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비타 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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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ēvita ʻUnga

테비타 웅가는 통가의 왕세자이자 총리였다.

1824년 아버지 타우파하우와 후궁 Kalolaine Fusimatalili 사이에 태어났다. 아직 전통적 통가의 부족 혼례를 따르던 시절이라, 왕은 여러 첩실을 두었다. 이후 통가가 근대화하면서 서구식으로, 정식 왕비의 자녀만 계승권을 인정하고 사생아의 계승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는 계승에서 배제되었다.

그러나 투포우 1세의 왕비인 살로테 루페파우의 두 아들이 모두 일찍 죽으면서, 통가엔 왕위 계승권자가 없어졌다. 1875년 통가 헌법을 도입하면서, 사생아의 계승 권한은 없다고 해뒀지만 테비타 웅가만은 예외적으로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835년, 11세의 나이로 피피타 바바우(Fifita Vavaʻu)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장녀는 엘리시바 공주[2]였다. 그 외에 장남 윌리아무 왕자[3]와 차남 날레소니 왕자[4]를 두었다. 이후 피피타가 죽자 테이사 팔루(Teisa Palu)와 재혼하였고, 후처와 자녀는 없었다.

1876년 1월 1일부터 통가의 왕세자가 되었고, 통가 총리를 지내다가 1879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사망 후에 그의 장남인 윌리아무가 왕세손이 되었다. 그러나 윌리아무도 1885년에 사망하면서, 그 동생인 날레소니가 왕세손이 되었으나 그 역시 1889년에 사망하였다. 엘리시바 공주도 같은 해에 사망하면서, 엘리시바 공주의 아들인 시아오시가 왕세증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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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화 시절의 일본과 비슷하게, 서구권과 비슷한 인상으로 그려졌다. 후손들의 사진을 보면 이 초상화는 실제 통가인의 인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2] ʻElisiva Fusipala Taukiʻonetuku. 1850-1889[3] ʻUiliamu ʻUelingatoni Ngū Tupoumālohi 1854-1885[4] Nalesoni Laifone. 1859-1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