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비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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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비에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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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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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2018년

2018년~2020년

2020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마르셀 드사이
(2000~2004)

파트리크 비에라
(2004~2005)


지네딘 지단
(2005~2006)
지네딘 지단
(2005~2006)

파트리크 비에라
(2006~2008)


릴리앙 튀랑
(2008)


아스날 FC 주장

토니 아담스
(1988~2002)

파트리크 비에라
(2002~2005)


티에리 앙리
(2005~2007)


파트리크 비에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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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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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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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99 · 1999-00 · 2000-01 · 2001-02 · 2002-03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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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FIFA 월드컵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파트리크 비에라의 기타 정보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Racing Club de Strasbourg Alsace

이름
파트리크 비에라
Patrick Vieira
본명
파트리크 도날레 비에이라[1]
Patrick Donalé Vieira
출생
1976년 6월 23일 (47세)
세네갈 다카르
국적
[[프랑스|

프랑스
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
]]
| [[세네갈|

세네갈
display: none; display: 세네갈"
행정구
]]
| [[카보베르데|

카보베르데
display: none; display: 카보베르데"
행정구
]]

신체
193cm / 체중 100kg[2]
주발
오른발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3] / 은퇴)
축구 감독
경력
선수
AS 칸 (1993~1995)
AC 밀란 (1995~1996)
아스날 FC (1996~2005)
유벤투스 FC (2005~2006)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6~2010)
맨체스터 시티 FC (2010~2011)
감독
맨체스터 시티 FC U-23 (2013~2015)
뉴욕 시티 FC (2016~2018)
OGC 니스 (2018~2020)
크리스탈 팰리스 FC (2021~2023)
RC 스트라스부르 (2023~ )
기타
맨체스터 시티 FC (2011~2013 / 이사)
국가대표
107경기 6골 (프랑스 / 1997~2009)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유년기
3. 선수 경력
4. 지도자 경력
5. 기록
5.1. 선수
5.1.1. 출전 기록
5.1.2. 대회 기록
5.1.3.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
5.3. 수훈
6. 비에라에 대한 말, 말, 말
7. 이야깃거리



1. 개요[편집]


프랑스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랑 수비형 미드필더.

아스날에서 2003-04 시즌 무패 우승을 포함해 PL 3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레 블뢰에서는 1998 프랑스 월드컵, 유로 2000 우승 및 2006 독일 월드컵 준우승에 기여하였다.

또한 월드컵 올스타팀과 유로 토너먼트의 팀에 한번씩 이름을 올렸고 PL 올해의 선수에 1회, PFA 올해의 팀에 6회, UEFA 올해의 팀에 1회 선정되었다.


2. 유년기[편집]


세네갈다카르에서 카보베르데인 부모로부터 태어나 8살 때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했고, 할아버지가 프랑스군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어머니와 살게 되었고 이혼 이후 아버지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비에라'(Vieira)라는 성도 어머니쪽 성씨를 따른 것으로, 부모님 혈통에 따라 카보베르데에서 사용되는 포르투갈어권 성씨다.[4]


3. 선수 경력[편집]



3.1. 클럽[편집]


17세에 AS 칸에서 성인팀에 데뷔하였으며, 19세에 이미 주장을 맡았을 정도로 뛰어난 리더십을 가졌다. 1995년 여름 이탈리아 세리에 AAC 밀란으로 이적하였으나 경기에는 출장하지 못하고 대부분 벤치에 머물렀다.


3.1.1. 아스날[편집]


AC 밀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비에라를 본 벵거가 1996년 비에라를 영입했고,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차며 1997-98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더블을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토니 아담스가 말년이였던 2001년부터 부주장을 맡았고, 아담스가 은퇴하고 주장이 된다. 부주장이 된 첫 시즌인 2001-02 시즌에 또다시 리그와 FA컵을 거머쥔다. 2003-04 시즌에는 지우베르투 시우바, 로베르 피레스 등과 함께 강력한 미드필더진을 형성하여 26승 12무 승점 90점으로 그 유명한 무패 우승을 달성한다.[5]

당시 월드클래스 선수로 도배되다시피한 아스날인데다가 공격진에서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 조합이 쩔기도 해서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는 적지만 아스날에서 비에라의 존재감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라이벌이던 맨유의 공격적인 영입 정책과 달리 아스날은 소극적인 영입 정책을 펼쳤고 비에라는 항상 불만을 제기해왔다. 레알 마드리드가 매년 여름마다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은 유명한 일. 비에라도 레알로 갈 것처럼 행보를 보여오면서도 항상 아스날에는 꼬박꼬박 남았으나 피지컬적인 측면에서 점차 하향세가 오던 그에게 2004-05 시즌이 끝나고 유벤투스가 접근해왔고 비싼 값에 마지막으로 팔 수 있는 시점이라 여긴 벵거 감독이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허락해주었다. 다만 이것도 말이 좋아 새로운 도전이었지 사실상 내친 거나 다름없었다. 이적 이후 인터뷰에서 비에라는 이 당시 나갈 생각이 없었는데도 팀으로부터 재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슬프고 당황했다고 말했다. 유벤투스 이적 이후 밝혀진 비화에서는 벵거가 이제 세스크 파브레가스도 써야 하니 비에라에게 주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자극했다고 하는데, 지금이야 세스크가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중 하나로 꼽히지만 당시엔 비에라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였고 세스크는 아무리 미래가 촉망되는 탑 유망주라 한들 17살짜리 꼬맹이었다. 그런 선수를 기용하고자 은근히 밀어내는 모습을 보였으니 비에라 본인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일. 물론 비에라 본인도 챔스 트로피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장기적으로 팀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옮기는 데에 따른 소극적인 이적시장 정책을 계속해서 보일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국 이적을 받아들이고 더 늦기전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2004-05 시즌 FA컵 우승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난다.

