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토 빌라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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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토 빌라노바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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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대



FC 바르셀로나 명예의 전당
Fútbol Club Barcelona

파일:TITOVILA.jpg

이름
티토 빌라노바
Tito Vilanova
본명
프란세스크 빌라노바 이 바요
Francesc Vilanova i Bayó
출생
1968년 9월 17일
스페인국 카탈루냐 지로나 주 벨카이레 뎀포르다
사망
2014년 4월 25일 (향년 45세)
스페인 카탈루냐 바르셀로나
국적
[[스페인|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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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신체
178cm
소속
선수
FC 바르셀로나 (1984~1988 / 유스)
FC 바르셀로나 B (1988~1990)
UE 피게레스 (1990~1992)
RC 셀타 데 비고 (1992~1995)
CD 바다호스 (1995~1996)
RCD 마요르카 (1996~1997)
UE 예이다 (1997~1998)
엘체 CF (1998~2000)
UDA 그라메네트 (2000~2001)
감독
바르셀로나 카데테 B (2001~2002)
FC 피라프루겔 (2003~2004)
FC 바르셀로나 B (2007~2008 / 수석코치)
FC 바르셀로나 (2008~2012 / 수석코치)
FC 바르셀로나 (2012~2013)

기타
테라사 FC (2006~2007 / 기술고문)

1. 개요
2. 선수 경력
3. 감독 생활
4. 사망
5. 뒷이야기



1. 개요[편집]


스페인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2년부터 2013년까지 FC 바르셀로나 감독을 맡았으나, 지병이던 이 재발해 2014년 사망하고 만다.

FC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 출신으로 선수 시절에는 유망한 선수는 아니었다. 허나 선수 생활을 마친 후, 바르셀로나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능력을 발휘했다.[1] 2008년에 바르셀로나의 수석코치로 부임하며 바르셀로나 역대 최고의 황금기 자원들을 일구는데 공헌한다. 2010년대 바르셀로나의 간판스타들을 유스때부터 직접 지켜보며 길러낸 숨은 공로자이며 이당시 수장이자 상사였던 감독 펩 과르디올라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사적으로도 형제와 마찬가지라 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였다. 당연히 2000년대 후반부터 바르셀로나를 이끈 축구 스타들과도 몹시 친밀한 사이였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유스 시절 빌라노바의 가르침을 받았다.


2. 선수 경력[편집]


바르셀로나 유스팀 출신으로 1988년 바르셀로나 B팀에서 프로 데뷔를 했으나 2년 뒤인 1990년 세군다리가(2부리그) 소속팀인 피구에레스로 이적하였다. 1992년에는 라 리가 팀인 셀타 비고로 이적했으나 4년 동안 고작 26경기에 출전하는 후보 신세에 머물렀고, 이후 바다조즈, 마요르카, 레이다, 엘체, 그라메네트 등 하부 리그인 2,3부 리그를 전전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2001년을 끝으로 은퇴를 한다.


3. 감독 생활[편집]


2001년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인 카데테 B팀을 지휘하며 리오넬 메시, 세스크 파브레가스, 제라르 피케 등을 지도했다. 그리고 2003년 4부 리그 소속인 피라프루겔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팀은 9승 14무 15패를 기록하며 5부 리그로 강등당한다. 그 이후 2006년에는 3부 리그 팀인 테라싸 FC의 기술고문직을 잠시 역임하기도 했고 2007년에 펩 과르디올라의 러브콜로 바르셀로나 B의 수석코치로 임명된다. 당시 4부 리그에 있던 바르셀로나 B를 3부 리그로 승격시키고 펩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 FC의 정식 감독이 되자 티토 역시 A팀의 수석코치로 활동한다.

