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관왕/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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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격 삼관왕
1.1. 달성 선수 일람(KBO)
1.2. 달성 선수 일람(MLB)
1.3. 달성 선수 일람(NPB)
2. 투수 삼관왕
2.1. 달성 선수 일람(KBO)
2.1.1. 1992시즌까지의 달성자
2.1.2. 1993년부터 바뀐 규정 기준의 달성자
2.2. 달성 선수 일람(MLB)
2.3. 달성 선수 일람(NPB)
3. 지도자 삼관왕
3.1. 달성 지도자 일람(KBO)
3.2. 달성 지도자 일람(MLB)
3.3. 달성 지도자 일람(NPB)



1. 타격 삼관왕[편집]


야구에서 타자가 단일 시즌에 타율, 홈런, 타점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할 때 삼관왕으로 인정한다. 타율, 홈런, 타점 외 다른 공식 기록(최다안타, 출루율, 장타율, 도루, 득점)은 인정하지 않는다. 즉, 1988년 김성한의 홈런·타점·최다안타나 2009년 김상현홈런·타점·장타율은 그냥 삼관왕이라고 칭하지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KBO 리그에서는 단 세 차례밖에 없다. 본래는 타격 쪽에서만 삼관왕을 따졌던 것을 나중에는 투수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투수 삼관왕과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 하는 문제는 둘 다 어렵지만, 그래도 타격 삼관왕이 약간은 더 어렵지 않나 하는 게 중론. 홈런과 타점은 거포형 선수한테 유리한테, 타율은 교타자형 선수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KBO에서 타격 삼관왕은 3번밖에 없었지만, 투수 삼관왕은 7번이나 나왔다.
  • 근데 그 중 네 번이 선동열... 그래서 사람 수로 따지면 한국 프로야구에서 투수 삼관왕 경험자는 4명이다. 물론 타자 삼관왕은 2명뿐이니, 투수 삼관왕과 타격 삼관왕의 달성 난이도를 단순 비교할 경우 타격 삼관왕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 100년에 넘는 메이저 역사에서도 투수 삼관왕은 36번, 타격 삼관왕은 단 17번뿐이다. 게다가 타격 삼관왕 기록은 1967년에 아메리칸 리그에서 칼 야스트렘스키가 달성한 후, 40년이 넘는 기간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다가 2012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미겔 카브레라가 45년 만에 달성했다. 투수 삼관왕은 21세기 들어와서만 5번. 특히 2011년은 양대리그에서 모두 투수 삼관왕 달성자가 나왔다. 또한 2회 이상 달성자도 타격 삼관왕은 NL의 로저스 혼스비, AL의 테드 윌리엄스뿐이나 투수 삼관왕은 2회 이상 달성자만 7명에[1], 그 중 3회 달성자가 3명이다[2]. 일본 프로 야구 또한 투수 삼관왕은 18번, 타격 삼관왕은 11번 나왔다. 그나마 오치아이 히로미쓰, 오 사다하루, 랜디 바스같은 사람들이 몇 번을 해먹어서 사람 수로 따지면 타격 삼관왕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훨씬 적다.
  • 포함되는 항목의 차이도 중요하다. 투수의 경우 삼진을 잘 잡는 선수는 당연히 주자를 잘 안 내보내므로 실점이 적어 방어율이 낮을 것이고, 점수를 적게 주므로 승리할 확률도 높을 것이다. 그러나 타자 쪽은 사정이 다르다. 홈런을 치기 위해서는 힘을 싣기 위한 큰 스윙이 필요한데, 큰 스윙을 하면 공을 잘 맞추기 어려우므로 타율이 희생된다. 또한 높은 타율을 위해서는 내야 안타를 때문에 발이 빠를수록 유리한데, 홈런을 치기 위한 파워를 늘리려면 근육을 키워야 하고 그로 인해 덩치가 커지면 그만큼 스피드가 줄어들게 된다. 결국 타율과 홈런은 한쪽이 늘어나면 한쪽이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 관계에 가깝다. 거기다가 세 부문을 모두 어느 정도 자기 의지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투수와는 달리, 타점은 자기 앞에 출루한 주자의 수와 관계가 있으므로 자기 의지대로만은 되지 않는다. 그런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단적으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삼관왕이 아니라 타격왕과 홈런왕을 모두 해본 선수는 이만수와 이대호 외에 김기태, 김태균, 최형우 뿐이고 이 중에서 타점왕을 해본 건 왕조를 세웠던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최형우 뿐이다.[3]
  • 심지어 KBO 리그 기준으로는 승률까지 넣은 사관왕마저도 타자 삼관왕보다 1회 많다[4]. MLB 기준으로 11년 벌랜더, 02년 존슨, 99년 페드로, 65년 쿠팩스, 34년 레프티 고메즈, 30, 31년 레프티 그로브, 1913, 24년 월터 존슨, 1915년 피트 알렉산더, 1905년 루브 워델, 1889년 존 클락슨, 1888년 팀 니피, 1884년 찰스 래드번, 1877년 토미 본드가 쿼트러플 크라운으로 총 15회이므로 타자 삼관왕 횟수와 비슷하다.
  • 2010년 삼관왕[5]인 이대호는 2011년에 최형우에게 홈런, 타점에서 밀려서 삼관왕에 실패했다. 반대로 최형우는 이대호에게 타율에서 밀려서 삼관왕에 실패했다.
  • 3명 모두 우타자이고 좌타자는 단 한명도 없다.[6]


