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 파울 루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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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파울 루벤스
Sir Peter Paul Rubens


파일:Peter Paul Rubens.jpg

출생
1577년 6월 28일
신성 로마 제국 징겐
사망
1640년 5월 30일 (향년 62세)
스페인령 네덜란드 안트베르펜
국적
파일:독일 국기.svg


직업
화가
서명
파일:Rubens_autograph.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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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세인트 제임스 성당
사조
바로크
종교
로마 가톨릭
부모
아버지 얀 루벤스
(1530~1587)
어머니 마리아 파이펠링크스
(1538~1608)
배우자
이사벨라 브란트
(1609년 결혼/ 1626년 사별)
헬레나 푸르망
(1630년 결혼)


1. 개요
2. 생애
3. 플랜더스의 개
4. 조선인을 그린 화가?



1. 개요[편집]


독일 바로크 시대의 화가.


2. 생애[편집]


독일의 베스트팔렌 주 태생이기 때문에 독일어로는 '페터 파울 루벤스'가 된다. 네덜란드어로는 '페터르 파울 뤼번스'. 혹은 '피터르 파우얼 뤼번스(Pieter Pauwel Rubens)'이다. 독일에서보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경력이 더 많고, 본인도 네덜란드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 네이버에서 벨기에를 검색해보면 벨기에의 대표인물로 그가 나온다. 사실 정체성도 네덜란드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졌고, 개인으로서나 화가로서나 형성 과정, 영향도 전부 네덜란드에서 (엄밀하게 따지면 현대 벨기에가 된 당시 스페인령 10개주) 받았기 때문에 굳이 근현대적인 의미로 국적으로 부여하려면 벨기에/네덜란드가 적절하다.

아버지는 얀 뤼번스는 칼뱅주의자 변호사였는데, 정작 자신의 화풍은 가톨릭 수호 성향(소위 'counter-reformation', 혹은 가톨릭 종교개혁)의 화풍이었다. 사실 당연하기도 한게, 아버지 사후 루벤스 본인은 가톨릭 신자로 교육받고 자랐기 때문이다. 참고로 뤼번스 가문은 원래 저지대 일대에서 세력은 크지 않아도 나름 뼈대있는 귀족가문이었는데, 아버지 시절 가톨릭 스페인의 박해를 피해 스페인령 저지대에서 근현대 네덜란드가 되는 개신교 7개주로 피난을 갔다. 막상 피난간 이후 낳은 아들인 뤼번스는 역설적으로 가톨릭 신자로 자라나서 아버지가 도망가게 만든 바로 그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가톨릭 대귀족, 왕공들의 전속화가로 성공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인 셈.[1]

이 칼뱅주의자 아버지는 사생활적으로 좀 약간 골때리는 사람이라 사생아도 많이 뿌렸는데, 볼륜 상대에는 변호사-고객 관계로 만난 다름아니라 당대 최고 권력자 중 하나였던 네덜란드 독립의 아버지, 침묵공 빌럼의 와이프 작센의 안나도 있었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루벤스의 어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2]였고, 아버지가 저 모양이니 어머니의 영향력을 더 강하게 받은 것도 당연한 노릇이다.

종교개혁 열풍 속에 혼란스러운 독일을 어린 시절에 빠져나와 벨기에안트베르펜에서 14살 시절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여러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모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레오나르도 다 빈치, 특히 색감의 경우는 라파엘로와 틴토레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주로 성경, 신화, 인물 등을 소재로 해서 그렸으며, 스페인의 펠리페 4세, 잉글랜드의 찰스 1세, 프랑스마리 드 메디시스[3]와 같은 왕족들에게도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왕실로부터는 왕실 화가로 임명되기도 하였으며, 스페인의 펠리페 4세, 잉글랜드의 찰스 1세는 기사작위를 수여하기도 했고,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외교관으로서 두 나라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처럼 그도 든든한 후원자들의 지원 아래, 자신의 화실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부족함 없이 풍족한 화가 생활을 영위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과 활동 내역에 관한 계약과 저작권에도 철저해 죽는 날까지 생활의 곤란함을 겪지도 않았다. 그리고 유럽 곳곳에 복수의 그림 공장을 두고 엄청난 수많은 문하생들을 굴려서 비슷비슷한 다작을 찍어내는 방식[4]도 그의 자금 사정을 풍족하게 해주었다.

