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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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망명정부의 국기인 설산사자기[1]

1. 개요
2. 명칭
3. 지리
4. 인구
8.1. 티베트를 보는 중국인들의 인식
8.2. 중국의 이권
8.3. 티베트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서적
9. 대외 관계
10. 대중문화
11.1. 유명 티베트인 인물
1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བོད་ / Bod / 보ㄸ[2]
한국어: 티베트
영어: Tibet
중국어: 西藏 (시장), 藏 (장)


2. 명칭[편집]


14세기까지는 과거 이 지역 왕조인 토번(吐蕃, 투베트, 투보트)으로 통칭되었다. 토번의 고유발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특히 번(蕃, 番) 자의 발음을 놓고 말이 많은데, 중국에서는 '번'에 해당하는 판(fan)과 보(bo)의 두 발음이 대립하고 있다. 토번이 역사서에 기록될 당시(수나라 무렵) 중국어의 발음을 재구한 학자들은 퉈퐈, 퉈피원, 퉈편 등으로 읽었으되, 뒤에 ㄴ받침이 붙은 쪽이 보편적이었다고 본다. 즉 '번' 쪽을 좀더 밀고 있다는 얘기. 이 '번(蕃)' 자가 티베트를 나타내는 고유어 봇(>푀)(Bod)을 음차한 것인지, 혹은 단순히 글자 뜻 그대로 오랑캐라는 의미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두 목적 모두 있다고 여긴다. 티베트 망명정부에서는 아예 이러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한자표기를 도박[3](圖博, Tǔbó)으로 하였다.

고대 튀르크 및 소그드어로 기록된 문헌에는 이 지역을 튀퓟(Tüpüt)이라고 하였다. 이 명칭은 티베트 북부 지역을 나타내는 티베트어 tu phod 이나 stod pod에서 유래한 듯한데, 꽤 유력한 가설이다.[4] 이 발음이 아랍 세계로 전해진 뒤 영어권에서 Thibet라고 불리다가, 현재 영문명칭인 Tibet으로 정착됐다.


3. 지리[편집]


파일:external/tibetantrekking.com/Tibet-Map-Large.jpg
티베트 전도. 현재 칭하이성으로 편입된 암도(Amdo, a mdo)와[5] 쓰촨성으로 편입된 캄(Kham, khams) 지방이 포함된 대티베트라고 불리는 지도이다. 그리고 간쑤성 일부[6], 윈난성 일부[7]도 본래 티베트인의 영역에 포함된다.

현 티베트 자치구 지역은 위짱(Ü-Tsang, dbus gtsang) 지방이라고[8] 부른다.


Tibet Travel Video Guide

티베트 자치구만 따진다면 티베트의 면적은 122만 8,400km²로 남한 면적 12배 정도의 크기에 인구는 300만 명 정도지만, 시짱 자치구 이외의 중국티베트인 자치 지역까지 합하면[9] 면적 약 220만 km²에 인구 800만 명에 달한다. 넓은 의미로 티베트는 칭하이성 대부분 지역과 간쑤성, 쓰촨성, 윈난성 일부 지역, 독립국인 부탄네팔의 티베트계가 다수인 지역, 인도령인 시킴, 라다크, 아루나찰프라데시 대부분, 히마찰프라데시의 라하울 및 스피티 지구, 파키스탄길기트 발티스탄의 발티스탄을 포함한다.

티베트 고원은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고산 지대로, 평균해발고도는 4,000m에 이른다. 고원을 이루는 산맥들 간의 고도차는 동부 지대가 2,000m 이상으로, 500m인 서부 지대에 비해 훨씬 크다. 이렇게 고원의 동부 지역이 고도차가 심한 이유는 살윈강, 메콩강, 양쯔강을 비롯한 여러 강들의 상류가 산지를 깊이 파고 협곡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4. 인구[편집]


독립국인 부탄 역시 티베트 계통 민족이 다수이다. 인도에도 다람살라티베트 망명정부 같은 단체가 있고, 라다크시킴 등 일부 북부 여러 지역에 티베트 계통 민족들이 많이 거주한다. 아울러 네팔에도 셰르파 등 티베트 계통 인구가 소수민족으로 분포한다.

