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토-스탈린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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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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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티토 스탈린 결별.jpg
왼쪽이 스탈린 초상화, 오른쪽이 티토 초상화.

1. 개요
2. 역사
2.1. 1945년~1947년까지 티토와 스탈린의 관계
2.2. 1948년 유고슬라비아의 코민포름 탈퇴
3. 영향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 공화국이 수교를 중단한 사건.


2. 역사[편집]



2.1. 1945년~1947년까지 티토와 스탈린의 관계[편집]


초기에 소련유고슬라비아는 사이가 좋았다. 유고슬라비아는 남동유럽 국가 중에서 처음으로 소련군 주둔을 허용하기까지 했으며 1946년에는 국제공산당 정보기구(코민포름)에 가입했다.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스탈린의 결의안을 반대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1947년에 무기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약속을 소련이 어기자 양국의 관계는 조금씩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2.2. 1948년 유고슬라비아의 코민포름 탈퇴[편집]


이후 스탈린은 소련에 반대하는 유고슬라비아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마침내 1948년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코민포름 총회에서는 유고슬라비아를 영구 제명시키기로 결의했다. 코민포름을 탈퇴당한 뒤 분노한 티토는 친소파와 코민포름에 도움이 되었던 정치인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1949년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동시에 티토-스탈린 결별을 발표했다.


3. 영향[편집]


유고슬라비아는 소련의 모든 경제, 정치, 군사적 원조가 중단된 상태로 엄청난 재정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1949년부터 서방 쪽으로 다가서기 시작하였으며 유고슬라비아의 재정 상황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유고슬라비아는 1961년 비동맹 국가연합을 창설하고 제3세계 국가가 되었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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