수석 코치 시절에도 활동적인 인물은 아니라서,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 당시 선수들의 패싸움을 말리러 나왔다가 상대팀 감독 주제 무리뉴가 눈알을 찔러버리는 역대급 비매너 행위를 하는덕에 잠시나마 이름이 오르내렸다. 펩 과르디올라가 사임하자 그의 뒤를 이어 감독의 자리에 올랐는데, 과르디올라의 축구 철학을 언제나 함께 연구하고 조력한 사람답게 감독으로서의 철학은 과르디올라와 거의 유사했다는 게 선수들의 증언이다. 다만 선수 관리 등의 측면에서는 엄격한 규율을 강조한 펩보단 좀 더 유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2년 펩이 감독직을 사임하고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상기했듯 절친 펩의 철학을 계승한듯한 감독이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선 차이도 있었는데 한 예로 변화하는 트렌드를 선제적으로 받아들여 티키타카만 고집하지 않고 빠른 역습을 추구하였다는 것 등이 있다. 수비가 불안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그래도 성과 측면에선 15승 1무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는데... 12월 19일, 지병이던 귀밑샘 종양, 즉 이 재발하면서 로우라 수석 코치에게 감독 대행을 맡기고, 치료를 받으러 미국의 병원으로 갔다.

본인은 재기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기에 완전히 사임하진 않고 들락날락하였지만 감독이 위중하다 보니 팀이 급격히 흔들리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그나마 리그에서는 승점 100점을 달성하며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다 승점이자 프리메라리가 통산 최다 승점 타이기록으로 우승하였지만, 팀은 메시 의존증을 호소하기 시작했으며 수비는 더 무너졌다. 그 결과 리그 후반기에 접어든 2013년 4~5월, 챔스 4강에선 뮌헨에게 2전 2패 도합 스코어 7:0 관광을 당하는 굴욕을 당하고 만다. 물론 이때 티토는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판국이라 이것을 티토의 실책이라 할 수도 없는 그저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감독 본인도 "첫 시즌이고 병으로 자리를 비워야 했다"고 하소연하며 "다음 시즌부터는 다를 것"이라고 팬들에게 호소했다.


4. 사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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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음 시즌을 준비하나 싶었지만, 프리 시즌 건강이 갑작스레 악화되어 결국 티토 빌라노바는 감독직을 사임하고 만다. 그리고 이후 네이마르를 둘러싼 논란, 정신적 지주였던 주장 푸욜의 은퇴와 징계로 인한 회장의 사임, 무관 위기와 FIFA의 이적 봉인 조치까지 바르셀로나가 최악의 위기를 맞았던 2013-14 시즌의 2014년 4월 26일 끝내 타계하고 만다. 25일 응급수술에 들어갔으나 결국 수술 도중 사망하고 말았다. 향년 45세. 그렇게 인지도가 있는 감독은 아니었지만 바로 전 시즌까지만 해도 바르셀로나라는 유명 클럽을 이끌던 감독의 갑작스런 사망은 바르셀로나의 관계자 뿐 아니라 다른 축구팀의 관계자, 팬들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 어린시절부터 그를 스승으로 따랐던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신문사들에선 그를 추모하는 기사를 1면에 싣었다.

바르셀로나는 경기장 한 가운데 조의를 표하는 검은 리본을 설치하고, 추모의 장을 마련해 팬들과 시민들이 그의 영전에 꽃다발을 놓게 해주었다. 선수들은 장례식장에도 참석했는데 대다수가 계속 울먹이거나 슬퍼하였다. 메시는 장례식장에서 시종일관 눈물을 머금고 있었고 사비는 눈이 퉁퉁 부은듯한 모습으로 자리에 참가했고 이니에스타도 끝내 눈물을 보였다. 다음날 치러진 리그전에서 비야레알과의 경기전 묵념을 가질 동안에도 대다수의 선수들이 울먹이거나 침울한 표정으로 서있었고 그중 부스케츠도 눈물을 흘리며 고인을 추모했다. 경기는 3:2로 승리했고 결승골을 넣은 주인공 메시는 빌라노바를 기리는 세리모니를 하며 스승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선수 생활 도중에 병마와 투병해야 했던 비슷한 아픔을 지닌 에릭 아비달 역시 고인과의 추억을 언급하며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다.

