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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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리라
Türk Lirası[1]
ISO 4217 코드
TRY
중앙은행
튀르키예 중앙은행
사용국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비공식 사용국
파일:북키프로스 국기.svg 북키프로스
기호

동전
5kr, 10kr, 25kr, 50kr, 1
지폐
5, 10, 20, 50, 100, 200
인쇄처
CBRT Banknote Printer
조폐국
Turkish State Mint

1. 개요
2. 상세
2.1. 환전
2.2. 환율
2.2.1. 2020년 이후 환율 폭락 사태
2.2.1.1. 2021년 10월~11월
2.2.1.2. 2021년 12월 이후
2.3. 물가
2.4. 기호
3. 오스만 리라
3.1. 은화
3.2. 금화
4. 튀르키예 리라 1기
4.1. E1
4.2. E2
4.3. E3~E4
4.4. E5
4.5. E6
4.6. E7
5. 튀르키예 리라 2기
5.1. E8
5.2. E9(현행권)
5.3. 동전
5.4. 공화국 금 리라
6. 유로화 전환 관련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튀르키예 중앙은행 로고.svg

튀르키예의 통화. 북키프로스에서도 실질적으로 통용된다. ISO 4217 코드는 TRY,[2] 약칭은 TL이다. 보조단위로 쿠루쉬(약칭 Kr)가 있다.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수사 뒤에는 복수형을 사용하지 않는 튀르키예어 문법상 리라와 쿠루쉬 둘 다 복수형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대표적인 리라 계열 통화.

튀르키예 국민들의 극진한 아타튀르크 사랑으로 인해 이 나라 돈은 모두 아타튀르크를 주 도안으로 삼고 있다.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의 건국 초기부터 시작된 유구한 전통(?)이다. 딱 1번, 2년 동안 '화폐의 도안은 그 당시 대통령으로 한다'는 법안에 따라 이스메트 이뇌뉘의 초상이 걸리긴 했지만 당시에는 아타튀르크가 사망한지 얼마 안 되어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매우 강했는던 터라 화폐에서 아타튀르크의 초상을 떼어버리자 '어딜 감히 최고존엄을 놔두고 듣보잡이 걸리냐?'라는 매우 강력한 반발로 인해 무산되고 사문법화 되었다. 현재도 '이 곳은 건들면 안 되는 성역이며 바꾸면 욕을 씨게 얻어먹고 지지율 나락간다'[3]는 암묵의 룰이 생겨서 화폐 도안은 모두 아타튀르크이다. 일부나마 오스만 제국쉴레이만 1세 같은 위대한 군주도 지폐인물로 선정하는 게 어떠냐고 주장하지만 받아질 지는 미지수. 아타튀르크 자체가 1922년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렸던 인물이기에.


2. 상세[편집]



2.1. 환전[편집]


후술할 2018년 8월의 환율 폭락의 영향 및 하나은행에서의 취급 중단 이후 대한민국에선 리라를 환전할 수 없다는 정보가 잘못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여전히 우리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실질적으로 우리은행만이 사실상 유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하나은행에선 과거에는 을지로2가 본점, 지역 일부 지점, 공항점 정도만 받아주고 수수료가 무지막지하게 높았으며 순수한 매입량에 의지하는 지라 구매도 어려워 매우 불편한 편이었다. 이후 2019년 6월 10일 부로 취급을 중단하였다.

국내에서 환전한다면 우리은행에서 인터넷 주문 후에 찾아가거나 신한은행에서 300 미국달러 어치에 해당하는 8700리라를 환전 신청후 6일 뒤에 수령하는 법이 있다.

과거에는 대개 한국씨티은행에서 국제현금카드를 만들고 현지에 가서 뽑아다 썼지만, 2013년 7월 이후 튀르키예 씨티은행이 튀르키예 국내은행인 데니즈반크(Denizbank)로 인수되는 바람에 더이상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데니즈반크에서는 과거 튀르키예 씨티은행 계좌를 가진 고객에게 데니즈반크 ATM을 이용해도 수수료를 물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외국 씨티은행 계좌에 대해서는 얄짤없다. 다만 외국 씨티은행 현금카드로 데니즈반크 ATM을 이용할 경우 현지 ATM수수료 5리라가 면제된다. 영수증을 발급해보면, "Bu işlem için bankanız sizden ücret tahsil etmemiştir.(이 작업을 위해 당신의 은행이 당신으로부터 수수료를 물지 않았습니다)"라고 붙어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은행들은 얄짤없이 국제수수료 + 타은행 ATM 수수료 모두 떼간다. 그리고 한국씨티은행이 개인 금융을 중단하면서 이 5리라 면제마저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4]

튀르키예 현지에서 유로화나 미국 달러화로 중개환전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은행이나 호텔보다 사설 환전소에서 환전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우선 수수료를 물지 않고, 유로, 미국 달러화에서 튀르키예 리라로 환전할 경우 환율도 꽤 높게 쳐주는 편이다. 단, 관광지가 아닌 지역 한정이다. 이스탄불 관광지에 있는 사설환전소에서는 굉장히 환율을 짜게 쳐주고, 환전소마다 매기는 가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발품을 팔 필요가 있다. 똑같은 100달러를 환전해도, 관광지에서는 3,030리라 받을 것을 3,000~3,100리라 등 차이가 나게 받을 수도 있다. 이스탄불의 경우 악사라이(Aksaray)와 랄렐리(Laleli - 이스탄불 대학교 근처) 사이에 괜찮은 환전소들이 많이 있다. 튀르키예어로 환전소는 되비즈(Döviz)라고 하며 당일 환율은 http://www.canlidoviz.com/ 에서 확인하거나, 신문을 보면 된다.

최근에 튀르키예 사설환전소에서 외국인의 환전 돈을 절도하거나 덜 주는 사태가 발생하므로 주의를 요구한다. 관련기사

2024년 2월 13일 우리은행에서 인터넷 주문 후 공항 지점, 특수 지점에서 찾아간다고 전제하에 사실때 가격은 1리라당 최종 환율은 43.2원.

화폐 단위
환산가
5
216
10
432
20
864
50
2,160
100
4,320
200
8,640

국내에서 환전을 못했을 경우 아래의 외국통화로 환전이 가능하다. 원화와 대만 달러는 환전이 가능하지만 적게 9%, 많게는 20%까지 떼먹는다.

목록에 있더라도 모든 환전소에서 환전이 가능한 것은 아니며, 일부 사설환전소,은행에서만 가능하다. 볼드체는 이스탄불 및 대다수 지역에서 많이 환전되는 외국지폐이다.

트레이블엑스
국제환전 튀르키예지사
akmazlardoviz 환율창








2.2. 환율[편집]


2024년 2월 13일 하나은행 기준 환율은 대략 43.2원/ 정도인데[6], 화폐개혁 이후 가장 높았던 시기는 대침체였던 2008년에는 900원/ 이상으로 올라갔던 가치였다. 튀르키예 리라는 인플레이션이 심해, 크게 내려가고 있어서 2005년 1월 1일 화폐개혁[7]때는 1리라에 780원 정도였다가 2007년에 700원까지 내려갔으나, 2008년 대침체의 영향을 받아 1리라당 900원까지 올랐고 2009년도 이와 마찬가지였다.[8] 달러/리라의 경우 화폐개혁 이후 2007년까지는 1달러당 1.3~1.4 리라였지만 대침체 이후 1.5 달러정도 올라갔다.

하지만 2010년부터 대침체가 많이 해소되면서 800원대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리라의 가치가 본격적으로 떨어진 2011년에는 연초부터 700원~750원까지 내려갔고 이후 700원 아래로 떨어진 후 연말에는 600원~650원까지 떨어졌다.[9]

2012년 이후에도 하락세는 지속되어서 600~640원 선을 보였고, 2013년에도 8월경까지 약 600원대 초반을 유지했다. 그러나 9월부터 본격적으로 떨어져서 550원까지 내려갔다.

2014년부터는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연초부터 2013년 튀르키예 시위 이후 적발된 대규모 금융 비리에 에르도안 대통령(당시 총리직, 당시 대통령은 압둘라 귈)까지 연루되었다는 설이 돌으며 2014년 1월 28일자로 금리 인상을 시도해 어떻게든 환율방어를 하려 했지만, 1월 30일 이틀 만에 약빨이 다 하고(...) 다시 신나게 폭락하고 있다. 달러 환율은 2013년만 해도 1리라에 2달러 미만이었으나, 1월 29일 달러당 2.30리라 선을 돌파했다. 원 리라 환율도 2013년 말까지는 그래도 500원을 넘었으나 2014년 1월부터 1리라당 500원을 밑돌고 470~480원을 유지 중이었다.[10] 대침체에 비해 두배나 떨어진 값이다. 그나마 11~12월에 소폭 오르긴 했다.

이후로도 여전히 하락세가 지속되어 2015년에 400원, 2016년에 350원, 2017년에 300원, 2018년 1~7월에 250원까지 내려가서 크게 내려갔고, 이는 일부 시기를 제외하면 현재진행형이다.