티베트인은 본래 황하 유역에 거주하던 집단이 서쪽으로 이주하여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싸인 티베트 고원에 자리 잡은 이들이어서 한국인, 일본인, 북부 지역의 한족과 유전적으로 상당히 가깝다.[10] 동남아시아로 남하한 이들과는 달리 토착민과 거의 섞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시아로 남하한 이들은 오스트랄로이드, 말레이인 등의 토착 인종과 섞이면서 혈통, 언어, 문화 등에 큰 변화를 겪었다.)

중국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지역이다. 사실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 초반에 걸쳐 중국의 출산율이 1.7명대에서 1.0명대까지 추락했지만, 티베트만큼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출산율이 유지된것이다.


5. 언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중국티베트어족 티베트-버마어파에 속한 티베트어를 주로 사용한다. 티베트 문자를 쓰며, 방언의 종류가 다양하다.

티베트어의 방언은 크게 우창 티베트어가 속해 있는 중부 방언, 칭하이성 일대와 그 주변에서 쓰이는 암도 방언, 쓰촨성 서부의 고원지대에서 쓰이는 캄 방언의 세 가지로 나뉜다. 이들 방언들 간에는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현대 표준 티베트어는 중부티베트 방언군 중에서도 라싸 방언이라고 한다.

종카어, 시킴어, 라다크어, 발티어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6. 요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요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티베트 독립운동[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독립운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1. 티베트를 보는 중국인들의 인식[편집]


절대 다수의 중국인들은 티베트는 절대 분할할 수 없는 중국 고유의 영토이며 티베트가 공산당에 의해 노예제에서 해방되었다는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주장을 철저히 믿고 있다. 따라서 외국에서 티베트의 독립이나 주권 같은 문제를 언급하면 무척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미국과 유럽 같은 서방 국가들이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음흉한 술책을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느 나라나 영토나 소수민족 문제에는 민감하고 중국은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티베트계들이 따로 살던 주변의 부탄, 시킴, 라다크, 같은 작은 왕조들은 대대로 티베트를 큰 형님 나라로 조공을 바치며 섬겨 왔다. 그 티베트가 중국에 병탄되자 이에 대항한 인도가 외교력과 군사력을 활용하여 인근 지역들을 합병하고 유일하게 독립국으로 남은 부탄은 반중국 친인도 성향으로 끌어들였다. 인도는 다문화 민주주의 통치를 하고 있어서 인도에 흡수된 이 지역 주민들도 중국 치하 티베트인들보다는 실질적인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특히 부탄은 중국 식당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중국인 입국도 딴지를 거는 나라로 국제연합 회원국 중에서 중국, 대만[11] 양쪽 모두 외교관계가 없는 유일한 나라이며 인도에 국방도 맡기면서 친인도[12] 국가가 되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티베트계 왕국의 인도 편입을 비난하고, 그 중 하나인 아루나찰프라데시 주가[13] 중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인식이 지배적인 만큼 티베트 독립에 찬성한다고 하면 중국 사회에서 매장당할 수 있다. 티베트에 조금이라도 동정적인 발언을 했는데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한 예로 2008년, 미국에 유학 중인 중국인 여대생이 "나는 티베트 독립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티베트에는 여전히 가난에 시달리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복지와 인권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지극히 온건한 말을 했다가 수많은 중국인 네티즌들로부터 인신공격을 당했다. 공포에 질린 중국인 여대생은 이사를 가야만 했다. 당시 중국인 네티즌들이 그녀를 비난했던 반응의 요지는 "티베트는 중국공산당에서 원조를 많이 해주어서 풍족한 지역이 되었는데, 뭘 또 도우란 말이냐?"였다. 사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티베트는 실제로 중국에서 풍족한 지역 중 하나였다. 당시 중국 자체가 세계 최빈국이었던데다, 마오쩌둥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에 휘말리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변방이자 늦게 병탄되었던 티베트는 그 폭정의 영향도 덜 받았다. 당장 쓰촨성에서 "문혁 당시 인육으로 잡아먹힌 교사가 있다"는 괴담은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중국의 유명한 괴담이었고, 그만큼 티베트 이외의 지역은 홍위병들의 난동과 대약진운동의 여파로 황폐화 된 상태였었다. 물론 경제가 회복된 지금은 윈난성(?)과 간쑤, 구이저우 등과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이며 앞에 거론한 지역들보다도 상당히 가난하다. 지역 총생산은 중국 최하위로, 원래 티베트의 암도 지역이었던 칭하이성의 절반도 안 되고 윈난 성의 10분의 1도 안 된다.

