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에스테 자유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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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에스테 자유 지구
Territorio Libero di Trieste
Svobodno tržaško ozemlje
Slobodni teritorij Trsta

국제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 관할령
파일:트리에스테 자유 지구 국기.svg
파일:트리에스테 자유 지구 국장.svg
국기
국장
파일:AwgUL7j.png
1947년 ~ 1954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공화국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국가
Inno San Giusto
수도
트리에스테
정치체제
임시 군사 정부
국가원수
대통령
언어
이탈리아어, 슬로베니아어
종교
가톨릭, 세르비아 정교회,
유대교

통화
이탈리아 리라(A지구)
트리에스테 리라
(B지구)

1. 개요
2. 역사
3. 소멸



1. 개요[편집]


1947년 트리에스테 지역을 둘러싼 이탈리아유고슬라비아 간의 영유권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성립되었다. 1954년에 양국이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 분할에 합의함에 따라 소멸하였다.

2. 역사[편집]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던 곳이나 패전에 따라 오헝제국은 해체되었다. 오헝제국의 영토에는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새로운 민족국가들이 들어섰는데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가 위치한 지역은 이탈리아인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이 뒤섞여 살던 지역이라 영유권을 두고 이탈리아 왕국유고슬라비아 왕국이 갈등을 벌였다. 최종적으로 1924년에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에 해당하는 지역은 모두 이탈리아 왕국에 귀속되었다. 이 지역의 슬로베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은 이탈리아 왕국의 이탈리아 동화 정책 대상으로써 민족성을 억압당했고, 이탈리아가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하고 나서는 대놓고 탄압당했다.

2차대전에서 이탈리아는 패전국이 되었고, 1945년에 트리에스테 인근에는 영국군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동시에 주둔했다. 이는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트리에스테를 점령했지만, 이 곳을 차지했던 나치 독일군[1]이 영국군에 항복한 데서 비롯되었다. 트리에스테 인근 남슬라브계 주민은 유고슬라비아에 귀속되고자 했고 이탈리아계 주민은 이에 위협을 느꼈다. 이탈리아계 주민과 남슬라브계 주민의 갈등이 폭력사태로 번지게 되자, 영국군과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잠정적 협정을 맺어 서로의 점령 지구를 분할하게 되었다.

1947년에 이탈리아는 연합국과 강화조약(파리조약)을 맺어 일부 영토를 프랑스와 유고슬라비아에 할양했는데, 이 조약에서 트리에스테 인근 지역만큼은 이탈리아계 주민과 남슬라브계 주민의 갈등으로 영유권을 확정짓지 못하고 미루기로 하였다. 그 대신 트리에스테 인근 지역은 트리에스테 자유 지역으로 지정하고 UN 결의를 통해 별도의 통치기구를 두기로 하였다. 이 때 트리에스테 시를 포함한 북부 지역을 A지구(면적 222.5㎢, 인구 26만 2406명), 이스트라 반도 북서부 지역을 포함한 남부 지역을 B지구(면적 515.5㎢, 인구 7만 1000명)로 하였는데 A지구는 영국군 점령 지역, B지구는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점령 지역에 해당하였다.[2]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의 통치기구는 미국과 영국에서 임명한 군정장관이 A지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지명한 군정장관이 B지구를 통치하는 형태였다. 일단 국제사회에서는 주권을 갖는 독립국처럼 인식되어, 마셜 플랜 지원대상국 중 하나였으며 OECD 창립국에 들어갔다.

트리에스테 자유지구의 존속 기간 동안 A지구 내의 남슬라브인은 이탈리아계의 압박을 피해 B지구로 이주하였고, 반대로 B지구 내 이탈리아계는 남슬라브계의 압박을 피해 A지구로 이주했다.

3. 소멸[편집]


트리에스테 자유지구는 1954년 10월 26일이 이탈리아 공화국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사이에 맺은 협정에 따라 사실상 소멸되었다. 협정의 골자는 A지구의 행정권을 이탈리아가, B지구의 행정권은 유고슬라비아가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법적으로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이 때부터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의 통치 기구가 폐지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이 때 소멸된 것이다. 이탈리아가 패전국이고 유고슬라비아가 승전국임을 고려하면 이탈리아에 다소 유리하게 영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대신에 이탈리아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물건을 우선 수입하는 등 경제 지원을 하게 됐다.

그리고 1975년에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는 오시모 조약을 맺어 A지구와 B지구를 각각 이탈리아 영토와 유고슬라비아 영토로 하는 것으로 합의하여 영토 문제를 최종적으로 마무리지었다.

1954년에 유고슬라비아는 B지구를 분할하여 북부를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남부를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에 귀속시켰는데 1991년에 유고 내 두 구성국이 독립하면서 현재는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의 영토가 되었다. 슬로베니아는 이 때 트리에스테 분할을 통해 코페르나 이졸라 같은 B지구의 주요 항구를 얻어서 내륙국이 되는 신세는 면했다.

한편 조약의 당사자인 유고슬라비아가 유고 내전으로 소멸되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 간의 오시모 조약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효력이 있는지에 대해 국제법적인 논쟁이 있다. 일단 슬로베니아는 오시모 조약에 따른 의무를 승계하겠다고 밝혔고 크로아티아는 명시적인 언급을 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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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트리에스테는 나치 독일괴뢰국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 통치하고 있었고, 따라서 나치 독일군이 주둔했다.[2] A지구의 경우 후에는 미군도 주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