2018년 7월에만 해도 1달러당 4.70리라 선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국인 목사를 간첩 혐의로 체포 및 구금하면서 8월에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얻어맞았다. 8월 1일부터 5를 찍더니 8월 10일(금) 기준으로 175원/, 6.87/달러가 되기도 했다. 2018년 들어 40% 폭락한 것.#

주말을 지난 8월 13일에는 오전 중 한때 7.24/달러를 기록했다. 게다가 마침 이 때 버버리가 튀르키예에서 세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300만 원대인 트렌치코트를 고작 70만원 정도(2018년 8월 당시 기준 4000리라)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날 대한민국에서는 난데없이 튀르키예 버버리 직구가 핫 키워드로 떠올랐다.# 이외에도 이후로 대한민국의 시중은행에서의 리라 취급을 몇달 동안 사실상 중단하기도 했다. 8월 14일 이후로는 17일 오전 8시~10시 (UTC기준)의 급등을 제외하면 회복세를 보여 6.01/달러로 8월 셋째 주를 마감했다.#[11]

이후 2018년 9~12월 들어 200원 근처로 올라서 2018년 7월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회복했다. 2019년에도 1달러당 5~6리라, 1리라당 200~220원 선에 유지되었다. 그 탓인지라 최저 신기록을 경신하지 않았다.[12]


2.2.1. 2020년 이후 환율 폭락 사태[편집]


국내외 주요 경제/금융 위기

[ 펼치기 · 접기 ]
[[대공황|{{{#442020,#ffd8d8 1929 ~ 1940년대
대공황

Great Depression
]]
[[대침체|{{{#133040,#cee3f6 2008 ~ 2010년대
대침체

Great Recession
]]
[[대봉쇄|{{{#200420,#d8bfd8 2020 ~ 2023
대봉쇄

Great Lockdown
]]
금융 | 경제 | 제2차 세계 대전
대침체가 정확히 언제 끝났는지는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20세기 이전
(연준 이전)
네덜란드 튤립 투기 파동(1636) · 미시시피 거품(1718) · 남해회사 거품 사태(1720) · 1792년 공황(1792)· 1819년 공황(1819) · 1837년 공황(1837) · 1857년 공황(1857) · 검은 금요일(1869) · 당백전(1866) · 장기불황(1873-1896) · 1907년 은행 패닉(1907)
20세기
(연준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초인플레이션(1919) · 1929년 월가 대폭락(1929) · 대공황(1929-1939) · 쇼와불황(1930) · 석유 파동(1973-1979) · 검은 월요일(1987) · 일본 거품경제 붕괴(1985-) · 닷컴 버블(1995-2001) · 1997년 외환 위기(1997-2001)
2000년대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2002)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7) · 대침체(2008-) · 짐바브웨 초인플레이션(2008-) · 그리스 경제위기(2008-)
2010년대
베네수엘라 초인플레이션과 경제위기(2014) · 2014 브라질 경제위기(2014-2017) · 2015-2016년 중국 증시 폭락(2015-) · 브렉시트 증시 폭락(2016) · 튀르키예 리라화 폭락(2018-) · 아르헨티나 통화 위기(2018-) · 레바논 경제 위기(2019-)
2020년대
대봉쇄(2020-) · 2020년 주가 대폭락(2020) · 2021년 헝다그룹 파산 위기(2021) · 2022년 러시아 경제위기(2022) · 2022년 스리랑카 경제위기(2022) · 코로나 버블(2022) · 2022년 전 세계 물가 폭등(2022) · 레고랜드 사태(2022) · 흥국생명 채권사태(2022) ·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2023) · 2023년 은행 위기(2023)




그러나 2020년이 되자 코로나19의 영향 및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금리를 내린다는 에르도안의 신기에 가까운 발상에 힘입어 리라가 내려갔다. 2018년 리라 하락 사태 당시의 리라도 비싸 보일 정도이다.[13] 2019년에는 200원 이상을 유지했던 리라가 2020년 연초부터 200원 미만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3월까지는 그나마 나았으나 2020년 4월부터는 다시 170원대로 내려가서 2018년 리라 폭락 사태 최저값과 맞먹었고 1달러 7리라를 기록했다.

그리고 2020년 8월부터 리라가 계속 폭락하면서 2018년 8월 튀르키예 리라 폭락사태 당시 최저치보다 더 내려가서 매일 최저치를 경신했다. 달러 기준으로도 1달러당 8리라까지 오르기도 했다. 결국 2020년 9월에 160원 밑으로 떨어진 이후, 오히려 폭락했다.

2020년 9월에도 크게 떨어져서 10월에는 150원 미만까지 내려갔고, 이후로도 리라는 폭락을 거듭하여 10월 18일 기준 140원, 11월 6일 1리라에 130원, 달러당 8.5리라까지 떨어져서 12년 전 대침체때보다 7배나 내려갔다. 그러나 이후 재무 장관과 중앙은행원장이 교체되자 어느정도 반등에 성공하여 2021년 2월 20일에 1리라 159원, 달러당 7리라까지 회복하였다. 여전히 코로나와 여타 경제문제들 때문에 폭락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꾸준히 환율을 회복해가는 중이었다.

전임 재무장관은 베랏 알바이락(Berat Albayrak)이라는 양반으로, 다름아닌 에르도안의 사위였다. 게다가 경제는 1도 모르는 법학 전공자 출신이라 예전부터 낙하산이라는 비판이 있었으나, 장인의 빽으로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짤렸다. 그리고 알바이락이 내려가자마자 환율이 하루만에 5% 가까이 폭락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나 2021년 3월 에르도안 대통령이 또 직권행사로 중앙은행장을 갈아치우면서, 하루만에 7.20리라대였던 환율을 5분만에 8.56까지 올려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원/리라도 3월 19일 155원으로 오르더니 22일에 140원으로 내려갔다. 이후 튀르키예 리라의 가치는 더욱 폭락하였다가 다시 반등하고 있다. 리라가 폭락했을 때 투자했으면 꽤나 괜찮은 수익을 얻었을 지도... 4월에도 140원, 1달러에 8원 정도를 기록했다.

2021년 6월 15일 미국과 튀르키예가 NATO 정상회담을 계기로 회담을 가졌지만, S-400 배치에 관한 정치적 긴장을 해결하지 못해서 달러당 8.5리라 정도로 올라갔다.#

이후 2021년 9월까지 1리라당 130~140원 선, 1달러 당 8리라대를 유지하고 있었다.[14]


2.2.1.1. 2021년 10월~11월[편집]

2021년 9월까지는 그래도 1리라 당 140원 선, 1달러 당 8리라대 선에서 있었으나 2021년 10월~11월 들어서는 환율 폭락이 급격히 가속화되었다. 특히 10월 21일, 기준금리를 18%에서 16%로 내리면서 가속화되었고 10월 22일 기준 1리라에 120원, 1달러에 9리라대로 떨어졌으며 결국 11월 13일 기어코 달러당 10리라 선을 돌파했다. 이것도 모자라 에르도안은 경제성장률에 눈이 멀어 금리를 추가 인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고, 실제로 금리를 15%로 내렸다. 결국 10리라 선을 뚫은지 5일밖에 안 된 11월 18일 달러당 11리라를 찍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원/리라 환율도 11월 17일에는 113원/리라, 11월 19일에는 무려 107원/리라까지 내려갔으며 11월 22일에는 105원까지 내려가 연일 신기록을 세웠다.

2021년 11월 23일,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정 기조연설에서 "튀르키예의 경제주권을 침해할 수 있는 세력은 아무도 없으며, 저금리만이 경제주권을 지키면서 물가상승률 방어와 투자 촉진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절대로 금리를 올릴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결국 개장 1시간여만에 1달러당 12리라를 돌파했고, 같은 날 장중 1달러당 13.44리라까지 찍어버렸다. 이 엄청난 폭락으로 인해 11월 23일 기준 1리라는 95원으로 최초로 두자리 수로 내려갔으며, 2021년 9월 대비 불과 두 달만에 33%나 하락했고 연초 대비 40% 정도 폭락했다.

그리고 이 폭락을 버티지 못한 튀르키예의 애플 온라인 스토어는 상품 판매를 일시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다음날인 2021년 11월 24일, UAE 대통령의 동생[15]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얀이 튀르키예를 방문해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면서 99원/리라로 소폭 반등하였다. UAE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적 소통 창구 역할도 일정 부분 수행하고 있는데, 최근 몇 년간 중동 이권 다툼에서 사사건건 충돌해 온 튀르키예와 사우디 간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돌아서서 궁극적으로는 튀르키예와 아랍 세계의 경제교류와 투자 확대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사태는 튀르키예와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도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2.2.1.2. 2021년 12월 이후[편집]

2021년 11월 30일,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정 기조 연설에서 현재 15퍼센트인 금리를 2023년에 있을 대선 전까지 가시적인 수준으로 또 끌어내릴 것이라 발언하면서 다시 환율이 요동쳤고, 12월 1일 장중 달러당 13.70리라 (86.42원/리라)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저점을 경신했다. 한편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저임금도 가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 발언했는데, 아무리 못해도 2021년도 최저임금인 월 2,825리라에서 최소 30% 이상 인상된 3,700리라 이상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하지만 2021년 초보다 달러의 가치가 70% 이상 뛰어버린 튀르키예에서 이러한 발언은 사실상 최저임금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12월에도 소폭씩 하락하면서 12월 상순에는 85원으로 내려갔다.

2021년 12월 15일, 기준금리를 14%로 내린 데 이어 그 다음날인 12월 16일에는 아예 13%로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달러당 15리라를 돌파하며 어제의 고점이 오늘의 저점이 되고 있다. 이제 튀르키예의 최저임금은 월 100달러대로 추락했으며, 자신들이 동생 국가로 여기던 아제르바이잔보다도 낮아졌다. 한편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튀르키예 온라인 쇼핑몰에서 미친듯이 쇼핑을 해 대고 있는 상황이다.

2022년부터 튀르키예의 최저임금이 50% 상향되어 최저임금 기준으로는 다시 300불 대로 올라갈 예정이다. 또한 2022년 부로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달마다 뜯기던 소득세 20%와 대출이나 주택 구입 시 붙는 인지세가 면제되어 실질 임금 상승률은 약 80~90%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잡는 것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수출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계속해서 펴다 보니 달러는 계속 빠져나가고 리라화는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이러한 정책을 계속 고집한다면 이후에도 리라화 폭락이 계속되어 최저임금이 다시 100달러 대로 내려오는건 시간 문제로 보인다.

