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키아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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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역사
История на Българи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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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역사
Η ΙΣΤΟΡΊΑ ΤΗΣ ΕΛΛΆΔΑ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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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명칭
3. 역사
3.1. 고중세
3.2. 근현대


1. 개요


영어 : Thrace
터키어 : Trakya
그리스어 : Θράκη(Thráki)
라틴어 : Thracia
불가리아어 : Тракия(Trak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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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상당부분 (트라키아), 터키의 유럽 부분 (트라키아[1] : 이스탄불에디르네 일대), 그리스 동북부(트라키아) 일대를 포함하는 역사적 지명.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다루면 많이 등장하는 지명 중 하나이다.
주요 도시로는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비잔티움)을 필두로, 에디르네(아드리아노폴리스/하드리아노폴리스), 세르디카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 필리포폴리스 (불가리아의 플로브디브) 등이 있다.

2. 명칭


터키에서는 동트라키아를 루멜리(Rumeli, 구 오스만 제국령 유럽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루멜리아(Rumelia) 라고도 하는데, (옛) '로마 땅' 이란 뜻이다. 아나톨리아도 오랫동안 동로마 땅이었는데 유럽 쪽에만 이런 용법이 생긴 이유는, 아무래도 수도(콘스탄티노폴리스)가 유럽 쪽에 있다는 게 큰 데다가, 또 튀르크족 입장에서는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아나톨리아에 뿌리박아 동쪽 내륙 -> 중앙 내륙 -> 서쪽 해안 식으로 점점, 하지만 확실하게 뻗어오면서 아나톨리아를 튀르크화, 내지(본토)화[2]시킨 다음 유럽으로 넘어갈 기회를 보다가 1350년대 다르다넬스 해협 변의 갈리폴리[3]가 지진이 나면서 동로마의 통제력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다르다넬스를 넘어 유럽으로 진출하였기 때문이다.

3. 역사



3.1. 고중세


트라키아인들은 흑해 북쪽에서 이주해온 것으로 여겨지며 가까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인들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었다. 전통적으로 호전적이고 야만스런 민족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바로 아래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거치며 빠른 속도로 문명화되었던 것에 반해 오랜 기간 동안 부족국가 체제를 유지했으며 기원전 5세기 말엽에 오드뤼사이 왕국을 설립했지만 그리스인들에게 촌동네 취급을 당한 건 마찬가지였다.[4] 어쨌든, 고대 트라키아인들은 그리스와 접하면서 많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았으며 신화적으로도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다키아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도 여겨지는데, 다키아인들 자체가 트라키아와 분리되기 이전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민족인 것으로 여겨지며 실제 기록이나 발굴되는 유물 등지에서 서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인지 여기 출신인 스파르타쿠스도 트라키아 촌놈으로 많이 지칭됐고, 그 이후에도 로마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시대까지 오랫동안 검투사, 전사, 기병 등 무인의 산실로 유명했다.
참고로 스파르타쿠스가 죽은 기원전 71년에서 300년이나 지난 시대인 군인 황제 시대 때에도 황제인 막시미누스 트라쿠스(230년대) 시대에도 트라키아와 트라키아인은 여전히 촌구석과 촌놈 취급을 받았다. 200여 년 더 지나서 동로마 초기의 황제인 레오 1세 트라키안도 있는데, 저 때의 '트라키아'는 이미 수도권인 만큼 비하의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역으로 되짚어 보면 아직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중세 시대의 인구 50만 되고 그런 으리으리하고 짱짱한 위세를 갖추지는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중의 동로마 황제들도 아르메니아인, 이사우(브)리아인, 프리기아인 등의 출신지명이 특징으로 잡혀 별명으로 붙어 있는데, 이들은 수도권(콘스탄티노폴리스와 마르마라 해 연안 지역) 및 동로마의 핵심지(앞의 수도권+에게 해 연안의 그리스와 소아시아 서부)와 거리가 다소 있는 지방들이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천도 이래로 일약 신 수도권이 되면서 그런지 몰라도, 동로마 제국 시대엔 그런 무인의 산실+촌동네 이미지는 아나톨리아의 내륙 테마들로 옮겨간다. 트라키아인은 그리스어를 쓰지만 5세기 들어 슬라브인들이 남하하면서 슬라브인들에게 동화되었으며 불가르족, 남슬라브족과 함께 현대 불가리아인의 3대 조상 중 하나로 꼽힌다.

3.2. 근현대


동로마 제국의 치하 이후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으며 투르크 제국의 쇠퇴 이후 1차 발칸 전쟁으로 불가리아가 서트라키아랑 동트라키아를 에디르네[5]까지 에노스-미디아선까지 콘스탄티노폴리스만 남기고 다 차지했다가 2차 발칸전쟁에서 패배하여 터키가 다시 에디르네를 빼앗았다.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편이 된 그리스가 승리하여 불가리아로부터 서트라키아까지, 투르크에게서 콘스탄티노폴리스만 빼고 동트라키아까지 트라키아를 대부분 다 회복했으나 그리스-터키 전쟁으로 에브로스(메리치)강을 경계로 에디르네 및 동트라키아를 터키에게 뺏기고 서트라키아만 수복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선 추축국인 불가리아가 다시 서트라키아를 점령하였지만 종전으로 전쟁 이전의 국경으로 되돌아가 트라키아는 그리스, 터키, 불가리아 간에 각각 분할되어 현대에 이르게 된다.

[1] 좁은 의미의 트라키아는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 광역권, 즉 이쪽만을 뜻한다.[2] 튀르크화(Turkification) 영어 위키백과 링크 참고 : #[3] 현 겔리볼루, 또한 1차 대전 갈리폴리 전투의 그 '갈리폴리'[4] 왕국이라봐야 그리스와 교류가 용이한 국경이나 해안 지대에 적당한 규모의 도시 몇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대다수는 내륙이나 산지에서 야만스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5] 그리스명 아드리아노플, 불가리아명 오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