1.1. 달성 선수 일람(KBO)[편집]


  • 이만수(삼성 라이온즈, 1984 시즌): .340 .414 .633 23홈런 80타점[7][8]
  •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2006 시즌): .336 .409 .571 26홈런 88타점
  •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2010 시즌): .364 .444 .667 44홈런 133타점 KBO에서 유일한 타격 삼관왕 2회 달성, 그리고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관왕이다. '한미일 세 리그에서 모두 10홈런 이상' 기록만큼이나 깨기 어려울 성적.[9]

이들 외에 3개 이상의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타율-홈런-타점이 모두 포함되지는 않은 케이스로는 2010년 이후 기준 타율-득점-출루율-장타율의 2015년 에릭 테임즈, 타율-출루율-장타율의 2019년 양의지, 홈런-득점-타점-장타율의 2020년 멜 로하스 주니어, 홈런-타점-장타율의 2013년 박병호, 타율-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의 2022년 이정후, 홈런-타점-장타율의 2011년 최형우, 타율-안타-타점의 2016년 최형우가 있다.


1.2. 달성 선수 일람(MLB)[편집]


메이저리그의 삼관왕 기록은 다음 홈페이지를 참조.위키피디아


1.3. 달성 선수 일람(NPB)[편집]


NPB의 삼관왕 기록은 다음 홈페이지를 참조.위키피디아
  • 1970년 이후 달성자
    • 오 사다하루(요미우리 자이언츠, 1973 시즌 센트럴 리그): .355 .500 .755 51홈런 114타점
    • 오 사다하루(요미우리 자이언츠, 1974 시즌 센트럴 리그): .332 .532 .761 49홈런 107타점
    • 오치아이 히로미츠(롯데 오리온즈, 1982 시즌 퍼시픽 리그): .325 .428 .606 32홈런 99타점
    • 부머 웰즈(한큐 브레이브스, 1984 시즌 퍼시픽 리그): .355 .421 .641 37홈런 130타점
    • 랜디 바스(한신 타이거스, 1985 시즌 센트럴 리그): .350 .428 .718 54홈런 134타점
    • 오치아이 히로미츠(롯데 오리온즈), 1985 시즌 퍼시픽 리그): .367 .481 .763 52홈런 146타점
    • 랜디 바스(한신 타이거스, 1986 시즌 센트럴 리그): .389 .481 .777 47홈런 109타점
    • 오치아이 히로미츠(롯데 오리온즈, 1986 시즌 퍼시픽 리그): .360 .487 .746 50홈런 116타점
    • 마츠나카 노부히코(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004 시즌 퍼시픽 리그): .358 .464 .715 44홈런 120타점
    • 무라카미 무네타카(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22 시즌 센트럴 리그): .318 .458 .710 56홈런 134타점[10]