이후 벵거는 자기 자신이 아스날을 떠날 때까지 비에라의 완벽한 대체자를 구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비에라 수준의 퀄리티를 갖추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그런 퀄리티에 근접한 야야 투레는 유망주 시절 영입하고자 했고, 실제 합의까지 했으나 워크퍼밋 때문에 영입하지 못하고 여러 과정을 거져 결과적으로 맨시티가 가져가버렸다. 또한 그러한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벵거의 스타일상 영건이 아니라면 무리해서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기도 하고. 2016년 기준 다들 수준급 활약을 선보이는 아스널의 미드필더진이 가진 최대 약점 중 하나가 피지컬인데[6], 그나마 좀 괜찮은 편인 애런 램지 정도를 제외하면 메수트 외질, 산티 카솔라같은 선수들은 테크닉이나 패스 및 볼 전개 능력은 훌륭할지라도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중원장악력을 가졌다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나마 프랑시스 코클랭이 14-15 시즌에 수비적 역할을 잘 해주면서 역할을 해서 벵거에게 부족한 퍼즐을 하나 메웠고, 15-16 시즌에도 부상 전 까지 활약했으나 비에라의 퀄리티에 많이 모자라는 선수였던 것 역시 사실이다.

문제는 아스날과 경쟁하는 클래스들은 대부분 그러한 피지컬우위, 혹은 완벽한 피지컬적 우위가 아니더라도 태클을 통해 볼을 탈취하여 동료들로 하여금 중원을 장악하도록 하는 스타일의 선수를 왠만해서는 한명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에라는 비슷한 클래스의 팀들과의 경쟁에서 이러한 우위를 한가지라도 만들어 줄 수 있는, 벵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슈퍼 퀄리티의 선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약점은 비에라의 이적 이후 아스널이 구단 재정 문제로 인한 지지부진한 영입 등의 문제와 겹쳐 아스널이 오랫동안 트로피와 연을 맺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3.1.2. 유벤투스[편집]


파일:external/i.dailymail.co.uk/1415879883536_wps_44_Patrick_Vieira_Juventus_P.jpg
2005년 7월 14일 그의 유벤투스행이 확정되었다.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나 경기력은 아스날 시절보다는 다소 떨어졌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친정팀 아스날을 상대하였는데 자신의 등번호를 이어받은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면서 유벤투스를 제압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하지만 2006년 월드컵에서는 좋은 활약을 보여 클래스는 죽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3.1.3. 인테르[편집]


파일:external/4e2c4cbac6721526401de3873d313dd5239b3a8b6d107f82073490f0b15a60a5.jpg
다음 시즌 칼치오폴리로 유벤투스가 세리에 B로 강등되면서 비에라는 인테르로 이적했다. 인테르 이적 이후에는 과거와 같은 포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첫 시즌은 인테르의 압도적인 스쿠데토 획득에 기여했지만 점점 나이도 30대가 넘어가면서 피지컬이 하락하여 과거와 같은 운동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고,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2008-09 시즌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맨유를 상대했지만 별다른 활약 없이 인테르는 패배하였다. 이후 하비에르 사네티가 중앙 미드필더 롤을 소화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다음 시즌 티아고 모타, 웨슬리 스네이더의 합류로 인해 완전히 후보로 전락하여 벤치에만 머물게 되었다.


3.1.4. 맨체스터 시티[편집]


파일:20210106_005720.jpg

결국 2010년 1월 꾸준한 출장을 위해 맨체스터 시티로 임대를 떠났고 다음 시즌 완전 이적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팀을 떠난 후 인테르는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여 이탈리아 클럽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뤘다. 여러모로 빅 이어와는 인연이 지독하게도 없다.

이후 맨체스터 시티에서 한 시즌을 더 뛰었고 팀의 42년 만의 FA컵 우승에 기여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리고 2011년 여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3.2. 국가대표[편집]


1997년 2월에 펼쳐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원숙한 선배들이 줄줄이 늘어선 1998 프랑스 월드컵 때는 1994년 대회호나우두2002년 대회카카처럼 경험을 쌓게 해 주는 차원에서 대표팀에 승선시킨 유망주로 백업의 백업이었다. 프랑스의 3선은 디디에 데샹, 에마뉘엘 프티, 크리스티앙 카랑뵈[7]가 1옵션이었고, 백업은 삼프도리아의 알랭 보고시앙[8], 비에라는 그 다음에 위치했다. 주전들 체력 안배 차원에서 조별리그 3차전 덴마크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것과 결승전 75분에 굳히기 차원에서[9] 공격수 유리 조르카에프와 교체되어 들어가는 것으로 대회를 마쳤다.

