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바우두 단타스

덤프버전 :

브라질의 前 축구인


이름
페르바우두 단타스
Perivaldo Dantas

통칭
페리바우두 단타스 (Perivaldo Dantas)
K리그 등록명
페리발두[1]
출생
1953년 7월 12일
사망
2017년 7월 27일 (향년 64세)
국적
[[브라질|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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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8cm
선수
이타부나 EC (1973~1974)
EC 바이아 (1975~1976)
보타포구 FR (1977~1982)
상파울루 FC (1981, 임대)
SE 파우메이라스 (1983)
방구 AC (1984~1986)
유공 코끼리 (1987)
국가대표
2경기 ?골 (브라질 / 1981~1982)
1. 개요
2. 전설의 발단
3. 그 후




1. 개요[편집]


페리바우두 단타스는 브라질의 축구 선수이며, 유공에서 15분 뛰고 3만달러 가져간 선수로 악명이 높다. 먹튀계의 전설.


2. 전설의 발단[편집]


브라질에서 축구선수로 탄탄대로의 커리어를 쌓고 국가대표로 선발된 적도 있는 페리바우두는 1984년 방구 AC 소속으로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 출전하여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훗날 결혼을 하게 될 고숙자씨와 만나 사랑을 꽃피우게 되었으니, 본인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대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1984년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에서 맹활약한 페리바우두는 1986년 11월 약혼자인 고씨와 결혼을 준비하러 한국땅을 밟았다. 이 때, 유공이 스카우트하여 페리바우두가 한국 프로축구씬에 등장한 것이다. 신문들은 연일 스페인 월드컵에도 출전했던[2] 브라질 스타 페리발두가 한국을 정복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 때, 유공이 페리바우두에게 지급한 계약금만 5만 5천달러였으며 월봉은 3천 3백달러였다.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장미빛 미래는 금새 어두운 결말로 드러나고 말았다. 페리바우두는 신혼재미에 푹 빠져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훈련에 자주 빠졌으며, 많은 나이(34) 때문에 이는 치명타였다. 결국 그는 1987 시즌 개막 3주만인 3월 29일 럭키금성 황소와의 경기에서 후반 31분 교체투입되어 정규리그 1경기 출전하는데에 그쳤다. 참다못한 유공은 4월 그와의 계약을 해지하였다. 이미 지급한 3만 달러는 고스란히 페리바우두의 신혼 자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3. 그 후[편집]


포르투갈에서 팀을 구하던 그는 잘 되지 않아, 노숙 행상인까지 전전하는 등 비참한 생활을 계속했다.


2013년 포르투갈 TV 채널인 SIC에서 페리바우두의 딱한 사정을 방송했고, 포르투갈 축구인 연맹에서 페리바우두를 도와주어 브라질로 돌아갔다고 한다.
[1] 현재 연맹에는 베리발두라고 기록되어 있다.[2] 이는 잘 못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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