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버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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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한 외야수.
2. 선수 경력[편집]
2.1. 필라델피아 필리스[편집]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그 유명한 J.D. 드류 사태에서 엮이면서 98년 전체 1순위로 지명되었다.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2위까지 올랐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2000년 데뷔했다. 본래 드루 못지 않은 강력한 선구안과 장타력을 자랑하는 OPS 히터 1루수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였다.
드래프트에서 $3.15m의 계약금으로 5년짜리 계약에 서명한 뒤 좌익수로 컨버젼하여 2000년부터 뛰었으며, 필리스에서 뛴 9년 동안 .257 .367 .485 비율스탯과 251홈런을 기록했다. 스캇 롤렌이 떠나고 남은 예산으로 필리스의 에드 웨이드 단장이 버렐에게 6년 $50m 계약을 안겨준 첫해인 2003년 삽을 들며 필리 극성팬들에게 쌍욕을 듣기도 했다만, 어쨌든 매년 출중한 선구안과 알아주는 장타력으로 필리스의 중심타자로 자리매김했던 선수였다. 특히 버렐의 필리스 소속 8년 연속 20홈런은 마이크 슈미트 외엔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좌익수 수비가 너무 안 좋았다. 2002~11 10시즌 동안 UZR이 -43.9를 기록할 정도.[1] 게다가 필리스의 1루에는 짐 토미와 라이언 하워드가 있었기 때문에 1루로의 컨버젼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부상까지 잦아지며 수비가 불안정해지자, 2008년 계약 마지막해 필리스는 우승반지를 챙겨주자마자 재계약 포기를 통보했고, 2009년 탬파베이 레이스와 지명타자로 2년 $16m 계약을 맺었다. 필리스의 우승반지 수여식에 나온 버렐은 그날 은퇴식을 한 팻 길릭 단장과 함께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받았다.
2.2. 탬파베이 레이스[편집]
하지만 2009년 지명타자로서 버렐은 .221 .315 .367를 기록하며 제대로 망했고, 수비 못하는 선수를 무조건 DH로 돌리는게 능사가 아님을 증명하는 사례가 되었다. 결국 2010년 중 버렐은 행크 블레이락의 콜업에 맞춰 방출되었다.
2.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편집]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그런 버렐을 주워갔는데 쏠쏠한 활약을 했다. 비록 96경기 341타석밖에 안뛰었지만 .266 .364 .509 18홈런을 기록하며 무시무시한 재기를 보여줬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우승에 큰 기여를 하며 통산 두번째 우승반지를 차지했다. 다만 체이스 어틀리가 NLCS 자이언츠전에서 실책을 하자 자이언츠 팬들에게 "어틀리 저지 사랔ㅋㅋㅋ"라는 최악의 개드립을 날렸고 필리스 팬들에게 주적으로 불렸다. 정규시즌 후반기 로이 오스왈트에게 홈런을 때려낼 때만 해도 박수갈채를 받았건만...
하긴 극성 필리스 팬들이 버렐에게 야유를 퍼부은 거야 자기 팀이 중요한 경기를 치르는 마당이었기 때문인 면도 없지 않다.
2.4. 은퇴[편집]
이후 2011년 버렐은 오른발 부상에 시달리며 장타력까지 하락했고 결국 12년의 커리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필라델피아 구단에서는 1일짜리 계약을 맺고 버렐의 은퇴식을 열어주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3.1.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편집]
2024 시즌 샌프란시스코에 타격코치로 합류해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4. 여담[편집]
- 버렐은 그 부실한 좌익수 수비를 가지고 있음에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야구의 이모저모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직접 "좌익수 수비"에 대해 코칭을 해준 적이 있다. 실제로 미국팬들에게 조롱을 받았고 이역만리 한국팬들도 보면서 어이없어 했다.
- 2017년 입후보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단 한 표도 얻지 못하고 그대로 광탈했다.
- OOTP 22의 부컨텐츠인 퍼펙트 팀에서, 필리스의 프랜차이즈 히어로 1로서 SE카드가 출시되었다. 당장 필리스에 그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프랜차이즈로서 의미가 더 깊은 선수들이 많은데 하필 팻 버렐이 나온 것[2] 에 대해 퍼펙트 팀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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