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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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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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군
Türk Silahlı Kuvvetleri
Turkish Armed Forces

파일:Seal_of_the_Turkish_Armed_Forces.png
상비군
644,849 명 (2012년)
예비군
약 300,000 명 (2012년)
3세대 전차
339 대 (+1,000 대)
2세대 전차
1,330 대
1세대 전차
1,377 대 (+1,200 대)
전차 총합
4,246 대 (2011년)
장갑차(APCs/IFVs)
6,592 대 (2011년)
견인포
1,838 문 (2011년)
박격포
7,574 문 (2011년)
자주포
1,419 대 (2011년)
수송 차량
24,906 대
4.5세대 전투기[1][2]
0 기
4세대 전투기[3][4]
213 기(+60 기)
3세대 전투기[5]
156 기
조기경보관제기(AWACS)
4 기
전자전기(ECM, EP, ES)
0 기
공중급유기
7 기
헬리콥터
874 기 (2011년)
항공기 총합
1,950 기 (2011년)
항공모함
1 척 (+1 척)
GFP 기준 구축함[6]
0 척 (+8 척)
GFP 기준 호위함[7]
16 척 (+4 척)
초계함(고속정)
108 척[8]
잠수함
16 척(+6척)
전투함 총합
265 척
예산
국방비 총합
191억 달러 (2013년)

1. 개요
2. 수뇌부
3. 역사
3.1. 오스만 제국 이전
3.2. 오스만 제국
3.3. 제1차 세계 대전과 터키 공화국 설립
3.4. 냉전
3.5. 쿠데타
3.7. 제2차 리비아 내전
7. 기타
8. 터키군의 계급표
9. 출신 인물
10.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HER TÜRK ASKER DOĞAR! (모든 터키인은 전사로 태어난다!)[9]

Türk Silahlı Kuvvetleri (TSK), 터키 공화국의 군대이다.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해체된 직후 터키 공화국이 설립하자 기원전 209년 1920년 창설되었다.

터키는 서아시아에서 이란, 이스라엘과 함께 군사강국에 속하며 나토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유지하는 국가이며, 세계 10위권내에 들 정도로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냉전 시기, 소련군과 가장 먼저 대결해야 하는 위치였고 공산권 붕괴 이후에도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러시아군은 여전히 터키군을 압도하며 터키 아래쪽 중동국가들도 분쟁이 잦아서 일정 군사력을 상시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력이 좋지 않다보니 미국의 군사지원으로 유지하며 장비 수준이 좋지 않은 게 단점이다. 특히 터키의 경제력이 비교적 취약하고 장비도 노후화된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문제가 있다.

징병제로 대형의 육군을 유지하고 있으며 병력 규모는 50만명이다.[10] 제복군인 최선임 총참모장도 육군 출신들이 기용된다. 육군에 대규모를 투자하고 있다. 서아시아에서 군사력이 좋은 군사조직은 이란군, 이스라엘군, 사우디군[11]이 아니고 터키군이다. 물론 질적인 면을 고려하면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외형적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거대한 군대를 유지하는 이유는 터키의 안보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터키 주변에 있는 국가를 나열하면 러시아, 시리아, 이란, 이라크, 조지아, 그리스가 있고 약간 떨어진 곳을 포함하면 레바논, 이스라엘까지 있다. 즉, 냉전 시기에는 소련,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고 국경을 맞댄 그리스와는 에게 해의 영유권을 두고 언제 전쟁해도 이상하지 않은 험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냉전 이후에도 그리스와의 관계가 좋지 못하며 옆 국가 시리아, 이라크는 혼란스럽고 터키와의 관계가 좋지못하며 조지아는 러시아와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하다가 전쟁까지 했던지라 주변 정세는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쿠르드인들이 많이 사는 동부에서는 독립을 추구하는 쿠르드 무장단체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20세기 초반 중일전쟁, 국공내전에서 싸우던 장개석의 중국 국민당군과 유사한 점이 많다. 장병대우는 비교적 양호하지만, 고위층의 부정부패와 방산비리가 심각하다는 것과 병력은 많은데 장비는 낢았다는게 비슷하다. 거기에 공교롭게도 둘 다 독일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동맹관계로 여러가지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터키군도 창설 때부터 직간접적으로 독일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중국 국민당은 전간기에 독일과 무역협정을 체결해서 독일의 무기와 선진공업기술을 받아들였고, 한스 폰 젝트 장군을 단장으로 하는 독일군 군사고문단이 직접 중국으로 와서 국민당군을 훈련시키기도 했다.[12]

특히 터키군은 대부분의 군사력 상태[13]가 한국군의 1980~1990년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터키 국방부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F-5는 곡예비행대와 LIFT 부대에 배치된 소수를 제외하고 퇴역시켰고 F-4E의 경우에는 2개 전투비행대~3개 전투비행대대를 대폭 개량하여 운용하는 등 현대화에 상당한 노력을 쏟아붓는 중이다. F-4E와 일부 F-16을 대체할 F-35A 도입 사업을 진행시키고 있었으나, S-400 대공미사일 도입과 관련하여 미국과 마찰을 겪다가 터키 정부가 미국의 반대를 무시하고 S-400을 도입하자 반발한 미국에서 F-35A를 판매 취소함으로써 터키군은 최종적으로 퇴출되었다.

일부에서는 최근 몇 년의 터키군 신장비 개발이나 구매라는 단편만 보고 터키의 국방력이나 예산 집행에 감동(?)하는 경우가 있으나, 지금이 딱 터키군이 무기를 교체하는 시점이라[14] 이러한 면이 부각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에르도안이 이끄는 현 터키 정부는 육해공군 전반에 걸쳐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비증강안을 내놓긴 했으나 정작 터키의 경제력이나 기술력, 특히 최근에는 2016년 쿠데타 이후의 인권탄압과 IS 및 시리아 등의 군사적 개입, 쿠르드 무장단체들과의 교전에 따른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이러한 계획안이 실행될지는 의문점이 남아있다.


