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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སྲིད་ཞིའི་ཕན་བདེའི་འདོད་རྒུ་འབྱུང་བའི་གཏེར།
Si Zhi Phen De Dö Gu Jungwae Ter
씨시 팬데 되구 즁외 떼르
윤회계와 열반계의 소원을 이루는 보고(寶庫)
ཐུབ་བསྟན་བསམ་འཕེལ་ནོར་བུའི་འོད་སྣང་འབར།
Thubten Samphel Norbue Onang Bar
툽땐 쌈팰 노르뷔 외낭 바르
불법(佛法)의 여의보주(如意寶珠)가 빛이 난다네.
བསྟན་འགྲོའི་ནོར་འཛིན་རྒྱ་ཆེེར་སྐྱོང་བའི་མགོན།
Tendroe Nordzin Gyache Kyongwae Gön
땐되 노르진 갸체르 꾱외 괸
법과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시는 보배를 지니신 보호존(保護尊)[1]
འཕྲིན་ལས་ཀྱི་རོལ་མཚོ་རྒྱས།
Trinley Kyi Rol Tsö Gye
틴래끼 뢸초걔
크나큰 위업(偉業)의 장엄(莊嚴)이 바다같이 펼쳐져
རྡོ་རྗེའི་ཁམས་སུ་བརྟན་པས་ཕྱོགས་ཀུན་བྱམས་བརྩེས་སྐྱོང།
Dorje Khamsu Ten Pey Chogkün Jham Tse Kyong
도제 캄쑤 땐빼 쵹뀐 잠째 꾱
금강계의 견고함으로 시방(十方)을 사랑과 자비로 보살피신다네.
གནམ་བསྐོས་དགའ་བ་བརྒྱ་ལྡན་དབུ་འཕང་དགུང་ལ་རེག
Namkö Gawa Gyaden ü-Phang Gung la Regh
남꾀 가와 갸댄 우팡 궁라 렉
하늘이 내려준 만 가지 환희의 위상이 중앙에 솟았네.
ཕུན་ཚོགས་སྡེ་བཞིའི་མངའ་ཐང་རྒྱས།
Phutsong Dezhii Nga-Thang Gye
퓐촉 데시 응아탕 걔
원만한 4가지 덕(德)의 위력이 늘어가고
བོད་ལྗོང~ས་ཆོལ་ཁ་གསུམ་གྱི་ཁྱོན་ལ་བདེ་སྐྱིད་རྫོགས་ལྡན་གསར་པས་ཁྱབ།
Bhod Jong Chul Kha Sum Gyi Khyön La Dekyi Dzogden Sarpe Khyap
뵈종 쵤카 쑴기 쾬라 데끼 족댄 싸르빼 캽
티베트 삼방(三方)[2]
, 모든 땅에 즐거움과 기쁨이 새로이 퍼지리.ཆོས་སྲིད་ཀྱི་དཔལ་ཡོན་དར།
Chösi Kyi Pel Yon Dhar
최씨끼 뺄 욘다르
불교와 세간의 훌륭한 덕이 성행하고
ཐུབ་བསྟན་ཕྱོགས་བཅུར་རྒྱས་པས་འཛམ་གླིང་ཡངས་པའི་སྐྱེ་རྒུ་ཞི་བདའི་དཔལ་ལ་སྦྱོར།
Thubten Chog Chur Gyepe Dzamling Yangpae Kyegu Zhidae Pel La Jör.
툽땐 쵹쥴 게빼 잠링 양빼 게구 시데 뺄라 죠르
불법이 시방(十方)에 퍼지어 세상에 광대한 중생의 행복에 기여하기를
བོད་ལྗོངས་བསྟན་འགྲོའི་དགེ་མཚན་ཉི་འོད་ཀྱིས།
Bhöd Jong Tendrö Getzen Nyi-ö-Kyi
뵈종 땐되 게챈 니외 끼
티베트 땅의 불교와 중생의 선상(善相) 태양에서
བཀྲ་ཤིས་འོད་སྣང་འབུམ་དུ་འཕྲོ་བའི་གཟིས།
Trashi O-Nang Bumdutrowae Zi
따시 외낭 붐두 토외 시
쏟아지는 상서로운 무량 광명의 위력으로
ནག་ཕྱོགས་མུན་པའི་གཡུལ་ལས་རྒྱལ་གྱུར་ཅིག།
Nag Chog Munpae Yul Ley Gyal Gyur Chig
낙쵹 뮌배 율래 갤규르 찍
- 1. 티베트는 중국에 점령되기 이전에 노예제 사회였고 사지를 절단하는 고문이 자행되던 곳으로, 절대 다수의 티베트인들은 어떠한 자유도 누리지 못했으며, 소수의 기득권자들로부터 50%나 되는 고리를 물고 돈을 빌려 살던 빈민이었다. 1951년 이전까지 티베트 사회는 관가(官家), 세속 귀족(貴族), 불교사원의 라마승(활불 포함)등으로 형성된 3대 영주가 정치, 종교, 경제의 핵심 축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티베트 전체 인구의 5%밖에 안 되는 소수였지만 티베트의 방대한 토지, 목장, 산림, 산천과 주요 목축을 장악하고 있었다. 티베트의 농노는 크게 ‘차파’(差巴), ‘퇴용’(堆穷), ‘낭생’(朗生)으로 구분되는데 이들은 티베트 전체인구의 90%를 초과하고 있었으며 이중 최하층 노예 등급(농노 이하의 비자유민)으로 다시 분류되는 낭생은 5%의 인구비율을 보였다. 이들에게는 토지의 소유권이 없었으며 인신의 자유와 혼인의 문제 또한 자율권이 허락되지 않았다. 교육이나 의료 혜택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또한 이들의 이러한 처지와 신분은 대대로 세습되었다.[3]
- 2. 중국이 티베트를 다스리고 나서 티베트인들의 생활수준은 급격히 향상되었다. 이는 일제에 대한 조선의 근대화가 있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무관하다. 애초 사회주의 국가는 민족제일이라든지 민족 우월이라는 개념을 등한시한다.[4] 단지 인민의 생활상 자유를 위해 국가 편입을 하고 구제해줄 뿐이지, 식민지화하겠다는 제국주의적 이념이 담지되진 않다.