결국 2021년 12월 17일, 한국 외환거래 시장 기준으로 1리라 당 73원을 기록해 13년 전인 대침체 이전(2008년)의 12분의 1 수준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졌다. 그리고 12월 20일에는 아예 68원까지 떨어져 신기록을 경신했으며 2021년 한 해동안 물가가 크게 떨어졌다. 또한 달러 당 17리라대로 올랐다. 불과 3달 전인 2021년 9월에 비해서 반토막 났고 2년 전인 2019년 12월보다는 3분의 1, 5년 전인 2016년 12월보다는 5분의 1, 10년 전인 2011년 12월보다는 9분의 1, 13년 전 대침체 당시보다는 13분의 1로 낮아진 상태였다. 물론 이후 다시 올랐다지만 인플레이션 탓인지 2년 후인 2023년 11월에 비하면 1.5배가 비싸다.

2021년 12월의 리라 폭락 사태는 원/리라 및 달러/리라는 물론이고 불과 세달만에 반토막에다가 1,2년 전 대비 급락률을 감안할 시 2018년 8월의 리라 폭락 사태보다 더 심각했다.

이후 100원 이상까지 크게 반등했다지만 또다시 꾸준히 하강한 탓에 2022년 12월, 1년만에 원상복귀로 돌아왔고 2023년 3월 기준으로, 68원 정도로 2021년 12월의 최저치와 비슷한 원/리라를 보이고 있다. 즉 2021년 12월에는 일시적으로 매우 싼 값이 2023년 3월에는 매일 나타나는 평균이 되어버렸다.

2021년 12월 20일, 에르도안 대통령은 아프리카 청소년들과의 간담회에서 "알라의 의지에 따라 정책(금리 인하)을 추진할 것"이라며 다시 한 번 금리 인상은 절대로 없다는 뜻을 내비쳤고, 달러당 17리라를 돌파하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다가 결국 앙카라 표준시 기준 2021년 12월 21일 자정에 한발 물러선 새 정책을 내놓았다. 일종의 새 적금 상품을 도입했는데, 적금상품 가입 시의 기준금리를 확정금리로 하고 적금 만기 시 기준금리를 초과한 환율 차손을 정부에서 보전해 주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2021년 12월 22일에 1년짜리 적금 상품을 가입한다고 했을 때 확정금리는 이 시점의 튀르키예 기준금리인 14%이다. 여기서 1년 후 리라화 가치가 30% 떨어졌을 경우 초과분에 해당하는 16%를 정부가 보조해서 지급해 주겠다는 뜻이다. 사실상 전 국민의 예금을 달러에 연동시키겠다는 말로,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이 있는 한 금리를 절대 올릴 일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민들과 환투기꾼들에게 이제 장난 그만 치고, 있는 돈을 당장 전부 예금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정책은 사실상의 예금 금리를 인상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시중에 돌아다니는 리라화를 전부 빨아들이게 된다.

정책 발표 1시간만에 환율이 3주 전 수준인 달러당 13.5리라로 25% 급등했고, 12월 23일에는 11.2리라, 순간적으로는 10월 중순 수준인 달러당 9.5리라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이번 환율 폭락 사태가 금리 인하에 기반한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 뒷구멍[16]을 생각해 낸 에르도안의 지지율도 다시 콘크리트층 이상으로 복구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원/리라도 12월 21일부터 급등해서 12월 22일에 100원, 12월 23일에 105원, 장중으로는 120원까지, 즉 3일 전보다 1.5~1.8배나 올라 다시 100원대를 회복해서 며칠간 이어졌다. 게다가 2021년 12월 하순에 마지막으로 100원대를 기록한 후 2년(정확히는 23개월)동안 그것을 넘지 못하고 있다. 2년 전이라 비교적 최근이지만, 현재의 2.2배 이상이고, 저리라 현상이 오래 지속되는 탓에 다시 100원 이상으로 오를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

실제로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중앙은행에서 약 170억 달러 (20조 원) 가량의 자금을 시장에 쏟아부은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1월 기준 튀르키예의 외환보유고는 대한민국의 IMF 금융위기 당시 외환보유고의 2배 정도밖에 되지 않는 86.5억 달러이며[17], 이것도 외국 중앙은행과의 통화 스와프 물량 등을 제외하면 마이너스 51억 달러가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밑천 다 드러낸 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셈. 헤지펀드들마저 손사래치며 철수한 지 오래이다. 반면 역설적으로, 개인의 외환보유액은 무려 대한민국 외환보유고의 50%에 달하는 265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2022년 1월 7일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모든 기업에게 해외 수출액의 25%를 무조건 리라화로 환전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결국 이 이후에도 리라화 가치가 계속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다가 2021년 마지막주 들어서 며칠동안 하루에 5%씩 환율이 급락하는 등 환율 급등 이전보다 더욱 정신나간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2021년 12월 4째주에 1.5~1.6배 정도 급등한 반작용일 뿐 2022년 1월이 되자 외환수급이 안정화되고 다시 87~90원 사이를 유지했다.

2022년 1월 21일 튀르키예 중앙은행이 드디어 금리를 동결하면서 13.4~13.55 리라 선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원 리라도 2022년 1월 28일 기준 91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튀르키예 국민들은 환율이 내린다고 물가도 같이 내리는 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과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되었다.

한편 튀르키예와 같은 화폐를 사용하는 북키프로스에서는 불만이 커지고 있는데, 종교나 다른 요소보다 경제가 우선인 세속 케말주의 국가인 북키프로스에서는 자기네들끼리 금리를 올리고 별의 별 통화정책을 다 써봐도 튀르키예에서 계속되는 삽질로 화폐가치가 바닥을 치니 속 터질 지경이다. 물가상승률도 튀르키예에 멱살잡혀서 2021년 기준 23.6%를 기록하는 등 막장이 되어가고 있어 추가 금리 인상까지 논의되고 있다. 한편 북키프로스 정부는 2022년 최저임금을 전년도 대비 22.2% 인상된 월 4250리라(2021년 12월 29일 기준 약 360달러)[18]로 고시했는데, 물가상승률이 워낙 높은지라 약간의 불만이 있지만 세계적으로 어려운 시기이고 본인들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이다. 결국 하반기에 5080리라로 올려 2022년은 '''최저임금을 두 번이나 올렸다.

2022년은 2021년이나 2023년에 비해서는 리라 하락이 비교적 조용한 해였다. 2021년 12월 하순 정책 발표 이후에도 원래 인플레이션이 있는 리라 특성상 소폭 하락했지만 급락하는 일은 없어서 2022년 5월까지 80원대를 유지했으며 달러 리라도 13리라대에서 15리라로 올랐지만 큰 상승은 없었다. 그러나 2022년 5월 24일부터 다시 70원대로 내려갔고 1~2원씩 떨어지기도 해서 2022년 6월 이후로는 73~74원 전후로 한층 내려갔으며 1달러당으로는 17~18리라 정도로 다시 최고점을 찍었다. 2022년 9~10월 들어 77~78원 정도로 다시 올랐으나[19] 2022년 11월부터 튀르키예 은행의 계속적인 금리 인하로 2022년 12월에 70원 선까지 내려가고 연말에는 68원까지 내려갔다.[20]

그리고 2023년이 되자 역시나 1~2월에 65원까지 내려가 또다시 최저를 찍었다. 이후 다시 올라 2월 중순부터 5월 18일까지는 1리라 당 67~69원 선으로 소폭 올랐으며 1달러 당 19리라 전후의 기조도 이어지고 있었다. 원 리라의 경우는 2021년 12월 폭락사태의 최저점과 비슷하지만 달러는 그 당시보다 오른 탓에 달러-리라는 최고점이고, 그때랑 비교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2023년에는 70원 선 조차 도달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2023년 5월에 있을 선거 때까지 이런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게다가 선거가 다가오면서 에드로안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5월 19일에 3개월여만에 최저를 찍었다. 그러나 5월 25일까지는 크게 떨어지진 않았다.

2023년 5월 26일, 1달러에 20리라를 돌파하였다. 설상가상으로 2023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에서 에르도안의 재선이 확정되면서 가치가 무섭게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향후 최대 25~30리라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편.[21] 5월 30일에 원 리라가 64원까지 떨어져 최저치를 또 경신했고, 6월 7일 이후로는 55원 전후까지 떨어졌고 1달러에 23리라 이상으로 올리갔다.

2023년 6월 22일, 희생절(Kurban Bayramı) 명절을 앞두고, 기준 금리를 기존 8.5%에서 15%로 인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달러에 24리라를 돌파하였고, 23일에는 25리라를 돌파했다.

2023년 6월 30일 기준, 1리라는 약 50원이 되어 당장 2021년 12월인 1년 반 전에 비해 반토막이 났으며, 4년 전에 비하면 4배 이상 떨어졌고, 심지어 약 10년 전인 2013년 12월과는 10배, 대침체인 2008년과는 무려 18배나 차이가 난다. 1달러는 약 26리라가 되었다.

게다가 리라의 폭락은 멈추지 못해 2023년 7월에도 이어졌고, 2023년 7월 18일 이후 47원 전후로 내려갔다. 1달러도 27리라 이상으로 올라가게 되어 불과 2~3년 전과 비교해도 3~4배 정도 크게 올라버렸다. 다행히 7월 말부터 조금씩 올라 8~9월에는 49원으로 올라갔다.

2023년 8월 24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25%로 7.5%P 인상하며 금리를 3연속 인상하였다. 6월 22일의 금리인상 결정 이후 단 2개월만에 기준금리가 16.5%P 오른 것이다. 에르도안 집권 이후 이 정도로 급격한 금리 인상은 2018년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자 기준금리를 7.5%에서 24%로 올린 이후 최초이다. 이에 따라 환율이 25.4리라/달러로 5% 정도 떨어졌다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원 리라도 51.48원까지 올랐다. 경제 전문가들은 기준금리가 25-30% 정도는 되어야 리라화가 가치 하락을 멈추고 그나마 현상유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봤는데#, 이제 딱 적정범위에 들어온 셈이니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일단은 중앙은행이 최우선 과제는 외환보유고의 회복이라고 밝히면서 달러를 계속 매수할 방침을 드러냈고, 그에 따라 환율이 계획적으로 천천히 하락중이다.