딴지일보에서 인터뷰한 어느 중국인 공무원은 놀랍게도 티베트 독립을 찬성한다는 발언을 했다.(지금은 그 기사가 삭제되어서 볼 수 없다.) 중국에도 티베트 독립에 대해서 긍정적인 사람이 극소수이지만 있기는 있다. 단,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는 공개적으로 표출되지 못한다. 2008년 경, 중국 정부는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해서 "대만과 티베트와 신장 자치구는 중국 고유의 영토이며, 이를 부정하는 자는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더욱 강경하게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짜장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도 티베트 독립에 대해서 언급했다가 중국 정부에 의해서 강제 추방이나 입국 금지 같은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외국에 있는 중국인도 티베트에 관한 의견을 무심코 내뱉었다가 같은 중국인들에게 욕을 들을 수 있는지라 쉽사리 얘기를 꺼내기가 어렵다.

파룬궁 수련생들과 대만에서는 적의 적은 우리편이니 같은 편이라는 입장으로써 때때로 해외에서 티베트 독립운동가들과 파룬궁 및 대만 지지자들이 연합하여 시위를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조차 티베트 지역의 자치 확대나 인권 등의 개선이라면 몰라도 독립 그 자체에는 영 긍정적이지 않다. 파룬궁들은 장쩌민 관련 기사를 낼 때 '한간, 소련군 간첩 경력, 파룬궁 탄압, 천안문 사태를 주도했네, 땅 팔아먹었네' 하면서 선전하면서도 장쩌민의 티베트 탄압 관련 기사는 거의 내지 않는다. 대만 역시 티베트 지역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공산당에 반대할 뿐, 남북한이 그러하듯 서로 중국, 한족이라는 정체성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분열은 영 바라지 않는다. ## 반면 대만의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들은 티베트의 독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다만 그 수는 매우 적은 편이다.


8.2. 중국의 이권[편집]


중국은 다민족 국가로서, 개별 민족들의 독립 요구를 다 받아줄 경우 나라가 쪼개어져서 더 이상 중국이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중국을 위해 소수민족의 독립요구를 억누르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유고슬라비아소련 해체의 사례를 보듯이 한 지역의 이탈은 도미노 효과로 나라 전체의 해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티베트는 중국 내 소수민족 중에서도 특히 그 정체성이 뚜렷하며, 역사적으로도 한족 문화권과 동화하기가 힘든 매우 독립적인 지역이었기 때문에 위구르와 함께 이 '하나의 중국'을 깨뜨릴 수 있는 가장 약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14] 불가분의 다민족 통일국가 및 중화민족의 일체를 국시로 삼고 있는 중국에 어떠한 지역 및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독립운동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입장이다.[16]

그리고 현실적인 이권의 문제도 있다. 티베트 지역의 지하자원 확보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중국의 양대 하천인 황하장강은 물론 인더스 강갠지스 강, 메콩 강, 살윈 강, 이라와디 강, 짜오프라야 강동남아시아남아시아의 주요 하천이 티베트에서 발원하기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는 물 수용량 문제에 대응하여 수자원 확보가 절실한 중국 입장에서는 티베트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무엇보다 티베트는 중국의 잠재 적국인 인도와 접해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물론 그 사이에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거대한 지리적 장벽이 있기는 하나, 크고 아름다운 천연적 감제고지이자 완충지인 티베트의 확보 유무에 따라 중국의 군사 전략은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문화적, 역사적 문제로 인해 티베트가 독립 국가로 남을 경우 중국보다는 인도와 우호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더 크다. 설령 독립한 티베트가 당장은 명목상 친중이나 중립을 표방한다 해도 결국 장기적, 실질적으로는 친인도 국가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 자연히 이는 중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중국은 티베트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8.3. 티베트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서적[편집]