2. 수뇌부[편집]





3. 역사[편집]



3.1. 오스만 제국 이전[편집]


터키 육군의 휘장을 보면 밑에 M.Ö. 209 라고 쓰여 있는데, 기원전 209년이라는 의미이다. 왜 그런 숫자가 붙었냐 하면 터키 육군의 진정한 창설은 흉노묵돌선우(터키어로는 메테 한 Mete Han)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환빠들처럼 여기도 투라니즘주의자들이 군대를 중심으로 또아리들고 있다.(...) 물론 현대 터키군은 터키 국민군이 조직된 1920년에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209년은 그냥 흘려들으면 된다.

3.2. 오스만 제국[편집]


오스만 제국은 원래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으로 시작했고,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유럽 역사에 영향을 끼진다. 16세기만 해도 유럽의 초군사강대국으로서 동유럽을 정복하고 서유럽의 관문인 빈을 포위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했고, 젠타 전투에서 제대로 개박살나면서 더이상의 유럽 전쟁은 불가능해졌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성장하는 반면 오스만 제국은 유럽보다 떨어지는 국력과 궁정 암투와 민족주의의 발흥 등으로 인해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다.[15] 특히 러시아가 성장하면서 오스만과 자주 전쟁을 벌여 야금야금 터키를 털었고, 기독교를 믿는 동유럽 국가들(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이 차례차례 서유럽 열강의 도움을 받아 독립하면서 오스만 제국은 위기에 몰렸다. 오스만 제국은 군제개혁을 통해 예니체리를 해체하고 서구의 군사기술을 받아들이는 등 안간힘을 썼으나 너무 늦은상태였고 제국은 이미 막장화되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 차르였던 알렉산드르 1세는 "나는 빈사상태의 환자(터키)를 안고 있다. 그는 기껏해야 며칠 더 살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 며칠이 100년 이상을 더 가긴 했지만 크림 전쟁이나 1877~78년 러시아와 오스만 전쟁에서 연이어 오스만군이 밀렸던 걸 보면 그의 말은 들어맞았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오스만 제국은 건재했다. 1897년,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발칸 전쟁같이 어느정도 운도 따라줘서 그리스, 세르비아불가리아 다굴칠 때 바로 며칠전만 해도 적이었던 이들과 한편먹고 불가리아를 다굴쳐서 1차 발칸전쟁 때 불가리아가 먹은 유럽쪽 터키영토를 뱉어내게 만드는 성과도 얻었다. 하지만… 1912년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참전하기도 했던 리비아 전쟁에서 이탈리아군(!)에게 패해서 물러나고[16], 1차 발칸전쟁 때 그리스한테 빼앗긴 그리스 북부 영토는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3.3. 제1차 세계 대전과 터키 공화국 설립[편집]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잃은 영토를 되찾아보겠다고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함께 삼국동맹국에 끼었다. 터키 육군은 사실 러시아군에 자주 털렸지만, 갈리폴리 전투에서는 상륙한 영국군 및 영연방 연합군-프랑스군을 묵사발로 만들고, 영국해군 전함을 6척이나 격침시키기도 했다. 이때 작전을 입안한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작전 실패 책임을 지고 해군장관에서 물러났고 이 승리로 터키군 지휘관이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국가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17] 이 과정에서 오스만 터키 지배하의 아르메니아가 러시아 편을 들었는데, 터키군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르메니아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60만~ 150만)하여 문제가 되었다. 터키는 아직까지도 이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아르메니아도 항상 이를 언급하며 터키를 비난한다. 애초에 터키 입장에서는 인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게 아르메니아에서도 터키 민간인들을 상당히 많이 학살한데다가 아르메니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리스야 정면으로 치고박고 했기 때문에 인구교환을 통해 어느정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쳐도 아르메니아의 경우 공식적으로 전쟁한 게 아니기 때문에 피해보상이나 학살에 대한 문제해결이 곤란한 것도 있다. 게다가 지금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당시의 생존자들이 남아있지 않다는 문제점도 있다.

러시아가 해체되고 공산주의 정권이 성립되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러시아에게 엄청난 영토를 할양받지만, 이후 삼국동맹국이 패하면서 모두 잃어버리고 오스만 제국은 해체된다. 이후 케말 아타튀르크의 활약으로 터키 공화국이 성립되고, 급히 해체된 군을 긁어모아 아나톨리아 서부를 노리고 쳐들어온 그리스군을 격파하여 터키 공화국군은 실전데뷔를 한다.[18] 소위 터키 독립전쟁이라고 한다. 일련의 과정은 문서 참조.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일이 추축국에 끌어들이려고 무진 노력을 했으나[19] 현명하게도 전쟁이 끝나갈 무렵까지 가만히 있다가 전쟁이 끝날 때 쯤에 독일에 선전포고를 속보이게 했다. 한편 터키 공화국 건국 당시에 영국프랑스가 점령한 옛 오스만 제국 영토에 대해서도 협상을 벌였는데, 아랍인이 다수인 시리아, 이라크 지역은 포기하되 그중에서도 키프로스와 터키인, 쿠르드인이 다수인 모술 지역(오늘날 이라크령 쿠르드 자치구)에 대해서는 터키 공화국의 고유영토임을 인정받았지만 아타튀르크는 깔끔하게 포기한다. 영국과 맞설 이유도 없었을 뿐더러 이 지역에 거주하는 그리스인, 쿠르드인 등 소수민족들이 민족국가 터키를 형성하는데 문제가 될거라고 여겼기 때문. 게다가 장기간의 전쟁으로 터키도 사정이 나쁘다보니 더이상 전쟁을 할수 없었다. 현대에 와서 불타오르는 이 지역을 포기한 아타튀르크의 예지력


3.4. 냉전[편집]


냉전 시기에는 나토 동부의 핵심 군사력으로서 소련을 견제하는 최선봉이었다.[2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친미로 기울면서 소련의 가상적국이 된다. 유사시에 보스포루스 해협을 봉쇄하여 러시아의 흑해 함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위치였다. 사실 쿠바 미사일 위기때도 소련은 터키에 설치한 미군의 미사일 기지의 철수를 합의조건으로 삼기도 했다.[21]

친미국가라서 6.25 전쟁에도 참전했으며, 터키군은 참전 유엔군중에서도 용명을 떨쳤다. 압도적인 중국군을 물리친 금양장리 전투는 전설이 되었다. 참고로 이때 파병된 터키군의 상당수는 쿠르드족 출신이었다.[22][23]

일각에서는 터키군이 한국전쟁에서 엄청난 대민범죄를 저질렀다고 이야기 한다. 해당 포털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커뮤니티의 유저들은##### 이것을 믿고 터키를 까대고 있는데...

