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거슨 젠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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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젠킨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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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67 MLB 올스타전 로고.gif파일:1971 MLB 올스타전 로고.gif파일:1972 MLB 올스타전 로고.gif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67
1971
1972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Jenkins_Fergie_Plaque_NBL.png
퍼거슨 젠킨스
헌액 연도
1991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75.4% (3회)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퍼거슨 젠킨스
(시카고 컵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6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탈삼진왕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퍼거슨 젠킨스
(시카고 컵스)


톰 시버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46번
댈러스 그린
(1960~1964)

퍼기 젠킨스
(1965)


래리 잭슨
(1966~1968)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30번
루 버데트
(1965)

퍼기 젠킨스
(1966)


밥 불
(1966~1967)
시카고 컵스 등번호 31번
밥 불
(1962~1966)

퍼기 젠킨스
(1966~1973)


톰 데토레
(1975~1976)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19번
소니 시버트
(1973)

퍼기 젠킨스
(1974)


레오 카데나스
(1974~1975)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31번
재키 브라운
(1973)

퍼기 젠킨스
(1974~1975)


마이크 마셜
(1977)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31번
쳇 니콜스
(1960~1963)

퍼기 젠킨스
(1976~1977)


앤디 해슬러
(1978~1979)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31번
마이크 마셜
(1977)

퍼기 젠킨스
(1978~1981)


데이브 스튜어트
(1983~1984)
시카고 컵스 등번호 31번
데이비 존슨
(1978)

퍼기 젠킨스
(1982~1983)


레이 폰테넛
(1985~1986)




시카고 컵스 No. 31
퍼거슨 아서 "퍼기" 젠킨스
Ferguson Arthur "Fergie" Jenkins

출생
1942년 12월 13일 (81세)
온타리오 주 채탬
국적
[[캐나다|

캐나다
display: none; display: 캐나다"
행정구
]]

학력
보카토날 고등학교
신체
196cm / 92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62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PHI)
소속팀
필라델피아 필리스 (1965~1966)
시카고 컵스 (1966~1973)
텍사스 레인저스 (1974~1975)

보스턴 레드삭스 (1976~1977)
텍사스 레인저스 (1978~1981)
시카고 컵스 (1982~1983)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선수 경력
3. 스타일
5.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6. 연도별 성적
7. 여담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활약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우완 투수이자, 순수 메이저 리그의 기록만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2명의 흑인 투수 중 한 명이다.[1][2]

별명은 Fergie. 흔히들 그래서 그를 퍼기 젠킨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통산 3,000탈삼진을 기록한 선수이자, 빼어난 제구력과 완투 능력으로 정평이 난 선수다. 통산 성적은 19시즌 동안 284승 226패, 4500.2이닝, 3.34 ERA, 3192삼진, 997볼넷, K/9 6.38, BB/9 1.99, K/BB 3.2, HR/9 0.96, 267완투, 49완봉을 기록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편집]


원래 묘기 농구팀인 할렘 글로버터스에서도 잠시 뛰었지만, 결국 야구를 선택해서 1962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했다. 마이너에서 숙성한 후, 1965년 시즌 막바지에 데뷔했는데, 1966년 바로 아돌포 필립스, 존 헤른스타인과 함께 래리 잭슨과 밥 불을 상대로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만패팀이 1966시즌 제법 성적이 나와서 그랬는지 베테랑 투수를 영입하고자 그를 트레이드 카드로 써 버린 것. 결국 이는 큰 실수가 되고 말았다.


2.2. 시카고 컵스 시절[편집]


1966년 시카고 컵스에서는 구원 투수와 선발을 오가면서 활약했고, 이듬 해인 1967년부터 본격적인 선발 투수의 길에 접어든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성적을 찍기 시작했다. 1967년부터 1972년까지 6년 연속 20승을 달성한 것. 이 기록은 워렌 스판만이 가지고 있던 기록이었다. 이 기간동안 매년 280이닝 이상 던졌고, 4차례나 300이닝을 돌파했다. 무엇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기간동안 그가 기록한 완투가 140번이라는 것. 완투 머신으로 미친듯이 던지면서 그래도 이 기간동안은 제법 괜찮았던 컵스의 성적을 이끌었다.

그런데 팔 빠져라 던졌는데도 상복이 별로 없었다. 1967년 사이 영 상 투표 2위, 1970년 사이 영 상 투표 3위, 1972년 사이 영 상 투표 3위를 기록한 것. 사실 이 기간 중에서 스티브 칼튼이라는 괴수가 27승을 찍어버렸던 1972년은 그렇다 치더라도 1967년과 1970년은 경쟁자들에 비해 그리 밀리지 않았다. 밀린 것은 딱 하나, 이런 유형은 투수가 늘 그렇듯이 승률이었다. 그랬다. 같은 기간 팔빠져라 140완투를 했는데도, 매년 두 자리수 패배를 기록하면서 승률을 깎아먹었다. 평균자책도 다 2점대 아니면, 3점대 초반인데(...)

