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카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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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카델릭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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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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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팔리아멘트-펑카델릭
PARLIAMENT-FUNKADELIC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제롬 브레일리, 조지 클린턴, 부치 콜린스, 레이먼드 데이비스, 티키 풀우드,
글렌 고인스, 마이클 햄프턴, 퍼지 해스킨스, 에디 헤이즐, 월터 모리슨,
코델 모슨, 윌리엄 "빌리 배스" 넬슨, 개리 샤이더, 캘빈 사이먼, 그레이디 토머스
, 버니 워렐

입성 연도
1997년














펑카델릭
Funkadelic


파일:Funkadelic.png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결성
1968년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뉴저지 플레인필드
활동 기간
1968년 ~ 1982년, 2014년
데뷔
1970년 2월 24일
데뷔 앨범
Funkadelic
해체
1982년
멤버
조지 클린턴
부치 콜린스
제롬 브레일리
레이먼드 데이비스
티키 풀우드
글렌 고인스
마이클 햄프턴
퍼지 해스킨스
에디 헤이즐
월터 모리슨
코델 모슨
윌리엄 "빌리 배스" 넬슨
개리 샤이더
캘빈 사이먼
그레이디 토머스
버니 워렐 등[1]

장르
펑크(Funk), 펑크(funk) 록, 사이키델릭 펑크(Funk), 프로그레시브 소울, 애시드 록, 사이키델릭 록
레이블
웨스트바운드, 워너 브라더스

1. 개요
2. 상세
3. 역사
3.1. 팔리아멘트
3.2. 펑카델릭
4. 평가와 영향력
5. 디스코그래피
5.1. 펑카델릭
5.1.1. 앨범
5.1.2. 싱글
5.1.2.2. 빌보드 핫 100 41 ~ 100위
5.2. 팔리아멘트
5.2.1. 앨범
5.2.2. 싱글
5.2.2.1. 빌보드 핫 100 1 ~ 40위
5.2.2.2. 빌보드 핫 100 41 ~ 100위
5.2.2.3. 그 외 싱글
6. 여담



1. 개요[편집]


미국펑크(funk) 록 밴드.


2. 상세[편집]


1970년대펑크(funk) 록을 개척한 밴드로, 펑크(funk)사이키델릭 록을 결합시켜 혁신적인 음악성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3. 역사[편집]



3.1. 팔리아멘트[편집]


펑카델릭이란 밴드를 이야기하려면 우선 팔리아멘트라는 밴드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팔리아멘트라는 밴드는 모타운에서 프로듀서와 작곡가로 활동했던 조지 클린턴이 만든 밴드였다.[2] 이때의 팔리아멘트는 펑크 대신 두왑 음악[3] 을 주로 하다가 이후 점점 펑크 음악으로 방향성이 변하게 된다. 초창기 팔리아멘트의 멤버는 조지 클린턴을 포함한 다섯 명의 보컬로 이루어졌었는데, 이후 라이브를 위해 다섯 명의 세션이 추가로 멤버로 합류하였다.

조지 클린턴은 이후 원래 계약하였던 레빌롯 레코드와 계약을 해지하고 웨스트바운드와 계약을 하게 되는데, 이때 레빌롯 레코드가 팔리아멘트라는 이름의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면서 조지 클린턴은 소송 끝에 밴드 이름의 소유권을 가지게 되었지만 팔리아멘트의 멤버들은 유지한채 아예 펑카델릭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새로 만들게 된다. 즉 팔리아멘트와 팡카델릭은 사실상 둘이서 하나인 같은 밴드인 것. 다만 하는 음악이 약간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4], 조지 클린턴과 밴드의 멤버들은 펑카델릭과 팔리아멘트의 레이블을 따로 계약하고 음반도 팔리아멘트와 펑카델릭의 명의로 따로 발매하였다. 다만 공연시에는 현실적으로 팔리아멘트와 펑카델릭의 라이브를 따로 할 수는 없었기에 팔리아멘트-펑카델릭,또는 P-Funk라는 괴이한 명의로 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어찌됐건 팔리아멘트와 펑카델릭은 하는 음악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동일한 밴드였기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 등에 헌액 될 때도 팔리아멘트와 펑카델릭은 꼭 팔리아멘트-펑카델릭이란 명의로 올라가게 되었다.


3.2. 펑카델릭[편집]


위에도 설명되었듯이 조지 클린턴이 웨스트바운드 레코드와 계약한 후 팔리아멘트의 멤버들을 유지한채 새로 만든 밴드의 이름은 펑카델릭이었는데, 이들이 지향하던 음악이 펑크와 사이키델릭 록의 중간선상에 있는 음악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적절한 이름.