2023년 10월까지 48~49원 선을 보이다가 11월 2일을 기점으로 다시 떨어지면서 2023년 11월 9일 기준으로 46원 정도로 내려갔다. 그리고 11월 17일에는 45원까지 내려갔다.[22] 이후로도 12월 22일 기준 44~45원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다. 2023년 12월 마지막주에 43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2024년 1월 11일, 1달러에 30리라를 돌파했다.

2024년 1월 25일, 기준금리가 42.5%에서 45%로 2.5%P 인상되면서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부터 내리 8연속 기준금리 인상이며, 지난 7개월 간 총 35.5%P 인상했다. 이는 2001년 이후 22년만의 최대폭 인상이다.

2024년 1월에 소폭 오른 튀르키예 리라가 2월이 들어 다시 하락하면서 2월 7~8일 기준 43.4원까지 내려갔다.

튀르키예 환율의 경우 인플레이션이 매우 심한 나라다. 2008년 대침체 때는 원화 가치가 낮았던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튀르키예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특히 2010년대 중반(2014년)을 기점으로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하락하기 시작했고 이후로도 지속적인 하락을 이어갔다가 2018년에 큰 폭락이 나타난 이후 소폭 오르긴 했고, 2019년에는 역대 최저치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이후 다시 환율 하락이 가속이 붙기 시작했고[23] 2021년 10월~12월에 또다시 엄청난 폭락이 일어났다. 물론 12월 말에 반작용으로 크게 상승했다지만 그 이전만큼 오르진 못했고, 2022년 들어 또다시 하강, 2023년 여름을 기점으로 45~50원까지 하락하면서 값어치가 매우 떨어졌다.

이 탓에 2010년대 중반부터 튀르키예 환율 폭락으로 여행 가기 좋다는 얘기가 늘어났지만, 거의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는 탓에, 시간이 지나면 그 당시에는 튀르키예 환율이 비쌌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특히 과거에 쓰여진 튀르키예 환율 폭락 뉴스 및 기사를 보면 현 시점에선 전혀 이해가 안 갈 정도이다.[24] 2020년 연초 기준 200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2020년대에만 4.6배, 숫자로 하면 157원이나 내려갔다. 즉 2020년대 시작의 환율의 약 22%인 셈. 리라/달러도 다를 게 없어, 1달러에 약 5.8리라에서 30.7리라로 5배 이상 비싸진 셈. 유로/리라도 마찬가지로 1유로에 6.5리라에서 33리라로 올랐다.

최근 2년간(2022년 이후) 환율 동향을 보면 일부 구간을 빼고 그래프가 마치 환율과 외환거래를 통제하는 아르헨티나우즈베키스탄처럼 자로 잰 듯 반듯한데, 이는 정부가 말은 하지 않지만 여기저기서 외화를 긁어모아와서 지속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반적으로 달러가 내려갈수록 리라가 더 내려가는 경향이 크다. 그래도 대통령 선거 이후로 한 달마다 금리를 5%p씩 올리는 강경책을 계속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외환이 달리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 듯 하다.

2.3. 물가[편집]


주변 나라들에 견주면, 숙박비나 연료비같은 물가가 비싼 편이다. 유럽 내 다른 나라들에 견주면 꽤 물가가 싸기에 유럽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편이지만, 바로 이웃 시리아이란, 불가리아, 루마니아, 조지아, 아르메니아 같은 나라 물가보다 비싼 편.

게다가 주변에 이란이나 이라크 등 대형 산유국들이 있음에도, 연료비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이미 2013년에 1리터당 5리라[25][26]를 넘었을 정도다. 이는 이들 나라에서 석유를 직접 수입하기보다, 미국의 중재를 받아 아랍 국가에서 석유를 수입하기 때문이다. 나부코 송유관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 자원 개발 및 운송 합의가 이뤄지면 꽤 혜택을 볼 것이라는 떡밥은 2003년부터 쭉 이어져왔지만, 해당 지역의 정세불안과 PKK의 준동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은 11.14%(소비자물가), 7.65%(생산자물가) 수준으로 많이 가파른 편이다. 어느 신문 기사에서 아야 소피아를 소개했을 때 튀르키예 리라의 인플레가 심해서 아예 튀르키예에 갈 때 미국 달러를 갖고 가라고 말했을 정도다. 특히 소비자 물가가 생산자보다 대략 1.5배 큰 수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튀르키예에서 노동자 임금도 소비자물가 추세만큼이나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삶의 질이 폭락하지는 않는다.

또한 튀르키예, 특히 대도시와 관광지에서는 여전히 달러와 유로의 사용이 어렵지 않다. 이는 여행자들과 기나긴 인플레 사정의 영향이 크다.

2004년까지의 튀르키예는 인플레이션이 매우 심각해서, 버스 요금으로 100만 리라[27][28]를 냈으며, 동전 따위는 무겁기만 하고 가치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동전이 너무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자판기에는 아예 동전이 들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화폐보다 실물의 가치가 훨씬 높아서, 가게에서 담배 한 갑을 살 때도 잔돈으로 풍선껌이나 라이터 같은 걸 주었을 정도. 그리고 모든 돈의 활용 범주가 100만 리라에서 끊어졌는데, 이 때문에 신문이나 쇼핑 카탈로그에서 가격을 표시할 때는 끝의 세자리를 지워 표기하는게 보통이었다. 만약에 3억 리라짜리 월세방이 있다고 하면, 가격을 300.000TL[29] 이라고 표기하는 식. 나중에는 이것도 귀찮아졌는지 끝의 여섯 자리를 떼어버린다.

이러한 관습이 반영된 게 2005년의 화폐개혁이다. 1990년대 중후반~2004년 당시 신문사설에서도 우리 튀르키예인은 거지부터 부자까지 모두 억만장자라는 식으로 비꼴 정도로 억 단위를 사용할 일이 많았는데, 버스비만 해도 편도 200만 리라, 튀르키예에서 제일 싼 삼순담배 한갑이 370만 리라, 책 한권에 2,700만 리라 하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물가 시대에 적응해갔는데, 은행에다 돈을 넣어두면 오히려 그 가치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저금을 하더라도 달러나 유로로 예금하는 외국환계좌가 대세였으며, 필요한 돈은 월급날인 매달 15일에 은행에서 바로 전액 인출하여 현찰로 들고 다녔다.[30][31] 하지만 화폐개혁이 오래 되지 않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구 리라로 얘기하는 사람도 많았다.(예: 2리라=구200만리라)

관광지에서 외국인한테 물건 값을 굳이 달러나 유로로 받으려고 하는 것과, 아야 소피아에서 입장료를 아예 미국 달러로만 받았던 것은 바로 이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그리고 튀르키예의 민간 금 보유량이 많은 것도 이 당시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크다.[32]

다음으로 외국인들이 팁을 주는 습관이 튀르키예에 번진 영향도 크다. 외국 여행을 다닐 때 반드시 알아둬야 할 점이 하나 있는데, 고급 레스토랑이나 4성 이상급 호텔이 아닌 이상 여행객들이 무조건 팁을 줄 필요는 없다. 특히 배낭여행자들이 자주 가는 저렴한 상점이나 숙소에선 굳이 팁을 줄 필요가 없는데도 팁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현지인들은 이걸 계속 받다 보니까 팁을 받는 게 당연한 것인 줄 알고 여행객을 호구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정말 감사의 뜻으로 팁을 주겠다면 지폐로 주자. 몰론 1리라 동전을 두고가도 상관없긴 하지만, 바로 앞 문단에 언급한 이유 때문에 지폐를 훨씬 선호한다.[33]

그런데 외환을 주로 사용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현지화인 리라보다 확연히 비싼 값을 매기므로[34] 가급적이면 리라로 지불할 것을 권장한다. 더구나 대도시인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및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면 되려 환전하기 혹은 거래하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2.4. 기호[편집]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newtl.jpg
예비 후보들. 가장 위에 있는 것이 정식 발탁된 기호다.

기호는 レ에 두개 줄 그어놓은 형태(대략 히라가나의 처럼 생겼다.)가 2012년 3월에 새로 제정되었다. 그 이전에는 단순히 약칭인 TL에서 화폐개혁 직후에는 YTL(Yeni Türk Lirası - 새 튀르키예 리라)로 지정했었다. 이 문자는 유니코드 6.2(2012년 9월)에 추가되었다(U+20BA).[35] 그러나 정작 튀르키예어 키보드에서 입력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마트나 주유소 가격표에서도 TL과 혼용되어 쓰이며, 인터넷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3. 오스만 리라[편집]


  • 이 단락은 튀르키예 리라의 전신인 오스만 리라에 관한 내용입니다.

튀르키예 최초의 리라화는 1843년 1월 5일에 오스만 제국 술탄 압뒬메지트 1세에 의해 도입되었다.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화폐제도는 3악체(akçe)를 1파라(para), 40파라를 1쿠루쉬(kuruş)로 하는 은본위제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영국의 화폐제도를 본받아 금본위제를 도입한 것.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옛 화폐를 보면 Osmanlı Lirası (오스만 리라)라고 쓰여있는 표기 옆에 프랑스어 Livre Turque 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리라 도입으로 보조화폐로 전락한 쿠루쉬도 대외적으로는 피아스트르(piastre)라고 불리고 있었으며 리라화 도입 이후에도 유럽권에서는 리브르, 피아스트르라고 불렀다.(이는 무역용 은화 피아스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리라화 도입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에서는 쿠루쉬를 표준 단위로 채택하고 있었는데, 이게 워낙 소액이라서[36] 금화가 널리 쓰였지만, 금화들도 뒤죽박죽에다 변동환율이라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시기에 오스만 제국에서 통용되던 금화 종류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는데, 우선 소액 금화로 제리 마흐붑(Zer-i mahbub)이란 금화가 있었으며, 시대에 따라 환율이 미묘하게 다르지만 대체로 140~160파라(3.5~4 쿠루쉬)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하이리예(Hayriye)라는 이름의 24 쿠루쉬 가치의 금화가 있었으며, 루미 알튼(Rumi Altın)이라는 30 쿠루쉬 가치의 금화도 존재했다. 심지어는 프랑스, 영국 등에서 발행한 금화도 유통되었다.

