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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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의회
3. 2010년대 이후의 정세
5. 반군
6. 기타



1. 개요[편집]


페루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36점
2022년, 세계 101위
언론자유지수
52.74점
2023년, 세계 110위
민주주의 지수
6.92점
2022년, 세계 75위

스페인 제국에서 독립한 이래 역사적으로 정치가 안정적이었던 나라는 아니었다. 건국 이후 그야말로 정권수립→붕괴→정권수립→붕괴의 연속... 특히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대립, 리마 중심주의자들과 쿠스코 중심주의자들이 대립이 이어졌으며 20세기때는 군사 쿠데타와 독재, 경제환란 등의 혼란을 겪었다. 1968년과 1970년대 후반에 이르는 기간동안[1] 군사독재정권을 겪었고 1980년대에 민주화가 진행되었지만 100억 달러를 훌쩍 넘는 외채문제로 인한 초인플레이션과 빛나는 길이라는 반군의 준동으로 인한 치안악화에 시달렸고, 군인들이 반군 잡는다면서 애꿏은 일반인들을 잡아 죽이는 문제도 있었다. 1990년 대선에서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집권하면서 그제서야 경제는 가까스로 안정세를 찾았지만 후지모리는 반대파를 탄압하는 독재적인 정치를 펼쳤고 3선에 도전했을때 부정선거까지 감행했다가 야당의원에게 뇌물을 준것이 들통나고, 결국에는 사퇴서를 내고 일본으로 도망치는 추한 모습을 보이며 퇴진했다.

그렇지만 페루는 여전히 중남미에서 정치변동이 가장 심한 나라이다. 아무리 봐도 1기 집권 시의 실책이 명백해서 타 국가였으면 정계복귀도 힘든 인물이 선거를 통해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한 사례가 있을 지경이니 말 다한 셈이다. 그 예로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그의 딸인 케이코 후지모리가 대선에 도전 할 정도다.[2] 사실 그 이전 대통령인 알란 가르시아도 만만치 않은데 1기 임기 후반기인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초인플레이션과 빈부격차 심화로 인한 지방 공산반군의 세력 확장[3]을 겪었는데 2001년 대선에서 예상 외의 선전을 보이면서 정계에 성공적으로 복귀하였고, 2006년에 대선에서 다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이쪽도 다른 남미 국가들과 함께 부정부패의 온상이다. 나스카 지상화가 대표적 피해자.


2. 의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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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힘|{{{#fff 민중의 힘

22석
]]
[[자유 페루|{{{#fff 자유 페루

16석
]]
[[민중행동당|{{{#fff 민중행동당

15석
]]
진보동맹

11석

권위주의 블록

10석

[[페루를 위한 모두|{{{#fff 페루를 위한 모두

10석
]]
[[민중혁신당|{{{#fff 민중혁신당

9석
]]
국가발전당

9석

포데모스 페루

8석

[[200 페루|{{{#fff 200 페루

6석
]]
[[우리가 페루다|{{{#fff 우리가 페루다

5석
]]
통합과 대화

5석

무소속

4석

재적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130석




현재의 의회는 2021년 4월 11일 실시된 총선거에 의해 구성되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현재로서는 없다.

원래는 양원제였으나 알베르토 후지모리에 의해 1993년 단원제로 개편됐다.


3. 2010년대 이후의 정세[편집]


2011년 7월 28일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오얀타 우말라의 퇴임을 앞두고 2016년 4월 10일 대선이 실시되었다. 기존 좌파 여당은 인기가 하락하여 결선투표에 진출하지 못했다. 결선투표에 오른 인물은 경제적 자유주의 우파 변화를 위한 페루인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와 강성우파 민중의 힘의 당수이자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의 딸 케이코 후지모리. 결국 후지모리 전 대통령과의 부패가 불거져서 2차 결선 투표 날인 6월 5일 결국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가 승리하여 정권교체를 이룩하고 우파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쿠친스키는 아래 서술할 부패 스캔들 연루 의혹에도 어쨌든 2017년 상반기까지 주요야당 대중당이 내분에 휩싸이고 홍수에 대처를 잘하며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러다 2017년 하반기 이후로 경제규제 완화 입안 등의 요인으로 지지율이 다시 추락하여 20~30%대 선에 머물고 있으며 급기야 교사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의회에서 내각불신임안이 통과되면서 큰 위기에 처했다.[4] 물론 의회에서 새 내각도 불신임하면 총선을 다시 치를 수 있다지만 그 동안 쿠친스키 대통령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서 총선을 다시 치러도 얼마 정도의 의석을 확보할지는 미지수라는 평이다. 그래도 지지율 한자릿수대인 미셰우 테메르에 비할바는 아니다