여담으로 1988년 퍼시픽 리그 난카이 호크스의 카도타 히로미츠는 위의 타율, 홈런, 타점의 기본적인 타격 삼관왕이 아닌 홈런, 타점, 출루율로 타격 삼관왕이 된 적 있다.[11] 또 1995년 퍼시픽리그 오릭스 블루웨이브스즈키 이치로는 타율, 타점, 도루, 안타, 출루율, 득점으로 그 해 퍼시픽리그 타격 6관왕을 달성한 바 있다.[12] 그리고 위에 서술한 삼관왕 수상자들 중 단일리그 시절인 나카지마 하루야스(1942년, 외야수), 노무라 카츠야(1965년, 포수)를 빼면 전부 내야수들이 삼관왕을 달성했다.


2. 투수 삼관왕[편집]


투수가 단일 시즌에 평균 자책점, 다승, 탈삼진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할 때 삼관왕으로 인정한다. 타격 삼관왕과 마찬가지로 다른 공식 기록(승률, 홀드, 세이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구대성이 1996년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지만 삼관왕으로 인정하지는 않은 것. KBO에서는 모두 여섯 차례 나왔다.

한국프로야구에서 탈삼진왕이 1993년에야 신설됐기 때문에 1992년까지는 다승, 평균 자책점, 승률을 모두 1위를 해야 삼관왕으로 인정 받았다. 이는 1989년(퍼시픽리그)/1991년(센트럴리그)에 탈삼진왕 타이틀을 신설한 일본프로야구 또한 마찬가지. 그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프로야구의 경우 언론에서 승률을 포함한 사관왕을 조금 더 비중있게 언급하기도 하며, 일본프로야구는 여기에 최다완봉을 포함한 투수5관왕이 관용어처럼 사용된다. 참고로 1992년까지 이 조건을 만족한 투수로는 1982년의 박철순(OB 베어스, 삼관왕 및 MVP), 1989년~1991년의 선동열(해태 타이거즈)이 있다. 이런 이유로 1986년의 선동열은 평균 자책점, 다승, 탈삼진 1위였으나 승률 1위가 아니여서 당시 논란이 되었다.

선동열은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 연속 삼관왕을 기록했다.[13]

김광현은 2008년에는 다승과 탈삼진 1위였는데 평균자책점이 1위 윤석민의 2.33에 0.06 뒤지는 2.39여서, 2009년에는 독보적으로 삼관왕 분위기를 만들어 냈지만 타구에 맞는 부상으로 인해, 2010년에는 역시 17승, 평균자책점 2.37, 183탈삼진으로 굉장한 시즌을 보냈지만 평균자책점 1.82, 187탈삼진을 기록한 류현진에 밀려 이루지 못하였다. 김광현의 2010시즌 조정 평균자책점은 192로 2006년, 2011년에 저마다 삼관왕을 기록했던 류현진, 윤석민보다 높은 수치였으나 하필 류현진이 동년 선동열 이후 최고 기록인 254를 기록하며 이룰 수가 없었다.

2006년에는 한미일 3국에서 모두 나왔다. 또 2006년에는 이대호, 류현진이 각각 타자와 투수 부문에서 삼관왕을 따냈다. 즉, 타자의 주요 3가지 부문과 투수의 주요 세 가지 부문의 1등을 두 명이 독차지 했다는 뜻이다.


2.1. 달성 선수 일람(KBO)[편집]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 양쪽 모두를 기술한다.[14] 물론, 오늘날에 와서는 일반적으로 바뀐 규정에 의한 달성자를 칭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2.1.1. 1992시즌까지의 달성자[편집]



이때의 기준은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각 1위가 기준이다.