국내에도 출판된 저서인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과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그리고 《가둘 수 없는 영혼》을 참고하기 바란다. 특히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은 풍부한 자료와 정확한 출처까지 갖춘 명저이다.[17]

현대사는 아니지만 2011년 《티베트, 1만년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었는데 중국에서 편찬된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티베트에 대해서 중립적인 시각을 취하고 독립성을 인정한다. 다만 인민해방군의 '1950년 티베트 평화적 해방'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끝냈다는 점이 호불호가 있지만 내용이 탄탄하니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만일 티베트 역사 전반을 좀 더 쉽게 알고 싶다면 한국인이 쓴《티베트 비밀역사》를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문체가 읽기 편하고 저자가 중국에서 공부한 덕에 한국 내에서 접하기 힘든 중국이나 대만 쪽 사료를 많이 인용하여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도 알 수 있다. 단 저자 자신의 의견도 간간히 들어가 있으니 다른 티베트 관련 책도 읽으면서 교차검증하는 것이 좋다. 한편 티베트의 문화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티벳의 문화》을 읽어볼 것. 티베트 굴지의 명서로서 아직도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으며 근대 티베트를 '직접 조사'해서 쓴 책이기에 신빙성 또한 높은 편이다.

당시 티베트에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여 체포, 복역 중이던 승려 팔덴 갸초의 저서 《가둘 수 없는 영혼》[18]에 따르면, 당시 감옥 안에서조차 수감자들이 가지고 있던 염주, 불경과 같은 종교적인 물건을 비롯, 심지어는 유목민들이 쓰던 가죽 주머니마저 구시대의 물건이라 하여 소각했으며, 문화대혁명 당시의 티베트인들의 인권은 거의 없었다고 진술하였다.[19]

티베트인들의 대중국 무장 항쟁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국내에도 번역된 《티벳전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또한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원을 받는 티벳하우스 코리아가 있고, 이곳에서 운영하는 삼학사원(랍숨섀둡링)의 주지스님은 티베트에서 파견된 승려이다. 부산에도 티베트인 승려가 주지로 있는 광성사가 있으며 한국에 온 티베트 승려들은 모두 다람살라의 달라이라마로부터 수계를 받아 오기에 이곳을 방문하면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서울 종로구에 티베트 요리 전문점 '포탈라 레스토랑'이 있다. 티베트 독립운동의 상징인 달라이 라마 14세의 사진과 설산사자기가 걸려있는 등 티베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티베트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여기서 벌어들인 돈은 티베트 난민 지원에 쓰인다고 한다. 메뉴는 네팔/인도 식당하고 거의 비슷하며 티베트 요리 메뉴가 몇 개 더 추가된 형태다.

9. 대외 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망명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인도는 티베트 망명정부를 돕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며, 몽골도 티베트 불교를 믿어서 달라이 라마가 몽골에 방문하는 걸 허락해 주었다. 부탄은 티베트계에 해당되다보니 형제처럼 사이가 좋다.

러시아는 미국 견제를 이유로 중국과 협력하고 있어 러시아 중앙정부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2004년 칼미키야 공화국 대통령 키르산 일륨지노프의 초청으로 달라이 라마가 러시아를 방문하려 했을때 러시아 정부에서 비자를 내주지 않아 무산될 뻔했다. 이 당시 일륨지노프 대통령은 친정부 성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항의했으며, 수도인 엘리스타에서는 항의시위가 일어났다. 결국 러시아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칼미키야 방문을 허용했다. 또한, 부랴티야 공화국, 투바 공화국, 칼미키야 공화국 등에 티베트 불교를 믿는 소수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길거리에서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보기 쉽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여러모로 복잡한 편.

