도 '소름' 과테말라 정부와 국민들은 미국 정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준비에 들어갔다.

게다가 이게 전부가 아니고 1943년 뉴욕주 싱싱(sing sing) 교도소에서도 죄수들을 대상으로 임질 감염 생체실험을 자행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것도 역시 존 커틀러 박사가 주도했다. 싱싱 교도소는 20세기 초중반에 죄수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와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악명을 떨친 곳으로 지금도 존재한다. 찾아보면 각종 영화와 미드에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며 뉴욕주 배경인 수사물이면 한 번쯤은 꼭 나온다.


3. 파장[편집]


이 사건을 계기로 '인간존중, 선행, 정의'의 3대 연구 윤리 원칙을 천명한 벨몬트 보고서(1979)가 작성되었으며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전문분야별 윤리강령 구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미국 흑인 사회에 반지성주의, 반엘리트주의, 그리고 학계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건이며 2020년대코로나 백신을 불신하는 흑인들이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

더불어 미국에서 많은 음모론 신봉자들을 양산한 사건이기도 하다. 설마설마 하던 것들이 몇 개나 사실로 드러나 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4. 유사 사건[편집]


  • 프리한 19에서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 치료제의 독성과 내성을 검증하는 임상시험을 했으나 문제는 실험을 진행한 곳이 아동보호기관이며 실험 대상자는 대부분 고아인 영유아 100여 명이라는 것이다. 생후 6개월의 유아에게 정상치의 2배에 달하는 백신을 투여했으며 강제로 백신을 먹이기 위해 배를 뚫어서 튜브를 넣는 튜브 시술도 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작용으로 죽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 비윤리적인 실험이 뉴욕 아동보호청의 허가로 강행되었으며 제약회사까지 이를 묵인하고 약품과 재정적 지원까지 했다. 더 끔찍한 사실은 미국의 정부 기관까지 실험에 가담했다는 점이다. 이를 리암 셰퍼라는 기자가 끈질기게 추격한 끝에 진실이 드러나서 시위까지 열렸으나 관련자나 관련 기관은 사과도 안 했다. 심지어 제약회사 중 한 곳은 "미 당국의 인가하에 안전하게 시행된 실험"이라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시청 시 성인인증 필요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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