얼토당토 하지 않은 괴담이고 왜곡이다.## 해당 글의 출처는 아고라에서 나온 것이 전부이고, 한국전쟁 참전국은 24개국이 아니라 16개국이다. 기본적인 상식도 없이 작성된 소설인데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 자료들도 전무하다.

1974년 그리스 군부가 키프로스를 그리스에 합병하고자 군대를 파병하면서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과 충돌하여 벌어진 키프로스 전쟁에서 키프로스 섬 북부를 점령하고 괴뢰정권(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을 세운 역사가 있다. 이는 유엔 안보리에서 규탄되었으나, 아직도 터키군이 이 지역에 주둔하면서 괴뢰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3.5. 쿠데타[편집]


터키군은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의 세속주의 수호자 노릇을 했으며 정부가 종교적으로 문제있다고 생각되면 바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켰다. 이렇게 터키군이 세속주의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스만 시절 이슬람교에 경도되었다가 나라가 근대화에 뒤져서 유럽과 러시아한테 얻어맞고 살다가 망했던 쓰라린 경험 때문이다. 터키 군부는 쿠데타 이후 세속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넘긴 후 복귀한다. 1960년, 1971년, 1980년, 1983년에는 직접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했고, 1997~1998년에는 군부가 경고만 먹고 물러섰으나 해외에선 이것도 쿠데타급의 준쿠데타로 규정하고 있다. 2003년 에르도안 집권 이후에도 2007년에 정의개발당 소속이자 당시 외교부 장관이던 압둘라 귈이 대통령으로 당선 될 상황에 처하자, 터키군은 터키군 홈페이지에서 인터넷으로 압둘라 귈 대통령에게 경고하는 글을 올리면서 경고했다. 쿠데타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당시 터키군 참모총장이던 야사르 뷰우카느트는 에르도안 총리와 두시간동안 면담을 해야했다. 터키군의 쿠데타를 이슬람 근본주의 탓만 할 수도 없는게 군부역시 순수한 의도로만 쿠데타를 했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민간정부가 자신들의 세력을 억누르려고 하기에 뒤엎는 다른나라 막장 군부들이나 하는 짓과 비슷한 짓도 많이 했다. 1960년 쿠데타로 축출시키고 기어코 교수형까지 시킨 아드난 멘델레스 총리가 반군부 움직임을 보였다가 당한 좋은 예이다. 결국 80년대 와서 멘델레스는 복권되었다. 또한 1980년 케난 에브렌(Kenan Evren) 장군의 쿠데타 당시에 형식적으로 극좌, 극우정당 둘을 강제해산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세속주의 수호를 변명삼아 수많은 자유주의자들과 군부비난자들을 체포해 고문 및 구금하기도 했다. 터키의 작가인 아지즈 네신도 이 당시에 군부에게 밉보여서 유배되기도 했다. 오르한 파묵 역시 "다른 색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터키군의 쿠데타로 인해서 사람들이 잡혀가고 좋지 않았다고 회상했다.그만큼 터키에서 군부 집중권력은 심각했으며, 여러 기업 및 경제적 특권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터키를 군부 국가라고 유럽 나라들이 호되게 비판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곳도 민간정부의 입김이 세지는 편이며 2010년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개발당[24] 출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ip Erdoğan)[25] 총리는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정치군인들을 강제예편했는데 군부는 꼼짝도 못했다. 심지어 군부에서 육군사령관 후임을 정해서 올렸는데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해서 반려된적도 있다. 결국 정부의 의중에 부합하는 사람이 후임 사령관이 되었고 미국대사는 이례적으로 터키 정부의 군부인사를 지지한다는 공개 발언을 하였다. 20세기 후반의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 2011년 현지 신문에 실렸는데, 연 2회 개최되는 정부와 군부의 협의회시 2010년까지는 총리와 참모총장이 같이 상석에 착석했으나 2011년부터는 총리만이 상석에 앉은 사진을 대조하여 1면에 실음으로써, 터키의 문민통제로의 변화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군부는 이슬람교의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집권여당 정의개발당에 반해 세속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터키인들도 케난 에브렌 시절의 군부의 병크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를 만큼 당시 군부가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했던 탓이 크다. 언론에서는 군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정의개발당의 약 10년에 걸친 장기집권이 민간정부 우위가 강화되고 있는 한 원인으로 보인다. 정의개발당은 2001년 창당, 2002년 단독집권 이래 꾸준히 50~60% 정도의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며 3선째 집권하고 있는지라 아무리 터키 군부가 막강해도 함부로 날려버리기엔 눈치보인다. 또한 정의개발당의 전신인 복지당이 정권을 잡았다가 군부를 위시한 세속주의 세력이 헌법재판소를 통해 정당해산을 시킨적이 있어서 정의개발당도 군부를 위축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있다. 사실상 군부의 입장이 정책에 반영되어 내각으로 전해지는 기구였던 국가안보위원회[26]를 개편하여 장성급이 맡던 사무총장을 민간인으로 바꾸고 또한 다른 정부기관으로부터 정보를 요청할 수 없도록 했다.

