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레 안드레 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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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달 풋볼
Sogndal Football

파일:flo-profile-1920.jpg

이름
토레 안드레 플로
Tore André Flo
출생
1973년 6월 15일 (50세) /
노르웨이 베스트란 현 스트륀 주 플로
국적
[[노르웨이|

노르웨이
display: none; display: 노르웨이"
행정구
]]

신체
193cm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소속
선수
송달 풋볼 (1993~1994)
트롬쇠 IL (1995)
SK 브란 (1996~1997)
첼시 FC (1997~2000)
레인저스 FC (2000~2002)
선덜랜드 AFC (2002~2003)
시에나 칼초 (2003~2005)
볼레렝아 포트발 (2005~2006)
리즈 유나이티드 FC (2007~2008)
밀턴킨스 던스 FC (2008~2009)
송달 풋볼 (2011~2012)
감독
첼시 FC (2013~2014 / 유스)
노르웨이 U-18 대표팀 (2014~2017 / 수석코치 )
첼시 FC (2017~2021 / 코치)
송달 풋볼 (2021~)
국가대표
파일: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76경기 23골 (노르웨이 / 1995~2004)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클럽 경력
4. 국가대표 경력
5. 지도자 경력
6. 여담



1. 개요[편집]


토레 안드레 플로는 노르웨이의 전 축구선수이다.

노르웨이 대표팀의 90년대 전성기를 대표하는 공격수였다.

2. 플레이 스타일[편집]


193cm의 키를 자랑했던 장신 스트라이커. 자신의 키를 이용해 상대 수비수들과의 공중볼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몸이 상당히 유연한 편이라 좋지 않은 자세에서도 곧잘 슈팅으로 득점을 터트리곤 했다. 또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발기술 또한 훌륭한 편이라 볼컨트롤 또한 수준급이었다.


3. 클럽 경력[편집]


1993년, 송달 IL에서 프로 데뷔를 한 폴로는 트롬쇠 IL, SK 브란 등 자국의 클럽들을 거치며 리그에서 떠오르는 공격수로 자리 잡았다.


3.1. 첼시 FC[편집]



파일:Flo_Blues.jpg


자국 리그를 평정한 그는 1997년 여름에 프리미어리그첼시 FC로 이적하게 됐고 첫 시즌부터 시즌 44경기동안 15골을 넣으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한다. 이 시기에 그는 17라운드 토트넘 홋스퍼 원정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6-1 대승을 이끌기도 했다.

1998/99시즌에는 팀에 피에를루이지 카시라기가 영입되는 등 경쟁자들의 합류로 출전 시간이 전보다 줄었으나 다시 한 번 리그에서 13골을 넣으며 본인의 역할을 다했고 블루스의 첫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견인했다.

1999-00시즌에 그는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열린 FC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멀티골을 넣으며 3:1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그는 캄프 누에서의 원정 2차전에서 또 한 골을 넣었지만 팀은 결국 5:1로 패하면서[1] 아쉽게도 4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플로는 당해 시즌 첼시의 최다 득점자였으며 FA컵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8강의 주역이었다.

2000-01시즌이 시작될 무렵, 팀은 스트라이커인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에이두르 구드욘센을 영입하면서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플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벤치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팀에 이적을 요청했다. 첼시에서 163경기에 출전했고[2] 50골을 넣었다.


3.2. 레인저스 FC[편집]



파일:Flo_Rangers.jpg


2000년 11월, 플로는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팀인 레인저스 FC로 이적한다. 그의 이적료 1,200만 파운드는 당시 노르웨이 현역 선수 중 최대규모의 이적이었으며 현재까지도 레인저스의 클럽 레코드로 남아있다.

많은 이적료를 쏟아부었기에 구단과 팬들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플로는 기대에 제대로 보답하게 된다. 그는 데뷔전에서 레인저스의 최대 라이벌인 셀틱 FC을 상대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팀의 5:1 승리에 견인하며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그리고 해당 시즌에 리그 30경기에서 18골을 기록했다. 레인저스에서의 두 번째 시즌에서는 42경기동안 22골을 기록하며 지난 시즌보다 더욱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3.3. 이후[편집]


레인저스에서 2시즌 동안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한 폴로는 2002-03시즌 여름 이적시장 데드라인날에 선덜랜드 AFC로 이적하게 되면서 2년만에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한다. 그러나 첼시에서만큼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리그 29경기 4골에 그치면서 2부리그 강등의 원흉이 되고 말았고 그렇게 EPL 생활을 쓸쓸하게 마무리하게 됐다.

영국을 떠난 그는 이탈리아의 시에나 칼초, 볼레렝아 포트발, 리즈 유나이티드 등을 거쳤으나 기량은 점점 갈수록 쇠퇴했고 2008년 3월,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그러나 2008년 12월에 은퇴를 번복하고 밀턴킨스 던스 FC에서 뛰다가 1년 뒤에 다시 한번 은퇴를 선언했는데 2011년 또 은퇴번복을 하면서 그는 고향팀 송달에서 말년을 보냈고 2012년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4. 국가대표 경력[편집]



1995년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플로는 노르웨이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조별리그 브라질전에서 동점골을 넣었고 역전골이 되는 페널티 킥을 유도하여 16강 진출에 기여하였다. UEFA 유로 2000에도 출전했지만 3경기동안 한골도 득점하지 못한 부진한 활약으로 팀의 조별리그 탈락을 바라봐야했다.

2004년,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31살의 나이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여담으로 플로는 브라질만 만나면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나머지 브라질 킬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5. 지도자 경력[편집]


첼시 유소년 팀과 노르웨이 U-18을 맡았다가 2017년 첼시의 기술코치로 돌아왔다.

2021년 11월 노르웨이 2부 리그의 송달 풋볼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첼시를 떠났다.


6. 여담[편집]


  • 그는 첼시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첼시 FC 앰버서더로 선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 국가대표팀에서 솔샤르 대신 선발로 뛰었을 정도로 굉장한 선수였는데[3] 활약상에 비해 국내에서 인지도가 매우 낮아서, 본 항목 역시 2020년이 되어서야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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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장전에서 2골 실점[2] 70경기는 교체 출전[3] 브라질이 노르웨이 징크스를 겪게 만든 장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