1970년에 이들의 첫 번째 앨범 "Funkadelic"이 발매 되었으며, 빌보드 200에서 126위를 차지하였다. 아쉽게도 이 당시 계약상의 문제로 버니 워렐 등의 핵심 멤버 여러명이 크레딧에 이름이 표기되지 않았다. 이후 2집 "Free Your Mind... and Your Ass Will Follow"부터는 제대로 이름이 표시되기 시작한다. 1971년에는 펑카델릭을 상징하는 앨범 "Maggot Brain"이 발매되었는데, '창작력과 상상력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의 펑카델릭을 담아냈다'고 평가 받으며,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기타리스트 에디 헤이즐의 처연한 기타 연주가 빛나는 10분짜리 연주곡인 오프닝 곡 "Maggot Brain"은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100대 기타 명곡에서 60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Maggot Brain은 펑카델릭의 오리지널 멤버들이 참여한 마지막 앨범이었기도 한데, 이 앨범 이후 타울 로스, 빌리 넬슨, 티키 풀우드, 에디 헤이즐 등의 멤버가 각자의 이유로 밴드를 탈퇴하였기 때문.

Maggot Brain 이후 펑카델릭의 라인업은 크게 확대되는데, 제임스 브라운의 백 밴드인 JB's의 몇몇 멤버가 펑카델릭에 합류하였으며,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 중 한 명이자 P-Funk 사운드의 큰 축이었던 붓시 콜린스도 이때 합류하였다. 1972년, 펑카델릭은 이 새로운 라인업으로 더블 앨범 "America Eats Its Young"을 발매했다. 1975년 펑카델릭은 "Let's Take It to the Stage"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 앨범은 그때까지 발매된 펑카델릭의 앨범 중 가장 성공적인 앨범이었으며, 빌보드 200에서 102위를 하였다. 이후 10대 기타 신동 마이클 햄튼이 기타리스트로 합류하게 되고, 펑카델릭은 웨스트바운드 레코드를 떠나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와 새 계약을 맺었으며, 1976년에 워너 브라더스에서의 첫 번째 앨범인 "Hardcore Jollies"를 발매하였다. 한편, 웨스트바운드 레코드는 펑카델릭이 떠난 직후 "Tales of Kidd Funkadelic"이라는 제목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펑카델릭은 1978년 오하이오 플레이어스키보디스트였던 월터 '주니' 모리슨을 영입하고는 상업적, 비평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인 "One Nation Under a Groove"를 발매하게 된다.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 곡 "One Nation Under a Groove"은 빌보드 R&B 차트에서 1위, 빌보드 핫 100에서 28위, 영국 차트에서 9위를 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9년 발매된 "Uncle Jam Wants You"는 전 앨범에서 시도하였던 댄스 음악 기반의 사운드를 더욱 확장한 앨범이었으며, 수록곡 "(Not Just) Knee Deep"은 역시 빌보드 R&B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펑카델릭은 앞으로도 성공적인 활동을 펼쳐나갈 것 같았으나 안타깝게도 80년대 초반 운영, 급여 문제로[5] 일부 멤버들이 탈퇴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팔리아멘트의 레이블이 금전적인 문제로 파산하자, 조지 클린턴은 결국 1982년 팔리아멘트와 펑카델릭을 해체하였다. 조지 클린턴은 이후로도 팔리아멘트-펑카델릭 멤버들과 함께하며 P-Funk 올스타즈(P-Funk All-Stars)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솔로 명의와 P-Funk 올스타즈의 명의로 앨범을 계속 발매하였다.

이후 2005년에 이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으며, 웨스트바운드 레코드는 2008년 "Toys"라는 이름의 아웃테이크와 데모 곡들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2013년에는 펑카델릭 멤버들이 재결합을 하여 슬라이 스톤과 콜라보를 하여 25년 만에 "The Naz"라는 싱글을 발매하였으며 2014년 33년만에 3CD 앨범인 "First Ya Gotta Shake the Gate"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4. 평가와 영향력[편집]


지미 헨드릭스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등의 영향을 받아 펑크 음악과 사이키델릭 록을 결합하여 흑인 음악의 새 가능성을 보여준, 70년대 최고의 펑크(funk) 록 밴드로 꼽히며,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의 펑크 밴드가 크게 영향을 받은 밴드이다.[6] 이외 토킹 헤즈갱 오브 포 같은 포스트 펑크 밴드의[7] 날카로우면서도 그루비한 베이스/리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팔리아멘트-펑카델릭과 조지 클린턴은 록 음악을 넘어 힙합에 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유명한데, 2Pac, 아웃캐스트, 우-탱 클랜, 데 라 소울, 퍼블릭 에너미, 라킴 등의 여러 거물 힙합 뮤지션들이 이들의 곡을 많이 샘플링하였다. 이로 인해 조지 클린턴은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샘플링이 많이 된 뮤지션 중 한 명이 되는 영예을 얻기도 하였다.