또한 2008년부터는 '에르게네콘(Ergenekon)'[27]이라는 반정부 쿠데타 모의 단체에 대한 존재 의혹 및 수사가 가열화되면서 터키군 수뇌부가 크게 흔들리고있다. 이 사건은 2007년 이스탄불의 한 주택에서 수류탄 27발이 발견된데서 시작되었는데, 수사결과 검찰은 정의개발당 집권체제를 전복시키려는 군부 및 친 군부 기득권층들로 이루어진 에르게네콘이라는 반정부 단체의 존재가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터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에르게네콘'이라는 단체가 이슬람사원을 폭파하고 그리스 공군이 터키 전투기를 격추한 것처럼 위장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혼란과 소요를 일으켜서 정의개발당 정권을 위기에 무능한 정권으로 보이도록 한 뒤, 전복시키려 했다고한다. 이 쿠데타 계획은 이른바 '대형해머작전'이라하며, 쿠데타계획이 담긴 문서가 실제로 확인되었다는 것이 검찰 측의 주장. 반면 피고 중 한명인 체틴 도안 전 육군 1군 사령관 등은 보도된 문서는 정기 세미나에서 논의한 가상전쟁시나리오라고 쿠데타 기도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후 검찰 측에선 수많은 전현직 군장성과 친 군부, 혹은 야당 성향 언론인 등을 에르게네콘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때렸다. 2011년 당시 현역 군장성 365명 중 66명이 쿠데타 모의 혐의로 수감 중.(…) 전직 합참의장 등 전현직 4성장군들도 예외없이 기소되고 심지어 체포되는 등, 정부측이 매우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아무래도 국가 전가전복 혐의가 걸려있다보니 걸려있는 형량도 하나같이 세다. 2013년 3월 19일에 있던 에르게네콘 사건 13차 공판에서 검사측은 주요 연루자 64명은 무려 종신형을, 나머지 96명도 최고 15년형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군부 및 세속주의 야당 일파에선 되려 정의개발당이 세속주의 일파에 정치적 보복을 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2008년 3월 14일, 세속주의 성향의 알츤카야 부장판사가 헌법재판소에 여당인 정의개발당이 터키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 원칙을 어기고 있으므로 당을 해산하라고 헌법소원을 낸적이 있는데, 결국 헌재는 이 소원을 기각시켰지만 동시에 정의개발당에 들어가는 정당 국고보조금을 반으로 삭감시켰다. 그러니까 군부를 비롯한 세속주의 일파에선 에르게네콘 사건이 2008년 헌법소원 사태에 대한 일종의 사법 보복이라는 것.

그리고 보복이고 뭐고를 떠나 근 10년을 집권한 정의개발당이 아예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개헌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어 에르게네콘 사건은 정의개발당의 권력 독점을 위한 반대파 숙청 및 개헌 정국을 만들기 위한 포퓰리즘으로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리 정의개발당이 지지율이 높다 하나, 아직 단독 개헌을 이뤄낼 만큼 의석이 충분하진 않기 때문에 지지율 몰이를 할 건수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도 상기에서 언급했듯 터키 현지에선 대체로 일단 터키 군부를 좋게보진 않는지라(...) 정부에 대해 그리 큰 불만은 없는 듯 싶지만, 점점 늘어가는 공공장소 히잡 착용 여성이나 이슬람 교육 및 친이슬람 정책 등 종교화가 가속화되는 상황과 대통령제로 이행할 것을 주장하며 언론, 인터넷을 탄압하는 등 권력집중을 강화하고 있는 정의개발당과 에르도안 총리에게 점점 우려를 보내는 시선이 적지않다. 게다가 정의개발당은 에르도안 총리의 측근들이 부패 수사에 휘말리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또한 총리와 아들이 현금 10억달러 은닉 방법을 상의하는 내용의 녹취파일이 공개된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결국 2013년부터 뒤늦게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터키 국내에서도 정의개발당 정부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격렬한 반대시위가 발생했다. 다만 이 역시 터키군부 및 구 기득권층에 대한 지지와는 거리가 먼 상황.[28]

유럽 연합도 지금까지는 터키 군부의 정치개입에 대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반대해왔으므로 에르게네콘 사건 수사에 대해 반민주주의 성향의 지하조직을 소탕하여 문민지배를 확립하는 계기로 평가하며 환영했다. 그러나 검거대상이 군부에서 정부를 비판해오던 언론인이나 지식인들에게로 확대되자 정의개발당의 권위주의 통치를 공고히 하려는 수사가 아닌가 하는 터키 국내외의 의구심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

2013년 8월 5일 에르게네콘 선고 공판에선 일케르 바시부 전 터키군 총사령부 사령관까지 구속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그 외에도 퇴역장성 5명, 퇴역 대령 2명 등 17명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퇴역장성 및 언론인, 변호사, 대학총장 등 275명에게 중형을 판결했다. 판결을 앞두고 터키 정부에선 법원일대를 전면봉쇄했지만 이스탄불과 앙카라 등지에서 대대적인 세속주의, 군부 지지 시위가 일어나서 경찰과 충돌했다고 한다.

2013년 10월 9일 항소심에서 총 275명에 달하는 피고들 중 237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체틴 도안 전 육군 1군사령관, 하밀 이브라힘 프르트나 전 공군사령관, 외즈덴 외르넥 전 해군사령관, 퇴역 장성 출신인 에르긴 알란 민족주의행동당 의원 등의 군부 주요인사들이 18~20년형을 받았다. 36명은 무죄를 선고받았고 88명은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항소심에서 1심판결을 파기했다.

2013년 12월 정의개발당 에르도안 총리 측근들에 대한 비리수사가 시작되고 총리의 측근이 한 언론에 '비리 수사는 쿠데타를 유발하려는 음모'라고 기고하자(...) 터키군은 홈페이지에 직접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성명서를 개재했다.

2014년 3월 7일 일케르 바시부 전 터키군 총사령관이 석방되었다. 헌법재판소는 바시부 전 총사령관의 변호인측이 제기한 '불법적으로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지방법원이 바시부 전 총사령관의 주장을 실질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기각했으며 종신형을 선고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석방 이유를 밝혔다. 에르게네콘 사건 자체가 증거없이 조작된 사건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는 결정이 터키 헌재에서 나온 것.

