텡그리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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텡그리즘의 대표적인 상징인 맹금류 심볼. 이외에도 다양한 상징이 많다.
1. 개요
2. 특징
3. 한민족과 관련
4. 매체


1. 개요[편집]


Tengrism

중앙아시아동아시아유목민족들에게 있던 천신(天神) 신앙의 일종으로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이 섞인 종교이다. 주로 흉노, 훈족,[1] 몽골, 튀르크 등 중앙아시아계 유목민족이 믿었다고 추정된다.


2. 특징[편집]


역사적으로 텡그리교는 크게 튀르크계, 몽골계, 퉁구스계로 나눌 수 있다. 몽골과 튀르크계 민족들이 믿었던 종교이기에 몽골과 튀르크 계열의 신화, 문화의 요소가 많이 첨가되어 있다.

주신인 하늘의 텡그리,[2] 땅의 에제 또는 우마위가 있는 등 기본은 다신교 신앙이다. 링크. 지역에 따라서는 텡그리가 유일신이 아닌 여러 위상을 지닌 다신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에서는 최고 천신인 호르무스타 텡그리가 99텡그리의 수장으로 일컬어진다. 이 호르무스타 텡그리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16세기에 새로 생긴 개념의 텡그리로, 이전에는 텡그리가 단수로 유일신과 비슷한 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텝 텡그리라는 종교 지도자가 있으며, 칭기즈 칸 시기에 몽골 제국이 형성하는 과정에서 선전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제나 성직자와 같은 포교와 교리 체계를 갖추지 못한 데다가 전파 노력도 그다지 진행되지 않았다. 카마그 몽골 칸국이 대몽골 제국으로 부흥하며 급속도로 영역이 확장되어나가는 영향을 받아 대제국의 교황이 될 뻔했으나 텝 텡그리인 쿠쿠추가 수많은 추종자들을 모으면서 오만해져 칭기즈 칸을 우습게 보다가 끝내 처형당하면서 텡그리즘은 사실상 몰락하게 되었다.[3] 그나마 남아있던 텡그리 신앙도 중앙아시아이슬람이 확장되고 본토인 몽골 지역에 티베트 불교가 전파되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물론 텡그리 신앙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몽골에서는 티베트 불교 다음 가는 영향력을 가졌다.

민속으로서는 여전히 텡그리의 박수무당격인 존재가 남아있으나 신앙으로서는 티베트 불교와 융합되거나 아예 그 지위를 잃은 채 전통문화로서 보존되는 추세이다.

근현대에 와서 텡그리교를 민족주의와 결합하거나 재부흥시키기 위한 다양한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대표격으로 알타이인악 장(Ak Jang/Burkhanism), 추바시인밧티센 얄리(Vattisen Yaly), 키르기즈인텡기르 오르도(Tengir Ordo), 야쿠트인아이위 신앙(Aiyy Faith) 등이 있다.

기록보다 구전을 중시하던 중앙아시아 부족들 특성상 여타 정주 민족들의 종교보다는 정보가 많이 부족한 면이 있다.

텡그리 신앙이라는 것이 국가에서 군주가 제사를 지낸 신앙이었는지 백성들이 믿어오던 민간 신앙이었지는 불분명하고 아직 존재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신교이므로 그리스도교, 불교와 같은 종교로 봐야 할지는 이견이 많다.

한서》(漢書)에 따르면[4] 흉노국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탱리고도선우(撑犂孤塗單于)의 "撑犂"는 '텡그리'(*tengri)의 음차이며, 흉노어로 '하늘'을 뜻한다. 탱리고도선우 자체는 '하늘의 아들, 우두머리'라는 뜻이 된다. 몽골 학자들 중 일부는 몽골어 '텡그린 후후두 초노'(하늘의 자손인 이리)를 음차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돌궐어로 텡그리는 𐰚𐰇𐰚:𐱅𐰭𐰼𐰃(kȫkteŋri, 쾩 텡리)라고 했다.

텡그리라는 말이 예니세이어 계통의 언어에 속한 단어 'tɨŋVr'에서 기원한 외래어라는 주장도 있다. 기사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중국의 세 나라 국경에 위치한 '한텡그리봉'(Khan Tengri)은 텡그리를 이름으로 사용하는 산인데, 이름 그대로 '하늘의 왕', '영혼의 왕'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해발 7,010m로, 톈산 산맥에서 두 번째로[5] 높은 산이며 카자흐스탄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3. 한민족과 관련[편집]


단군신화 역시 텡그리 신앙의 일종이며, 한민족이 북방 유목민의 일파 혹은 북방 유목민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주요 증거 중 하나다.

