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이스라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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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2.2. 21세기
2.2.1. 민간구호선 공격사건
3. 문화 교류
4. 교통 교류
5. 대사관
6. 관련 기사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튀르키예이스라엘의 관계를 다루는 문서.

둘 다 친서방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 인구는 대다수가 무슬림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 관련하여 이스라엘과 국민 감정이 좋지 못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1] 그러나 튀르키예와 혈맹급인 아제르바이잔이 이스라엘과 우호가 깊은 상황이라, 튀르키예 입장에서 이스라엘과 노골적으로 적대하기도 어렵다. 튀르키예와 달리 아제르바이잔은 아예 이스라엘 공군을 주둔시키고 같이 훈련도 하고 이스라엘군 교관 지도를 받을 정도이다. 물론, 아제르바이잔은 이웃 아르메니아와 원수지간이라 아르메니아와 전쟁을 대비해서 이랬던 것이고, 2020년 전쟁에 이겨서 1991~1994년 전쟁에서 잃은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대부분 되찾았다. 이러자니, 튀르키예로서도 이스라엘과 갈등을 계속 빚을 수도 없는 상황.

다만 튀르키예의 쿠르드 탄압 문제랑 키프로스 문제 등으로 이스라엘도 튀르키예랑 가깝게 지내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2022년 8월에 외교관계 전면 복원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 극우 정부 출범 이후 외교관계가 백지화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우익 정부는 쿠르디스탄 분리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고, 지금 극우 연정 안에서 역할 비중이 높은 이타마르 벤-그비르 장관의 부모님이 쿠르드 출신이기 때문에 쿠르드족 탄압하는 튀르키예 입장에선 상당히 껄끄러운 입장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20세기[편집]


튀르키예는 주변 모든 국가와 적대하는 이스라엘과 유일하게 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했었다. 유일하게 이스라엘과 군사훈련도 가지기도 했었으며, 이스라엘제 장비를 제공받기도 했었다.[2]

이스라엘에서도 생존에 필수적인 이나 자원 등 많은 부분이 튀르키예를 통해 공급되기도 하는 만큼 이스라엘에겐 생명줄과도 같은 국가. 때문에 이스라엘은 아르메니아 문제에 대해선 입을 다물거나 터키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미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상원 결의를 반대하던 유태계 네오콘이 꽤 많았다.

튀르키예 자체도 짝퉁 이슬람이라느니 친미국가라느니 하며 아랍 계열 국가들이 까대는 처지라 이스라엘과의 협조 노선은 자국에도 나름대로 이익이 되는 셈. 일례로 아르메니아계가 세계은행을 압박해 BTK 철도 라인 건설에 투입될 자금줄을 막자 유태계가 나서 다시 줄을 대준 사례도 있다.

1969년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 이스라엘, 에티오피아, 이란, 튀르키예(당시 국명은 터키)로 구성된 반아랍동맹을 요구하였다.

2.2. 21세기[편집]



2.2.1. 민간구호선 공격사건[편집]


2010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로 입항하는 튀르키예 자원봉사자들이 탄 배 '마비 마르마라'호를 공격해 튀르키예인 등 10명을 숨지게 하는 큰 사고를 친 뒤로는 관계가 아주 나빠졌다.

튀르키예는 이스라엘에 대해 "전쟁이라도 해보자는 거냐" 는 불만을 터뜨렸고 아주 보복을 하고자 이스라엘에 공급하던 물을 줄이려고까지 했었다. 결국 이스라엘이 튀르키예인 희생자들에 대하여 보상을 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은 바 있다. 그러나 튀르키예 정부는 2011년 9월 2일 이스라엘이 '유감이야' 라고만 하고 있을 뿐 한 번도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적은 없음을 이유로 이스라엘 대사 추방을 선언했다. #

거기에 에르도안 튀르키예 총리가 9월 11일 이집트를 방문하면서 13일에 한 연설을 봐도 "이스라엘을 아랍과 튀르키예가 손 잡고 따돌리자, 팔레스타인 건국은 의무사항이다" 를 강력하게 천명하면서 이스라엘에겐 난리가 벌어졌다.