유로 2000부터 당당한 경쟁력을 갖추면서 막강 프랑스 중원의 한 축으로 자리잡는다.[10]

2002 한일 월드컵부터는 데샹의 은퇴로 프티와 나란히 주전으로 참여했으나 팀은 조별리그에서 광탈하였고 유로 2004에서는 클로드 마켈렐레와 호흡을 맞춰 조별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8강부터는 부상으로 결장했고 결국 프랑스는 8강에서 탈락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비에라는 다시 한번 클로드 마켈렐레와 함께 플레이메이커 지네딘 지단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막강한 후위 미들진을 구성하였고 조별예선부터 좋은 활약을 보이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조별리그 2차전 한국과의 경기에서는 전반 30분경 코너킥 상황에서 강력한 헤더로 골을 성공시켰지만 골라인을 완전히 넘어갔음에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이운재의 괴물같은 선방으로 유명한 장면이나 실제로는 오심이며, 훗날 2012년 골라인 판독을 통해 오심으로 인정되었다. 다만 이전 코너킥 상황 자체가 오심이었다. 프랑스 선수가 걷어낸 공이 라인 바깥으로 나갔음에도 골킥이 아닌 코너킥이 선언되었기 때문.

조별리그 3차전 토고전에는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지네딘 지단을 대신하여 주장으로 출전하였다. 당시 프랑스는 토고를 이기지 못하면 스위스와 한국에 승점에서 밀리기 때문에 탈락인 위태로운 상황이었는데, 이 날 비에라는 후반 10분에 프랑크 리베리의 패스를 받아 멋진 터닝슛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6분 뒤에는 헤딩 패스로 티에리 앙리의 골까지 어시스트하며 2대0 승리를 이끌고 MOM에 선정되며 팀을 토너먼트 16강으로 올리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11]

16강 상대는 스페인이었는데, 스페인은 조별리그를 3승 무패로 쉽게 통과한 팀이라 상당히 힘든 경기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비에라는 토고전 그 이상의 활약을 보이며 또 한번 팀을 구해냈다. 1대0으로 뒤진 전반 41분 하프라인 근처에서 프랑크 리베리의 패스를 받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비수들 사이로 엄청난 킬패스를 리베리에게 내주며 리베리의 동점골을 어시스트 했고[12], 후반 83분에는 프리킥 상황에서 지네딘 지단이 올려준 볼이 굴절되어 자신쪽으로 오자 강력한 헤더로 역전골까지 뽑아내며 팀의 3대1 승리를 이끌고 토고전에 이어 연속으로 MOM에 선정되었다. 토고전에 이어 두 경기에서 연속으로 1골 1어시를 기록하였으며, 사비 에르난데스, 샤비 알론소,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을 주축으로 한 스페인의 미드필더진을 지네딘 지단과 함께 축구 레슨을 시켜주며 말 그대로 탈탈 털었다.

이후 8강 브라질전과, 4강 포르투갈전에서는 공격포인트는 없었지만 중원을 완벽하게 차단하며 각성한 지네딘 지단의 뒤를 든든하게 지원하며 프랑스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다만 결승 이탈리아전에서는 코너킥 상황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당하여 마테라치의 헤더 동점골을 헌납해버렸다.[13] 이후에는 이탈리아의 미드필더들과 치열한 중원 싸움을 벌이다 부상을 당해 후반에 교체되었고, 프랑스는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파트너 마케렐레와 함께 상대하는 팀마다 미드필더 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으며 후방을 든든히 해준 1등공신이었기에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지단이 독일 월드컵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로는 그 후임 주장에 임명되었는데, 유로 2008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한경기도 뛰지 못했고 월드컵 준우승팀이었던 프랑스도 세대교체 실패와 주전들의 노쇠화가 겹치면서 최악의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 과정에서 비에라는 잦은 부상에 노쇠화로 점점 국가대표 차출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 2009년 6월에 열렸던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를 끝으로 더이상 프랑스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당연히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도 탈락. 근데 팀이 돌아간 꼴을 고려하면 차라리 안 나가는 게 더 나았을지도...


3.3. 플레이 스타일[편집]



그의 최고 장점은 중원 장악력. 193cm라는 장신의 키와 거대한 신체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바탕으로 중원을 언제나 장악했다. 그가 중원에 있을 때는 묵직한 느낌이 있었고, 비에라의 팀은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주는 비에라를 믿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 이를 뒷받침한 수비적 전술이해도는 당대 최고였다. 게다가 장신임에도 스피드가 빨랐다. 물론 덩치가 큰 만큼 민첩성과 가속에서는 아쉬운 면이 있었지만, 침투상황에서의 스프린트는 웬만한 윙어만큼이나 빨랐다. 다만 볼을 가진 상황에서의 스피드는 그렇게까지 빠른 편은 아니었다.

활동반경이 매우 넓으며, 경기장 어디에서나 나타났다. 그럼에도 쓸데없는 움직임을 보여 체력만 깎아먹는 일은 없었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수비시 위치선정은 역대 최고 수준. 상대 선수는 비에라의 강력한 체력과 도저히 뚫어낼 수 없는 신체조건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키가 커도 수비를 못하는 선수가 많지만, 비에라는 중앙 미드필더 중 최고의 수비 실력을 가진 선수였다. 태클, 인터셉트, 몸싸움 등 빠지는 것이 하나 없었다. 공중볼도 적극적으로 따내려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제공권이 워낙 좋다 보니 경합을 붙었다 하면 십중팔구 승리했다. 지네딘 지단이 자신이 만나본 최고의 수비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비에라를 꼽았을 정도. 연습때만 적으로 만나서 다행이라는 립서비스는 덤. 이때 프랑스 수비라인에는 튀랑과 마케렐레가 있을 때였다.

