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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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에이스(Triple Ace)

1. 소개
2. 목록


1. 소개[편집]


글자 그대로 적기 15기 이상을 격추한 에이스 파일럿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투기의 체공시간이 짧고 무장도 빈약하여 격추수가 상대적으로 적던 1차 대전만 해도 에이스를 넘어 트리플 에이스에 등극 하는 파일럿 조차 극히 드물었으나, 불과 20년 후인 2차 대전에서 벌어진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의 항공전은 수많은 에이스 파일럿을 탄생 시켰고, 세자리수의 격추를 기록한 슈퍼 에이스들을 비롯해 단 하룻 동안의 격추수 만으로 에이스의 칭호를 얻어낸 '1일 에이스(ace in a day)'는 물론 , '1일 더블 에이스(Double-ace in a day)'를 넘어 극히 드물지만 '1일 트리플 에이스(Triple-ace in a day)'까지 낳게 된다. 전쟁 역사를 통틀어 이와 같은 수준의 전과를 거둔 전투조종사는 오직 5명만 밝혀져 있을 뿐이고, 앞으로도 절대 더 이상 탄생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짧은 명단을 살펴보면 거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그 모두가 루프트바페 출신이며 전장은 동부전선이라는 것이다. 우선 독일 공군의 전투조종사들은 스페인 내전부터 숱한 실전을 겪어와 출격횟수가 여타 공군 조종사들에 비해 훨씬 많으며, 그만큼 실전 경험 또한 압도적으로 많았던 상황을 꼽을 수 있다. 두 번째 요소인 전장은 북아프리카 전선의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 1명만 제외하면 전부 동부전선이라는 사실인데, 이것 역시 독소전 초기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내몰린 소련 공군이 처한 상황을 잘 대변해주는 통계라고 할 수 있다. 마르세이유의 경우도 상대하는 사막공군의 기종들이 성능이 뒤떨어지는 P-40 토마호크를 상대로 거둔 것이며. 전후에 영연방 측의 전투보고서와 대조해보면 사실상 엄청나게 과장된 나치 독일 측의 프로파간다였다는 주장이 거의 인정받고 있다. 즉, 기량과 장비 격차가 큰 독소전을 제외하면 '1일 트리플 에이스'는 없었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조종사가 하루에 여러 차례 출격하면서 15대 이상 격추시키는 사례는 가히 초인적인 경지에 이른 비행술과 사격술을 갖추지 않으면 기회가 오더라도 해낼 수가 없는 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심지어, '1일 더블 에이스'인 에리히 루도르퍼 같은 경우는 1회 출격에 13대를 격추시켜 아깝게 트리플 에이스가 되지 못한 케이스도 있는데,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 기록은 1회 임무 최다 격추수로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전무후무한 대기록일 것이다.


2. 목록[편집]


  • 후베르트 슈트라슬(Hubert Strassl) : 1943년 7월 5일, 동부전선의 오룔 상공에서 소련 공군기 15대 격추로 보통 공중전 역사상 첫 트리플 에이스로 회자되곤 한다.

  • 에밀 랑 : 1943년 11월 3일, 동부전선에서 소련 공군기 18대 격추한 사건으로 일일 최다 격추 기록.


  • 빌헬름 바츠 : 1944년 5월 31일, 동부전선에서 소련 공군기 15대 격추.

  •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Hans-Joachim Marseille) : 1942년 9월 1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영연방 공군기 17대 격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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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기 서술한 대로, 오늘날에는 오래된 서적을 제외하면 이 전과는 사실이 아니었고 더블 에이스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가 대체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