- 3. 티베트인들은 현재까지도 자신들의 고유 언어를 사용하며, 자체 TV 방송까지 할 정도로 자유를 누린다.
- 4.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 망명정부는 중국의 악행을 과대 포장하여 거짓말을 했다. 물론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한 티베트인 학살이 있기는 있었지만, 자세한 자료가 없으니 확실히 알 수가 없다.
- 6. 달라이 라마는 미국의 CIA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 티베트 인권 문제 거론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음모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달라이 라마에게 1989년 노벨평화상을 준 이유도 중국의 천안문 6.4 항쟁을 비난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있다.
- 7. 티베트를 침공한 중국군은 소수였다. 또한, 군사력에서 절대 열세였던 티베트인들이 달라이 라마의 권고에 따라 중국군과의 저항을 중단한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그러니 티베트인들더러 무기를 들고 중국과 맞서 싸우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 8. 현재 티베트 독립을 운운하는 자들은 순수한 티베트 민중이 아니라 중국에 의해 기득권을 빼앗긴 티베트의 봉건 지배층들이다. 과연 일반 티베트 민중이 독립을 원할까?
중국 서부 신장 지역에서 100만 명 이상의 위구르인들이 직업교육을 명분으로 강제수용소에 수감돼 있다는 주장을 놓고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중국이 갑론을박을 벌이는 가운데,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80만 명 이상의 티베트 학생들을 공립 기숙학교에서 생활하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가운데는 심지어 4세 어린이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망명 티베트 단체인 티베트행동센터(Tibet Action Institute)가 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중국 정부는 현지 학교를 체계적으로 없애고 공립기숙학교로 대체했다. 6세에서 18세 사이의 티베트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78% 가량인 80만 이상이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티베트의 수도원 학교와 다른 사립학교는 폐쇄됐고, 사립학교 교장과 티베트 교사 및 지식인은 체포됐다.
동부 티베트의 한 부모는, 당국이 지난해 지역 학교를 유치원으로 전환하고 아이들이 마을에서 공부하는 것을 금지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도시의 학교로 보내야 했다. 이 보고서는 한 동티베트인 교사의 말을 인용해 "주민들은 4살 이상인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보내야 하고, 교사는 중국어 표준어인 보통화만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요와 잠들기 전 이야기 들려주기 등을 포함한 모든 수업도 보통화로 해야 한다. 이 교사는 "이 학생들이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티베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증언했다.
티베트행동센터 라돈 테통 소장은 "불교는 티베트인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방식인데, 중국이 기숙학교를 설계한 목적은 티베트인의 정체성을 변화 또는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티베트 학생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사회에 진입하면 중국 국가시스템에 의해 여전히 2급 공민으로 간주되며, 티베트 학생들이 중국에서 1급 교육을 받고 평등과 성공을 누릴 수는 없다.
티베트행동센터는 보고서 첫 머리에 "기숙학교는 티베트 정체성을 제거하고 중국 민족주의 정체성으로 대체함으로써, 중국공산당 통치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 하려는 시진핑 캠페인의 초석"이라고 주장했다.
티베트 기숙학교. 강제성이 없다?
리원치옹(李文瓊) 서기는 “모든 과정의 입학은 강제성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자원 학생들이 많아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학생들은 산둥성 파견교육을 통해 3개월간 전기용접 등의 기술을 익힌 후 돌아와 ‘촨짱(쓰촨성~티베트)철도’ 건설 현장에 투입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현재까지 티베트에서 직업기술 교육을 받은 누적인원은 60만명으로, 전체 인구(350만명)의 17%에 달한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농·목축민들에 대한 단기과정 수업은 취재진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라싸시 두이룽더칭구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수랑왕무는, 빈곤 퇴치 정책에 따라 해발이 낮은 현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했다. 산에서 목축을 하던 부모님의 직업도 아버지는 경비원, 어머니는 청소원으로 바뀌었다. 두이룽더칭구 보마촌은 농촌에서 라싸시로 이주한 사람들의 정착마을 중 하나다. 2016년 100가구 403명이 입주한 이래 현재 544가구 1,762명으로 늘어났다. 이 마을 주민인 츠마주잔은 “이주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농업 중심에서 산업단지 노동 위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자율적으로 이뤄졌을까. 티베트인들은 언어, 종교, 역사, 문화, 생활 관습이 중국 주류인 한족과 다르다. 고전이 되어버린 <오래된 미래>를 보면, 티베트인들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적 생활방식을 중시한다. ‘빈곤 퇴치’라는 명목하에 진행되는 중국 정부의 정책은 일부 티베트인들에게는 정체성 훼손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철로 개통과 관광산업이 티베트 문화를 희미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전부터 있었다. 강제노동교육 의혹이 제기된 직업기술학교가 관광과 철도 분야에 집중하는 것은 우연일까.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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