공격적인 부분에서는 특출나지 않았지만, 팀의 패스플레이와 공격 전개의 한 축을 맡으며 안정적인 볼 배급을 해주었다. 여차하면 적극적으로 드리블해 상대 수비라인을 초토화시키기도 했을 정도로 볼 컨트롤 역시 훌륭해 공을 빼앗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보통 페널티박스 밖에 머무르지만 가끔 침투해서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골 결정력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때문에 비에이라는 일반적인 중앙 미드필더들보다도 우수한 공격 스탯을 보유하고 있다.

패스 실력 역시 출중한 편이다. 벵거볼이라고 불리는 빠른 템포의 패스를 통한 공격은 중원에서 비에이라가 중심을 잡아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14] 전성기 때의 비에이라는 퇴장이 많다는 것만 빼면 거의 무결점에 가까운 미드필더였다.

다만 피지컬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미드필드 전 지역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박스 투 박스 유형의 미드필더이다 보니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은 뛰어나다고 보긴 어렵다. 알론소나 피를로처럼 3선에서 빌드업과 플레이메이킹을 기대하고 이를 맡기기는 힘든 선수였다. 아스날과 프랑스에서는 출중한 2선 자원들이 있어 비에라의 빌드업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유벤투스와 지단이 없는 프랑스에서는 정말 답답한 경기운영능력을 보여줬다. 유벤투스에서 브라질의 에메르송과의 함께한 미들 조합이 이론상 최강으로만 남고 과거 마켈렐레와 조합이 안맞았던 이유도 이런 점에 근거한다.[15] 하지만 2006 월드컵에선 지단이 2선~3선을 왕성히 오가며 빌드업을 직접 이끌자 둘은 장점인 미들 장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8강에서 최고의 공격진을 내세운 브라질을 경기력에서 압도하며 결승전까지 간 끝에 아쉽게 준우승의 성과를 거뒀다. 물론 애초에 그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가 아니라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라 플레이메이킹 능력까지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바람이다.

그리고 상당히 터프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다. 193cm에 달하는 거구가 무지막지한 피지컬을 앞세워 돌격해 오는 것도 무섭다만, 그런 선수가 거칠기까지 하다면 상대방의 공포는 극에 달했을 터. 보통 터프한 수준이 아니라 굉장히 터프한 수준이다. 프리미어리그 통산 76장의 옐로카드를 받아 역대 16위에 올라 있으며, 무려 8장의 레드카드를 받아 리차드 던, 던컨 퍼거슨과 함께 해당 분야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워낙에 피지컬부터가 사기적인 수준인지라 거친 플레이로 상대를 압도하는 플레이를 펼쳤다.


4. 지도자 경력[편집]



4.1. 맨체스터 시티 FC[편집]


2011년 은퇴 직후 맨체스터 시티 FC로부터 청소년 육성훈련 개발 이사직을 받아 재직했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맨체스터 시티 U-23팀 감독 겸 엘리트 개발 팀 매니저로 일했다.


4.2. 뉴욕 시티 FC[편집]


2015년 1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재직했다. 2016년부터 동부 컨퍼런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MLS 성적은 아쉬웠다.


4.3. OGC 니스[편집]


2018년 6월 부임하여 2018-19 시즌 7위를 기록하였다.

2019-20 시즌에는 코로나 19 판데믹으로 28경기만에 리그가 조기종료되었고 종료시점 6위로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그러나 2020-21 시즌에는 유로파에서 일찌감치 광탈하고 리그에서도 부진을 거듭하더니, 결국 2020년 12월 4일 경질되었다.


4.4. 크리스탈 팰리스 FC[편집]



4.4.1. 2021-22 시즌[편집]


로이 호지슨의 후임자로 낙점되어 크리스탈 팰리스와 2021년 7월 4일, 계약기간 2024년까지 유효한 계약을 맺었다.

PL 데뷔전인 1라운드 첼시전에서 0:3으로 패배했다.

PL 2라운드 브렌트포드전에는 0:0으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PL 3라운드 웨스트햄전에는 코너 갤러거의 멀티골에 힘입어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PL 4라운드 토트넘전에는 후반 76분 윌프리드 자하의 PK골에 이어 후반 84분과 90+2분에 새로 영입된 이적생 오드손 에두아르의 엄청난 멀티골에 힘입어 3:0 대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를 통해서 밝혀진 사실이라면 선수 시절을 포함하여 감독이 된 이 시점까지도 토트넘을 상대로 커리어 통산 단 두 번밖에 패하지 않는 진기록을 이어갔다고 한다. 본인이 선수와 감독을 통틀어 런던 연고팀 소속으로 토트넘과 만났을 때의 통산 전적은 10승 7무 1패라고 한다.[16]

PL 7라운드까지 1승 4무 2패로 리그 14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원래 크리스탈 팰리스가 중위권 팀임을 고려해 봤을때 아직까지는 아주 나쁘다고 할 순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8라운드 상대가 공교롭게도 자신을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만들어준 팀이자 전성기를 보낸 아스날이라 큰 관심이 모아지는 경기이다.

PL 8라운드 아스날 원정에서는 후반전 벤테케와 에두아르의 골로 승리를 챙기는 듯했으나 후반전 종료 직전에 라카제트에 동점골을 내주면서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라카제트의 골이 나오자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PL 10라운드 또다른 친정팀인 맨시티 원정에서 0:2로 승리하는 대이변을 일으켰다.[17]

PL 11라운드 울버햄튼과의 홈경기에서 중원을 압도하며 2:0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6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달리게 되었다.

