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와나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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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볼리비아의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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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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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티와나쿠
영어
Tiwanaku[1]
스페인어
Tiwanaku[2]
프랑스어
Tiwanaku[3]
국가·위치
볼리비아 라파즈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ii)[4], (iv)[5]
지정번호
567
파일:external/hope.ne.kr/IMG_0500.jpg
티와나쿠의 상징인 태양의 문.

스페인어로 Tiahuanaco
영어로는 Tiwanaku

볼리비아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 있었던 고대 도시. 많은 이들이 이 도시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고, 정리된 연구결과로는 '바티칸디즈니랜드를 합쳐놓은 도시'라고 한다. 한마디로 종교적 순례지이자 관광지였다는 것이다.

지질학적으로 볼 때 티티카카 호수에 떠있던 섬에 세운 도시인데, 연대는 대체적으로 기원전 1580년에서 서기 1200년까지 약 2700여 년 동안 존속했던 것 같다. 전성기였던 서기 500~800년대에 이 도시는 볼리비아는 물론이고 현재 페루 남부, 칠레 북부, 아르헨티나의 일부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제국의 수도였다.

흔히 초고대문명 떡밥으로 유명세를 타는 '푸마푼쿠'는 사실 이 티와나쿠 유적지의 한 부분이다. 보다 정확히는 아카파나(Akapana)와 푸마푼쿠(Pumapunku) 라는 이름을 가진 티와나쿠 유적지의 중요한 2가지 유적 중 한 부분이다. 흔히 푸마푼쿠를 이야기 하면서 '단단해서 성형이 어려운 섬록암을 가지고 현대의 기계로 조각한 듯한 정교함을 보인다'는 점을 들먹이면서 초고대문명의 흔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많이 와전된 이야기로, 실제로 구조물을 만드는데 사용된 섬록암은 극히 일부일 뿐, 대부분의 구조물들은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붉은 사암은 조각하기에 그리 높은 경도는 아니다[6].

또한, 유적지의 붉은 사암은 인근 10km 떨어진 티티카카 호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구조물의 표면이나 조각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안산암은 약 96km 거리의 코파카바나 반도[7] 내 채석장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보인다.[8] '무거운 화산암을 수십km를 넘는 거리에서 가져왔다'는 오버테크놀로지의 떡밥은, 실상은 큰 암석의 경우 지근거리에서 가져온 것이고, 먼 거리에서 가져온 것은 작고 단단한 종류였다는 것. 또한 구조물의 핵심적인 부분은 점토로 되어있기에 오버테크놀로지의 떡밥은 신빙성을 잃는다. 그럼에도 티와나쿠 유적지의 시기 및 라틴 아메리카 문명의 시작이 구 대륙의 문명보다 매우 늦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대 안데스 산맥 중턱에 세워졌던 정교함을 갖춘 대규모의 도시유적은 고고학자의 예상을 넘어서는 수준인 것은 분명하였다.

그러나 티와나쿠를 더 자세히 연구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스페인 정복 이후 스페인 사람들이 티와나쿠를 채석장처럼 썼기 때문. 한 학자의 추측에 따르면 수만톤에 달하는 석재를 티와나쿠에서 빼갔다는데 이 때문에 티와나쿠는 황폐해졌다. 그럼에도 오늘날 남아있는 유적의 규모도 상당하기 때문에 본래 티와나쿠의 규모는 엄청났을 것으로 보여진다.

티와나쿠의 멸망 원인으로는 가뭄이 제기된다. 그러나 한 학자 왈 "디즈니랜드에 가뭄 들었다고 그게 큰 영향이 있었겠는가?" 물론 현대처럼 교통/수송이 발달한 시대랑 당연히 다르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전근대 시대에는 유명 관광지라도 가뭄 등의 재해를 당할 경우, 관광업이 큰 타격을 입곤 했다.[9] 가뭄이 들더라도 급한 대로 외부에서 물과 식량을 공수해올 수 있는 현대와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티와나쿠는 오늘날 볼리비아의 관광명소가 되었는데, 티와나쿠를 상징하는 유적인 '태양의 문'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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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Spiritual and Political Centre of the Tiwanaku Culture[2] : centro espiritual y político de la cultura Tiwanaku[3] : centre spirituel et politique de la culture tiwanaku[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5]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6] 사실 경도가 높은 암석을 조각하는 방법은 전근대시대에도 있었다. 1984년에 미국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연구진들이 티와나쿠 유적을 이루는 사암보다 훨씬 단단한 화강암을 절단하는 고대 이집트 시기의 공법을 규명해내는데 성공했는데, 다름아닌 톱으로 암석을 잘라낼 때 주변의 모래를 연마제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티와나쿠의 경우도 비슷한 공법이 쓰였다고 하면, 이해 못 할 부분도 아니다.[7] 코파카바나는 티티카카 호 한 복판에 위치했다.[8] 더군다나 96km 라는 말도 호수를 둘러서 온 거리다. 배를 사용하면 수십km 거리에서 육로로 가져와야 하는 노동력도 크게 줄이는게 가능하다. 티티카카호 문서의 지도에서 호수 남동쪽으로 좀 떨어져 있는 티와나쿠와 호수 남동부의 코파카바나 반도 위치를 보면 이해가 더욱 쉽다.[9] 현대에도 개발도상국의 관광지는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