그러나 정의개발당은 결국 2010년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고, 2014년 8월 10일 치러진 첫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서 총리 에르도안이 대통령으로 뽑혀 절대권력을 유지하면서, 문민통제라는 미명 하에 정의개발당 정권에 목줄이 잡힌 터키군의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에르도안이 2015년 선거에서 패배, 조금 숨통이 트인듯 하다. 그리고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ISIL이 마침내 터키에서 테러를 일으키자 공식적으로 이들을 조져버리겠다는 선포를 하였다.

그러나 터키가 ISIL에게서 원유를 구매하는 등 IS에게 우호적이고 잘싸우고 있는 페쉬메르가의 독립을 막으려는 행동이 관측되고 있다.

그동안 터키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예측이 강했지만, 2016년 7월 15일 드디어 군부는 에르도안을 몰아내기 위해 터키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재빠르게 터키 TRT와 CNN TURK, 정의개발당 당사, 보스포러스 해협, 광장, 기타 주요 장소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고 터키군 참모총장을 구금하고 성명까지 냈다. 에르도안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면서 국민들의 힘으로 결국 살아남는데 성공하였다. 쿠데타군은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항복하였고 앙카라와 카르스 마르마스 등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실패하였다. 앙카라에서 소수의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진압되었다. 이번 계기로 터키군은 숙청되었고 알레비와 세속주의 장교들은 해임되거나 감옥에 갔다. 에르도안은 귈렌파의 저항이라고 하지만 속내는 세속주의자와 귈렌파 숙청에 있다.

쿠데타 실패로 터키군은 이번 계기로 문민통제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크다. 그러나 터키군의 98%는 쿠데타에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쿠데타가 실패할수밖에 없었고 사실 쿠데타 숙청이 과한 측면이 있어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 특히 쿠데타 숙청을 빌미로 에르도안 정부의 인권, 언론 탄압이 심해지고 있다.

2016년부터 PKK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PKK의 저항이 워낙 거세다보니 터키군도 사상자가 적지않게 나오고 있다. 특히 터키 측은 군인과 경찰,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가 1200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무엇보다 숙청의 여파로 터키군은 공군의 조종사 부족이 심각해졌으며 주력 전투기인 F-16 조종사를 육성할 교관이 전무하다고 한다. 미국에 교관 4명을 요청했으나 미국이 거절했고 파키스탄 측으로부터 교관 3명을 구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미국의 방해로 어려운 실정이다. 거기다가 1350명의 공군 조종사 중 680명이나 제거된 상황이라[29] 복구가 어려운 상황이다.#, #[30] 그래서 터키 정부는 대책으로 민간 항공기 조종사들한테 재입대할 것을 명령했다. (링크) 문제는 이게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데다 터키 공군은 민간 항공사들에 비해 급여가 낮고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이다.


3.6. 시리아 내전[편집]


그간 ISIL의 공세에 터키 국경까지 밀려나던 시리아 쿠르드족 자치정부 로자바가 세력을 회복하면서 유프라테스강 너머의 만비즈 강을 건너게 되고 북부 시리아를 통일할 기세를 보이자 '유프라테스 방패'작전을 개시하여 자라블루스를 시작으로 알-바브로 공세를 시작한 상태이다. 터키군은 현재 러시아와의 협상과정에서 시리아 정부군을 직접적으로 적대하고 있지는 않으나 아주 가끔씩 터키 지원 FSA와 시리아군간의 교전이 벌어지고 있고 로자바의 지원세력인 PKK를 공격한답시고 FSA가 시리아민주군을 공격하도록 방조하는 등 병크가 누적되고 있다.[31]

그러나 알-바브 공략에서 터키군은 IS의 반격에 레오파르트2를 손실하는 등 큰 피해를 입으면서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는 졸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지난 쿠데타 미수사건의 대숙청으로 세속주의적인 군 장교단이 갈려나간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터키군이 알레포 일대의 FSA 및 반군들을 용병으로 사들여 자신들의 기간병력으로 삼아 자국민의 피해를 줄이려 했던 것이 주된 원인. 터키 입장에서도 이 전쟁은 사실상 대외 개입이기 때문에 피해가 커지면 당연히 국내 여론이 나빠지게 되므로 자국군 피해를 줄이려고 시리아 반군을 보병으로 동원했는데 전투력이고 사기고 개판이다보니 IS가 자폭차량을 앞세워 돌격을 감행하면 다들 겁먹고 도망쳐버렸다. 그 다음 자폭차량공격과 대전차무기에 기갑차량들이 직접적으로 노출되었고 그 뒤는 안봐도 비디오.

2월 24일경 다에쉬의 퇴각으로 터키군과 FSA는 알-바브의 완전점령을 선포했으나 이미 타이거 대령의 혼성부대가 남쪽에서 터키군의 예상진로를 미리 점령하는 방식으로 차단기동을 해버리면서 사실상 진로가 막혀버렸다.

2016년부터 ISIS와는 상관없이 일종의 FSA로 터키가 분류한 시리아 난민 지원군이라는 민병대를 지원하는것게 사실상 기정사실화 되었다. 이 민병대는 주로 쿠르드 주거지역의 민간인 습격때 모습을 보이는 부대로 터키군에서만 쓰이는 기동차량인 코브라가 다수 목격되었다는 쿠르드 시민보호기동대의 발표가있었다.

2018년 국경 인근 Afrin 지역에 쿠르드 민간인 대상 폭격, 포격을 진행중이며 터키군 특수부대가 민간인 학살활동 중 사살되었다.


3.7. 제2차 리비아 내전[편집]


2020년 1월 2일. 터키 의회가 트리폴리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파병안을 승인하였다. 찬성 325대 반대 184로 터키군을 1년 기한으로 리비아에 파병해 벵가지 정부와 교전을 하게 된다. 군사 전문가와 기술팀이 리비아의 합법 정부(트리폴리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될 것이라 한다.