하지만 박복하지는 않아서 1971년 사이 영 상을 차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해는 경쟁자인 톰 시버가 더 잘 던진 해였다. 승률도 좋았고, 구위의 압도적인 면에서도 더 나았다. 당장 조정평균자책점이 젠킨스가 142로 훌륭했지만, 시버는 194를 찍어버렸다(...) 그래도 사이 영 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워낙 고생한 것에 대한 동정표 + 다승 및 이닝, 완투는 시버보다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팔 빠져라 던지다가 결국 1973년 부진에 빠지면서 평범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다. 그러자 컵스는 그를 바로 빌 매들록과 빅 해리스를 상대로 트레이드시키면서 버렸다(...)


2.3.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편집]


하지만 텍사스에서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1974년 328.1이닝을 던지며 25승을 거두고, 무려 29완투에 성공한 것.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텍사스 레인저스의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이다. 다만 사이 영 상 투표에서는 치열한 접전 끝에 당시 강팀이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캣피시 헌터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다. 그 이듬해 또 무리한 탓인지 평균자책이 4점대 근처로 올라가자 텍사스 레인저스는 후안 베니케즈, 스티브 바, 크레이그 스콕을 받아오며 보스턴 레드삭스로 그를 트레이드시킨다.

하지만 레드삭스에서 평범한 성적을 거두고 이닝 소화력도 떨어지자 보스턴은 2년간 그를 쓴 후, 존 폴로니와 현금을 상대로 다시 레인저스로 트레이드시켜버렸다. 여기에는 불펜에서 강등된 후, 졸다가 걸리면서 찍힌 탓도 컸다. 이대로 사라지나 싶었는데 불굴의 의지로 다시 재기, 1978년 18승 8패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 텍사스에서 4시즌을 더 뛰게 되었다. 레인저스 말년은 예년처럼 위력적이고 압도적인 선수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켜주는 선수의 위상.

1981년 5승 8패 4.50으로 부진하자, 자유계약 선수가 된 그를 텍사스는 잡지 않았다. 여기에 그가 고향인 캐나다에서 마약 소지 혐의가 적발되면서 더더욱 평가가 떨어졌다.


2.4. 말년[편집]


자유계약 자격을 얻어 그가 돌아간 곳은 바로 친정팀이나 다름없는 시카고 컵스. 여기서 또 다시 좀비처럼 부활에 성공한다. 평균자책 3.15를 기록하면서 살아난 것. 문제는 이 놈의 컵스가 늘 그랬듯이 득점 지원을 못하면서 14승 15패를 기록했다는 거지만. 대신 통산 3,000번째 삼진을 잡아내면서 메이저 리그에 한 획을 긋는데는 성공했다.

1983년 부진한 성적을 내자 결국 40세의 나이를 끝으로 은퇴한다. 결국 선수 시절 내내 PO에는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의 은퇴 바로 이듬 해인 1984년 시카고 컵스는 39년만에 PO에 진출해 더욱 아쉬움을 남겼다.


3. 스타일[편집]


빼어난 제구력과 공격적인 투구로 타자를 상대한, 투지가 넘치는 투수였다. 그 증거로 젠킨스는 4500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볼넷을 997개 내줬는데 BB/9를 계산해보면 1.99개로 역대 통산 BB/9이 5번째로 적은 투수다. 또한 메이저 리그 역사상 3,000개 이상의 삼진을 잡고 1000개 미만의 볼넷을 내준 4명의 투수 중 한 명이다.[3] 적은 볼넷과 공격적인 투구스타일 때문에 엄청난 양의 이닝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19시즌 동안 4500이닝을 소화했으니 연평균 236이닝(!)을 던진 셈이다. 완투능력도 뛰어나서 통산 완투경기가 267번[4]이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약팀에서 뛰다보니 PO에는 단 한 번도 등판해 본 적이 없다. 같은 이유로 완투를 열심히 하고도 패전이 많아서 승률은 그리 좋지 못하다. 물론 여기에는 자기 잘못도 있는데,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 때문에 통산 484피홈런을 기록해서 역대 3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5]

그가 주로 뛴 홈구장들이 다 투수들이 유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좀 더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그가 가장 맹활약했던 1967년부터 1972년까지 리글리 필드는 정말 타자들의 구장이었고, 팀 전력도 초극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선수 시절 단 한 번도 우승권의 강팀에서 뛴 적이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은근히 손해본 승수가 많았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4. 명예의 전당 입성[편집]