이 금화들은 변동환율제로 도시마다, 지방마다 환율이 다 달랐다. 결국 오스만 제국에서는 메흐메트 2세 재위 중 쿠루쉬화에 패그시킨 금화를 도입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디드 마흐무디예(Cedid Mahmudiye = 20 쿠루쉬), 제디드 아들리(Cedid Adli = 18 쿠루쉬) 종이었다. 이렇게 되자 기존의 변동환율제 금화와 고정환율제 금화가 섞여서 오스만 제국의 화폐단위는 더더욱 혼란스럽게 되었지만, 이 제디드 마흐무디예와 제디드 아들리 금화는 오스만 제국의 금본위제를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유통되었다. 이후 마지막으로 리라화를 도입하면서 금본위제가 완성되었다.

오스만 리라는 튀르키예 통화역사에서 큰 족적을 하나 더 남겼는데, 바로 그동안 각 지방마다 따로 발행되어 따로 놀던 화폐체계를 정리한 것이다. 앞선 문단에도 약간 서술되어 있지만, 이 리라화가 발행되기 전의 오스만 제국 화폐 체계는 지금의 영국과 유사하게 각 속주, 지방마다 화폐를 따로 발행했다. 예를 들어 쿠루쉬 은화는 코스탄티니예, 에디르네, 부르사, 마나스트르(지금의 마케도니아 비톨라), 카이로, 다마스쿠스, 베오그라드에서 발행되었는데, 분명히 똑같은 쿠루쉬이고 똑같이 파디샤의 투으라가 들어간 문양이었지만 서로 호환되지 않았다. 즉, 카이로에서 베오그라드 발행 쿠루쉬를 가지고 계산을 하려 해도 가게 주인이 "이건 외국 돈이니 못 받는다." 라고 하거나, 이스탄불에서 카이로 발행 쿠루쉬로 계산하려고 하면 "이건 외국 돈이야, 어서 우리나라 돈 줘봐!"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뜻이다.

이러다 보니 오스만 제국 시기의 디르함 은화는 철저히 아랍권에서만 통용되었으며, 이스탄불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아서 환전을 하던지, 아니면 금화를 들고 다녀야 했다.[37] 하지만 오스만 리라화는 제국 어디에서든지 통용된 최초의 통화이자, 1리라 = 100쿠루쉬로 유럽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빠른 10진법 체계를 도입한 통화이다.

3.1. 은화[편집]


  • 악체(Akçe): 오스만 제국의 은화 중 가장 작은 금액이자 가장 오랫동안 기준통화였던 통화. 어원은 튀르키예어로 '밝다'라는 의미의 ak에 지소접미사 çe가 결합된 것이다. 1327년부터 무게 1.154 그램의 순은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가 점점 은의 함량을 줄여가더니(...) 최후에는 순도 40%대까지 폭락하고 무게도 1g이 채 안 됐으며(...) 이미 17세기 말에 이르면 잔돈으로도 쓸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없어져버렸다. 하지만 악체 자체는 19세기 초까지도 한국의 1원짜리 동전 발행하듯 계속 발행되기는 했다(...) 시대에 따라 종류가 다양한데, 그 중에서 유명한건 1470년 메흐메트 2세때 발행한 악체이 뷔쥐르그(Akçe-i Büzürg) 혹은 귀뮈쉬이 술타느이예(Gümüş-i Sultanıyye)라고 불린 10악체짜리 은화이다. 보조화폐로 만그르(Mangır)라는 1/4 악체짜리 구리동전이 있긴 하지만 13-15세기 때까지만 통용되었다.

  • 파라(Para): 3악체 = 1파라, 초기에는 악체보다 큰 단위를 결제할때 많이 쓰였으며 오스만 제국 후기에도 잔돈 등으로 많이 쓰였던 통화이다. 대부분의 경우 2.5악체와 동일한 무게의 은으로 주조했지만 동작그만, 0.5악체분의 은은?? 후기에는 파라도 가치가 없어져 5파라, 10파라, 15파라, 20파라, 40파라, 60파라, 100파라 등의 은화가 주조되기도 했으며, 그나마도 5,10파라는 189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들어서는 아예 구리하고과 순도 10%(...) 은도금으로 주조하더니 1910년 들어서는 5,10,20,40파라 모두 그냥 니켈로 발행했다. 여담이지만 현대 튀르키예어을 뜻하는 'para'의 어원이다. 관용어도 많은데, "beş para etmez" (5파라의 가치도 안된다 = 반푼어치도 안된다)[38] 같은 표현들이다. 참고로 리라화 개혁이후 화폐의 최소단위가 5파라였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겼다.

  • 샤히(Şahi): (초기에는 6.5악체=1샤히, 후기에는 8악체=1샤히), 원래 페르시아의 통화이지만 페르시아와 이웃한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 동부, 시리아 등에서도 발행을 했던 화폐이다. 후기에는 이스탄불에서도 8악체=1샤히의 비율로 통용되었지만, 16세기에만 잠깐 쓰였다.

  • 디리헴(Dirhem): 아랍-이슬람제국의 화폐 단위인 디르함과 어원이 같은 말로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무게단위로 쓰였지만 여전히 아랍지방에서는 디리헴을 기반으로 한 지방화폐가 통용되었다. 이스탄불을 비롯한 일부 오스만 제국 내 지역에서도 통용되었지만 오스만 제국 전국에서 유통되지는 못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의 세금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는데, 리라화 개혁 이전까지 전통적으로 은본위제 경제구조를 가진 오스만 제국에서 세금을 책정하기 위해 순은의 무게를 디리헴으로 달아 납부하게 하였다. 예를 들어 비무슬림에게 부과되는 소득세인 지즈야의 경우, 빈민층을 기준으로 자유인 성인 남성이 일인당 납부해야 할 세금은 은 1디리헴(약 40g)이었는데, 이를 시중의 화폐로 환산하는 식이다. 1690년대를 기준으로 1쿠루쉬 은화의 무게는 대략 18.4~19.9그램에 은 비중이 50%였으므로, 순은의 무게를 환산하면 9.2~9.95그램이 된다. 즉 1디리헴을 내기 위해서는 대략 4쿠루쉬(=160파라)에 해당하는 금액을 납부해야 하는 식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렇게 복잡하게 계산하지는 않았고, 단순 환산해서 은 1디리헴은 은화 몇 파라 식으로 기준이 있었다.

  • 졸타(Zolta) 혹은 졸로타(Zolota): 30파라 = 1졸타, 오스만 제국내에서 통용되던 독일 탈러화 및 마찬가지로 탈러에 패그되어있던 폴란드 즈워티와 페그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위로 18-19세기 초까지 널리 쓰였다. 애초에 Zolta 혹은 Zolota라는 이름 자체가 '즈워티'에서 왔다. 1졸타는 1.5탈러와 동일한 가치를 가졌으며, 1/2 졸타(1/2 Zolta), 1졸타(1 Zolta), 2졸타(2 Zolta)권이 있었다. 압뒬하미트 1세 때까지 발행되었으며 이후 쿠루쉬화에 통합된다.

  • 쿠루쉬(Kuruş): 40파라 = 1쿠루쉬, 1687년에 최초로 도입된 화폐로 기존의 기준통화였던 악체를 대신하기 위해 발행되었다. 쿠루쉬라는 말은 독일의 그로셴(Groschen) 은화에서 비롯되었으며 졸로타와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그로셴 은화에 패그되어 발행되었다. 공화국시대인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아있는 단위이기도 하다. 역시 후기에는 다양한 쿠루쉬화가 사용되었는데 리라화 이전에는 1/4쿠루쉬, 1/2쿠루쉬, 1쿠루쉬, 2쿠루쉬, 2 1/2쿠루쉬가 있었으며 리라화 도입 후에는 1, 2, 5, 10, 20쿠루쉬로 정착하게 된다.
사진이 1, 2, 5, 10, 20쿠루쉬이다. 액면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파일:1000007629.jpg

  • 지하디예(Cihadiye): 5쿠루쉬 = 1지하디예, 전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찍어낸 통화이다. 은 함량이 매우 높고(95%) 신뢰도가 높은 통화였지만, 마흐무트 2세 통치기에만 잠깐 쓰였다.


3.2. 금화[편집]


리라화 도입 이전에도 금화는 굉장히 자주 쓰였지만 은본위제 특성상 금화에 대한 은화의 교환비율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환전상에 따라 항상 변동했다(...) 일반적인 환율을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 픈득 알튼(Fındık altını): 튤립 시대의 술탄인 아흐메트 3세때 발행된 금화로 23k의 금 3.4575그램으로 만든 통화이다. 18세기에 널리 쓰인 통화로 무게에 따라 1/2, 1, 1 1/2, 2 픈득 알튼이 있었으며 모두 변동환율로 운용되었다. 평균적으로 1픈득 알튼은 3-5쿠루쉬 정도로 통용되었지만 후기에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은화 위에 금을 씌우는 짝퉁 금화가 정식으로 발행되기도 했다.(...)

  • 제리 마흐붑(Zer-i Mahbub): 3.5쿠루쉬 = 1제리 마흐붑, 이 통화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에서는 베네치아의 두카트, 피렌체의 플로린, 영국의 소버린, 프랑스의 리브르 등등 외국의 금화들을 자국의 은화들과 병행해서 사용했다. 하지만 외국 상인들이 저질의 금화를 가져와 오스만 제국에 유통시키는 등 자꾸만 물가혼란이 발생하자 오스만 제국에서 직접 발행한 금화로 1787년경 3.5쿠루쉬로 비율을 고정시켜놓고 유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세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변동환율로 돌아섰으며 지방에서는 꽤 오랫동안 (20세기 초까지!) 통용되었던 화폐다.

