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츠의 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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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의 선제후비
팔츠의 조피
Sophie von der Pfa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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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630년 10월 14일
네덜란드 공화국 헤이그
사망
1714년 6월 8일 (83세)
하노버 선제후국 헤렌하우젠
배우자
하노버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658년 결혼 / 1698년 사망)
자녀
조지 1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막시밀리안 빌헬름, 조피 샤를로테, 카를 필립, 크리스티안 하인리히,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아버지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
어머니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형제
하인리히 프리드리히, 카를 1세 루트비히, 엘리자베트, 루프레히트, 모리츠, 루이제 홀란디네, 루트비히, 에두아르트, 헨리에테 마리, 필리프 프리드리히, 샤를로테, 구스타프 아돌프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결혼
2.3. 영국의 왕위 계승자
2.4. 사망
3. 가족관계
3.1. 조상
3.2. 자녀



1. 개요[편집]


하노버 선제후국의 선제후비.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의 외손녀이자 영국 국왕 조지 1세의 어머니이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엘리자베스 스튜어트의 5녀로 네덜란드 공화국 헤이그에서 태어났다.[1] 프리드리히 5세와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는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과 왕비로 아주 짧게 재위해서 "보헤미아의 겨울 왕과 왕비"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아버지 프리드리히 5세는 조피가 2살일 때 사망하여, 어머니 엘리자베스 혼자 헤이그에서 아이들을 키웠다.

당시 헤이그에 망명해 있던 외사촌 찰스 2세와 혼담이 오갔고, 조피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는 딸이 잉글랜드의 왕비가 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피는 그가 어머니의 후견인인 윌리엄 크레이븐 경으로부터 돈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생각해 혼담을 내쳤다.


2.2. 결혼[편집]


1648년 30년 전쟁이 끝나고 조피는 오빠인 팔츠 선제후 카를 1세 루트비히와 올케 언니 헤센카셀의 샤를로테와 함께 하이델베르크에서 살았다. 하지만 카를 1세 루트비히와 샤를로테의 사이는 파국이었고, 조피와 샤를로테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샤를로테는 얼른 조피를 시집보내고 싶어했다. 조피 또한 마찬가지로 얼른 혼처를 구해 오빠의 궁정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게오르크 빌헬름이 조피에게 청혼을 했다. 게오르크 빌헬름은 자유로운 성격 때문에 결혼을 원치 않았지만, 후계자를 얻기 위해 결혼을 결심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남동생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게 영지에 대한 상속권을 주고 본인은 독신으로 살겠다는 조건으로 조피와 대신 결혼할 것을 권했다.[2] 결국 1658년 9월 30일, 조피는 게오르크 빌헬름의 남동생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하이델베르크에서 결혼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1692년 하노버의 선제후가 되어 조피 또한 선제후비가 되었다.

조피는 오빠 카를 1세 루트비히가 헤센카셀의 샤를로테와 이혼하고 루이제 폰 데겐펠트라는 여인과 귀천상혼하는 과정에서 조카 엘리자베트 샤를로테(리젤로테)를 맡아 키웠다. 엘리자베트 샤를로테는 평생 고모인 조피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조피와 함께 살았던 시간이 살면서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평소 철학에 관심이 많고 지적이었던 조피는 당시 하노버 궁정의 도서관장으로 일했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친분은 조피가 1714년에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의 사이에서 6남 1녀의 아이들을 낳았는데 그 중 2남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4남 카를 필립, 5남 크리스티안 하인리히는 모두 전투에 참전했다가 죽었다. 3남 막시밀리안 빌헬름은 아버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게 반란을 일으키려고 음모를 꾸몄다가 하노버에서 추방당했다. 딸 조피 샤를로테프로이센 왕국프리드리히 1세와 결혼해 왕비가 되었다. 남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정부인 클라라 엘리자베트 폰 플라텐 사이에서 사생아를 둘이나 낳았지만, 조피는 남편에 외도에 대해 당대 어느 여성처럼 그저 묵인하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장남 게오르크 루트비히와 며느리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의 결혼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조피 도로테아의 어머니이자 조피의 동서이기도 한 엘레오노르가 왕족이나 공족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3] 하지만 조피 도로테아가 상속받을 재산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두 사람을 결혼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 부부가 결혼한 후에도 며느리가 귀천상혼 가문의 딸이라 에티켓이 없다고 무시하는 등, 고부 관계가 좋지는 않았다.