명예의 전당에는 3수 끝에 1991년 75.4%라는 턱걸이 득표율로 들어가게 되었다. 3수만에 빨리 입성한 것은 다행이지만 득표율은 꽤 낮은 편인데, 그 이유 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는 마약 소지 혐의로 징계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 지금이야 승수만으로 선수를 평가하지 않지만, 승률을 중시하던 당시 풍조에서는 좀 평범하기도 했었고. 한 마디로 말해 저평가 + 본인의 잘못이 겹치면서 다소 낮은 평가를 받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입성으로 인해 그는 캐나다 출신 야구 선수 중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선수가 되었다. 여러가지로 개고생하다 겨우 헌액된 버트 블라일레븐이 떠오르는 대목. 하지만 블라일레븐은 법규를 날린 것과 젠킨스보다 훨씬 처절한 승률 외에는 젠킨스보다 크게 떨어진 면도 없는데 14수나 해야 했다(...) 300승도 못했고, 싸이영도 없는 투수의 원죄

그는 시카고 컵스의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는데도 이 당시 그렉 매덕스가 31번을 달아버리면서 결국 그의 등번호는 매덕스와 함께 2009년에 이르러서야 결번될 수 있었다.


5.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퍼거슨 젠킨스
36
206
132
53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24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퍼거슨 젠킨스
84.9
51.8
68.3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50.3
62.1


6. 연도별 성적[편집]


파일:MLB 로고.svg 퍼거슨 젠킨스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65
PHI
7
2
1
1
0
12⅓
2.19
7
2
2
0
10
0.730
162
0.0
0.5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66
PHI/CHC
61
6
8
5
2
184⅓
3.32
150
24
52
3
150
1.096
111
1.8
3.3
1967
CHC
38
20
13
0
0
289⅓
2.80
230
30
83
4
236
1.082
127
4.5
5.0
1968
40
20
15
0
0
308
2.63
255
26
65
3
260
1.039
121
6.3
6.2
1969
43
21
15
1
0
311⅓
3.21
284
27
71
8
273
1.140
126
8.2
7.2
1970
40
22
16
0
0
313
3.39
265
30
60
7
274
1.038
132
9.5
7.3
1971
39
24
13
0
0
325
2.77
304
29
37
5
263
1.049
141
9.6
10.1
1972
36
20
12
0
0
289⅓
3.20
253
32
62
7
184
1.089
118
4.8
5.8
1973
38
14
16
0
0
271
3.89
267
35
57
4
170
1.196
101
4.2
3.4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74
TEX
41
25
12
0
0
328⅓
2.82
286
27
45
8
225
1.008
126
7.4
7.7
1975
37
17
18
0
0
270
3.93
261
37
56
9
157
1.174
96
2.7
3.1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76
BOS
30
12
11
0
0
209
3.27
201
20
43
5
142
1.167
121
3.7
4.0
1977
28
10
10
0
0
193
3.68
190
30
36
0
105
1.171
123
2.3
3.0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78
TEX
34
18
8
0
0
249
3.04
228
21
41
3
157
1.080
123
5.3
5.5
1979
37
16
14
0
0
259
4.07
252
40
81
3
164
1.286
102
2.0
2.7
1980
29
12
12
0
0
198
3.77
190
22
52
4
129
1.222
103
2.7
3.6
1981
19
5
8
0
0
106
4.50
122
14
40
0
63
1.528
77
0.3
-0.7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2
CHC
34
14
15
0
0
217⅓
3.15
221
19
68
5
134
1.330
118
2.9
3.7
1983
33
6
9
0
0
167⅓
4.30
176
19
46
6
96
1.327
88
1.9
1.0
MLB 통산
(19시즌)

664
284
226
7
2
4500⅔
3.34
4142
484
997
84
3192
1.142
115
80.1
82.2

7. 여담[편집]


1940년대생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SNS 활동이 굉장히 활발하다.

8. 둘러보기[편집]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1년 7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윌리 스타젤
(피츠버그 파이리츠)

퍼거슨 젠킨스
(시카고 컵스)


조 토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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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한 명은 사이 영 상 2회 수상자이자, 메이저 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인 밥 깁슨이다.[2] 다만 5~6년 뒤에는 3명으로 변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전 뉴욕 양키스의 투수였던 CC 사바시아가 명예의 전당 보증 수표라 할 수 있는 250승-3000탈삼진을 기록하고 은퇴했기 때문. 따라서 그가 중범죄나 약물 스캔들이 밝혀지지 않는 이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흑인 선수는 3명이라 봐도 무방하다.[3] 커트 실링, 페드로 마르티네스, 그렉 매덕스가 나머지 세명이다.[4] 현재 메이저 리그의 완투머신이라는 제임스 쉴즈의 통산 완투경기가 22번이다(…).[5] 재밌게도 역대 피홈런 2위는 그와 가장 유사한 선수 생활을 했던 로빈 로버츠다. 1위는 제이미 모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