생전 2천여 점이 넘는 많은 작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매에 떴다하면 고가에 낙찰되는 작품이 많은 인기 화가고, 소더비 경매 서양화 부문 최고기록도 루벤스의 작품인 <유아대학살>이다.[5]

향년 63세에 통풍으로 사망. 자식 총 8명을 두었는데 막내는 생후 8개월 딸이었다.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특징은 역동적인 묘사와 구도, 화려한 색채이다. 다만 세세함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그리고 여인들을 살 찐 모습으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53살 때 결혼했던 16살의 두번째 아내의 초상화도 그렸는데, 그녀도 살집이 넘치는 걸로 봐서 원래부터 뚱뚱한 여성들을 좋아했던 듯 싶다. 당시 시대상 미의 기준이 현대보다 훨씬 더 풍만한 체형이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동시대 다른 화가들과 비교해 보아도 루벤스가 그리는 작품 속의 여성들은 유달리 뚱뚱하다. 병으로 34살의 나이에 일찍 보낸 첫 아내 이사벨라 브란트도 풍만한 체형으로 그려진 것을 보면 거유 취향이었음은 확실하다.

루벤스의 어린 후처 헬레네#는 미인으로 유명했는데[6] 미모뿐만 아니라 루벤스 그림의 누드모델을 한 적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아니, 아내가 화가인 남편을 위해 누드모델이 되어주는 게 뭐 어때서?"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작업 스타일이라는 게 본인 혼자서 그리는 게 아니라 수십 명의 문하생들과 함께 하는 거대한 공장 작업실이었다. 그러니까 수십 명의 남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작업하는 그런 환경에서 어린 아내 혼자 알몸으로 각종 포즈를 잡게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포즈라는 게 얌전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루벤스 그림을 보면 알지만 굉장히 역동적인게 많았는데 뭐 남녀간 유혹하는 장면 이런 건 당연하고, 심지어 묶이거나 납치당해 질질 끌려가는 장면들도 많았다. 이 정도면 21세기 현재에도 가십거리가 될 만한데 17세기 유럽에서 가십거리가 안 되기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이러쿵저러쿵 말은 많아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도적적으로 지탄을 받은 건 아니라서 루벤스가 죽은 뒤 헬레네는 꽤 신분 높은 귀족과 재혼해서 사회적으로 명망있고 풍요하게 살았다.


3. 플랜더스의 개[편집]


플랜더스의 개라는 작품의 주인공이 네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유명한 화가.

파일:external/www.artchive.com/rubens_descent.jpg
<플랜더스의 개>에서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대성당 소재. 이외에도 루벤스의 또 다른 작품인 <성모승천>도 언급된다.


4. 조선인을 그린 화가?[편집]


재미있는 사실은 이 화가가 그린 작품 중에 조선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오는 작품이 2개나 있다는 것이다. 이걸 소재로 한 소설이 있을 정도. 하지만 연구 결과 조선인이 아니라 명나라 중국인으로 밝혀졌다.

한복 입은 남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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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다고 뤼번스가 네덜란드에선 친일파니 이런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이 시대 유럽은 어느정도는 근현대인에게도 익숙한 민족 '감정'은 피어나고 있어도 여전히 대부분 사람들의 주 정체성은 종교와 신분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대였다.[2] 남편 때문에 할 수 없이 개신교도가 되었지만, 남편이 죽자 바로 가톨릭으로 되돌아왔다.[3] 루이 13세의 생모. 메디치 가문 출신이다. 훗날 권력을 잃은 후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고, 루벤스의 저택에서 임종을 맞았다.[4] 자신이 모두 그리는 일도 있었지만, 신체의 일부분만 그린다거나 아예 작품 감독만 하고 그리는 것은 모두 제자들이 그린 작품도 많다고 한다.[5] 7620만 달러 - 한화 약 800억 이상.[6] 헬레네가 미인이었다는 얘기는 당대의 기록에서 상당히 많이 보인다. 심지어 같은 지역에 거주하던 유명한 시인이 트로이헬레네보다 아름다운 안트베르펜의 헬레네라고 추켜세우는 시를 짓기도 했다. 다만 헬레네를 모델로 한 루벤스의 그림에 나타난 모습은 유달리 살이 찐 몸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는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