2016년 하반기부터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에 대한 수사가 착수되면서 행정부 각료 중 일부가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페루 정치계의 부패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5] 이게 골때린 점은 현직 대통령인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와 전임 대통령 오얀타 우말라, 알레한드로 톨레도 대통령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연루되었다는 점이다. 톨레도는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가 있고, 오얀타 우말라도 수십만 달러 가량의 선거자금을 받은 혐의가 있으며, 쿠친스키는 직접적으로 연루된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알레한드로 톨레도 재임기에 재무부 장관과 총리로 재직했기에[6] 톨레도가 뇌물을 받은 것을 모를 리 없음에도 그 동안 모른척을 했다며 비판받았다. 한편 톨레도의 전 부인은 쿠친스키도 톨레도와 짝짝꿍하면서 뇌물을 받았다는 발언을 하여 쿠친스키의 이미지도 나빠졌다. 일단 미국 당국과 협조하여 톨레도를 체포하기는 했지만 뭐, 어쨌든 이후로 톨레도는 송환되어서 감옥에 보내졌고, 알란 가르시아와 우얀타 우말라도 정치자금 불법수수 혐의로 같이 감옥에 보내졌다.

이후로도 총선 실시는 불발되었지만 쿠친스키의 지지율이 낮은 상태로 머물러있던 와중에 브라질 건설회사에서 쿠친스키도 자사에서 뇌물을 받았다고 털어놓으면서 쿠친스키도 덩달아 사퇴압력을 받았으며, 우파야당 민중권력당과 좌파야당 광역전선이 힘을 합치면 개헌선을 너끈히 차지하기 때문에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을 준비할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탄핵안 자체는 민중권력당 내의 내분 때문에 기권표가 상당수 나오면서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지만 어차피 쿠친스키가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인데다가 압도적인 여소야대인 것은 마찬가지인지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다만 케이코 후지모리가 남동생 켄지 후지모리의 이탈로 인해서 입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고 좌파야당인 광역전선의 세가 넓어졌다는 것이 주 평. 그리고 탄핵이 부결되자마자 켄지 후지모리에 대한 보답으로 알베르토 후지모리에 대한 사면이 이루어져서 2018년 초부터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자유의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쿠친스키가 후지모리를 사면하면서 지지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등 탄핵에서 살아남는데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나마 남아있던 지지층의 기대를 배신한데다가 장관들이 후지모리 사면에 반발하여 잇따라 사임하는 일이 벌어지며 사실상 탄핵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평이다. 급기야 추가로 뇌물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고, 2차 탄핵시도가 논의되어 거의 확정난 즈음에 쿠친스키 대통령이 야당의원을 매수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쿠친스키 대통령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자진하야했고 마르틴 비스카라기 대통령직에 올랐다. 허나 마르틴 바스카라도 빠른 속도로 지지율이 떨어졌으며, 특히 판사들이 뇌물을 받고 사법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법파동이 벌어졌다. 비스카라가 직접 연결된것은 아니지만 쿠친스키라는 전례가 있는지라 법무부 장관이 사퇴하는 등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중. 그래도 마르틴 바스카라가 지방선거 이후로 정치개혁을 거부하는 의회를 상대로 호통을 치는 등의 작업이 이어지면서 어느정도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이후로 2018년 10월 지방선거에서 민중의 힘이 참패를 거두면서 케이코 후지모리의 힘이 빠지자, 이를 기회삼아서 의회와 사법부 개혁을 위한 헌법 개정 국민투표가 실시했는데 4가지 안건 가운데서 양원제 도입을 제외한 나머지 3건이 80%대의 지지를 얻으며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되었다. 전반적으로 마르틴 바스카라 대통령의 대승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으로 민중의 힘이 지배하고 있는 의회에는 엄청난 타격이 되었다. 국회의원 재선 금지안이 가결된지라 당장 재선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2019년 9월 30일에 페루 일간지 코메르시오와 로이터는 마르틴 비스카라 대통령과 의회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대통령이 의회해산을 할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고 보도했다.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종료되면서 새로 헌법재판관 6명을 의회가 가결했는데 그 중에 현 국회의장의 친척이 있는 등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인선이라 반 부패를 지향하는[7] 대통령 입장에서는 빡치는 인선이었기 때문.# 결국은 의회해산을 선언했다.#

이에 응수하여 의회가 메르세데스 아라오스 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여 극심한 레임덕에 빠질 뻔 했다.# 하지만, 국가 내 무력 세력인 전 군대와 경찰이 모두 대통령을 지지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부통령은 하루 만에 사퇴를 선언하면서 페루를 떠나 버렸다. 애초에 본인 성향이 그렇게까지 대통령과 달랐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

대통령은 현재 총선을 추진한 뒤 대통령을 사퇴하려고 하는데[8] 국민들의 지지가 높아서 대통령으로 출마(..) 가능성이 높아서 이 상태로 총선과 대선을 추진할 경우 정말 드문 여대야소가 가능할 수도 있다.