PL 12라운드 번리전에서 3:3으로 비기며 7경기 무패행진을 달리게 되었다. 임대생 코너 갤러거와 이적생 오드손 에두아르의 활약으로 지난 시즌의 크리스탈 팰리스와 확연히 다른 모습의 팀으로 탈바꿈 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스톤 빌라, 리즈, 맨유에게 내리 1점차 패배를 당하며 하락세를 겪고 있다.

PL 19라운드 토트넘 원정을 앞두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나오지 못했고, 팀도 0:3으로 완패했다. 그래도 다음 경기인 노리치전에서는 3:0 완승으로 체면치레를 했다.

FA컵 64강 밀월 원정에서는 선제골을 내줬지만 2:1 역전승을 따냈고 32강과 16강에서 각각 하튼풀 유나이티드와 스토크 시티를 차례대로 꺾고 8강 진출을 이끌었다.

PL 28라운드 울버햄튼 원정에서 2:0 완승을 거두면서 더블을 달성하더니 29라운드 맨시티와의 홈경기에서 0:0으로 비기며 리버풀과 우승 경쟁 중인 맨시티에게 제동을 걸었다. 또한 맨시티가 이번 시즌 리그 기준으로 유일하게 원정과 홈에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팀으로 기록되었다.

FA컵 8강 에버튼전에서는 무려 4:0으로 털어버리면서 팀의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A매치 이후 이뤄진 PL 31라운드 아스날전에서 3: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4위 경쟁 중인 아스날에게 제동을 걸었다.[18] 특히 후반에 아르테타가 공격적으로 전술을 바꾸자 바로 공격을 빼고 중원을 강화한 모습이 압권. 이로써 자신이 선수시절 활약했던 아스날에게 3:0과 2:2, 말년에 뛰었던 맨시티에게 2:0과 0:0이라는 스코어를 안겨주게 되었다.

FA컵 4강 첼시전에서 아쉽게도 0:2로 패배하면서 FA컵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2022년 5월 13일,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에서 발표하는 올해의 감독 후보 5인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나머지 4명은 펩 과르디올라, 위르겐 클롭, 토마스 프랑크, 에디 하우가 뽑혔다.

PL 33라운드 순연경기 에버튼 원정에서는 2-0 스코어에서 2-3 역전패했다. 잔류가 확정된 에버튼 팬들은 필드에 난입했는데, 이 중 한 팬이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는 비에라의 얼굴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며 조롱하는 말을 내뱉었다. 이에 폭발한 비에라 감독은 그 팬을 향해 발길질했고, 결국 FA로부터 조사받게 되었다.

PL 최종전인 38라운드 맨유전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리그 최종 12위로 마무리했다. 좋은 성적이라곤 할 수 없지만, 골득실을 +로 끝냈다는 점에서 크리스탈 팰리스가 지난 시즌과는 완전히 다른 팀이라는 것을 보여준 시즌이였다.


4.4.2. 2022-23 시즌[편집]


PL 1R, 전방 압박과 요아킴 안데르센의 롱패스를 기반으로 한 전술 자체는 좋았지만, 공격수들의 결정력 부재로 친정팀 아스날에게 2-0으로 패배했다. 개막전부터 다른 팀도 아닌 선수 시절 아스날에게 한방 먹은 셈이다. 결국 이번 시즌도 영봉패로 시작하게 되었으나, 경기력적으로는 전혀 밀리지 않았던 탓에 패배 자체에는 다소 운적인 요소가 작용했다는 평도 있는 편.

아스날과의 경기가 기우였다는 듯이 연이은 강팀들을 만나는 2022-23 시즌 PL 2R 리버풀 원정에서 천금같은 1:1 무승부를 연출해내었다. 전술적 노림수가 적중했던 윌프리드 자하의 선제골, 다르윈 누녜스의 퇴장을 이끌어낸 점, 10명을 상대로는 싸우고자 하는 리버풀의 기세에 눌려 동점골을 허용하는 장면등 흥미로운 상황이 많았던 경기였으며, 리버풀이라는 강팀을 상대로도 역시나 경기력이 밀리지 않으며 향후 시즌의 다크호스로 부상할 것이라는 주목도를 얻게 되었다.

또한 3R 빌라전, 3-1 압승을 이끌어내며 리그 초반 최고의 경기력을 보내고 있다. 이 정도면 이미 감독으로써의 역량은 입증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대다수.

PL 4R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4-2로 패배했다. 그러나 초반에 2득점으로 맨시티를 몰아붙이며 전반전 전술은 성공적이였으나 후반에 들어서 변화를 준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특히 홀란드를 막아내지 못하며 해트트릭까지 내준 끝에 4실점이나 하고 말았다.

PL 5R 브렌트포드전은 1-1로 비겼다.

PL 16라운드까지 6승 4무 6패로 12위를 기록하며 저번 시즌이랑 비슷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팀이 그동안 하위팀이고 투자 여부를 생각하면 리그 잔류가 목표인 상황에 팀을 잘 유지하고 있는 셈.

그러나 이번 겨울에 아직도 영입을 안하고 있어 비에라가 구단에게 분노했다고 한다. 그나마 이적시장 막바지에 나우이루 아마다를 영입하고 알베르 삼비 로콩가를 임대로 데려오면서 어느정도 보강은 했으나, 다른 중하위권 구단들이 적극적으로 돈을 풀면서 스쿼드를 보강한 것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영입 성과.

결국 그 여파인지 1월부터 한동안 무승 행진을 겪으면서 위기에 빠졌다. 리그 순위는 12위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으나 이번 시즌 PL 하위권이 워낙 촘촘하게 붙어서 경쟁중이라 최하위와의 승점차가 단 6점에 불과하다.