  • 박철순(OB 베어스, 1982):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1위[15]
  •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1989~1991): 다승, 평균 자책점, 승률, 탈삼진 1위


2.1.2. 1993년부터 바뀐 규정 기준의 달성자[편집]



이때부터는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각 1위가 기준이며, 1993시즌 이전의 달성 선수도 기술함.

  •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1986): 다승, 평균 자책점, 탈삼진 1위[16][17]
  •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1989~1991): 다승, 평균 자책점, 탈삼진, 승률 1위[18]
  • 류현진(한화 이글스, 2006): 다승, 평균 자책점, 탈삼진 1위.
  • 윤석민(KIA 타이거즈, 2011): 다승, 평균 자책점, 탈삼진, 승률 1위.[19]
  • 에릭 페디(NC 다이노스, 2023) : 다승, 평균 자책점, 탈삼진 1위 . 윤석민 이후 12년 만의 투수 트리플 크라운. KBO 최초 외국인 트리플 크라운.

2.2. 달성 선수 일람(MLB)[편집]


메이저 리그의 기록은 다음 홈페이지를 참조.위키피디아


2.3. 달성 선수 일람(NPB)[편집]


NPB의 기록은 다음 홈페이지를 참조.위키피디아
  • 1990년 이후 기록자
    • 노모 히데오(킨테츠 버팔로즈, 1990 퍼시픽 리그)
    • 우에하라 코지(요미우리 자이언츠, 1999 센트럴 리그)
    • 사이토 가즈미(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6 퍼시픽 리그)
    • 마에다 겐타(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0 센트럴 리그)
    • 스가노 토모유키(요미우리 자이언츠, 2018 센트럴 리그)
    • 센가 코다이(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20 퍼시픽 리그)
    • 야마모토 요시노부(오릭스 버팔로즈, 2021 퍼시픽 리그, 2022 퍼시픽 리그, 2023 퍼시픽 리그)[22]

3. 지도자 삼관왕[편집]


지도자는 대게 서로 다른 종류의 세 종류 경기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거나, 아니면 코치 - 감독 등을 섞어서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트레이 힐만 감독은 2006년 일본시리즈 - 2006년 아시아시리즈 - 2018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했다. 여기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추가하면 한미일 삼관왕 달성자 기록이 추가된다.


3.1. 달성 지도자 일람(KBO)[편집]




3.2. 달성 지도자 일람(MLB)[편집]