  • 아들리 알튼(Adli Altın): 12쿠루쉬 = 1아들리 알튼, 마흐무트 2세 때 이스탄불에서 발행한 22k 금화로 얼마 가지 않아 20k로 금의 비중을 줄인(...) 제디드 아들리 알튼(Cedid Adli Altın)이 발행되었다. 아들리 알튼이란 '법적금화'라는 뜻으로 마흐무트 2세가 서구식 금본위제 개혁을 준비하기 위해 발행한 통화라 최초의 고정환율 금화라는 점에서 의의가 큰 화폐이다. 하지만 아래에 언급할 하이리예 알튼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그 고정환율의 기준이 달라졌다(...) 1823년에 1 아들리 알튼은 12쿠루쉬의 가치를 지녔지만 1833년에는 16.5쿠루쉬로, 1제디드 아들리 알튼은 15쿠루쉬로 가치가 절상되었다. 여기서 금화에 들어있는 금의 함량도 환율에 반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2, 1, 2 아들리 알튼이 있었다.

  • 하이리예 알튼(Hayriye Altın): 20쿠루쉬 = 1하이리예 알튼, 마흐무트 2세때 에디르네에서 발행된 금화로 대략 20쿠루쉬의 가치로 유통되었던 통화이다. 1/2, 1, 2 하이리예권이 있었다. 사진은 1/2 하이리예 권의 모습이다.
파일:1000007628.jpg

  • 루미 알튼(Rumî Altın): 로마인의 금이라는 뜻의 화폐로 마흐무트 2세 때 유통된 금화들 중에서 가장 가치가 높았으며, 주로 유럽과의 무역대금으로 통용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마찬가지로 변동환율이었으며 1833년경 1루미알튼은 48쿠루쉬의 가치로 유통되었다.

  • 마흐무디예 알튼(Mahmudiye Altın): 마흐무트의 금이라는 뜻이지만 마흐무트 2세 때는 아니고, 그 다음 황제인 압뒬메지트 시기에 유통되기 시작해 리라화 도입시기까지 아주 잠깐 (6년간)쓰였다. 20쿠루쉬=1마흐무디예 알튼으로 고정환율이었다. 사실상 금본위제도 도입에 앞선 실험적으로 통용된 임시화폐에 가깝다.

  • 메지디예(Mecidiye): 20쿠루쉬 = 1메지디예, 술탄 압뒬메지트 시기에 리라화 도입 직전에 발행된 금화로 리라화 도입 이후에도 20쿠루쉬=1메지디예로 환율이 완전히 고정되어 튀르키예 공화국 초창기까지 유통된 비교적 장수한 화폐이다. 한편 리라화 도입 이후에는 1/4리라(=25쿠루쉬)금화가 발행되었기 때문에 메지디예는 새로 발행된 20쿠루쉬 은화의 별칭으로 바뀌어 기존의 메지디예 금화와 함께 통용되었다. 참고로 금화 메지디예는 불과 1년 쓰이고 리라화로 대체되어 은화로 발행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찾아보기 힘들며, 압뒬메지트 시대에도 메지디예는 금화와 은화가 병행하고 있었다.

새로 만들어진 1리라짜리 금화는 100 쿠루쉬 (약 9.5g의 금 혹은 99.6g의 은)의 가치를 지녔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물가가 상승하고, 결정적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금화로 발행된 이전의 리라화와 지폐로 발행된 리라화의 가치가 9배나 차이나는 등의 혼란를 보이다가[39], 결국 1925년에 튀르키예 공화국정부가 들어서면서 튀르키예 공화국이 최초로 발행한 화폐이자 튀르키예 역사상 아랍 문자로 쓰여진 마지막 화폐인 공화국 리라화를 발행하면서 이러한 혼란을 추리게 된다.

오스만 제국 시기 리라화는 오로지 금화로만 존재하다가 19세기 후반에 캬이메(Kâime)라는 이름의 100쿠루쉬짜리 지폐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도입되었다. 이 캬이메는 정부산하 조폐소인 다르프하네(Darphane)에서 발행한 것이 아닌 오스만 은행 같은 당시 외국계 은행에서 사설발행한 것으로 처음에는 일종의 어음이나 신용장의 용도로만 쓰였던 것이 계속되는 전쟁으로 물가가 상승하자 일반에 통용되기 시작했다.

파일:external/sanalmuze.tcmb.gov.tr/pic1295358219r196350.jpg
최초의 카이메인 압뒬메지트 황제 시기에 발행된 100쿠루쉬권의 모습. 지폐 앞면에는 액면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져있다.
Evrak-ı nakdiye-yi (본 재산 증서는)
Devlet-i âliye'den (위대한 국가(오스만 제국)에서 발행했으며)
Yalnız yüz kuruşluk (100 쿠루쉬의)
Kâime-i muteberedir. (금액의 가치를 대신하는 문서이다.)
파일:external/images.gittigidiyor.com/1331-OSMANLI-KAGIT-PARA-M-RESAT-5-KR-599277__50276977_0.jpg
루미역법 1331년(1915년) 11월[40] 22일에 발행된 5쿠루쉬짜리 지폐의 모습. 맨위에는 당시 파디샤인 메흐메트 5세 레샤트의 서명이 있고 왼쪽에는 프랑스어로 액면가가 표시되어있다.[4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6-1336-01-500K-kost-au.jpg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인 메흐메트 6세 바히데틴 제위 1년에(1918년) 발행된 5리라짜리 금화의 모습. 동전의 앞면에는 "항상 승리하는 술탄 압뒬마지트의 아들 메흐메트 한" 이라고 쓰여있는 투으라(Tuğra - 오스만 제국 황제들의 서명)와 화폐가 발행된 해 (해당 술탄의 즉위년도로부터 몇년 째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뒷면에는 "항상 승리하는 자, 코스탄티니예 (이스탄불의 옛 이름) 발행" 이라는 문구 밑에 즉위년도 루미력으로 1336년(1918년)이 쓰여져 있다. 보다시피 액면이 리본 아래 표시되어 있다. 2.5리라와 5리라에만 액면이 3자리(250, 500)로 표시돼서 있다. 사진에 없는 다른 종류의 리라 금화(0.25, 0.5, 1)들은 액면을 찾아볼 수 없다. 그외 도안은 동일하되 크기와 무게만 다르다.
파일:1000007623.jpg
오스만 제국 메흐메트 5세 레샤트 제위 9년(1917년)에 발행한 1리라 금화의 모습


4. 튀르키예 리라 1기[편집]



4.1. E1[편집]


1926년 공화국 리라 등장 이후 파운드프랑스 프랑에 강력한 페그(고정환)를 걸었기 때문에 환율이 2.8리라/USD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 국어(오스만 튀르키예어)가 아랍 문자로 쓰여진 처음이자 마지막 공화국 리라이며, 뒷면에는 프랑스어[42]가 병기된 유일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제작에는 9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막 새로운 수도로 결정된 앙카라를 도안소재로 폭넓게 사용하였다.

1930년대 후반에 튀르키예어 표기법을 로마자로 갈아타면서 이를 반영한 신권이 발행되어 통용이 중지되었다.


4.2. E2[편집]


2~4차는 굉장히 짧은 통용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공급이 자주 끊기는 바람에 모든 권종이 한꺼번에 쓰인 적은 없고, 1937년에서 1944년까지 자주 등장했다 사라졌다 했다.

마지막으로 중지된 시기는 1952년 11월. 참고로 영국산이다.


4.3. E3~E4[편집]


모든 시리즈에서 지겹게볼 수 있는 아타튀르크가 빠지고 이스메트 이뇌뉘가 들어간 첫 시리즈. 2차 시리즈와 혼용되어 사용된 긴급발행권의 성격을 지닌다. 1942년부터 1947년까지이며, 영국(초반), 독일, 미국산(후반)이 섞여있다. 급한대로 뽑아다 쓴 모양이다. 종류는 2.5리라부터 1,000리라까지 1, 5단위로 올라가며 7종.

이후 4차가 도입되어 2차 및 3차와 혼용되었는데 영국과 독일이 서로 싸우느라 나라꼴이 시망ㅋ해버리니 발주가 곤란해지자 미국에 발주넣어 들여온 시리즈로 극혼란기에만 잠깐 쓰였고 (47년 ~ 48년) 종류는 단 2가지(10, 100리라)이며, 역시 이뇌뉘가 그려져 있다.


4.4. E5[편집]


1951년부터 등장해 7종류(2½ ~ 1,000리라)가 여러번 변화를 거치며 32가지 바리에이션을 만들고는 1971년에 숨을 거둔 나름 장수한 시리즈. 전란 후폭풍에서 벗어나고 점차 외주를 줄이며 국내산(튀르키예)으로 찍어내 예전의 영광을 되찾았다. 전성기 당시 환율은 9리라/USD정도. 이때부터 모든 돈 앞면에 아타튀르크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4.5. E6[편집]


1966년 처음 도입되기 시작해 1983년까지 생존한 두번째 장수 시리즈. 20리라만 영국에서 만들고 나머지는 모두 튀르키예 국내산으로 전환되었다. 1971년 쿠데타로 인해 뒷전으로 밀려난 경제 정책, 1973년 1차 오일 쇼크, 1974년 키프로스 전쟁 이후 4년간 이어진 경제제재, 제재가 풀리자마자 찾아온 2차 오일쇼크로 인해 한 번 두 자릿수로 올라온 물가상승률은 떨어지는 일 없이 94%까지 치솟았고, 말기의 환율은 220리라/USD에 이르렀다.

