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트 1세(불가리아)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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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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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patriotic-flags.com/ImperialGermanWarEnsign.png 1차세계대전기 독일제국군의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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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Generalfieldmarsc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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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원수
프란츠 요제프 1세 | 콜마르 폰 데어 골츠 | 파울 폰 힌덴부르크 |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 |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 빌헬름 2세 | 뷔르템베르크의 빌헬름 2세 |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 카를 폰 뷜로 |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 프리드리히 폰 외스터라이히테셴 대공 | 메흐메트 5세 |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 뷔르템베르크 공작 알브레히트 | 루트비히 3세 | 페르디난트 1세 | 카를 1세 | 콘스탄티노스 1세 | 레무스 폰 보이르슈
해군
원수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 헤닝 폰 홀첸도르프 | 빌헬름 2세 |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상급대장
Generalobe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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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상급대장
펠릭스 그라프 폰 보트머 | 모리츠 폰 린커 |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 알렉산더 폰 클루크 | 루트비히 폰 팔켄하우젠 | 막스 폰 하우젠 | 알렉산더 폰 린징겐 | 구스타프 폰 케셀 | 요아힘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레오폴트 | 요시아스 폰 헤링겐

명예원수 베른하르트 3세 | 명예원수 한스 폰 플레센 | 명예원수프리드리히 2세
병과대장
General der Waffengattung / Admi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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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병과대장
에리히 폰 팔켄하인보병 | 에른스트 루트비히 카를 알브레히트 빌헬름보병 | 에리히 루덴도르프보병 | 로타르 폰 트로타보병 | 에른스트 폰 회프너기병 | 콘라트 크라프트 폰 델멘징엔포병 | 오스카 폰 후티어보병 | 오이겐 폰 팔켄하인기병 | 파울 폰 레토포어베크보병 |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기병 | 막시밀리안 폰 바덴기병 | 빌헬름 폰 우라흐기병 | 프리드리히 식스트 폰 아르민보병 | 카를 에두아르트보병 | 오토 폰 벨로보병 | 에두아르트 폰 리에베르트보병 | 프리드리히 빌헬름 빅토르 아우구스트 에른스트보병 | 헤르만 폰 슈타인포병
해군
대장
후고 폰 폴 | 라인하르트 셰어 | 프란츠 폰 히퍼 | 루트비히 폰 로이터
중장
Generalleutnant / Vizeadmiral

육군
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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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중장
막시밀리안 폰 슈페
소장
Generalmajor / Konteradmiral

육군
소장
한스 폰 젝트 | 막스 호프만 | 프리츠 폰 로스베르크 | 카를 하우스호퍼 | 아이텔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 게르하르트 타펜 | 뤼디거 폰 데어 골츠
해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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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 첨자 : 전사






불가리아 왕국 차르
페르디난트 1세
Фердинанд I


이름
페르디난드 막시밀리안 카를 레오폴드 마리야 삭스코부르고츠키
(Фердинанд Максимилиан Карл Леополд Мария Сакскобургготски)
출생
1861년 2월 26일
오스트리아 제국
사망
1948년 9월 10일 (87세)
연합군 점령하 독일 코부르크
재위
불가리아 공국의 공작
1887년 7월 7일 ~ 1908년 10월 5일
불가리아 왕국의 차르
1908년 10월 5일 ~ 1918년 10월 3일
배우자
마리아 루이즈
(1893년 결혼 / 1899년 사망)
불가리아의 엘레노어
(1908년 결혼 / 1917년 사망)
자녀
보리스 3세, 키릴 프레슬라프스키, 불가리아의 에드도키아, 불가리아의 나데즈다
아버지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아우구스트 공자
어머니
클레망틴 도를레앙
형제
마리아 클로틸다, 페르디난트 필립, 루트비히 아우구스트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대중매체



1. 개요[편집]


불가리아 공국의 2대 공작이자 불가리아 왕국의 초대 차르.

독일 작센의 통치 가문 베틴 가문 에른스트 계열인 작센코부르크고타 출신이었다.[1] 아버지는 초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1세의 조카이자 포르투갈 왕 페르난두 2세의 동생인 아우구스트 공자였고,[2] 어머니는 루이필리프의 4녀 클레망틴이었다.


2. 생애[편집]


오스트리아 제국 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군 장교로 있다가 불가리아 공작이던 바텐베르크의 알렉산더르의 퇴위로 불가리아 국회에서 후임 공작으로 선출되었다. 1908년부터 차르 칭호를 사용하였다.

1차 발칸 전쟁에 참전해 마케도니아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불가리아 대제국을 꿈꾸며 계속 땅 욕심을 부리다가 오히려 1차 전쟁의 동맹국들과 적국인 오스만 제국이 힘을 합친 2차 발칸 전쟁에서 참패해 막대한 피해와 함께 1차 전쟁에서 얻은 땅 대부분을 잃어 여론이 악화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발칸 전쟁에서의 패전을 곱씹고 재기를 위해 동맹국으로 참전, 세르비아 침공을 승전으로 이끌며 세르비아 왕국의 남부를 합병하는 데 성공한다.