이후 2023년에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PL 27라운드 브라이튼전 패배 후 며칠 뒤 경질되었다. 자진 사임 의사라는 의견도 있었으나, 구단 홈페이지에 크리스탈 팰리스의 회장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언급한 점과 스카이스포츠에서도 경질로 보도했기에 자진 사임보다는 구단 측에서 내린 결정에 가깝다. 공식 발표와는 다르게 사실상 권고사직을 당한 셈.

2023년 6월, 리즈 유나이티드 FC의 차기 감독 부임설이 돌고 있다.

6월 30일 첼시의 구단주 컨소시엄 BlueCo.가 인수한 프랑스 리그앙의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의 감독직을 맡을거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4.5.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편집]


7월 2일,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는 비에이라를 정식 감독으로 3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4.5.1. 2023-24 시즌[편집]


7월 3일 스트라스부르 선수들과 훈련에 참가했다.


5. 기록[편집]



5.1. 선수[편집]



5.1.1. 출전 기록[편집]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3/94
AC 칸
디비지옹 1
5
0
1
0
0
0
-
-
1994/95
AC 칸
디비지옹 1
31
2
2
0
1
1
4
1
1995/96
AC 칸
디비지옹 1
13
0
0
0
0
0
4
0
1995/96
AC 밀란
세리에 A
2
0
1
0
-
-
2
0
1996/97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1
2
3
0
3
0
1
0
1997/98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3
2
9
0
2
0
2
0
1998/99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4
3
5
0
1
0
3
0
1999/00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0
2
2
0
1
0
14
0
2000/01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0
6
6
1
0
0
12
0
2001/02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6
2
7
0
0
0
11
1
2002/03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24
3
5
0
1
0
12
1
2003/04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29
3
5
0
3
0
7
0
2004/05
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32
6
6
1
0
0
6
0
2005/06
유벤투스
세리에 A
31
5
3
0
-
-
7
0
2006/07
인터 밀란
세리에 A
20
1
3
0
-
-
4
1
2007/08
인터 밀란
세리에 A
16
3
3
0
-
-
3
0
2008/09
인터 밀란
세리에 A
19
1
2
0
-
-
3
0
2009/10
인터 밀란
세리에 A
12
1
1
0
-
-
2
0
2009/10
맨체스터 시티
프리미어 리그
13
1
1
0
0
0
-
-
2010/11
맨체스터 시티
프리미어 리그
15
2
8
3
1
0
8
0


5.1.2. 대회 기록[편집]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세리에 A: 2006-07, 2007-08, 2008-09, 2009-10
    • 코파 이탈리아: 2009-10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19]: 2006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9-10




5.1.3. 개인 수상[편집]




5.2. 감독[편집]



5.2.1. 대회 기록[편집]




5.3. 수훈[편집]




6. 비에라에 대한 말, 말, 말[편집]


그는 미드필드로서의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 위대한 선수이다. 수비면에서의 공헌은 물론이고 전방으로 패스를 공급하는 면으로서도 팀에서는 없어선 안될 플레이어다.

티에리 앙리


지금의 아스날이 있게 한 장본인이다. 만약 비에라가 당시 중원에 없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아르센 벵거


세계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미드필더다.

지네딘 지단


비에라의 플레이는 놀라움 그 자체다. 미드필드를 장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나 비에라는 환상적인 패스나 몸놀림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미드필드 만큼은 확실하게 거머쥔다. 또한 그의 막강한 파워는 몸집만큼 거대하며 여러모로 대단한 선수임을 느끼게 한다.

데니스 베르캄프


비에라의 칭찬은 내게 영광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과 수준을 따라가려면 많이 노력해야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비에라의 발자취를 따라잡고, 또 뛰어넘고 싶다.

아부 디아비


비에라는 상대할 때마다 완벽한 미드필더라는 느낌이 든다.

프랭크 램파드


세계 넘버원의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생각한다. 그 포지션에서 그 정도의 테크닉을 가진 사람은 없다.

스티븐 제라드


그는 타고난 주장이였고 팀원들 모두 그를 믿고 의지할수 있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


비에라와 함께 경기를 해보면, 그는 정말 괴물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그라운드 위에서는 물론이고 경기장 밖에서도 나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가르쳐줬다. 비에라는 단연 내가 함께 뛰어본 선수들 중에서 가장 최고였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비에라는 나의 롤모델이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다.

야야 투레


비에라를 보유한 아스날은 행복한 구단이었다.

주제 무리뉴



7. 이야깃거리[편집]


파일:시대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jp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5위에 이름을 올렸다.