부패로 인한 후지모리즘을 반대하는 민심이 높고,# 대통령의 이미지가 반부패의 상징이 되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페루 의회의 대통령 탄핵 시도가 무산되면서 정국 혼란도 빠르게 잦아들었다.#

8개월만에 마르틴 비스카라 대통령이 탄핵됐다.# 그러자 20만명이 탄핵 반대 시위를 벌였다.# 임시 대통령 마누엘 메리노도 닷새 만에 사임했다.# 결국 의회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 비스키라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중도성향의 프란시스코 사가스티를 의장으로 선출하고 임시 대통령으로 선임했다.

12월 31일에 페루에서 농민들이 시위를 벌였는데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에 의해 농민 3명이 사망했다.#

2021년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선 우세한 후보 없이 난맥상이 벌어졌는데, 처음에는 축구선수 출신인 조지 포시스가 우세했으나 후보 등록이 거절되었다가 항소로 자격을 회복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지지율이 떨어졌고, 이후 여론조사에선 15% 이상 지지받는 후보가 없이 대혼전이 벌어졌다. 이번 대선에서 18명이 출마했는데 그 중 7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하였다.#

1차 투표 결과에선 그 동안 여론조사에서 한 자리수 지지율을 받던 극좌 성향의 페드로 카스티요가 농촌 지역의 지지로 1위를 득표했고, 개표 초반엔 중도우파 성향의 에르난도 데 소토 후보가 잠시 2위를 차지하다가 개표가 진행되면서 독재자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가 2위, 역시 극우 성향의 라파엘 로페스 알리아가가 3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2차 투표가 현지시각으로 6월 6일 실시되었으며, 개표율 90%가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카스티요와 후지모리 후보가 0.5%p 정도 차이로 매우 팽팽한 접전을 펼친 끝에 6월 9일 페드로 카스티요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럽게 떠올라 대통령까지 오른 인물이기에 정국은 혼란 그 자체. 카스티요 본인은 지지층 확보를 위해 당선 직후 중도로 노선을 변경, 온건 중도적인 경제 정책을 펼치겠다 천명했으나, 야당은 여전히 그를 대통령직을 강탈해간 도둑 정도로 취급하고 있고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의 반발을 불러와 결국 여야 모두에게서 지지를 잃게 되었다. 심지어 여당에서는 카스티요에 대한 제명 절차를 밟기까지 하였고, 제명되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카스티요 본인이 자진탈당하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었다.

결국 취임 1년도 안 된 사이에 여야 모두의 지지를 잃고 총리만 네 차례 바뀔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 탄핵 발의안만 두 차례나 받아야 했는데, 심지어 탄핵 반대표보다 찬성표가 더 많았을 정도로 취임 1년 만에 식물 대통령이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닌 셈. 2022년 페루 친위 쿠데타 시도로 페드로 카스티요가 몰락하고 부통령인 디나 볼루아르테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지만 반정부시위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4. 레임덕[편집]


중남미 중에서도 레임덕이 유독 심한 나라가 페루인데, 대통령을 몇번이라도 할 수는 있지만 연임 제한 문제로 인한 실질적인 단임제가 한 몫을 하기도 한다.이는 1980년 페루 민주화 이후로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3선에 성공한 사례를 제외하면 전부 해당되며 페루 정치의 고질적인 병 중 하나이다.

페루의 레임덕을 요약하자면, 우선 어떤 정당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사람은 처음에는 60% 이상의 매우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국민들의 기대를 얻으면서 처음에는 잘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이어 각종 실책까지 한 몫을 한다면 지지층이 급격하게 무너져, 임기 중후반에 가면 지지율이 20 ~ 30%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겪기도 한다. 당연히 여당 지지율도 덩달아 떨어지며, 말기에 가면 당장 대통령의 연임이 불가능한 관계로 후보를 새로 선출해야 하는데, 문제는 기껏 선출한 후보가 10%도 채 되지 않는 처참한 지지율을 기록하며 고전하다가 끝내 불출마하거나, 또는 등록하고는 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한다.[9]

이러다 보니 "선거" 하면 보통 여야 대결을 보이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페루에서는 여당 없는 순수 야당만의 대결로 치러지며, 때문에 그나마 유사한 성향을 갖거나 또는 현직 대통령/여당/여당 후보가 지지한 사람을 사실상 범여권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

거기다가 여당마저 몰락하는 건 덤.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치러지므로 어느 당의 후보가 당선되면 그 당 또한 선방하지만, 다음 선거에서 후보가 낙마하면 여당 또한 군소 정당으로 급추락한다. 그래서 다음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여당 의원들이 비슷한 성향의 다른 정당으로 이적하는 일이 많다.