2.3. 영국의 왕위 계승자[편집]


1700년 9월 네덜란드 공화국을 방문한 조피는 5촌 조카 윌리엄 3세를 만났다. 윌리엄 3세는 재혼할 생각이 없었고, 왕위 계승자인 앤 공주는 아들 윌리엄 왕자을 잃은 후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왕위는 개신교 교도였던 조피와 그의 아들인 게오르크 루트비히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았다.

1701년 가톨릭 교도의 왕위 계승 금지를 법안으로 통과시킴으로써 앤 공주가 후계자를 낳지 못할 경우 조피와 그녀의 후손들이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4] 조피는 영국으로 가고 싶어 했으나 앤 여왕은 차기 왕위 계승자인 조피를 경계했기 때문에 영국에 못 오도록 했다.

2.4. 사망[편집]


앤 여왕보다 35살이나 많았지만 건강했던 조피는 1714년 6월 앤 여왕이 보낸 편지를 받은 후 충격을 받아 건강이 악화되었다. 3일 후 조피는 정원을 산책하다 폭우를 피하던 중 사망했다. 앤 여왕은 두달 후인 1714년 8월에 사망함으로써, 조피의 아들인 게오르크 루트비히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다.[5]


3. 가족관계[편집]



3.1. 조상[편집]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팔츠의 조피
(Sophie of the Palatine)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
(Frederick V, Elector Palatine)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4세
(Frederick IV, Elector Palatine)
팔츠 선제후 루트비히 6세
(Louis VI, Elector Palatine)
헤센의 엘리자베트
(Elisabeth of Hesse)
나사우의 루이제 율리아나
(Louise Juliana of Nassau)
오라녜 공 빌럼 1세
(William I, Prince of Orange)
부르봉의 샤를로트
(Charlotte of Bourbon)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Elizabeth Stuart)
제임스 6세 & 1세
(James VI & I)
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
(Henry Stuart, Lord Darnley)
메리 여왕
(Mary)
덴마크의 아나
(Anne of Denmark)
프레데리크 2세
(Frederick II)
메클렌부르크귀스트로의 조피[6]
(Sophie of Mecklenburg-Güstrow)

3.2. 자녀[편집]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남
조지 1세
(George I)
1660년 5월 28일
1727년 6월 11일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슬하 1남 1녀[7]
2남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공자
(Prince Frederick Augustus)
1661년 10월 3일
1691년 6월 10일

3남
막시밀리안 빌헬름 공자
(Prince Maximilian William)
1666년 12월 13일
1726년 7월 16일

1녀
프로이센 왕국의 왕비 조피 샤를로테
(Sophia Charlotte, Queen in Prussia)
1668년 10월 30일
1705년 2월 1일
프리드리히 1세
슬하 2남[8]
4남
카를 필리프 공자
(Prince Charles Philip)
1669년 10월 13일
1690년 1월 1일

5남
크리스티안 하인리히 공자
(Prince Christian Henry)
1671년 9월 29일
1703년 7월 31일

6남
요크와 올버니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Prince Ernest Augustus, Duke of York and Albany)
1674년 9월 17일
1728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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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이유는 프리드리히 5세와 엘리자베스 스튜어트가 30년 전쟁으로 네덜란드에 망명해 있었기 때문이다.[2] 그런데 게오르크 빌헬름은 독신으로 살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나중에 '엘레오노르 드미에르 돌브뢰즈'라는 하급 귀족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귀천상혼이어서 상속권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갖게 되었다. 게오르크 빌헬름과 엘레오노르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훗날 조지 1세의 아내가 되는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다.[3] 통치 가문의 공녀였던 조피는 하급귀족인 엘레오노르를 무시했고, 둘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4] 조피와 그녀의 후손들보다 계승 순위가 높은 왕족들은 전부 가톨릭 교도였다. 당시 윌리엄 3세와 앤 공주 등은 자신들도 개신교도인데다 가톨릭 교도가 즉위하게 되면 피비린내나는 종교 탄압의 역사가 영국에서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5] 만약 조피가 앤 여왕보다 오래 살았다면, 영국 역사상 가장 고령으로 즉위한 국왕이 되었을 것이다.[6] 프레데리크 1세의 외손녀이다.[7] 조지 2세,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8]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