  • 전형적인 만능 육각형 미드필더답게 축구게임에서는 피지컬을 바탕으로 미드진을 장악하는 성능이 뛰어난 선수로 나온다.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는 능력치가 20으로 도배되어 있는 선수로 유명했으며, FIFA 시리즈PES에서도 피지컬 좋고 키 큰 박투박 미드필더란 이유로 당연히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다. 심지어 PES에선 패스 스탯이 미드필더치곤 상당히 나쁨에도 상대 중원을 혼자서도 씹어먹는 피지컬과 활동량 때문에 아이코닉 모멘트 출시 이전까진 크루이프와 영베컴[20]과 함께 사기 레전드 3강으로 꼽혔을 정도. 아이코닉 버전은 플레이 스타일이 강한 압박에서 산소탱크로 바뀌며 주가가 더욱 상승했다. 이는 pes의 후속작 efootball 시리즈에서도 여전하여, 2023년 현재 빅타임 비에이라는 부동의 0티어 수비형 미드필더로 대체자가 거의 없는 수준. 피파온라인에서는 피파3 중반에 처음 등장하여 시작부터 엄청난 성능으로 충격을 주었으며, 피파 온라인 3의 후속작 피파 온라인 4에서도 그 사기성은 여전해 호나우두, 루드 굴리트와 함께 묶여 '호굴비'로 불리며 적폐 취급을 받았다. 다만 워낙 다양한 시즌이 많이 나온 현재는 수비는 좋으나 패스가 좋지 않고 중거리 슛도 별로라는 단점 때문에 미하엘 발락이나 레온 고레츠카, 마이클 에시앙과 같은 만능선수들에게 적폐의 자리를 내주었다.

  • 상당한 성질로 유명하다. 로이 킨과의 앙숙관계는 이미 전설[21][22] 이다. 다만 비에라가 가장 싫어했던 선수는 뤼트 판니스텔로이였다고 한다.[23]마리오 발로텔리마저도 비에라의 말은 고분고분 들었다고 한다.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그를 자극하면 말릴 수 없을 정도이고 실제로 그는 인종차별퇴치 홍보대사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다른 선수를 괜히 자극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하일로비치가 이것에 해당된다.[24] 반면 놀랍게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는 서로 친근한 사이라고 한다. 즐라탄에 자서전에 따르면 둘 다 서로 한성깔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싸우다보니 친해졌다고 한다.

  • 클로드 마켈렐레와 영혼의 듀오로 손꼽혔지만 그건 2006 독일 월드컵만 본 사람들의 평가[25]로 출장시마다 잉글랜드의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의 조합처럼 현실은 시궁창인 조합이였다. 무엇보다 플레이스타일이 유사한 둘의 플레이는 시너지는 커녕 서로의 동선만 방해하는 플레이만 보여주었다. 뭐, 그래도 끝까지 답을 못 찾은 제라드-램파드 조합과는 다르게, 2006 월드컵에서 기어이 제대로된 콤비플레이를 보여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확실히 월드컵 토너먼트에서는 지단의 마지막 불꽃과 마켈렐레-비에라 조합의 포텐이 터진 것 때문에 프랑스가 결승에 갈 수 있었다.

  • 아스날에서의 마지막 시즌때 스페인파[26] 선수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레예스가 아스날에서 떠나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알려진 선수 중 한 명. 그리고 아넬카가 과거 자서전에서 언급하기를 라커룸에서 과거 자신에게 본인의 ' 그것 ' 을 보여줬다고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베르캄프가 준 완벽한 찬스를 놓친 후 자기를 죽일 듯이 비에라가 노려보고 샤워 도중에 처들어와서 ' 그것 '으로 아넬카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당연히 아넬카는 기분 개썩었다고 한다.

  • 그의 다리는 워낙 길어서 구너들이 학다리라고 불렀었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그의 다리는 한쪽 다리가 다른쪽 다리보다 3cm나 길다고 한다. 뛸 때야 모르겠지만 사실 반듯하게 선 자세를 가만 보면 매우 구부정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좋지 못한 신체조건이 하향세가 빨리 오는 결과를 낳았다. 비에라가 아스날에서 뛰던 시절 토니 아담스가 비에라의 다리 길이가 상이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말년에는 부상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고 발언했었는데 과연 그 말대로 30대가 넘어간 인테르 시절 이후부터 점점 부상이 많아졌다.[27]

  • 2011년 은퇴 이후 맨체스터 시티의 기술 이사로 일하면서 유소년 훈련 시스템을 개혁 및 개발 하였고 2013년 5월에는 맨체스터 시티의 리저브 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2015년 12월까지 2년 7개월동안 활동했다. 2015년 5월에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감독 부임 설이 있었으나 단순 설에 그쳤다. 그리고 2016년 1월 뉴욕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했다.[28]