일본도 티베트 독립 운동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지지해주는 사람들 중에 일본 극우도 있다보니 티베트인들조차 이 부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위구르족과는 갈등도 있지만 나름 교류와 왕래도 좀 있는 편이며, 반중국 성향의 반체제 인물들이 운영하는 반중시위 집단에서는 간혹 서로 협동할 때도 있다.

네팔의 경우 문화적 교류, 왕래, 무역 등이 있다보니 문화적으로 티베트의 영향도 어느 정도 받았다. 토번 제국 때는 벵골 지방도 점령해 지금의 방글라데시까지 지배한 적도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이슬람화 이전인 불교와 힌두교가 크게 번성했을 때는 티베트 불교의 영향도 받았다. 팔라 왕조 때의 대표적인 티베트불교 신자 벵골인은 "아티사 드판카라 스리즈나나(Atiśa Dīpankara Śrījñāna)"가 있다.#

미얀마와는 2012년 아웅산 수치가 달라이 라마를 만났고, 달라이 라마는 아웅산 수치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다만 2015년과 2017년부터 미얀마에서 로힝야를 탄압하자 달라이 라마는 이 부분을 비판하며, 로힝야 탄압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

한국의 경우는 고려시대 후기인 원의 간섭기 때 간접적으로 접촉한 적이 있었다. 고려 충숙왕왕고에 의해 토번으로 유배되기도 했었다. 그 외에도 몽골이 당시 티베트를 통해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티베트 불교가 고려에도 어느 정도 알려지기도 했으나 정확히는 고려 불교에 영향을 주는 정도에 그쳤다. 고려시대에는 경천사 10층 석탑이 지어지기도 했으며, 이는 조선시대 세조 때 지어진 원각사지 10층 석탑에도 영향을 끼쳤다.

한국, 일본 불교계가 중국 불교계와 뿌리가 같다보니 티베트 불교의 성력 신앙 등을 이유로 티베트 불교를 적대하는 학자나 승려들도 일부 존재한다.[20][21] 하지만 티베트를 동정하는 여론이 많으며 달라이 라마 초청 문의를 할 정도로 티베트 불교에 우호적인 승려와 불교학자도 있다.

오세아니아의 호주와 뉴질랜드, 북유럽과 서유럽, 미국과 캐나다 등 아메리카에서도 티베트 탄압을 비판적으로 보며 티베트 인권 문제를 도우려고 노력한다.


10. 대중문화[편집]


맥스 브룩스좀비 아포칼립스 소설 세계대전Z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좀비와의 전쟁 이후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티베트 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된다.[22]

티베트를 배경으로 다룬 작품으로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티벳에서의 7년>과 달라이 라마의 일대기를 다룬 <쿤둔>이라는 영화가 있다. KBS에서 방영됐었던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도 티베트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2010년에는 달라이 라마의 하루를 직접 촬영한 <선라이즈 선셋>이란 다큐멘터리가 개봉했다.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에서는 특이하게 라싸시 지역이 지구연방 정부의 수도라는 설정으로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 신생 네오지온이 작품 초반부터 소행성 5th 루나를 떨어뜨려 괴멸시키는 미친 작전을 실행한 탓에 완전히 작살이 나 버린다.

<데프콘 한중전쟁>에서 나오는 티베트는 한국과 미국, 러시아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비밀리에 지원하는 바람에 반중 독립전쟁이 터진다. 무장한 시위대가 체게바라식 전술로 무장경찰부대를 사격으로 사살해버리는 장면은 정말 작중의 절정. 중국의 진압부대를 체게바라식 전법으로 패퇴시키는 등 잘 싸우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엔 한국이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중국에서 독립한다!

2004년 중국에서는 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이 1930~40년대의 티베트, 신장, 만주독립국으로 묘사한 것이 역사왜곡이라는 이유로 발매금지되었다. 정작 만주국은 일제의 괴뢰국으로 나오는데도 이랬으며 어지간히 상급자가 아니면 플레이하기 매우 어렵다. 서구 국가들에 비해 산업 생산력이나 맨파워, 인프라 등 모든 면에서 개판 오분전 수준이다. 각 부대의 사령관들 중에 승려들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가면라이더 블레이드에서는 1만년 전 배틀 파이트에서 패배한 언데드들이 봉인된 라우즈 카드와 인류 기반사가 들어있는 보드 스톤이 티베트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며, 카라스마 케이텐노지 히로시의 위협을 피해 티베트로 피신해서 라우즈 업소버를 개발한다.