2월에 터키군 2명이 사망했다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밝혔다.#

4. 육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터키 육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해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터키 해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터키해군의 정보


6. 공군[편집]


List of active Turkish military aircraft
파일:external/www.memurlar.net/headline.jpg

터키 공군의 조기경보기/공중급유기
이름
종류
제조국
운용 수량
추가 도입
기타
KC-135R-CRAG Stratotanker
공중급유기
미국
7 기


E-737 AEW&C
AWACS
미국
4 기[32]



터키 공군의 전투기(제트기)
이름
종류
제조국
운용 수량
추가 도입
기타
F-16C/D
다목적 전투기
터키/미국
215 기

블록 50 71대, 블록 40이하 144대
F-16C/D 블록 50+
다목적 전투기
터키/미국
30 기


F-4E 팬텀II
다목적 전투기
미국
20 기

52기의 팬텀을 2020년까지 업그레이드할 계획
RF-4E 팬텀II
정찰기
미국
35 기



터키 공군의 훈련기(제트기)
이름
종류
제조국
운용 수량
추가 도입
기타
F-5A/B 2000
훈련기
미국
27 기

48기를 LIFT급 으로 개수
T-38A/M Talon
훈련기
미국
70 기


T-41D Mescalero
훈련기
미국
25 기


SF-260D
훈련기
이탈리아/터키
33 기


KT-IT
훈련기
터키
40 기



터키 공군의 수송기/지휘통제기
이름
종류
제조국
운용 수량
추가 도입
기타
C-130H Hercules
수송기
미국
19 기


A400M
수송기
프랑스
10 기


C-160
수송기
프랑스
14 기


CN-235 M-100
수송기
스페인/터키
51 기


Gulfstream G550
수송기/지휘통제기
미국
? 기



터키 공군의 헬리콥터
이름
종류
제조국
운용 수량
추가 도입
기타
Eurocopter 쿠거 AS-532
기동헬기
프랑스/터키
20 기

정찰/구조용
UH-1 Huey
기동헬기
미국
20 기



터키 공군의 UAV
이름
종류
제조국
운용 수량
추가 도입
기타
GNAT 750
정찰기
미국
18 기


헤론
중고도 UAV
이스라엘
10 기


RQ/MQ-1 프레데터
중고도 UAV
미국
1 기
5 기

MQ-9 리퍼
중고도 UAV
미국
4 기


RQ-7 쉐도우
근거리 무인 정찰기
미국
6 기


에어로스타
정찰기
이스라엘
3 기


TAI Anka[33]
중고도 UAV
터키
30 기

터키 자체 개발 UAV
Bayraktar Akinci
중고도 UAV
터키
9 기
24 기
터키 자체 개발 UAV
Bayraktar TB2[34]
중고도 UAV
터키
110 기

터키 자체 개발 UAV
Bayraktar TB1
중고도 UAV
터키
110 기

터키 자체 개발 UAV
TAI Aksungur
중고도 UAV
터키
6 기

터키 자체 개발 UAV


7. 기타[편집]


육군, 해군, 공군, 국가 헌병대해안경비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군과도 교류가 많아서 훈련기 KT-1을 구매하기도 했고, 한국의 K-9 자주포를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으며[35] 현대로템에게 전차 기술을 받아서 알타이 전차를 생산하기도 했다.

이렇게 터키군이 한국군과 교류가 잦은 것은 비슷하게 미군의 무기체계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비슷하게 육군에 치중하고 있고, 또한 종교적-역사적 이유로 나토계 유럽국가들이 터키와 군사교류를 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또한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 때문에 각 유럽국가들은 쿠르드족 탄압에 이용될 수 있는 육군장비에 대한 수출을 매우 꺼리고 있다. 이래서 한국이 K-9 자주포를 수출하자 유럽의 인권단체에서는 이에 대해 항의하기도 했다.

이슬람 국가임에도 이스라엘과도 군사교류가 잦은 편이다. 그러나 2010년 6월 4일 벌어진 가자지구 구호선 총격사건으로 터키인 9명이 희생당하면서 관계가 악화되어 군사협력은 중단되었고, 이스라엘은 그리스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리스가 그동안 아랍연맹과 꽤 우호적이라서 종전 터키와 같은 수준까진 아니다. 같은 나토국이지만 터키와 그리스는 앙숙이며 같은 이슬람이지만 아랍연맹과 터키 또한 사이가 나쁘다.

터키군 복무 기한은 12개월인데 외국에 취직하거나 3년 이상 외국에 거주하면 병역을 면제(정확히는 3주 방위 복무)해준다. 유럽리그에서 뛰는 터키선수들이 다 이런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고졸 이하 학력도 면제된다. 그리고 해외노동자에 대해 10000터키 리라(2013년 1월 기준으로 630만원)의 돈을 내면 병역 면제해주기도 하며 게이도 병역면제가 된다.[36] 또한 대학교 다니는 병역 복무자는 사병으로 복무하면 6달만 복무하며 학사장교로 복무하면 1년을 복무한다. 다만 학사장교월급이 나오며 제대할 시기에 정식장교가 되고 싶으면 일정 교육을 받고 준장교로 임명된다. 참고로 일반 사병들의 봉급은 2000년대 중반 이전의 한국군이 그렇듯이 어린이들 용돈 수준(...)이다. 이렇게 널럴해보이는 터키의 병역제도는 청년층 인구 비중이 높은 터키의 인구구조에 힘입은 면이 있다. 즉 청년층 인구가 많다보니 입영자원도 많다. 한국도 청년층 인구가 많던 70-80년대에는 현역 입대율이 절반 남짓이었고, 대학생의 경우 3~6개월 가량 복무기간을 깎아주기도 했다. 반면 양심적 병역거부대체복무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렇게 군 징병에서 빠져나갈수 있는길이 많다보니까 유럽에서 터키인들을 쉽게 볼수있는 이유가 군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이민간 사람이 많아서라는 농담반 진담반식의 유머가 돌아다니거나 터키 내 대학입시가 치열한 이유가 남학생들이 군대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나올려고 한다는 웃픈 유머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오스만 시절을 고려하면 세계 최초로 공군을 설립한(1911년) 국가이다.[37] 공군의 라인업이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 F-16, F-4, F-5를 운용해 왔다.