  • 비에라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비에라가 떠난 이후에 아스날이 리그 우승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FA컵 역시 9년이 걸려서야 우승했다.) 세스크의 등장 이후, 벵거의 축구철학과 세스크 위주로 전술이 편성되면서 피지컬을 소홀히 했던지라 아스날은 비에라가 있을때와 달리 스토크나 터프한 빅샘류 축구에 약점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프랑스 국대도 비에라가 마지막으로 주전 출전했던 2006 독일 월드컵 준우승 이후 유로 2016 전까지 단 한 번도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또한, 나름 비에라의 대체자가 되어야 했었던 디아비가 완전한 성장곡선을 못 그려낸게 아스날과 프랑스가 더더욱 비에라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스날은 2016년에 영입한 그라니트 자카가 수비력을 제외한 부분에 있어서는 뛰어난 유틸리티성을 보여주면서 몇 년간 활약해주었고, 프랑스 국대에서는 은골로 캉테라는 월드클래스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가 등장하면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 아르센 벵거 감독이 2018년에 사임한 이후 비에라의 아스날 감독 부임설이 계속 돌고 있으나 본인은 기회가 와도 부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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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탈 팰리스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는 둥글둥글한 얼굴 때문에 왕밤빵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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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 'Vieira'는 현지에서 '비에라'라고 발음하나 카보베르데에서 쓰이는 포르투갈어계 성씨로, 카보베르데인인 그의 어머니 Emillienne Vieira가 결혼 전에 쓰던 성씨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름 'Patrick'의 경우 프랑스어 표기법을 반영해 '파트리크'로 표기하나, 국내에서는 이게 영미권 이름 패트릭이랑 동일하다보니 '패트릭'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2] 선수 시절 85~90kg[3]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4] 포르투갈이 과거 카보베르데를 식민 지배한 영향으로 현재도 카보베르데에서는 포르투갈어가 공용어다. Vieira 역시나 포르투갈어에서는 '비에이라'로 발음되는 성씨로, 현재 아스날 소속인 파비우 비에이라나 브라질의 전설적인 레프트백 마르셀루가 이 성씨를 쓰는 대표적인 인물이다.[5] 이 당시 맨유의 로이 킨과의 라이벌리는 유명했다.[6] 벵거에게 있어 선수들의 피지컬은 전술상 이점을 갖고 + 짱짱한 피지컬로 무장한 무리뉴의 첼시에 항상 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7] 멀티플레이어로서 처음엔 백업멤버였으나 8강전부터 주전으로 출전했다.[8] 프랑스 대표팀 레몽 도메네크 밑에서 수석코치를 지낸바 있다.[9] 센터백이였던 마르셀 드사이가 퇴장당했기에 수비적인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였다.[10] 이 때 프랑스는 디디에 데샹을 고정으로 놓고 파트너에 에마뉘엘 프티와 비에라를 로테이션으로 기용하면서 매 경기 다른 중원 구성을 선보였고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비에라는 프티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11] 여담이지만 해당 경기는 비에라의 생일이었다.[12] 앞으로는 스페인의 두 센터백 푸욜과 파블로가 달려들었으며, 뒤로는 차비샤비 알론소가 길을 막고 둘러쌌음에도 짧은 찰나에 파블로의 태클을 절묘하게 피하는 기가막힌 패스를 리베리에게 찔러줘서 리베리가 그대로 골키퍼와 1대1 상황이 되었다.[13] 마테라치가 점프 타이밍을 굉장히 잘 잡아서, 비에라보다 머리 하나 위에서 프리하게 내려찍은 탓에 골키퍼가 막을 수가 없었다[14] 여담으로 게임상의 능력치긴 하지만 피파 시리즈에서 비에라의 짧은 패스는 86 긴 패스는 85, 풋볼매니저에서는 패스 17이다. 이 정도면 레지스타 유형이 아닌 수비에 중점을 둔 미드필더로는 세계 최고급이다.[15] 마켈렐레는 중원 지역 장악에 탁월한 선수였고, 패스도 눈이 썩을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역시 빌드업을 이끌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16] 본인의 커리어 통산 마지막이자 유일한 북런던 더비 패배는 1999년 11월 7일에 1:2로 패했던 경기라고 한다. 이후 2010년 4월 14일에 1:2로 한 번 더 토트넘을 만나서 패하는데, 이 당시에는 맨체스터 시티 FC 소속으로 출전했던 경기.[17] 결국 이 경기는 21-22 시즌에서 리그 기준으로 맨시티의 유일한 2점차 패배 경기가 되었다.[18] 결국 아스날에게 이 패배는 큰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챔스 진출에 매우 유리했던 아스날은 이 패배를 기점으로 3연패를 내리 당했으며 결국 최종적으로는 2점차로 토트넘에게 밀려 챔스 진출에 실패했다.[19] 2008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는 명단 제외.[20] 위닝에서 베컴은 여러버젼이 있다.[21] 둘의 앙숙 역사는 터널 사건으로 정리되는데 로이 킨은 자신의 두 번째 자서전에서 비에라와 대치할때 속으로는 무척 겁을 먹었다고 고백했다. 만약 비에라가 제대로 폭발한다면 자신은 비에라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라고 했다.[22] 앙숙과는 별개로 서로의 실력은 인정하는 편으로 비에라가 아이스버킷 챌린지때 로이킨을 지명했다. 그리고 은퇴하고 나서는 같이 인터뷰도 할 정도로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꽤나 친밀한 관계로 길에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23] 대표적으로 03-04 시즌 반니의 퇴장 유도에 당한것. 이 경기는 결국 후반 추가시간에 반니가 PK를 실축하며 아스날의 리그 무패 우승으로 이어졌지만 다음 시즌 루니의 헐리웃으로 인해 반니가 PK 결승골을 넣으며 결국 아스날의 49경기 리그 무패행진이 마감되었다.[24] 경기 도중 비에라가 미하일로비치에게 먼저 "집시 쉿"(Gypsy Shit, 쓰레기 집시라는 뜻이다.)이라고 그의 면전에서 대놓고 말했다가 이걸 들은 미하일로비치는 유고 내전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분노하여 비에라한테 "네로 데 메르다"(Nero de merda, 망할 깜둥이란 뜻이다.)라고 욕을 했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25] 국내에 해축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2005년으로 마켈렐레는 유로 2004 이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상황이라 당시 소속팀인 첼시에서의 활약만 볼수 있었다. 2005년에 다시 국가대표 복귀했다.[26] 파브레가스, 레예스, 로렌을 위주로 한 선수들.[27] 종목은 다르지만 NBA의 역대급 실패한 1픽인 그렉 오든도 선천적으로 다리 길이가 달라서 부상에 시달리다 은퇴했다. 이쪽은 덩치가 비에라보다도 크다보니 데뷔 직후부터 부상이 찾아온 케이스다.[28] 뉴욕 시티 감독 임명 자체는 2015년 11월에 발표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활동을 시작한건 2016년 1월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