3.3. 달성 지도자 일람(NPB)[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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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티 매튜슨, 월터 존슨, 피트 알렉산더, 레프티 그로브, 레프티 고메즈, 샌디 쿠팩스, 로저 클레멘스 [2] 월터 존슨, 피트 알렉산더, 샌디 쿠팩스 [3] 물론 최형우의 2016년 타점왕은 팀이 9위를 찍는 와중의 기록이긴 하다. 그러나 2016년 삼성이 팀 성적에 비해 타격은 나쁘지 않았다. 2016년 삼성의 팀타율은 .293으로 3위였고, 팀 득점도 3위였다.[4] 선동열 3회, 윤석민 1회[5] 정확하는 도루 제외 역대 유일의 7관왕[6] 참고로 2015년 아시아 유일무이 40-40을 기록한 에릭 테임즈가 홈런-타점 1위가 아니라서 삼관왕에는 실패했다. 테임즈의 2015년 OPS는 1.288로 단일시즌 1위다. WAR도 10.71로 역대 단일시즌 2위 기록. 1위는 11.77의 1994년 이종범이다. 1997년 이승엽이 타격 2등을 해서 역시 아깝게 실패한 기록이 있다.[7] 다만 타격왕을 위해서 김영덕 감독은 후기리그 롯데와의 경기에서 경쟁자 홍문종을 무려 9연속 고의사구로 거르는 추태를 보였다. 중앙일보 이 때문에 기자들의 외면을 받아 시즌 MVP를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 1패라는 초인적인 성적을 거둔 최동원에게 넘겨줘야 했으며 당시 시즌 MVP와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에 주는 것은 어렵다는 불문율 때문에 유두열에게 1984년 한국시리즈 MVP가 갔다. 이후 이 사건은 25년 뒤에 재현된다.[8] 현 시대에 와서는 이만수의 이미지도 좋은 편이고, 본인의 기록 자체에는 편법이 없었는데다, 고의사구를 지시한건 감독이기에 이만수의 안티가 아닌이상 그래도 어느정도 인정은 받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정규시즌 MVP는 역시 최동원이 받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는 게 중론. 이만수는 리그 최고의 타자였지만 최동원은 리그 자체를 박살낸 수준, 농구에서나 나온다는 원맨 캐리를 야구에서 실제로 실현한 시즌이었기 때문이다.[9] 한미일 모두 단일시즌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훌리오 프랑코카림 가르시아, 호세 피렐라가 있다. 프랑코는 일본리그같은 경우 1998년 지바롯데에서 18홈런, 가르시아는 메이저리그에서는 두자릿수 홈런을 4번 기록했고, 오릭스에서 2005년 21홈런, 2006년 13홈런을 기록했다. 윌린 로사리오는 일본에서는 두자릿수 홈런을 못쳤다. 피렐라는 2017년 샌디에이고에서 10홈런, 2020년 카프에서 11홈런을 기록했다. 이대호는 한-일-미 순서로 뛰었고 프랑코, 가르시아 그리고 피렐라는 미-일-한 순서로 뛰었다.[10] NPB 역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만 22세에 달성.[11] 당시 성적은 139안타/82삼진/100사사구/타율 .311/44홈런/125타점/출루율 .429 였으며, 그 해 퍼시픽리그 수위타자는 롯데 오리온즈타카자와 히데아키타율 .327로 수상했다.[12] 당시 성적은 179안타/104득점/25홈런/80타점(닛폰햄 파이터즈다나카 유키오, 치바 롯데 마린즈하츠시바 키요시와 공동 1위)/49도루/타율 .342/출루율 .432였으며, 이 해 퍼시픽리그 홈런왕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코쿠보 히로키가 이치로와 불과 3개 차인 28홈런으로 수상했다.[13] 3년 연속 모두 다승 1위, 평균 자책점 1위, 승률 1위였고, 추가로 탈삼진도 1위였다. 3년 연속 삼관왕을 뛰어넘어 3년 연속 사관왕이기는 하나 당시에는 탈삼진왕이 없었으므로 사관왕은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14] 당시 기준으로 분명히 트리플 크리운을 달성했는데 기준이 바꼈다며 본인 이름을 제외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15] 이 시즌의 탈삼진 1위는 롯데 자이언츠노상수가 기록한 141개였고 박철순은 108개로 2위였다.[16] 이때는 탈삼진왕 타이틀이 없었기에 삼관왕을 인정 받지 못했다.[17] 이 시즌 트리플 크라운의 기준인 승률 1위는 .826을 기록한 OB 베어스최일언이였고 선동열은 .800을 기록해 2위였다.[18] 이 경우는 4관왕을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93년 이전의 기록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적은 없다. 물론 4관왕으로 인정을 못 받은 것 뿐 트리플크라운 기준은 넉넉히 만족.[19] 윤석민은 사상 첫 ‘트리플 크라운+1’ 4관왕 투수[20] 여담으로 커쇼는 이 해에 트리플 크라운을 먹고도 WAR에서 로이 할러데이에게 밀리는 바람에 유일하게 만장일치 사이영을 하지 못한 사례가 되었다. 나머지는 모두 만장일치 사이영을 이뤄냈다.[21] 풀타임 시즌은 아니고 코로나 19 창궐로 인한 단축시즌에 달성한 기록이다.[22] NPB 사상 최초의 3년 연속 트리플크라운. 이전에는 2회 연속이나 3회 달성조차도 없고 2회 달성(1958, 1961)의 이나오 가즈히사가 유일한 2회 달성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