특히 Dr. Dre, Snoop Dogg, Above The Law, Warren G 등의 뮤지션이 팔리아멘트-펑카델릭의 P-Funk에 영향을 받아 G-funk를 창조해 내기도 하였다. 7~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미국 흑인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는 그룹이다.

선 라와 함께 아프로퓨처리즘 콘셉트를 선보인 밴드라서 이 쪽으로도 언급된다.

5. 디스코그래피[편집]




5.1. 펑카델릭[편집]




5.1.1. 앨범[편집]


  • Funkadelic (1970)
  • Free Your Mind... and Your Ass Will Follow (1970)
  • Maggot Brain (1971)
  • America Eats Its Young (1972)
  • Cosmic Slop (1973)
  • Standing on the Verge of Getting It On (1974)
  • Let's Take It to the Stage (1975)
  • Tales of Kidd Funkadelic (1976)
  • Hardcore Jollies (1976)
  • One Nation Under a Groove (1978)
  • Uncle Jam Wants You (1979)
  • Connections & Disconnections (1980)
  • The Electric Spanking of War Babies (1981)
  • By Way of the Drum (2007)
  • Toys (2008)
  • First Ya Gotta Shake the Gate (2014)


5.1.2. 싱글[편집]




5.1.2.1. 빌보드 핫 100 1 ~ 40위[편집]



5.1.2.2. 빌보드 핫 100 41 ~ 100위[편집]

  • I'll Bet You (1969) - 63위
  • I Got a Thing, You Got a Thing, Everybody's Got a Thing (1970) - 80위
  • I Wanna Know If It's Good to You? (1970) - 81위
  • You and Your Folks, Me and My Folks (1971) - 91위
  • Can You Get to That (1971) - 93위
  • Better by the Pound (1975) - 99위
  • (Not Just) Knee Deep (1979) - 77위


5.2. 팔리아멘트[편집]




5.2.1. 앨범[편집]


  • Osmium (1970)
  • Up for the Down Stroke (1974)
  • Chocolate City (1975)
  • Mothership Connection (1975)
  • The Clones of Dr. Funkenstein (1976)
  • Funkentelechy vs. the Placebo Syndrome (1977)
  • Motor Booty Affair (1978)
  • Gloryhallastoopid (1979)
  • Trombipulation (1980)
  • Medicaid Fraud Dogg (2018)


5.2.2. 싱글[편집]




5.2.2.1. 빌보드 핫 100 1 ~ 40위[편집]



5.2.2.2. 빌보드 핫 100 41 ~ 100위[편집]



5.2.2.3. 그 외 싱글[편집]

  • Breakdown (1971) - 빌보드 핫 100 107위
  • Dr. Funkenstein (1977) - 빌보드 핫 100 102위
  • Bop Gun (Endangered Species) (1977) - 빌보드 핫 100 102위

6. 여담[편집]


* 멤버 중 백인 멤버도 한 명 있었다. 론 바이코우스키(Ron Bykowski)라는 기타리스트로, 2014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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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펑카델릭의 멤버들은 이 외에도 수십명이 더 있으나 다 적기에는 여백이 부족하므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멤버들만 작성함.[2] 밴드의 이름은 동명의 담배에서 따왔다고 한다.[3] R&B의 한 종류로, 보컬 하모니가 주축을 이루는 흑인 음악.[4] 펑카델릭이 사이키델릭 록적인 펑크를 지향햤다면, 팔리아멘트는 사이키델릭하면서도 좀 더 소울풀한 펑크를 추구했었다.[5] 밴드 성원이 굉장히 많은 밴드였다. 핵심 멤버만 뽑아도 17명이나 될 정도. 이 문제 때문에 충돌이 잦았던 걸로 추정된다.[6] 조지 클린턴은 RHCP의 2집 앨범인 "Freaky Styley"의 프로듀싱을 해주기도 하였다.[7] 레드 핫 칠리 페퍼스도 이들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