5. 반군[편집]


페루에는 반정부 무장단체가 있어 무력투쟁과 테러를 벌이고 있다.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 Movimiento Revolucionario de Tupac Amaru)과 빛나는 길(SL, Sendero Luminoso)가 대표적이다.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은 90년대에 페루 주재 일본대사관 인질사건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 일본대사관 인질사건은 FN P90의 실전 사용으로도 유명하다. 이 리마 대사관 인질 사건은 스톡홀름 증후군의 반대 (인질범이 인질과 동일시 되는 현상)인 리마 신드롬으로도 많이 알려졌다. 127일동안 같이 있다보니 인질범들이 인질에게 하소연을 하고 적극적으로 인질들을 위한 물자를 반입시켰다고(…)

구스만 체포와 인질사건 이후 내전은 잠잠해지긴 했지만, 빛나는 길의 일부 세력은 페루 군사 공산당(MPCP, Militarizado Partido Comunista del Perú)으로 분리되어 무장투쟁을 지속하고 있다.[10]

6. 기타[편집]


  • 역대 페루 대선을 보면 다른 국가와 비교해봐도 특이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다. 어떨때는 좌파와 우파 후보가 결선에 진출하는가 하면, 어떨때는 좌파 후보 두명만 결선에 진출하고(2006년 대통령 선거), 어떨때는 우파 후보 두 명이(2016년 대통령 선거) 진출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또 특이한 점이 또 하나 있는데, 새 대통령들은 일전 선거에서 2위나 3위로 떨어진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2001년 대통령이 된 톨레도는 2000년 알베르토 후지모리에 밀려 낙선했고, 2006년에 당선된 가르시아는 2001년 톨레도에 밀려 낙선했고, 2011년의 당선자 우말라는 2006년 가르시아에 밀려 떨어졌고, 2016년의 당선자 쿠친스키는 2011년 우말라와 게이코에 밀려 떨어졌다. 그 쿠친스키는 당선되자마다 뇌물 수수 혐의에 시달렸고 의회의 탄핵 소추를 맞아 2년을 못가 사임
  • 한국에는 알베르토 후지모리대통령의 인지도가 조금 있다. 페루에서 유일한 일본계 페루인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페루 정치사에서 좋게 기억되는 인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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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우파군부정권이 대세를 이루었던 다른 중남미 국가와는 다르게 군부가 좌파성향이었다는 특이점은 있다.[2] 그래도 어느 정도 시민들은 상식적이다. 왜냐하면 케이코 후지모리는 총선에 4번을 도전했으나 다 떨어져서 주요 야당 당수가 국회의원 경력이 0니까.[3] 2015-17년의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이때 페루 인플레이션에 비하면 양반인 수준이다. 다만 2018년도에 수만%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겪을것으로 예측되면서 기록을 꺽었다.[4] 의회는 압도적인 여소야대인데, 알레한드로 톨레도의 집권 이후로 쭉 이렇다. 이유인 즉슨, 페루에서는 대선 1차 투표와 총선 투표를 동시에 치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여소야대가 될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5] 다만 이 현상은 이전부터 반복되어왔던 것이다. 페루에선 1980년대 이래 베네수엘라우고 차베스우루과이호세 무히카와 타바레 바스케스, 브라질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등 다른 남미 국가들의 대통령처럼 임기 후반기에도 인기를 끈 대통령이 없었다. 간간히 이전 대통령들이 이런 것은 그래도 괜찮았다며 재평가받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지만 물론 차베스든 룰라든 당시의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경제성장이 산업구조 다양화보다는 원자재값 상승에 힘입은것이 크다보니, 그 후임 대통령이었던 지우마 호세프니콜라스 마두로는 원자재값이 하락하면서 지지율이 폭락하였고 그 중에서 호세프는 탄핵당했고, 마두로는 비호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6] 정확하게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재무부 장관으로 재직했고,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총리로 재직했다.[7] 현 부통령은 원래부터 정치인보다는 공무원 성향이 강한 경향이라고 한다.[8] 물론 그래도 대통령을 다시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페루의 대통령제는 5년 단임제인데 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직무대행에 가깝기 때문.[9] 2001년 알레한드로 톨레도의 당선으로 여당이 된 페루는 할 수 있다는 2006년 대선에 라파엘 벨라운데를 선출했으나 등록 전에 낙마했고, 아메리카 인민혁명동맹알란 가르시아를 계승할 후보인 메르세데스 아라오스는 도중에 사퇴했고, 국민당오얀타 우말라의 뒤를 이을 다니엘 우레스티는 등록도 못 하고 퇴짜를 맞았다.[10] 별개로 현재 페루의 여당도 공산당이지만, 현 대통령인 카스티요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서 내전 당시 빛나는 길과 싸운 전력이 있어서 사이가 좋지는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