페르디난트는 참전 직전에 '내 인생의 목적은 세르비아의 파괴에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강경하고 잔혹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사상을 증명하듯 불가리아의 압제를 받게 된 수많은 세르비아인들이 박해받았으며, 불가리아군에 의한 슈팁 대학살, 수르둘리카 대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왕의 뜻에 따라 세르비아 문화와 이를 이끌 중산층 지식인의 교육이 철저히 탄압되었고, 많은 세르비아의 유구한 수도원들이 약탈되었다. 또 그는 세르비아인과 불가리아인의 혼혈을 장려했으며, 그렇게 태어난 자녀들이 철저하게 불가리아인이 되도록 키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색이 짙어져 세르비아를 상실하자 책임을 지고 그해 10월 3일 퇴위, 왕위는 장남 보리스 3세에게 넘겼다. 이후 그는 고향인 독일의 코부르크로 돌아와 은거했는데, 상당히 장수해서 1948년까지 살았다. 하지만 퇴위한 이후의 삶은 비참했는데, 왕이었던 만큼 본인의 삶에 문제가 있던 건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자꾸만 불행이 일어났다. 장남 보리스 3세는 1943년 히틀러의 불가리아 방문 이후 독살로 의심되는 죽음을 맞이했고, 1946년 손자 시메온 2세가 퇴위하면서, 자신이 세운 왕국이 후대에 멸망하는 걸 자신의 눈으로 본 인물이 되었으며, 차남인 키릴 왕자는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추축국에 부역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3][4]

1948년 페르디난트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발상지였던 코부르크의 뷔르글라스-슐뢰셴 저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불가리아에 묻히고 싶다는 것이었으나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당국은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가문이 대대로 안장되었던 코부르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회[5]의 지하실에 매장되었다.


3. 여담[편집]


페르디난트 1세는 1910년 벨기에에 다녀왔었는데, 그때 우연히 비행기를 접하게 되었으며 그해 6월 15일 비행기를 직접 탔다. 참고로 이 사람은 유럽 안에서 최초로 비행기를 탄 차르이기도 하다.

결혼은 첫 아내 부르봉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6] 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

부계혈통 기준으로 영국 왕 에드워드 7세, 벨기에 왕 알베르 1세와 6촌이다. 이 중 알베르 1세의 경우 부계로는 6촌이지만, 알베르 1세의 할머니 루이즈 왕비가 페르디난트 1세의 큰이모라서 모계로는 5촌 조카가 된다.

참고로 모계 쪽으로 갈 경우, 벨기에 2대 국왕 레오폴드 2세와 이종사촌간이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6촌간이다.

역대 불가리아 국가원수 중 가장 장수했다.[7] 또한 루이필리프의 손주들 중 마지막 생존자이다.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빌헬름 2세[8]하고는 꽤나 비슷한 점이 많은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고, 둘 다 1880년대 후반에 즉위[9]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1918년에 퇴위하고, 1940년대에 죽었다. 그리고 둘 다 양성애자다.(...)


4. 대중매체[편집]


하츠 오브 아이언 4에서는 보스포루스 DLC가 있을 때 보리스 3세를 암살하는 중점을 타면 시메온 2세를 즉위시키는 대신 페르디난트 1세를 복위시키는 중점을 탈 수 있다. 모드인 카이저라이히에서는 1차 대전 때 동맹국이 승리하면서 계속 차르로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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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센 왕국은 베틴 가문 알브레히트 계열인데 에른스트 계열이 원래 본가이고 작센 왕국 알브레히트 계열이 방계이다. 16세기 종교전쟁 당시 황제에 줄서서 찬탈.[2] 벨기에 초대 국왕 레오폴드 1세의 조카이자, 빅토리아 여왕앨버트 공의 사촌이기도 하다.[3] 이 소식을 들은 페르디난트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구나.'라며 탄식했다.[4] 장녀 에브도키야는 이때 망명이 허락되어 독일로 망명하였고(독신으로 사망), 차녀 나데지다는 왕정 폐지 이전인 1924년에 뷔르템베르크의 공작 알브레히트 오이겐(뷔르템베르크 공작 알브레히트의 차남)과 결혼하여(슬하 2남 3녀) 독일에 정착했기에 크게 화를 입지는 않았다.[5] 부친 아우구스트 공자가 세운 교회로, 아우구스트 공자 부부를 시작으로 그 후손들이 안장되었다.[6]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의 황후인 지타의 이복언니이다.[7] 만약 손자 시메온 2세가 2024년까지 생존한다면 할아버지의 기록을 깨게 된다.[8] 페르디난트 1세는 빌헬름 2세의 모후 빅토리아 황후와 6촌간이니 빌헬름 2세는 페르디난트 1세의 7촌 조카뻘이다. 페르디난트 1세의 부모가 40대 초반의 꽤 늦은 나이에 페르디난트 1세를 낳았기 때문에 항렬에 비해 출생연도가 늦은 편이라 나이로는 빌헬름 2세가 오히려 두 살 위이다.[9] 작위 상관없이 '군주 재위 자체'를 기준으로 할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