Europa Universalis IV에서는 중앙아시아 문화권 국가로 등장한다. 시작 년도인 1444년 시점에서는 우창(U-Tsang)과 캄(Kham) 두 지방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이들 국가로 시작해서 조건에 맞는 프로빈스를 점령하면 티벳 성립 디시전을 통해 통일 티벳 왕국을 설립할 수 있다.

Hearts of Iron IV에서는 독립국가로 나온다. 그리고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실행금지 처분을 받게되었다.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Jade Dragon DLC 출시 후 769년 시나리오에서 티베트가 제국급 작위로 등장한다. 티베트 지역 프로빈스[23]는 홀딩 수가 꽤 되는 나름 꿀이며, 산골짜기라 방어에 유리하며 인도든, 몽골이든, 중앙아시아든 어느 곳에로 진출하기도 매우 좋다. 다만 867년 시나리오부터는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사라진다. 당연하지만 티베트 지역은 전부 산지라서 군대를 운용하는데 지장이 많고 북쪽에서 유목민들이 자주 남하하기 때문에 어렵다. 티베트의 전통 종교인 뵌교도 구현되었다.

2012에서는 인류 최후의 보루이며, 그 근처에 있는 초밍계곡에 방주를 만들고 있었다.

바람의 왕국이라는 라이트노벨 작품도 있다. 문성공주인 취란과 손쳄감포의 아들인 리짐과의 로맨스라고는 하는데, 문성공주 연대기 같은 작품이다. 작가는 모리 시우코. 한국에는 학산문화사에서 나왔으며, 현재 한국에서 출간된 권은 12권까지로, 더이상 연재를 하지 않는지 책이 나오지 않는다.

코에이에서 만든 유라시아 정복 게임인 징기스칸 4에서는 토번으로 나온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 개발당시 한국, 크메르와 함께 개발 고려문명으로 등장할 뻔했지만 끝내 등장이 불발된 상태다. 한국, 크메르는 각각 정복자와 라자의 부흥에서 등장했지만, 티베트는 포가튼 시기에도 언급만 나오고 소식이 없다.[24]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포가튼에서는 아쉽게도 출현이 불발되었다.제작자 비하인드 원래 인도 문명(현 힌두스탄)의 자리에 티베트를 넣으려다가 인도로 대체되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1부에서 등장하는 톰페티는 티벳에서 온 파문전사들의 리더다.

문명 5 도시국가로 라싸가 도시국가로 등장하며, 몽골 시나리오에서도 도시국가로 나온다. 문명 6 DLC 시나리오인 열반에 이르는 길에서는 플레이 가능 세력으로 등장한다.[25] 본편에서의 등장은 없는 상태. 다만 유저들이 만든 모드 문명으로는 구현되는 편으로 5편에서는 송첸감포, 6편에서는 송첸감포, 치송데짼[26], 달라이 라마 5세가 리더로 출현한다.

일곱 도시 이야기에서는 '대전도'로 인한 충격으로 지역 전체가 2천 미터나 침하했고 일부는 함몰되어 호수가 되었다. 또한 자전축의 이동으로 적도 바로 아래까지 위도가 이동하여 항상 따뜻한 봄날씨를 유지하는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이후 쿤론이라는 도시국가가 들어서 북쪽에 있는 고비사막의 지하지원을 두고 아퀼로니아와 대립하고 있다.

은하영웅전설에서는 율리안 민츠지구로 갈 때 배경으로 등장한다. 우주에서 지구로 순례를 온 사람들이 우주선을 착륙시키고, 지구교 총본산이 있는 칸첸중가 산으로 갈 때 들러는 경유지이다.

마기아 레코드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외전푸엘라 히스토리아 4편인 티베트의 락샤시 편이 몽골 제국의 침략 시기인 13세기 티베트가 주 무대이다.