2011년 12월 23일에는 이스라엘이 튀르키예로 수출하려던 군장비를 안보상의 문제로 불허함으로서 튀르키예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튀르키예가 이란과 화해하기에 그렇다고 하지만 이미 3년 전부터 계약된 것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 기사에도 나온듯이 튀르키예 구조선을 공격한 이스라엘의 잘못이 화근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이 튀르키예와 역사적으로 앙숙인 그리스, 불가리아와 국방협력을 하며 가까워지려고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리스는 그동안 튀르키예 견제를 위하여 튀르키예와 앙숙인 아랍 나라들과 우호관계를 맺으며 이스라엘과 좀 거리를 두고 있기에 아직은 먼 이야기다. 게다가 튀르키예나 이스라엘이나 서로 아쉬운게 많고, 아직은 친미적인 입김이 강한 튀르키예라서 이스라엘과 전쟁으로 붙자 정도까진 아니다. 게다가 그리스는 경제위기 이후로 황금새벽당같이 나치를 찬양하는 극우주의 정당이 기승을 부리는 터라 나치에게 자민족인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이스라엘로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불가리아는 이스라엘 건국 이전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스라엘의 주민족인 유대인들을 나치의 홀로코스트로부터 보호해준 이력도 있었고,[3] 이스라엘과는 외교적으로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정작 군사력이나 경제력, 인구수도 그리스보다 더 떨어지는 가난한 빈국이기 때문에,[4]이스라엘로서는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다만 국민감정은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험악해졌다. 이스탄불에서만 해도 반 이스라엘 시위가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고 있으며, 번번이 이스라엘 국기가 불에 타고있다.대략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제5차 중동전쟁이 터져 이스라엘과 전쟁중인 아랍국들과 합세하여 이스라엘과 전쟁에 참전한다 해도 이상할게 없을듯 싶다. 오죽하면 일부 튀르키예인들은 차라리 그리스인이나 불가리아인이 더 이스라엘놈들보다 낫다고 말할 정도이다.[5]

2013년 들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동 순방을 하면서 이스라엘로부터 튀르키예에 대한 사과를 이끌어낸 것이 양국 관계를 정상화시킬 것인지 관심을 모은다.

그리고 2015년 12월, 관계 정상화 원칙에 합의하면서 해빙 무드로 접어들었다. 이스라엘은 회담에서 튀르키예 민간 구호선 희생자 보상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튀르키예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낸 모든 법적 소송을 취하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고위 관리가 튀르키예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할 방침이다.# 하지만 회담을 한지 이틀만인 12월 20일에 바로 이를 뒤집어버리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하마스 수장인 칼레드 마샬과 회담을 가졌다. 이는 하마스 고위 관리의 튀르키예 활동금지를 무효로 하는것이나 다름없어 이스라엘은 반발하지만 튀르키예는 간섭하지말라며 씹고 있다.

2016년 6월 27일에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은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고 하마스도 합의에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관계가 정상화되고 있다.#

2022년 3월 10일에 이스라엘의 아이작 헤르조그 대통령이 튀르키예를 방문하면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선언했다.#

6월 23일에 이스라엘은 이란의 보복 암살 기도를 저지한 튀르키예에게 감사의 뜻을 밝혔다.#

양국이 관계개선에 박차를 가하며 이스라엘 항공기 취항도 15년만에 이뤄졌다.#

2.2.2. 예루살렘 선언 여파[편집]


2017년 12월 예루살렘 선언 여파로 튀르키예 측이 이스라엘과 단교를 선언할 것이라고 나서고 있다.


2.2.3. 팔레스타인 관련[편집]


2018년 가자지구 경계선에서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인 수십 명이 사망하자 서로 상대국 대사를 추방했다. 이후 총영사도 추방했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인 이스라엘에게 "우리는 이스라엘과의 유대관계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고 하면서도 팔레스타인 정책은 우리의 레드라인"이라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의 무자비한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

2021년 5월 11일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시위 진압에 대해 팔레스타인 수반과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2021년 10월 21일 튀르키예의 언론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정보기관(MIT)이 모사드와 연계된 15명의 요원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

2023년 4월 8일,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스라엘 측에게 라마단 기간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긴장 완화 노력을 촉구했다.#