라 마시아 시절부터 빌라노바와 거의 의형제처럼 지내온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누구보다도 충격받았다. 바이에른 뮌헨은 단순한 직업적 동료 그 이상이었던 빌라노바의 죽음에 충격받았을 과르디올라와 빌라노바의 유가족들을 위해 경기 시작전 추모 행사를 가졌다. 이 경기에서 뮌헨은 5골이나 넣으며 브레멘에게 승리를 거두었지만 과르디올라는 시종일관 상념에 잠겨서는 아예 넋이 나가 있었다. 과르디올라는 경기 이후 젊은 시절부터 함께 야망을 품었던 빌라노바를 추모하고 "내 삶이 끝날 때까지 빌라노바를 잃은 이 슬픔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발언하여 그 슬픔의 무게를 짐작케 하였다.


5. 뒷이야기[편집]


  • 고인의 아들인 아드리아 빌라노바 역시 바르셀로나 유스 소속이었다. 아버지와 빼다박은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이후 바르셀로나에서 나와 FC 안도라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


레오, 나랑 약속해다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바르셀로나를 떠나지 않겠다고.
  • 바르셀로나 관계자들에 따르면 클럽 안팎의 여러가지 잡음에 지쳐 바르셀로나를 떠나려던 리오넬 메시를 잡아준 사람이다. 메시가 한참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던 13/14시즌 무렵, 빌라노바는 메시와 이야기해보고 싶다며 주제프 마리아 바르토메우 회장에게 부탁해 메시더러 자신에게 와달라고 전하라고 했다. 타계하기 바로 1주일전이던 4월 19일 메시와 핀토가 빌라노바를 만나러 병문안을 갔는데 메시는 이때 생각보다 훨씬 병세가 악화된 빌라노바의 모습에 매우 놀란 눈치였다고.. 빌라노바는 메시에게 팀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고 이것이 사제지간의 마지막이 되어 메시와 회장 바르토메우는 유가족을 제외하면 빌라노바를 가장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되었고, 끝내 1주일뒤 빌라노바는 작고하고 만다. 이에 메시는 심하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 남아달란 말이 사실상 유언이 된 셈. 빌라노바는 당시 감독일 뿐만 아니라 카데테 시절부터 메시를 지도했으며 처음에는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하던 메시였지만 빌라노바가 코치로 부임한 직후부턴 빌라노바의 적극적인 기용덕에 일이 잘 풀릴 수 있었다고 한다. 메시에겐 남다른 인물이었던 셈.

  • 그후 많은 이적 제의가 들어왔지만 메시는 빌라노바와의 약속이 마음에 걸려서 계속해서 이적을 망설였고 2015년 루이스 엔리케 감독과의 불화설로 이적설이 다시 터졌을때 이 일화가 언급되었다. # 결국 메시는 다시 한번 팀에 남았고, 2014-15 시즌 역사상 최초의 2번째 트레블을 안겨준 일등공신이 된다. 바르셀로나 팬들 입장에선 죽는 순간까지도 팀을 위해 헌신한 숨겨진 일등공신일지도...[2] 다만 이후 바르토메우 회장을 비롯한 구단 보드진과 불화가 심해지면서 결국 메시도 질려 2020년 감독이 있는 맨시티로 이적 요청을 한다.[3] 결국 이적이 되진 못했지만 이 여파로 바르토메우와 보드진들이 사실상 쫓겨났고, 메시와 친분이 있던 주안 라포르타 전 회장이 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메시가 잔류하는게 사실상 기정사실화되고 있었으나, 2021년 8월 10일 바르토메우가 망쳐놓은(...) 바르셀로나의 재정문제로 인해 결국 메시는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울면서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하게 된다.

  • 한국에서는 이승우, 백승호, 장결희를 발굴해서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바르셀로나가 추구하는 축구철학을 심어주고 성장하게끔 도움을 준 감독이기도 하다. 다만 몇몇은 근본론을 피하지 못했다.

  • FC 바르셀로나는 운영진으로서 7년간 헌신한 티토 빌라노바의 이름을 명예의 전당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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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소년 코치부터 시작해서, 최종적으론 1군 감독까지 올랐다.[2] 실제로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 내내 꾸준히 팀 상황에 대해 묻거나 경기를 관람하는등 놀라운 프로 의식을 보였다고 한다.[3] 선수단 뿐만 아니라 팀의 레전드들까지 메시를 지지했고 팀 동료 피케도 인터뷰에서 보드진들을 비난한거 보면 바르토메우 회장이 얼마나 인심을 잃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