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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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에르미타주 박물관, 넵스키 대로 쪽에서 바라보이는 요새
하늘에서 내려다본 요새
1. 개요[편집]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강변에 있는 러시아 제국 시대의 성형 요새. 수호성인이 베드로(페트로)와 바울로(파블로프)였기 때문에 두 성인의 이름이 붙여졌다.
2. 역사[편집]
표트르 대제가 대북방전쟁으로 스웨덴령 잉에르만란드(Svenska Ingermanland)[2] 를 침공한 이후 스웨덴 해군의 역공을 막기 위해 1703년 네바강변의 하중도에 처음 건설한 것이 시초이다. 표트르 대제가 오기 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뉘엔스칸(Nyenskans)[3] 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작은 요새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늪지대였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 요새가 지어지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관광지 중 하나. 가운데의 뾰족한 건물은 성당으로, 러시아 제국이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천도한 이후의 황제와 황후들의 관이 있다. 표트르 2세[4] 와 이반 6세를 제외한 표트르 대제부터 알렉산드르 3세까지는 사후 이 성당에 안장되었고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 혁명 이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처형후 암매장되었다가 소련 붕괴 이후 시신을 수습해 1998년 여기에 가족과 함께 안장되었다.
이전에도 감옥을 겸하기는 했지만, 1809년에 핀란드 전쟁을 끝낸 프레드릭스함[5] 조약으로 러시아가 핀란드 전역을 손에 넣으면서 스웨덴이 완전히 약체화 된 이후로는 순수 감옥으로만 사용되었다. 제정 시대 여러 위인들이 한때 수감되었던 옛 감옥 등 여러 구역이 다른 테마로 관리되고 있다. 성벽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를 볼 수 있는데 높이도 그리 높지 않을뿐더러 입장료가 창렬이라 굳이 추천하지는 않는다.[6]
3.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편집]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Петропавловский собор)은 표트르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할 때 가장 먼저 착공된 곳으로, 1712년부터 1733년까지 약 21년에 걸쳐 세워졌다.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에 있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주교좌는 1859년 성 이사악 대성당으로 이전되었으며 현재는 카잔 대성당에 있다. 상술한 내용처럼, 이곳에 부속된 황실 묘역에는 표트르 2세와 이반 6세를 제외하고 표트르 대제부터 니콜라이 2세까지의 황제와 황후 및 로마노프 왕조 일가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참고로 아래 표의 출생년도와 사망년도를 보면 몇몇은 실제와 다른데, 오기입이 아니라 러시아는 1918년까지 율리우스력을 썼기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4. 황족 묘역[편집]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이 완성되고 200년 가까이 흐르자 내부에 안장된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매장할 공간이 모자라게 되었다. 이 때문에 성당 내부에 안장된 황족들 중 직계가 아닌 사람들을 이장할 새로운 묘역을 마련할 필요성이 생겼고, 건축가 다비드 이바노비치 그림이 황족 묘역(Великокняжеская усыпальница)을 1896년에 설계해 1908년에 완공했다. 지붕 위에는 네오바로크 양식의 돔이 얹혀져 있으며 내부는 대리석과 모자이크, 오르몰루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새로 지어진 황족 묘역에는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에서 이장한 8명을 포함해 러시아 혁명 전까지 13명의 황족이 안장되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 연방이 들어선 뒤에는 1992년 4월 29일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이 안장되었고, 1995년 3월 7일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의 부모인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8] 과 빅토리아 표도르브나 대공비가 이곳으로 이장되었으며, 2010년 6월 2일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의 아내인 레오니다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까지 안장됨에 따라 이들 4명을 더해 총 17명이 안장되었다.
5. 매체에서의 등장[편집]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3 에서 연합군, 소련군 미션에서 등장한다. 소련군 미션에서는 첫 번째 임무로 성당을 욱일제국군으로부터 방어 해야 한다. 연합군의 최후의 임무에서 최종보스로 등장하여 성당이 우주왕복선 발사대로 마개조 되어(...) 등장한다. 파괴된 이후 생포된 체르덴코와 크루코프는 영구 냉동형에 처해진다.
브레이브 위치스에서 502부대의 기지 모티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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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로는 St. Peter Paul Fortress라고 많이들 얘기한다.[2] 러시아어로는 이조라(Ижора). 현재 레닌그라드 주 일대의 핀란드계 민족인 이조라인이 거주하던 역사적인 지역으로 레닌그라드 주보다는 작다. 스웨덴은 1617년 루스 차르국으로부터 이 지역을 양도받아 러시아가 발트해로 나가는 것을 원천 차단했다.[3] 현재 스몰니 수도원 건너편에 있었다.[4] 표트르 2세는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이 아닌 모스크바 크렘린 내부의 대천사 성당에 안장되었다.[5] 현재 핀란드 하미나.[6] 시내를 내려다보고 싶으면 성당을 올라가면 된다. 그쪽이 가성비가 훨씬 좋다.[7] 러시아 혁명 후 모국인 덴마크로 망명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남편 곁에 묻어줄 것을 유언했으나 사후 78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8] 알렉산드르 2세의 아들인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의 아들이자 니콜라이 2세의 사촌동생.[9]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의 장인이다.