또한 단군의 어원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단군이라는 이름이 문헌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몽골 간섭기에 쓰여진 삼국유사인데, 한국어의 몽골 유래어가 거의 다 이 시기에 생겼을 정도로 당시 고려는 언어적으로 몽골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한 영향은 신화에도 미쳤을 것이고 삼국유사가 집필될 당시 몽골 신화의 텡그리라는 이름을 단군 신화에도 차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몽골의 침공 이전에 쓰여진 삼국사기에서는 단군왕검 대신 선인왕검(仙人王儉)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게다가 한국인과 북방 유목민 사이의 관계를 부정하는 주장도 있다. 유전자 검사 및 하플로그룹 분류 결과에 의하면 한민족과 일본인은 모두 요하 농경민의 후예로[(주의)], 북방 유목민의 유전자가 없는 것은 아니나 거의 미미하며, 요하 농경민이 동진해 퉁구스인과 결합해 농경을 전파하고 한민족의 기원이 되었다는 트랜스-유라시아 가설(구 알타이 제어 가설)역시 증거 부족으로 폐기 직전 상태이다. 한국인의 유전자에 북방계 유전자가 있는 것은 기후 등의 요인으로 인해 요하 지역 물질문명이 쇠퇴해 황하 지역에 밀리게 되자 북방의 유목민이 역으로 남진해 유목을 포기, 농경을 받아들여 요하 농경민과 일부 결합했고, 이들이 요동 지역까지 동진해 만들어낸 십이대영자 문화가 바로 현 한국인의 직계 조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요하 농경민이 주류가 되지만 다른 유전 집단과의 결합이 어떤 양상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따라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그 산하 세부 민족집단이 구분되는 것으로 본다. 즉 요약하자면 한국인은 요하 농경민의 후예이고, 북방 유목민의 피 역시 가지고 있으나 그건 요하 물질문명의 쇠퇴로 북방 유목민이 남진해 농경을 받아들여 요하 농경민과 결합한 결과이지 한민족이 북방 유목민 그 자체의 후손은 아니란 뜻이다.

다만 그런 유전적인 연구만으로 문화적으로도 북방 유목민의 영향이 미미했다거나 우리가 그들의 후손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에 부족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튀르키예인의 경우 유전적으로는 고대에 존재했던 아나톨리아 원주민들의 후손이지만 문화적, 언어적으로는 처음에 소수였던 튀르크인에게 완전히 동화되어서 그들을 자신들의 조상이라 여기고 있는데, 분명 똑같은 요하 농경민의 후예라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언어가 서로 다른 계통인 데서 알 수 있듯이,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의 조상이 문화적, 언어적으로 북방 유목민들에게 더 강하게 동화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반박하자면, 트랜스유라시아어족 가설 자체도 주로 비교언어학적 측면에서 비판받았을 뿐 유전학적인 측면에 대해선 별다른 비판을 받지 않았는데, 그에 따르면 알타이 제어를 사용하는 북방 유목민 계열의 민족들도 유전적으로는 요하 농경민의 후예라고 할 수 있으므로 애초에 한국인이 북방 유목민의 후손인지를 따질 필요 자체가 없고, 따라서 한국인•일본인과 북방 유목민족들의 공통 조상인 요하 농경민에게서 텡그리 신앙이 시작되어 각지로 퍼져나갔다는 가능성 또한 제시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조선 관련 최신 학설에 따르면 고고학적인 연구 결과 고조선 문명 자체가 농경보다는 수렵이나 유목 위주의 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만약 이 가설이 맞을 경우, 한국인들이 북방 유목민의 후손이 아니라는 건 고조선 사람들이 한국인들의 조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4. 매체[편집]



[1] 다만 훈족이 텡그리를 믿었다는 사서는 없어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 정도로 보고 있는 수준이다. 다만 동북아시아에서 밀려나서 유럽까지 이주한 흉노족들이 현지의 스키타이계나 게르만계 부족들을 산하 부족으로 흡수하면서 형성된 민족이 훈족이니만큼 이들의 토속 신앙이 텡그리와 깊게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2] 텡리가 원어민 발음에 가깝다.[3] 쿠쿠추가 처형당한 후에 칭기즈 칸이 새로운 텝 텡그리로 야수 노얀을 세우기는 했으나 그는 칭기즈칸이 세운 허수아비여서 아무런 권위가 없었다.[4] 匈奴謂天為「撐犁」,謂子為「孤塗」,單于者,廣大之貌也.(흉노인들은 하늘을 「撐犁」라고 불렀고 아들을 「孤塗」라고 불렀으며, 單于는 광대한(넓고 큰) 자태이다.)[5] 첫 번째는 포베다 산[(주의)] 후술하겠지만 이 사실은 오히려 트랜스유라시아어족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쓰였다는 점에서 이 문장 전체, 나아가서는 이 문단 전체가 논리적으로 오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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