뒷면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521.jpg
5TL
마나브가트 폭포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522.jpg
10TL
크즈 쿨레시[43]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523.jpg
20TL
아늣카비르[44]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524.jpg
50TL
톱카프 궁전의 장미정원 내 분수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_Old_TL_reverse.jpg
100TL
아라라트산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526.jpg
500TL
이스탄불 대학교 정문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527.jpg
1,000TL
보스포루스 교각


4.6. E7[편집]


1979년부터 등장한 시리즈로, 무슨 짓을 해도 인플레이션이 40% 밑으로 떨어지지 않던 혼란기에 해당한다. E7에 해당하는 시리즈는 모두 15개 종류에 36가지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 참으로 방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최저액권과 최고액권의 격차는 무려 2,000,000배. 당연하지만 전 종류가 한꺼번에 쓰인 적은 없다.

디자인상 10만 리라(1990년 첫 발행)를 기준으로 전반과 후반으로 구분하는데 최고액권인 2000만 리라는 2002년에 등장하였고, 모든 종류는 2005년 1월 1일부터 사용이 중단되었다. 개혁 직전인 2004년에는 환율이 135만 리라/USD이었다. 사실 이것도 많이 떨어졌을 때의 환율이고, 2000만 리라 발행을 준비하던 2001년에는 165만 리라/USD였다. 2016년 1월 1일부로 통화로서 효력을 잃었는데, 계산하기도 귀찮고 교환하기도 귀찮은 탓에 이미 이것들은 신권이 나오자마자 시중에서 거의 사라졌다.

워낙에 "0"이 많다보니 당시 계산할 때, 일단 0을 3개 먼저 빼놓고 계산했다고 한다.

뒷면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621.jpg
10TL
아타튀르크에게 꽃을 전달하는 초등학생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622.jpg
100TL
메흐메트 아키프 에르소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_TL_reverse.jpg
500TL
이즈미르 시계탑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624.jpg
1,000TL
메흐메트 2세와 오스만 시절 이스탄불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625.jpg
5,000TL
4종류가 있다.[45]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626.jpg
10,000TL
미마르 시난셀리미예 모스크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627.jpg
20,000TL
튀르키예 중앙은행 본관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628.jpg
50,000TL
튀르키예 대국민 의회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720.jpg
100,000TL
(위 10TL과 동일)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722.jpg
250,000TL
크즐 쿨레[46]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723.jpg
500,000TL
갈리폴리 전투 기념관
(생략)
1,000,000TL
2기 1, 5, 10, 20YTL과 동일
5,000,000TL
10,000,000TL
20,000,000TL
  • 10만 리라, 25만 리라는 동전도 발행되었다.


5. 튀르키예 리라 2기[편집]



5.1. E8[편집]


디노미 탈출을 위해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다 결국 인플레이션 지옥 탈출이 확정된 2005년에 개혁한 시리즈(Yeni Türk Lirası)로 이때부터 ISO 4217 코드가 TRY로 바뀌었다.

약간의 진통은 이어졌지만 강력한 통화정책의 덕분인지 빠르게 회복되었다. 구권과의 디노미 비율은 1(신):1,000,000(구). 20리라까지는 E7의 디자인을 이어받았고, 뒤늦게 나온 2종은 새롭게 개정된 신판이다.

참고로 이 당시에는 구권인 TL과 구분하기 위해 일부러 YTL이라고 표기하였다. 2020년 1월 1일부터 통용이 중지되었다.

뒷면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801.jpg
1YTL
아타튀르크 댐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802.jpg
5YTL
아늣카비르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803.jpg
10YTL
피리 레이스의 지도[47]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804.jpg
20YTL
에페소스의 유적지[48]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805.jpg
50YTL
카파도키아
파일:attachment/튀르키예 리라/lirasi806.jpg
100YTL
이스학 파샤 궁전[49]


5.2. E9(현행권)[편집]


2009년 1월 1일 부터 통용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 이때부터 YTL의 Y가 탈락하였다. 유적지에 중점을 두던 과거와 달리, 전반적으로 유명인사를 디자인 소재로 적극 기용하는 방향.

환율은 이제 거의 안정되었는데... 튀르키예 경제성장률이 매년 5% 이상씩을 찍으면서 초반에 언급했듯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가파른 편이다. 예를들면 이스탄불의 교통토큰인 제톤(Jeton) 1개의 가격도 2004년에는 65~100만 리라(0.65~1 신 튀르키예리라, 한화 500원~780원)였지만 2022년 기준으로는 5리라(500만 리라)로(500원) 많이 올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10년대에 들어 이슬람주의를 노골화하면서 튀르키예 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던 외자유치가 주춤해졌고, 지난 10년동안 투자받은 외국 자본을 자국 산업 육성 등에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 튀르키예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이 둔화되고 경상수지는 크게 악화되며 화폐 가치도 꾸준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8년 8월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하여 환율이 순식간에 1.5배가 되었다가 겨우 회복한 2019년을 제외하고 매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고, 2023년 기준으로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해 화폐가치가 계속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앞면
뒷면
파일:Türkiye 5.jpg
5
아타튀르크 A타입
아이든 사이을르와 태양계 및 Z-DNA구조 그림
파일:Türkiye 10.jpg
10
자히트 아르프와 그의 불변식
파일:Türkiye 20.jpg
20
아타튀르크 B타입
미마르 케말렛딘과 가지 대학 본관
파일:Türkiye 50.jpg
50
파트마 알리예와 꽃, 서적들
파일:Türkiye 100.jpg
100
아타튀르크 C타입
부후리자데 무스타파 에펜디류트, 삽화고서
파일:Türkiye 200.jpg
200
유누스 엠레와 영묘, 비둘기
  • 5리라권은 처음에 밝은 갈색이었으나 50리라권과 혼동하기 쉽다는 이유로 자청색으로 바뀌었다.


5.3. 동전[편집]


파일:Türkiye Coins.jpg

이 당시 자판기로 돈벌기(...)는 여기 참조. 물론 지금은 E9가 등장하면서 해결된 상태.

5, 10, 25, 50쿠루쉬와 1리라의 5종 중에서 1리라 동전이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25, 50쿠루쉬가 보조단위로 주로 이용된다.[50] 10, 5쿠루쉬는 마트나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대형업체에서나 볼 수 있다. 5쿠루쉬 미만은 그냥 버리는데 마트같은 곳에선 잔돈이 부족할 경우 10쿠루쉬 단위로도 버리곤 한다.

1리라는 가끔 도안을 바꿔 기념주화로도 발행하고 있다.

5.4. 공화국 금 리라[편집]


오스만 제국때 발행되던 리라 금화가 현대 튀르키예에서도 계속 발행되고 있다. 오스만 제국 시절과 마찬가지로 25, 50, 100, 250, 500쿠루쉬 5종으로 발행되고 있다. 현재는 오스만 제국 시절의 리라 금화와 달리 주로 선물용이나 재물축적용을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리라의 가치하락이 심해지면서 이 금화를 모임이나 저축용으로 비축해놓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으로 아기가 태어나거나 결혼을 하면 축의금대신 금화를 선물로 주는 풍습이 있는데, 이 리라 금화를 준다. 크게 아타튀르크가 그려진 아타 알튼과 공화국 금화 두 종류로 나뉘며 모양과 무늬가 약간 다르다. 한편 오스만 제국 시절에 발행된 리라 금화중 수집가치가 없는 것들은 아직도 공화국 금 리라와 함께 섞여서 사용이 가능하며 환전도 가능하다.

고질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에 화폐가치의 기준을 금으로 따지는 경우도 많다. 가령 최저임금이 얼만큼 올랐다고 보도되지만, 작년에는 최저임금이 금화 몇 닢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올해 오른 최저임금으로는 금화 몇 닢밖에 못 산다. 오히려 떨어졌다. 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2002년 은퇴연금으로는 1/4리라 금화 8닢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겨우 두 닢 값이다. (줌후리예트 신문), 교사월급, 1/4리라 금화 18닢에서 5.9닢 아래로 추락


6. 유로화 전환 관련[편집]


튀르키예는 오랫동안 유럽연합 가입을 준비해왔고, 더불어 유로 도입도 추진해왔다. 그러나 유럽 주요국에 비해 경제력이나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유럽연합 가입이든 유로 도입이든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아예 에르도안 정부에서 반서방 성향을 보이면서 이 모든 노력이 중단된 상황이다. 게다가 유로화 도입시 물가상승 / 불평등 심화 / 경제주권 침해는 불보듯 뻔하다.

