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도 1세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이자[1] , 두 나라가 통합되어 성립된 양시칠리아 왕국의 초대 국왕.
2. 생애[편집]
1751년 나폴리에서 당시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국왕으로 재위 중이던 카를로와 작센의 마리아 아말리아 왕비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1759년 스페인 국왕이었던 백부 페르난도 6세가 자식 없이 승하하면서 부왕이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로 즉위하자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위를 양위받아 8살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원래 큰형 필리포가 후계자였으나 정신장애로 왕위계승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계승에서 배제되었고[2] , 작은형 카를로스는 아버지가 계승한 스페인 왕위를 물려받기로 예정되었기 때문에,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위는 3남인 페르디난도가 양위받았다.[3] 즉위 당시 나이가 어려 총리대신이었던 베르나르도 타누치(Bernardo Tanucci)가 1767년까지 섭정하였다.
1768년,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의 10녀인 마리아 카롤리나와 혼인하였다.
프랑스 혁명에는 반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1796년 프랑스 제1공화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으나, 1798년 프랑스가 로마를 점령하자 이를 경계하여 로마를 점령한 프랑스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곧 프랑스군의 전면 공격으로 나폴리 왕국이 점령당하자 시칠리아로 피신하였고, 나폴리에는 파르테노페아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이 수립되었다.
이후 프랑스군이 북이탈리아로 철수하자 루포 추기경이 이끄는 반프랑스 반동 대중운동 산페디스타를 앞세워 파르테노페아 공화국을 공격해 1800년 나폴리를 탈환하였으나, 5년 후 제 3차 대불동맹에 가담하였다가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프랑스군이 곧 나폴리 원정에 나서자 다시 시칠리아로 피난하였다. 시칠리아 피난 기간 중에는 차남 프란체스코에게 섭정을 맡기고 영국의 권유에 따라 의회를 설립, 입헌군주정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1816년 12월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을 정식으로 통합하여 양시칠리아 왕국을 수립하고 통합 국왕 페르디난도 1세가 되었다.
1820년에는 굴리엘모 페페(Guglielmo Pepe) 장군과 카르보나리의 주도로 헌정 실시를 요구하는 군사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을 계기로 스페인의 카디스 헌법을 모델로 한 헌법의 도입을 승인하였으나, 이내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원을 받아 반란을 진압하고 의회를 해산하였다.
1825년 승하하였고 나폴리의 산타 키아라 성당에 안장되었다. 왕위는 차남 프란체스코 1세가 계승했다.[4]
3. 가족관계[편집]
3.1. 자녀[편집]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와의 사이에서 10남 6녀를 두었다. 참고로 마리아 카롤리나는 나폴리에 매장된 남편과 달리, 친정인 오스트리아의 카푸친 교회에 따로 안장되어 있다.
무려 16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상당수가 요절하여 현재 후손이 남아있는 인물은 4명뿐이다. 그러나 후계자인 프란체스코 1세가 7남 7녀를, 장손 페르디난도 2세가 9남 4녀를 두어 자손이 번성하게 된다. 여계로 따지면 루이필리프 1세와 혼인한 6녀 마리아 아말리아도 6남 4녀를 두어 그 자손들이 유럽 여러 왕가와 통혼하였고, 장녀 마리아 테레사와 차녀 루이사 마리아의 자손 역시 제법 번성한 편이다.
4. 기타[편집]
- 카를로스 3세의 자녀들 중 마지막 생존자이다.
-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초대 황제 프란츠 2세[14] 와 그 동생인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3세, 프랑스 국왕 루이필리프 1세의 장인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3 18:42:04에 나무위키 페르디난도 1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나폴리 국왕으로서의 재위명은 페르디난도 4세, 시칠리아 국왕으로서의 재위명은 페르디난도 3세이다.[2] 결국 자손 없이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생의 가계로 왕위를 이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3] 페르디난도가 왕위를 상속받으며 동시에 나폴리 국사조칙이 반포되어 스페인과 나폴리, 시칠리아의 동군연합을 금지하였다.[4] 장남 카를로 왕세자는 3세 때 요절했다.[5] 프랑스의 황후 마리 루이즈, 페르디난트 1세, 브라질 제국의 황후이자 포르투갈 왕국의 왕비 마리아 레오폴디네 등[6] 레오폴트 2세의 차남(동시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친손자)이자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의 외손자(어머니 마리아 루이사가 카를로스 3세의 딸)이다. 아내는 반대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외손녀이자 카를로스 3세의 친손자이니 부부가 쌍방으로 고종사촌이자 외사촌.[7] 레오폴도 2세, 사르데냐의 왕비 마리아 테레사 등[8] 레오폴트 2세의 3녀이자 카를로스 3세의 외손녀이다.[9] 카를로스 4세의 4녀이다.[10] 스페인의 왕비 마리아 크리스티나, 페르디난도 2세, 브라질의 황후 테레사 크리스티나 등[11] 벨기에의 왕비 루이즈 등[12] 그녀가 죽고 2년 뒤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7세로 즉위했다.[13] 프란츠 2세의 6녀이자 페르디난도 1세의 외손녀이다.[14] 조카이기도 하다. 누나 마리아 루이사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