3. 문화 교류[편집]


오스만 제국은 비록 이슬람 제국이었지만 다양한 종교를 믿는 피지배 민족의 관습을 존중하는 나라였기에 유대인들은 샤리아가 아닌 유대교 율법에 따른 자치를 보장받았다. 이러한 연유로 세파르딤 유대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유럽 및 북아프리카 영토 내에서 지방 세리 등의 역할을 맡으며, 독자적인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세파르드 유대인들이 튀르크 문화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오늘날 이스라엘의 세파르딤 사이에서도 남아있는 "악마의 눈" 관련한 터부를 들 수 있다.

오늘날 튀르키예 영토인 아나톨리아동트라키아에는 로마 제국 시절부터 '로마니오테스' 또는 '로마니오팀'이라 불리며 그리스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해당 지역의 유대인 상당수가 튀르크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동로마 멸망 이후에는 해당 지역의 유대인 공동체 전체가 튀르크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하지만 로마니오테스 집단은 인구도 적고 가난한 편에 속했는데, 동로마 제국에서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대신 경쟁관계에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우대받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조라디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자국 유대인들을 추방하면서, 해당 유대인들이 오스만 제국 영토로 이주하여 오스만 제국 내 유대인 공동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 내 로마니오테스들은 자신들보다 보다 부유하고 인구 규모도 더 많은 세파르딤들이 대량 유입되자 이들과 급속히 동화되었는데, 이러한 연유에서 로마니오테스의 예배 전례나 고유 언어가 상당부분 실전되었다.

튀르키예는 관광 대국인 이유로 이스라엘인 관광객들도 튀르키예를 자주 찾는 편이다. 다만 튀르키예와 이스라엘 사이의 민간 감정이 악화될 때[6] 이스라엘 측에서 자국민 안정상의 이유로 튀르키예 관광을 불허하거나 자제시키는 경우가 있다.#

2019년 튀르키예 드라마 '이스탄불의 신부'(Istanbullu Gelin)'이 이스라엘에서 인기를 얻자 드라마 연계 관광상품이 개발되는 등 1990년대 이후 식은 튀르키예 여행에 대한 관심도 다시 커지는 분위기이다.#


4. 교통 교류[편집]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하며 양국간의 왕래가 자주 있다. 튀르키예-이스라엘 항공노선을 통해 팔레스타인으로 입국하는 경우도 있다.


5. 대사관[편집]


텔아비브에 주이스라엘 튀르키예 대사관, 앙카라에 주튀르키예 이스라엘 대사관이 존재한다.


6. 관련 기사[편집]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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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포츠를 보면 알 수 있는데 2008년 유로 농구 챔피언스리그 예선전에서 만난 튀르키예 베식타스 JK와 이스라엘 농구팀 마카비 텔아비브 경기 당시 원정경기를 하던 이스라엘 선수들에게 튀르키예 관중들은 엄청난 야유를 퍼부었고 이스라엘 팀은 이런 분위기 덕에 대패한 적도 있다.[2] 이스라엘 기술진으로부터 F-16용 개량엔진을 제공받은 적이 있으며, 오잘란 체포에도 모사드가 정보를 제공했다.[3] 당시 정치권의 정치가들을 비롯해 민간인, 정교도 사제들까지 유대인들을 숨겨주거나 보호를 펼쳤고, 유대인과 집시족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인도하라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참여 요구에도 '유대인들이 불가리아인에 동화되어 대거 유대교를 버리고 동방정교로 종교를 전부 개종했다는' 주장을 앞세워 거부하며 나치의 내정간섭에 극렬히 맞섰다.[4] 오히려 유로존 경제위기로 망한 그리스보다 더 경제 상태가 안 좋다. 1인당 GDP도 그리스보다 못 사는 수준. 다만 동유럽의 최빈국인 알바니아나 몰도바보다는 조금 높은 편이다.[5] 그러나 정작 그리스인과 불가리아인들은 오히려 이스라엘보단 튀르키예가 더 싫다는 반응을 보인다.[6] 이를테면 이스라엘의 튀르키예 민간 구호선 공격 사건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