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로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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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다. 그 누구도 나를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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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dro López.

풀네임은 Pedro Alonso López.

1948. 10. 8 ~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콜롬비아 출신의 연쇄살인범이다. [1]


2. 생애[편집]


1948년 톨라마주의 베나디요라는 외딴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페드로 로페스는 가난에 찌든 매춘부의 열 세 자녀 중 하나였고, 매우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며 자랐다. 8세 때 그는 그의 여동생을 성추행하다 어머니에게 들켰고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길거리로 쫓겨난 그는 중년의 소아성애자가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따라갔지만 강간당했다.

수도인 보고타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그는 살기 위해 구걸, 좀도둑, 쓰레기 먹기 등도 마다하지 않았다. 운 좋게 어떤 착한 미국인 부부의 눈에 띄어 고아원에 들어가게 됐고 비교적 정상적으로 지내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 평범한 생활도 그가 고아원의 돈을 훔쳐 달아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2]

10대 중반에 로페스는 차량 절도까지 하게 됐고, 나중엔 결국 체포되어 18세 때부터 감방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7년 형을 선고받았고, 감옥에 갇히곤 이틀 되었을 때 고참 죄수 4명에게 윤간을 당한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직접 만든 면도칼로 자신을 윤간한 고참 죄수 4명을 죽였다. 윤간과 지속적인 괴롭힘 등의 이유로 그의 행동은 정당방위로 인정되었고 추가로 2년을 더 형을 사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1978년에 출소한 로페스는 곧바로 가학적인 살인마로서 떠돌며 생활한다. 페루 전국을 돌며 수십 명의 젊은 여성들을 강간하고 죽였다. 그러다 한 번은 원주민의 9살 난 여자아이를 강간하려다 걸려 죽도록 얻어맞고 고문당하다 산채로 생매장 될 뻔 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인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페루에서 추방되는 형식으로 살아남았다.

페루에서 추방되었지만 그의 살인은 멈추질 않았다.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까지 계속 여자를 죽였다. 1980년 에콰도르에서 12살 소녀를 강간하려다 붙잡힌 로페스는 다시 감방에 가게 되었다. 그러다 그곳에서 사귀게 된 감방동료에게 자신의 범행을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감방동료는 범죄자가 아닌 정부에서 일부러 죄수복을 입혀 심어놓은 사람이었다. 엄청난 범죄를 들은 감방 동료는 동요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무용담'을 뒷받침할 증거와 증언을 캐냈다.

로페스의 말에 따르면 로페스는 콜롬비아에서 출소한 뒤 고작 2년 동안 에콰도르에서만 최소 100명을 죽였다고 했으며, 콜롬비아에서도 최소한 그쯤은 죽였고, 페루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랑했다. 범행 타깃은 마을 시장을 돌면서 순진해 보이는 소녀들만 선택했고, 간단한 장신구로 유인했다고 한다. 그리곤 으슥한 곳에서 강간을 하며 목을 졸랐는데 그는 소녀의 눈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보며 최고의 쾌락을 느꼈다고 하였다. 여자 하나 죽이는 데는 5분에서 15분쯤 걸렸다고 했으며 죽었다고 확신이 들 때까지 최대한 오래 끌며 즐기려 했다고 하였다. 가끔은 죽었는 줄 알았는데 실은 살아있었던 경우도 있었기에 다시 확인차 목을 조른 적도 있다고 하였다.

처음엔 에콰도르 경찰은 황당무계하고 저질적인 농담으로만 받아들였으나 결국 로페스가 말한 외딴곳의 땅을 파고 8~12세가량의 소녀들의 유골 53구가 발견되는 등 어느 정도는 사실로 확인되자 그 끔찍한 주장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직접 심문 및 현장 검증을 한 결과도 사실. 로페스는 에콰도르에서 만의 살인인 살인 110건에 관해 기소되었고 1980년 16년 징역형 및 그 외에 징역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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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되는 로페스

그러나 에콰도르 법상 징역 상한은 20년이었으므로 [3] 1999년 초 석방. 콜롬비아로 추방시켰고 이후 그의 소식은 생존중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언제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가 않은 데다가 [4] 2002년에는 인터폴에서 직접 여죄를 파악하고 적색수배를 때린 점, 콜롬비아에서의 여죄도 아직 남아 있는 점을 보면 루이스 가라비토처럼 출소하자마자 잡혀 콜롬비아의 교도소에 비밀리에 수감. 다른 재소자와 분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루이스 가라비토와 같이 쌍벽을 나누는 남미 최악의 연쇄 살인마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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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미를 돌면서 살인행각을 벌였다. 붙잡히고 형을 집행받은 국가는 에콰도르다.[2] 로페스 자신은 고아원 교사의 괴롭힘을 못 견뎌 달아난 거라고 주장했다.[3] 관대하다고 보기 쉬우나 실상 높은 강력범죄율과 국민들의 엄벌 요구에 비해 교도소는 태부족이고 있는 교도소도 반 무법천지라는 점은 생각해야 한다. 범죄율이 낮아 진짜 중범죄자는 평생 가둬도 별 문제없는 한국이나 중부 유럽, 일본 교도소와 다르다.[4] 실제로 몇몇 유족이 그를 사형시켜 달라고 현상금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