쿠르드족 독립주의자들과 전쟁 상태에 있기 때문에 가끔씩 터키 육군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다수 소수민족 탄압국가들이 그렇듯이 터키군도 쿠르드족에 엄청난 인권탄압을 저지르고, 민간인에게도 꽤 많은 피해를 끼치는 편이다. 머룬 베레(밤색 베레)라는 특수부대도 보유하고 있는데, 쿠르드 독립세력 체포 및 암살 같은 해외공작도 수행하는 것으로 봐서는 특수부대 겸 특무기관을 겸하는 것 같다.

게다가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스트 집단들을 지원하고, 무차별적인 대량학살을 벌이고 있다.

군부 쿠데타 실패 이후 장교단 대규모 체포로 인해 F-16을 포함한 주요 항공전력 교관이 부족하다고 한다. 현재 미국과 한국에 훈련위탁을 요청중이며 미국측은 이미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있다.

군장비 현대화 재원 마련 명목으로 1만5000리라(한화로 약 350만원) 정도만 내면 ‘병역 면제’를 해주는 제도를 3개월간 시행한다고 한다(!). 터키, 350만원 내면 ‘병역 면제’ 3개월간 시행 왜? 그 때문에 미필자들이 군 면제 자금을 마련하려고 자동차 등을 급매물로 내놓는 등 ‘급전’ 마련에 다들 분주하다고 한다(...).[38]


8. 터키군의 계급표[편집]


파일:external/st.depositphotos.com/depositphotos_13783304-Turkish-army-insignia.jpg
장교계급장만 올라가 있다.

장교(Subay)

원수 Mareşal(마레샬) OF-10
대장 Orgeneral(오르게네랄) OF-9 [39]
중장 Korgeneral(코르게네랄) OF-8
소장 Tümgeneral(튐게네랄) OF-7
준장 Tuğgeneral(투으게네랄) OF-6

대령 Albay(알바이) OF-5
중령 Yarbay(야르바이) OF-4

소령 Binbaşı(빈바쉬) OF-3
대위 Yüzbaşı(유즈바쉬) OF-2 [40]

중위 Üsteğmen(위스테으멘) OF-1
소위 Teğmen(테으멘) OF-1

장교후보생 Asteğmen(아스트테으멘) OF-D

부사관(Astsubay)

경력 상사 Kıdemli Başçavuş (크뎀리 바쉬차우쉬)
상사 Başçavuş (바쉬차우쉬)
경력 중사 Kıdemli Üstçavuş (크뎀리 위스트차우쉬)
중사 Üstçavuş (위스트차우쉬)
경력 하사 Kıdemli Çavuş (크뎀리 차우쉬)
하사 혹은 병장 Çavuş (차우쉬)

병(er)
터키에서 병 계급은 구분되지않으며 단지 분대장(onbaşı)과 병(er)으로만 구분된다.

터키군 계급장


9. 출신 인물[편집]




10. 관련 문서[편집]