11. 티베트족[편집]


티베트 고원 일대, 혹은 티베트 고원과 인근 인도, 부탄, 네팔 등에 거주하는 토착 민족인 티베트족(티베트인)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어로는 이 민족을 짱족(藏族;장족)이라고 한다.


11.1. 유명 티베트인 인물[편집]


  • 송찬간포
  • 치둑송첸
  • 치데축찬
  • 분달연
  • 실뤄라
  • 소화귀
  • 게쌍돈줍
  • 치쑹테첸
  • 다짜뤼공 - 안사지란으로 당이 혼란한 틈을 타 장안을 일시 점령했다.
  • 역대 달라이 라마
  • 까루 린포체
  • 롭상 상가이[27]
  • 팔덴 갸초
  • 가르통첸
  • 가르친링
  • 최걜 팍빠
  • alan
  • 키 쵀양
  • 가르공열
  • 상치싱얼[28]
  • 줘치수 [29]
  • 가르궁린[30]


12. 관련 문서[편집]


[1] 1912년에 달라이 라마 13세가 국기로 지정한 뒤 1959년까지 국기였고, 망명정부에서도 사용한다. 노란 테두리가 없는 쪽이 바깥으로 게양한다.[2] 티베트어 발음을 와일리(Wylie) 방식 로마자로 옮기면 bod지만, 음절 앞 자음 b가 무성 유기음화되고, 음절 핵모음은 전설화되며, 음절 뒤 자음 d는 무성 성문음화되어 [pʰøʔ˨˧˨\]처럼 발음된다. 따라서 발음에 따른 표기는 Bhö, Bö, Phö, Poi 등 여러 가지가 혼재한다. 단, 고대 티베트어 발음은 /*bot/ 으로 와일리식 표기와 발음이 비슷하다.[3] 그 돈 따먹는 도박(賭博)이 아니다[4] 이 명칭이 고원을 뜻하는 튀르크어 Töbäd와 관련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5] 시닝시 주변은 원래 간쑤성에 속하다 칭하이성으로 편입된 지역이라 본래 티베트의 영역은 아니다. 다만 토번 제국 적송덕찬 치세에 안사의 난으로 혼란스러원던 당나라를 공격해 잠시 점령한 적은 있다.[6] 간난 티베트족 자치주[7] 디칭 티베트족 자치주[8] 더 세세히 나누자면 앞의 '위'는 라싸시를 위시한 티베트 중부, '짱'은 르카쩌시(시가체시)를 위시한 티베트 서부를 말하며, 짱보다 더 서쪽에 있는 아리(Ngari, mnga' ris)와 북부 고지대인 장탕(Changthang, byang thang) 지역을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티베트 자치구 동쪽에 위치한 참도 지역은 위짱이 아닌 캄 지역에 속한다.[9] 칭하이성의 대부분과 쓰촨성 서부(구 시캉성), 윈난성간쑤성 일부 지역에도 걸쳐 있다.[10] Reconstruction of human evolution: bringing together genetic, archaeological, and linguistic data[11] 대만 역시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건 대륙과 마찬가지다. 물론 대륙과 달리 표현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티베트의 자립을 지지하는 대만인 개개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권 차원에서는 그렇다.[12] 다만 부탄이 완전히 인도를 믿는 것은 아니다. 인도 역시 경계하고 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22&aid=0003205161 사실 인도계(?) 국가들도 분리독립이 매우 심해서 영국의 제국주의가 망하자 실제로 떨어져 나갔으며 인도와 전쟁도 불사하기도 했다.[13] 정확하게는 아루나찰프라데시 주의 영토 중에서 티베트 문화권에 속하는 옛 청나라 영토에 대해서만 남티베트(南藏)로써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영유권 주장의 근거는 해당 지역에 대한 영국령 인도의 영토 편입 근거가 되는 심라 협정이 중화민국 북양정부가 승인을 거부했음에도 영국과 티베트 양자간에 일방적으로 체결되었기 때문에, 독립국이 아닌 티베트와 영국 간에 자신들의 승인 없이 체결된 협정은 무효라는 것이다. 때문에 중화민국 역시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똑같이 주장하고 있다.[14] 거기다 이 두 지역은 중국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지역들이다. 다시 말해 만약 이 두 지역이 떨어져 나간다면, 중국의 영토는 크게 줄어들어 반토막난다. 