사실 이런 노력은 비단 튀르키예 뿐 아니라 극동유럽과 카프카스의 국가라면 한 번쯤 시도해보고 있는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화폐를 유로화 체계에 가깝게 개편 및 개혁하거나 유로화를 모방하여 지폐/주화 디자인 및 규격을 정한다. 정작 유로존 국가들은 아오안이지만.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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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튀르크 리라스. 대개는 그냥 "리라"혹은 "텔레(TL)"라고 하고 입말로 과거 화폐단위인 밀리욘(milyon), 밀리야르(milyar)라고 말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며, 이때 milyon=구 1TRL=1 TRY, milyar는 구 10억 리라=1,000리라의 의미이다. 시장에서 가격을 묻고 "20 milyon"이라고 들어도 놀라지 말자. 20리라라는 뜻이다.[2] 개혁 이전이었던 2004년까지는 TRL이었다.[3]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화폐 도안 변경은 정치인들에게 이득은 없는데 '어딜 감히 최고존엄이신 세종대왕을 떼고 이것을 붙이려는 것이냐?' 는 등의 리스크만 있기에 도안 변경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4] 기존 한국씨티은행 고객은 여전히 사용 가능하다.[5] 잉글랜드 발행권은 전역에서 취급한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건지, 저지, 맨섬, 지브롤터 파운드는 제한적으로 해주는 곳이 있긴하다 포클랜드, 세인트 헬레나 파운드는 취급하지 않는다..[6] 대침체때보다 1리라가 21배 이상 싸다.[7] 화폐개혁 직전인 2004년 기준 135만 리라가 1달러인데, 1달러가 1,100원이었으니 100만 리라 기준 약 780원 정도였다.[8] 그리고 1990년대의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다르게 2003~2010년 동안 리라는 인플레이션이 심하지 않았다.[9] 하지만 2010년의 리라는 2023년 12월 현재의 18~20배, 2011년의 리라는 현재의 13~17배의 가치였다.[10] 물론 2023년 12월 현재에 비하면 11배 정도의 가치이다. 달러-리라의 경우 더 커서 13배의 가치이다.[11] 그러나 이조차도 3년 뒤 2021년 12월 폭락 사태에 비하면 양반이고 2023년 12월 입장에서 보면 이조차도 원/리라가 3.7배 이상 비싸다. 이미 2020년 7월에 이 때보다 내려간 이후 더 떨어졌다.[12] 게다가 그 당시 리라의 가치가 2023년 12월 현재보다 4.5~5배의 가치였다. 그리고 달러-리라의 경우 5~6배의 가치다.[13] 다만 리라는 인플레이션이 심한 탓에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말이 다르다.[14] 2차 폭락이 일어나기 전인 2021년 9월 당시만 해도 2년 뒤인 2023년 12월 현재 시점으로 보면보다 무려 3배 이상 비싸다. 심지어 달러 당 리라로 치면 3.3~3.6배 정도 차이가 난다[15] UAE의 대통령이자 아부다비의 에미르인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얀이 뇌졸중으로 대통령 업무를 수행하지 못해 아부다비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그의 동생이 사실상의 권한대행을 하고 있다.[16] 실제로 이 아이디어도 이슬람 금융에서 따 왔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냥 있는 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지만 다른 화폐(달러)를 매개체로 환율 변동에 따른 차익 명목으로 간접적으로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17] 2022년 1월 기준 튀르키예의 통화스와프 물량 137억 달러 중 무려 20억 달러를 대한민국에서 책임지고 있다.[18] 2022년 6월 30일 기준으로는 약 260달러이다. 1리라가 1년 사이에 가치가 떨어졌다. 원 리라도 2021년 연말 100원에서 2022년 6월 말 77원으로 내려갔다.[19] 단 달러강세로 인해 달러-리라는 오히려 최고점이 나타나는 중이다.[20] 심지어 2022년 12월만 해도 2023년 11월 현재 리라 가치보다 1.5배 이상이며, 2022년 5월까지는 1.8배 이상이었다.[21] 결국 7개월 반 후, 2024년 1월 11일에 돌파했다.[22] 정확히 2년 전인 2021년 11월 17일 기준 현재의 2.5배인 112.5원 정도 된 것을 생각하면 인플레이션이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23] 원/리라 기준으로 단순 숫자로는 커 보이지 않지만, 과거에 비해 비율은 더 커졌다.[24] 당장 2021년만 가도 9월까지가 2023년 11~12월의 3배 정도이며, 10~12월에 폭락을 했을 때도 현 시점보단 꽤나 비쌌기 때문에 비싼 시절로 인식된다.[25] 2013년 7월 당시 환율로는 무려 3,000원에 육박한다.[26] 11년이 지난, 인플레이션이 심한 2024년 2월 현재는 216원 정도이다. 불과 5년 전인 2019년만 해도 5리라면 1,000원은 넘겼다.[27] 2004년 화폐개혁 직전 당시 1달러가 약 135만 리라였다. 당시 1달러가 약 1,100원이었으니 1리라가 0.0008원, 1,250리라가 1원이었다.[28] 만약 2024년 2월까지 화폐개혁이 되지 않았더라면 1원에 23,000리라, 100만 리라에 43.4원, 1달러당 무려 3,060만 리라가 될 뻔 했다.[29] 튀르키예에서는 소숫점을 ,로 자리점은 .로 찍는다. 한국과 반대다.[30]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장기간 인플레이션이 진행된 브라질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돈이 있는 가정에서는 부동산이나 금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식으로 버텨냈다.[31] 브라질도 튀르키예만큼은 아니지만 인플레이션이 심해 대침체 때는 750원, 2011년에도 700원 정도였다. 그 이후에 2014년에는 400원대까지 떨어지고, 2015년부터는 300원대로 내려가 2018~2019년 기준으로 300원까지 떨어진 상황이지만 튀르키예보단 낫다. 2020년 코로나-19로 떨어진 이후로는 사실상 오르락내리락 유지하고 있어 2023년 현재 기준으로, 2019년까지는 꽤 높아도 2020년 이후부터는 현재랑 비슷하거나 싸기도 하다.[32] 실제로 튀르키예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은 세계 12위 권 정도이다.[33] 이 때는 유로화보다 달러화가 더 유용한 편이다. 심지어 20리라짜리 지폐보다도 1달러가 더 싸니까.[34] 2024년 1월 현재 33리라/EUR인데, 유로화로 계산하면 대개 33리라/EUR로 통크게 낸다. 한화로 치면 1리라당 10원 가까이 손해보는 셈이다. 달러도 상황이 비슷한데 대략 30.3리라/USD 정도. 면세점이나 페리회사 등 유로로 가격을 매겨놓은 곳에서는 이걸로 역차별을 하기도 한다.[35] 그런데 이걸 둥글게 해서 뒤집은 것(즉, ""를 정확히 180도 돌린 것)이 아르메니아 드람의 기호다보니, 일부에게 까이기도 한다고.[36] 83% 은 기준으로 1그램이 채 안 된다. 그래서 45.3%, 25% 정도밖에 안되는 은화도 흔했다.[37] 이래서 오스만 제국은 금본위제 경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금화의 사용도가 매우 높았다.[38] 예전에 조선에서도 상평통보등의 구화폐를 처분하고 백동화로 교환할때, 2전짜리 상평통보는 백동화 1전으로, 1전짜리 상평통보는 0.5전으로 쳐서 바꾸어 주었기 때문에 반푼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원래 반푼이라는 단위는 조선에서 없던 단위이다.[39] 당연한 얘기다. 전쟁통으로 인해 오스만 제국의 은행들은 자신들이 발행한 지폐에 대한 금태환을 거부했다. 결국 사람들이 지폐를 믿지 못하고 금화에만 의존하게 된 것.[40] 현대 튀르키예어로 11월은 kasım이지만, 당시에는 kanun-i evvel이라고 불렀다.[41] 과거에는 이 항목에 이슬람력이라고 되어있었지만, 당시 오스만 제국의 공식역법은 히즈라 기년을 사용하지만 내용은 율리우스력인 루미역법(Rumi takvim)을 사용하고 있었다. 루미역법은 1840년 탄지마트 개혁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달력으로, 새해가 3월에 시작하고 그레고리우스력과 비교할때 13일이 더 빨랐다. 이러던것이 점진적인 개혁을 거쳐 1916년 (1332)에는 새해를 3월에서 1월로 앞당기기 위해 이 해는 10달만을 가지게 되었고, 13일을 앞당기기 위해 10월이 18일까지밖에 없었다. 결국 1333년(1917년)부터는 기년법을 제외하고는 그레고리우스력과 완전히 동일하게 개혁이 이루어졌고 1928년에 튀르키예 공화국이 히즈라 기년을 폐지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사라졌다.[42] 프랑스어로 단위는 리브르.[43] 처녀의 탑이라는 뜻.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 남단에 있는 등대이다. 1110년 비잔틴 시절에 지어졌다.[44] 아타튀르크와 이뇌뉘가 잠들어있는 묘소. 아타튀르크 사후 15년이 지나서야 완공되었고,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사 박물관(+ 아타튀르크 전시장)을 겸하고 있다. 원래는 프리키아 족의 고분(공동묘지)이 있던 자리였는데, 이 건물이 세워지면서 철저히 갈아 엎어버렸다. 몰론 유물과 유골은 들어내 인근 박물관에 모셔다 놓았지만.[45] 1판(콘야의 메블라나 묘소), 2~3판(잘랄루딘 루미와 그의 묘소), 4판(아프신-엘비스탄의 지력발전소). 앞면도 1판과 2~4판의 초상화가 다르다. 즉, 2판은 앞면도안 변경, 3판과 4판은 뒷면도안 변경인 셈. 참고로 옆의 사진은 2~3판이다.[46] 붉은 탑이라는 뜻.[47] 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이자 항해사인 피리 레이스가 그린 고지도. 유럽과 아프리카 서부 및 남미 동부(브라질)까지 그려져 있지만, 이 지방들을 식민지배하려는 의도였다기보다 '그냥 자료가 있으니까 그려 넣었다' 에 가깝다.[48] 튀르키예 서남부 해안의 셀축(이즈미르 남쪽) 남쪽에 있다. 튀르키예에 남아있는 그리스 유적지 중에서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지역.[49] 튀르키예 아나돌루 동부 끝자락의 도우베야즈트에 위치한 오스만 제국 시절의 성. 17세기 중엽에 지어지기 시작했지만 무슨 사정에서인지 18세기 후반에야 완공되었으며, 이스학 파샤는 완공한 사람의 이름이다.[50] 1/2, 1/4단위를 사용하는 이슬람 문화권과 닮아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가령 튀르키예어를 어설프게 배운 여행객들이 가장 혼동하는 단위가 çeyrek과 yarım, 그리고 buçuk인데, '체이렉'은 1/4 (페르시아어 'châhâr-e yek' 처허레 옉'에서 온 단어다), '야름'과 '부축'은 1/2를 뜻한다. 다만 야름은 '반 리라', '반 킬로' 같이 다른 숫자가 붙지 않을때만 사용하며, '부축'은 10.50리라 - 10리라 반 같이 앞에 다른 숫자가 있을때 쓴다. 가령 튀르키예어로 3,25TL 10,50TL, 500.000TL은 각각 Üç çeyrek, On buçuk, Yarım milyon lira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