[1] 4.5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2] 4.5세대 분류법 (2)[3] 4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4] 4세대 전투기 분류법(2)[5] 3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6] GFP는 한국이나 통상적인 기준보다 더 큰 배수량의 배를 기준으로 삼는다.[7] GFP는 호위함이란 단어를 한국 보다 더 큰 배수량의 배를 부를 때 사용한다. 한국은 이 기준에 들어가지 못하는 1000~2000 톤급의 배도 호위함으로 부른다.[8] GFP는 초계함이나 고속정을 모두 초계함으로 처리했다. 초계함이나 고속정은 대규모 함대전에서 유효한 전력이 아니다. 이것들은 특작부대를 막을 때 한정적으로 유효하다.[9] 굉장히 오래된 터키어 관용구이다.[10] 하지만 2000년대 와서 진보 단체들이 터키군 병력 상당수가 당번병이나 온갖 비전투병으로 쓰인다고 비난을 하고 있다. 특히 터키군 1/3이 이런 일을 한다는 비공식 통계까지 있다고 한다.[11] 세계 3위의 국방비에도 GFP는 2~30위권이기 때문에 실 군사력은 이란,이스라엘, 터키에 비해 훨씬 뒤쳐져 있다.[12] 독일 장교들이 직접 훈련시킨 국민당의 중앙군은 한스 폰 젝트 장군의 진지전 전술을 채택해서 한때 마오쩌둥의 공산당군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가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13] 세계 경제력 순위는 19위로 11위인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참고 인구가 8천만이 넘기 때문에 1인당 GDP도 많이 차이가 난다. 2016년 기준 대한민국이 29위, 터기가 69위이다.[14] 일반적으로 지상군과 해공군 전력은 30~40년을 주기로 교체된다. 한국군이 1980년대 도입한 해군의 포항급과 울산급을 FFX로 교체하고 팬텀기를 F-35와 KFX로 교체하는 것처럼 말이다.[15] 이전 항목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쇠퇴 요인으로 '이슬람교 전통의 전근대적 제도' 를 들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스만 제국의 황실과 지배층이 신봉하는 종교는 이슬람이었고 그에 따라 이슬람 성법이 오스만 제국의 법에 미친 영향이 컸던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오스만 제국은 비잔틴 제국의 제도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근본주의 통치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타종교에 관대한 세속적인 국가였다. 오스만이 쇠퇴한 진짜 원인은 취약한 국력을 생각하지 않는 무모한 전쟁, 지배층의 부정부패와 사치로 인한 재정파탄, 피정복지에 대한 가혹한 착취로 인한 반란이 주 원인이다.[16] 사실 이 전쟁에서도 이탈리아군은 해안을 점령하고도 본토 지원이 힘들어 아랍 지원병으로 버티던 오스만군에 막혀서 내륙 진격에 거듭 실패하는 졸전을 펼쳤다. 하지만 발칸에서의 전운 때문에 오스만 측에서 서둘러 전쟁을 끝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리비아를 얻은 것.[17] 사실 이는 갈리폴리 전투 문서만 봐도 알듯이 터키를 깔본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처칠의 책임이 크다.[18] 동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그리스는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 및 이즈미르(스미르나)를 포함한 아나톨리아 서부를 수복하려고 했고, 이스탄불에서 점령군 행세를 하며 사태를 관망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그리스의 명백한 침략행위를 묵인했다.[19] 이는 터키와 소련이 막 건국되어 외교적으로 고립되었을 때 동병상련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련을 처음으로 외교적으로 인정한 나라가 터키다. 하지만 소련이 나중에 카르스를 비롯한 과거 러시아가 손에 넣었다가 소련 초기에 돌려준 지역을 다시 달라고 억지를 부리자 20만에 이르는 터키군을 소련 국경에 배치하여 죽어라 싸운다고 이를 갈아버려서 스탈린도 포기하고 물러섰던 적이 있다.[20] 나토 국가 중 소련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나라는 노르웨이와 터키뿐이었다. 그러나 노르웨이-소련 국경은 그 길이도 짧고 북극권 안쪽에 있어서 전면전에 돌입하기도 힘든 환경이라 전면전의 위험이 낮았기 때문에 사실상 나토와 소련의 유일한 접경지는 소련-터키 국경이었다.[21] 미국은 터키의 기지를 철수하긴 했지만, 대신 지중해SLBM을 실은 전략원잠을 배치하는 걸로 터키를 달랬다.[22] 하영식, "[이슬람 극단주의 광기 공포와 슬픔의 현장] <2>쿠르드 참전용사들과의 인터뷰", 매일신문[23] 이유가 있는데 한국 전쟁당시 터키군은 파병군을 확충하기 위해 직업군인 중 희망자와 복무중인 현역장병 가운데 복무기간을 1년 단축하고 추가로 위험수당 및 파견수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각 부대마다 희망자를 뽑아 한국으로 보냈다. 이때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인 중부와 동부지역의 병사들이 제대해도 딱히 일은 없고, 군대에서 한 몫 잡자는 심정으로 많이 지원했고 실제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 대부분의 고향은 중부지방과 남동부지방이다. 그리고 남동부지방 인구의 상당수가 쿠르드인이다.[24] 야당을 "꾸란으로부터 멀어져가고있다"고 묘사하는 등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정당이다. 그러나 다른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국가들 수준은 아니다.[25] '모스크는 나의 요새'라는 시를 대중앞에서 낭독했다가 종교·인종혐오를 부추겼다고 4개월동안 복역한 전력이 있다. 여러가지로 기민당처럼 종교와 무관한 정파라고 보기만은 어렵다.[26] 대통령, 총리, 총사령관, 법무·국방·내무·외무장관 및 육·해·공·치안군 사령관이 참여하는 기구.[27] 터키인들의 선조들이 도피했다는 중앙아시아의 전설상의 계곡 이름. 터키인들의 조상들이 이를 근거지로 세력을 길렀다고 한다.[28] 참고삼아 터키의 정치상황을 부가적으로 설명하자면, 2014년 3월경 이뤄진 지방선거에서 앞선 엄청난 스캔들과 논란, 반정부 감정에도 불구하고 정의개발당은 45.6%의 전국 득표율을 기록해 세속주의 정당인 제1야당 공화인민당의 득표율 27.9%를 크게 앞섰다. 수도 앙카라를 포함 81개 주 광역지자체장 자리 중 50개 주에서 승리했다. 이렇게 정의개발당에 대한 반정부시위가 흐지부지되는...가 했더니 2014년 5월경 발생한 소마광산 폭발사고에서 정의개발당 정부의 사고대처에 있어서의 무능력함과 각종 망언 등으로 반정부시위에 다시 불이 붙었다.[29] 모두 투옥되거나 해외로 도주했다.[30] 물론 터키 공군이 쿠데타의 주축을 이루기도 했고 엄연히 민간인에게 폭격을 가한 책임은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아무 대책도 없이 권력 강화와 군부 견제를 위해 무더기로 숙청한 에르도안의 책임이 크다.[31] 시리아민주군은 다에쉬와의 전쟁에서 사실상 최전방에 서있는 부대로 미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같이 받고 있다. 더군다나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의 진행을 위해 미국의 공습 지원을 받는 대신 쿠르드인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통수를 치는 행위를 벌이면서 미국에서도 한때 공습 지원을 끊으려 들기도 했다.[32] 2기를 추가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33] TAI Anka[34] Bayraktar TB2[35] 그런데 터키 정부는 이를 자체 개발한 것으로 선전했기에 많은 터키인들이 그렇게 알고 있으며 터키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K-9과 엮이기를 죽도록 싫어한다. 자국 위키 등에서는 한국과 관련된 내용을 의도적으로 서술하지 않으며, 영문 위키에선 서브 시스템만 일부 수입해서 자체 개발했다는 논리로 반달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심지어 유튜브 등의 자주포 관련 순위 영상에서는 Where is the T-155? 라고 외치기도 한다.[36] 다만 진짜로 게이라고 인증하면서 군대에 안 갈경우에는 보수적인 터키 사회상 이상한놈 취급받기 좋은데다가 구직활동에도 지장이 생기기때문에 당사자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군대가기 싫은 사람들은 게이 포르노 동영상을 보내면서까지 군대에 안갈려다보니가(...) 터키군내에서 해당 동영상이 게이인증 영상인지 진짜 아니면 게이 포르노 영상을 보내면서 게이인지를 알아내는 직책도 있기는 한다.[37] 다만 그 당시에는 육군 휘하의 항공부대였고 독립된 군종은 아니었다.[38] 사실 터키 정부는 2011년과 2014년에도 '기여 군 면제 제도'를 시행했었다. 이렇게 징수한 세금은 장비 현대화 등을 위한 국방 예산으로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인기용의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지적도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39] 해군은 뒤에 general대신 amiral(아미랄)이 붙는다. 가령 해군대장은 Oramiral(오르아미랄)[40] 터키어로 binbaşı, yüzbaşı는 각각 1000인대장, 100인대장 이라는 의미이다. 옛 터키어의 전통이 그대로 계승된 셈. 마찬가지로 분대장은 onbaşı(십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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