그리고 두 지역은 척박한 기후에 비해 인구가 많은 편이고 특히 위구르족과 까체(티베트계 무슬림)의 경우 이슬람교 특유의 다산 선호 때문에 중국의 계획생육정책이 한창 건재했을 때조차 그 정책에 역행하는 수준으로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에, 티베트의 독립과 위구르의 독립이 모두 이루어지면 중국의 인구 또한 엄청나게 줄어들 수 있다.[15] 춘추전국시대의 오, 월은 한족 국가가 아니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니 한족 지배를 받은건 진시황의 진나라부터 실질적으로는 한나라 부터이고 제대로 이 지역을 개발하기 시작한건 육조시대.[16] 그러나 여타 많은 소수민족들이 난립하여 분쟁이 끊이지 않는 국가들과는 달리 중국은 수많은 소수민족이 있지만 중국 전체 인구의 1/11 수준이다. 즉 다수의 지배층인 한족과 소수민족 전체의 비율은 10:1인 것이고 실제로도 민족별로 조각조각나도 추정하자면 기껏해야 명나라, 송나라 같은 수준으로 후퇴할 뿐인데 이런 명분으로 분리독립을 용인하지 않는 나라 중에서는 진짜로 나라가 조각조각날 판이라 용인하지 않는다는걸 감안하면 감지덕지다. 하다못해 중국 경제의 중심지인 동부 해안가는 적어도 2000년 이상[15] 한족 국가의 지배를 받아온 지역이다. 물론 진짜로 소수민족들이 독립하면 중국의 국토는 극도로 줄어들긴 하는데 그렇다고 중국이 유지되지 못한다는건 엄살에 가깝다. 애초에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족 중심 국가였고 그래서 원나라 이전까지의 중국의 강역은 서역을 제외하면 현재의 중국 땅에서 동북 3성, 티베트, 위구르, 내몽골, 기타 소수민족 자치구는 빼고 봐야 했다. 그나마도 원나라, 청나라는 비한족 출신이 통치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이를 반대로 보면 소수민족이 독립해서 동북 3성, 티베트, 위구르, 내몽골, 기타 소수민족 자치구를 제외한 영역은 건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국토와 국민이 줄어들지 전통적인 중국이라는 국가와 개념이 공중분해되지는 않는다.[17] 단, 이 책의 경우 자료와 출처의 정확성과는 별개로 국내 번역본의 경우 1990년에 출판된 제3판에 기초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천안문 사태 직후 쓰인 책인 만큼 중국의 인권이나 경제 상황에 대한 묘사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어 중국과 티베트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면 또 모른다.[18] 꿈꾸는 돌, 정희재 역.[19] 이 책을 보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정도로 매우 잔인한 고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 책 외에도 궁리 출판사에서 나온 아마아데 저 《그래도 내 마음은 티베트에 사네》가 있다. 하지만 번역 수준이 저질이다.[20] 대표적으로는 중국 불교사를 저술한 미찌히다 료오슈[21] 한국사학자 이이화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도 고려 말 원나라에서 티베트 불교 교리를 배우고 들어온 승려가 있었으나 다른 승려들에게 견제를 당해 티베트 불교 교리를 보급시키지 못했다 한다.[22] 인민공화국이라 해서 무조건 사회주의 국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민공화국 문서 참고.[23] 응아리, 시가체, 라사, 얄룽을 잇는 권역[24] 비공식 모드라면 몰라도 공식 문명으로 등장할 경우 중국 측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인 듯하다.[25] 영어명은 Tibet, 한국명은 토번으로 되어 있다.[26] 8세기 중반에 토번 제국의 짼보였다.[27] 티베트 망명정부의 전 총리 이다.[28] 781년 사주(돈황)을 점령한 토번의 명재상이다.[29] 790년 북정을 점령한 토번의 명장이다.[30] 토번국 출신의 당나라 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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